보길도 윤선도 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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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조선 시대의 정원 양식을 보여주는 곳으로, 윤선도가 청나라의 침략을 피해 보길도에 정착하면서 조성되었다. 이곳은 윤선도가 시조 《어부사시사》를 창작한 장소이며, 낙서재, 동천석실, 세연정 등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윤선도 원림은 보길도의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통해 정원 조성의 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명승지이며, 윤선도의 생활상과 자연관을 보여주는 문화사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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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윤선도 원림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위치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보길도 윤선도 원림 (甫吉島 尹善道 園林) |
유형 | 명승, 사적, 기념물 |
지정 번호 | 명승 34호, 사적 368호, 기념물 37호 |
지정일 | 명승 2008년 1월 8일, 사적 1992년 1월 11일, 기념물 1978년 9월 22일 |
해지일 | 사적 2008년 1월 8일, 기념물 1992년 1월 21일 |
주소 |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 부황길 57 외 |
소유자 | 완도군 외 3명 |
시대 | 조선시대 |
면적 | 지정구역 81,745m², 보호구역 398,983m² |
관련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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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 |
문화재청 |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cd=15&ccbaAsno=00340000&ccrlCndt=1&pageNo=1_1_1_1,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cd=13&ccbaAsno=03680000&ccrlCndt=1&pageNo=1_1_1_1 |
2. 역사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하고 있다. 윤선도(1589년 ~ 1671년)가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제주로 향하던 중 이곳의 절경에 매료되어 머물게 되었으며, 〈어부사시사〉 등 주옥 같은 한시를 이곳에서 창작하였다.[10]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하고 있다. 윤선도가 병자호란으로 제주도로 향하던 중 이곳의 절경에 매료되어 머물게 되었으며, 〈어부사시사〉 등 주옥같은 한시를 이곳에서 창작하였다.[10]
윤선도는 1637년부터 여러 차례 보길도에 드나들면서 13년간 머물렀다. 그는 부용동 계곡의 지형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정원 공간을 조성하였는데, 이는 보길도의 천혜의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통한 정원 조성의 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명승지로 평가받는다.[10]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섬에 조성된 조선시대 별서정원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윤선도가 “어부사시사” 등 많은 시문을 남긴 곳으로 당시 윤선도의 생활상과 자연관을 보여주는 문화사적 가치가 큰 정원 유적이다.[10]
3. 정원 구성
정원은 크게 낙서재, 동천석실, 세연정의 세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판석보는 한국식 정원의 독특한 유적으로 평평한 돌을 이용하여 내부가 비도록 세워 만든 것이다. 이것은 세연지에 물을 저장하였다가 회수담으로 흘려 보내는 역할을 하였다.[12][13]
3. 1. 낙서재
윤선도가 주자학을 연구하던 곳으로, 조선 병자호란 시기에 제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의 절경에 매료되어 머물게 되면서 짓게 되었다.[11] 윤선도는 동쪽, 서쪽, 중앙에 각각 세 채의 기와집을 짓고 주자학을 연구하였으며, 낙서재를 위해 고산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낙서재는 서실(書室)을 갖춘 살림집으로 북향하고 있으며, 옆으로 낭음계(朗吟溪)라는 작은 시내가 흐르고 낭음계 양편에 곡수당(曲水堂)과 무민당(無憫堂) 두 건물을 지었다. 이 두 건물 곁에는 넓고 네모진 연못이 있다.
3. 2. 동천석실
동천석실은 낙서재 맞은편 산 중턱 절벽 바위 위에 있는 한 칸 짜리 정자이다.[11] 주변의 석문, 석천, 석폭, 석대도 장관이다. 동천석실은 천하의 명산경승으로 신선이 사는 곳을 '동천복지(洞天福地)'라고 한 데서 이름지어진 곳으로, 휴식과 독서를 위해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6]
3. 3. 세연정
세연정은 윤선도가 병자호란으로 제주도로 가던 중 보길도의 경치에 매료되어 머물면서 지은 정자이다. 이곳에서 〈어부사시사〉 등 여러 한시를 지었으며,[14] 세연정 부근은 보길도 윤선도 원림에서 가장 공들여 꾸민 곳이다.
