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삼세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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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봉은사 삼세불도는 봉은사 대웅전에 봉안된 1892년에 제작된 대규모 불화이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불, 아미타불을 배치하여 삼세불을 표현하고, 6보살, 8나한, 사천왕, 화불, 용왕, 용녀 등이 함께 묘사되었다. 붉은색을 주로 사용하고 청색, 흰색, 녹색, 금색 등을 함께 사용하여 화려한 채색을 보여준다. 1878년에 제작된 안성 청룡사 삼세불화와 유사한 도상을 가지며, 영명 천기, 금곡 영환, 덕월 응론 등 화승들이 두 불화 제작에 모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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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은사 삼세불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 |
| 이름 | 봉은사 삼세불도 |
| 한자 이름 | 奉恩寺 三世佛圖 |
| 국가 | 서울특별시 |
| 유형 | 유형문화재 |
| 지정 번호 | 234 |
| 지정일 | 2007년 9월 27일 |
|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73 |
| 시대 | 조선시대 |
| 수량 | 1폭 |
2. 제작 배경 및 역사
이 불화는 1892년(고종 29년) 봉은사 대웅전의 후불탱화로 조성되었다. 현재 대웅전에 함께 모셔져 있는 17~18세기경 제작된 삼세불상과 조화를 이루는 삼세불 신앙의 형태를 보여준다. 세로 319.7cm, 가로 291.8cm의 대규모 면본 채색화로, 현재 대웅전의 후불벽보다는 폭이 좁지만 1892년 당시 대웅전의 후불벽 규모에 맞춰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1]
이 불화는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의 삼세불을 중심으로 6보살, 8나한, 사천왕, 화불, 용왕, 용녀 등이 배치된 구성을 취하고 있다.[1]
오청정월(吳淸淨月)과 민두호를 비롯한 여러 상궁들의 시주로 제작되었으며, 당대 봉은사에 주석하던 영명 천기(永明 天機)를 비롯한 금곡 영환(金谷 永煥), 덕월 응론(德月 應惀) 등 유명 화승들이 제작에 참여하였다.[1]
3. 도상 및 양식적 특징
석가모니불은 키형 광배를 배경으로, 높은 수미단 위 청련대좌에 길상좌 자세로 앉아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석가모니불 도상을 따르고 있다. 반면, 약사불과 아미타불은 이중륜광을 배경으로 아미타구품인을 하고 있어 석가모니불과 차이를 보인다.[1]
6보살은 붉은색 천의를 입고 중앙을 향해 서 있는데, 각각 문수보살(여의), 보현보살(연꽃), 일광보살(붉은 해), 월광보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추정된다.[1] 화면의 네 방향에는 사천왕이 배치되어 사방을 수호하는 역할을 시각적으로 나타낸다.[1]
채색은 붉은 색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청색, 흰색, 녹색, 금색 등을 함께 사용하였다. 특히 석가모니불의 신광 내부는 금색으로, 아미타불과 약사불의 신광 내부는 다양한 색대로 표현되어 화려하면서도 장식적이다. 불, 보살의 얼굴은 음영 없이 처리되었으나, 나한과 사천왕은 음영을 강하게 사용하여 다소 과장되면서도 능숙한 표현이 돋보인다. 필선은 주로 철선묘가 사용되었지만, 머리카락과 수염 등의 묘사에서는 세밀한 필치가 엿보인다.[1]
3. 1. 안성 청룡사 삼세불화와의 비교
이 불화는 전체적인 화면 구성이 1878년에 제작된 안성 청룡사 삼세불화와 유사하며, 두 불화는 일부 권속의 가감(加減)을 제외하고는 동일한 도상(圖像)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1] 삼세불의 뾰족한 육계, 착의법을 비롯하여 사이사이에 배치된 분신불과 제자들, 사방을 호위하고 있는 사천왕의 모습 등이 동일하다.[1]
봉은사 삼세불화에는 6보살이 표현된 반면, 청룡사 삼세불화에는 8보살과 두 천녀가 배치된 점이 다르다.[1] 이처럼 두 불화가 동일한 도상을 보여주는 것은 봉은사 삼세불화를 그린 화승 중 영명 천기(永明 天機), 금곡 영환(金谷 永煥), 덕월 응론(德月 應惀)이 청룡사 삼세불화 제작에도 참여하였기 때문이다.[1]
4. 화기(畵記) 및 기록
불화 하단에 남아있는 화기(畵記)에는 제작 시기, 참여 화승, 시주자 등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1] 화기에 따르면, 이 불화는 1892년(광서 18년) 5월 7일에 시작하여 20일에 완성되어 봉은사에 봉안되었다.[1] 화기는 불화의 제작 배경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화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1]
| 항목 | 내용 | |
|---|---|---|
| 연화소 (緣化所) | 증명 (證明) | 사월지창(沙月智昌), 보운긍엽(寶雲亘葉), 등운수은(騰雲修隱), 대연월규(大淵月䆋) |
| 송주비구 (誦呪比丘) | 인선(仁先), 수현(守玄) | |
| 지전비구 (持殿比丘) | 성윤(性允), 호정(昊政) | |
| 금어 (金魚) | 영명천기(永明天機), 금곡영환(金谷永煥), 덕월응론(德月應惀), 비구봉화(比丘奉華), 혜조(慧照), 치행(致行), 법능(法能) | |
| 공사 (供司) | 사미법오(沙彌法悟) | |
| 종두 (鍾頭) | 사미립선(沙彌笠禪), 취연(就淵) | |
| 별좌 (別座) | 송곡수법(松谷守法) | |
| 도감 (都監) | 침송총전(枕松摠典) | |
| 화주 (化主) | 월봉법능(月峰法能) | |
| 인권시주 (引勸施主) | 오씨청정월(吳氏淸淨月) | |
| 대시주 (大施主) | 건명(乾命) 기축생(己丑生) 민공두호(閔公斗鎬) | |
| 곤명(坤命) 무술생(戊戌生) 문씨(文氏) 양위(兩位) | ||
| 본사(本寺) | 판사(判事) | 정해법천(靜海法天) |
| 침송총전(枕柗摠典), 영명천기(永明天機), 경해신영(慶海信永), 허곡긍순(虛谷亘順), 등운수은(騰雲修隱), 학허석운(鶴虛石雲), 해옹법선(海翁法船), 월봉법능(月峰法能), 송곡수법(松谷守法), 비구태환(比丘泰還), 법오(法悟) | ||
| 상궁신녀(尙宮信女) | 신씨경덕화(申氏景德華), 원씨덕원행(元氏德圓行), 이씨대각화(李氏大覺華), 태씨묘덕운(太氏妙德雲) | |
| 신녀(信女