세연정은 해변과 가까운 마을 입구에 인공 수로를 만들 때 조성되었으며, 연못과 정자, 벼랑을 건설하여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세연정 건물에는 중앙에 세연지, 동쪽에 호광루, 남쪽에 낙기란, 서쪽에 동화각과 칠암헌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14]
3. 3. 1. 세연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보여주는 보길도 윤선도 원림에서 가장 공들여 꾸민 곳은 세연정 부근이다. 윤선도(1589년 ~ 1671년)는 병자호란으로 제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의 절경에 매료되어 이곳에 머물렀으며, 〈어부사시사〉 등 주옥같은 한시를 이곳에서 창작하였다.[12]
세연정은 해변에 바로 인접한 동구(洞口)에 조성되었는데, 이미 깊이가 한길에 이르는 넓은 담(潭)이 형성되어 있었다. 윤선도는 이 담가에 정자를 지어 경관을 즐기도록 하였다. 연못은 곡지(曲池)와 방지(方池)로 구성되는데, 동구를 흐르는 내를 돌로 된 보(판석보)로 막아 만든 곡지에는 큰 바위들을 점점이 노출시켰으며, 방지에는 한 쪽에 네모난 섬을 만들고 그 섬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방지의 동쪽 물가에는 돌로 된 네모진 단 두 개(동대와 서대)를 나란히 꾸며놓았는데, 이곳은 무희가 춤을 추고 악사가 풍악을 울리던 자리이다. 방지 남쪽에 나지막한 동산이 있는데 세연정은 이 동산 위에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14]
세연지와 회수담 사이에 있는 세연정은 정자의 중앙에 세연지, 동편에 호광루, 남쪽에 낙기란, 서편에는 동화각과 칠암헌(七岩軒)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판석보(板石洑)는 한국식 정원의 독특한 유적으로 평평한 돌을 이용하여 내부가 비도록 세워 만든 것이다. 이것은 세연지에 물을 저장하였다가 회수담으로 흘려 보내는 역할을 하였다.[13]
3. 3. 2. 동대와 서대
방지의 동쪽 물가에는 돌로 만든 네모진 단 두 개(동대와 서대)가 나란히 있었는데, 이곳은 무희가 춤을 추고 악사가 풍악을 울리던 자리이다.[14]
3. 3. 3. 세연정 건물
세연정은 세연지와 회수담 사이에 있는 정자이다. 정자 중앙에는 세연지, 동편에는 호광루, 남쪽에는 낙기란, 서편에는 동화각과 칠암헌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14] 세연정 부근은 이 원림에서 가장 공들여 꾸민 곳으로, 해변에 바로 인접한 동구(洞口)에 넓다란 담(潭)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 담가에 정자를 지어 경관을 즐기도록 하였다. 연못은 곡지(曲池)와 방지(方池)로 구성되는데, 동구를 흐르는 내를 돌로 된 보(판석보)로 막아 만든 곡지에는 큰 바위들을 점점이 노출시켰으며, 방지에는 한쪽에 네모난 섬을 만들고 그 섬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방지의 동쪽 물가에는 돌로 된 네모진 단 두 개(동대와 서대)를 나란히 꾸며 놓았는데, 이곳은 무희가 춤을 추고 악사가 풍악을 울리던 자리이다. 방지 남쪽에 나지막한 동산이 있는데, 세연정은 이 동산 위에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14]
4. 문화적 가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갖추고 있다. 윤선도(1589~1671)가 병자호란으로 인해 제주도로 향하던 중 이곳의 절경에 매료되어 머물게 되었으며, <어부사시사> 등 주옥 같은 한시를 이곳에서 창작하였다.[10] 윤선도는 이곳에서 주자학을 연구했다.
낙서재[11]는 윤선도가 조그마한 세 채의 기와집을 동쪽과 서쪽, 그리고 중앙에 각각 짓고서 주자학을 연구하는 곳이다. 낙서재 바로 건너 산 중턱 절벽 바위 위에는 동천석실이라는 한 칸 짜리 집의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주변의 석문, 석천, 석폭, 석대도 장관이다. 세연지[12]와 회수담[13] 사이에 있는 세연정은 정자의 중앙에 세연지, 동편에 호광루, 남쪽에 낙기란, 서편에는 동화각과 칠암헌(七岩軒)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섬에 조성된 조선시대 별서정원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윤선도가 <어부사시사> 등 많은 시문을 남긴 곳으로 당시 윤선도의 생활상과 자연관을 보여주는 문화사적 가치가 큰 정원 유적이다.[10]
5. 현대적 의의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윤선도가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통해 조성한 정원으로, 당시 윤선도의 생활상과 자연관을 엿볼 수 있는 문화사적 가치가 크다.[10] 특히, 이곳은 윤선도가 〈어부사시사〉 등 많은 시문을 남긴 곳으로도 유명하다.[10]
6. 지정 현황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하고 있다. 윤선도(1589년 ~ 1671년)가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제주로 향하던 중 이곳의 절경에 매료되어 머물게 되었으며, 〈어부사시사〉 등 주옥같은 한시를 이곳에서 창작하였다.[10][11][12][13]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 제2조 별표1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준>에 따라 「명승」으로 재분류되었다.
참조
[1]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 및 사적 해제
문화재청장
2008-01-08
[2]
웹사이트
부용동정원
http://encykorea.aks[...]
[3]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 및 사적 해제
문화재청장
2008-01-08
[4]
웹사이트
회수담
http://terms.naver.c[...]
[5]
웹사이트
낙서재
http://www.cultureco[...]
[6]
웹사이트
동천석실
http://terms.naver.c[...]
[7]
웹사이트
세연정
http://terms.naver.c[...]
[8]
문서
景色を鑑賞することができる高く平らなところ
[9]
웹사이트
芙蓉洞庭園
http://terms.naver.c[...]
[10]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 및 사적 해제
문화재청장
2008-01-08
[11]
웹사이트
낙서재
http://www.cultureco[...]
[12]
웹사이트
세연지
http://www.cultureco[...]
[13]
웹사이트
회수담
http://www.cultureco[...]
[14]
웹사이트
부용동정원
http://encykorea.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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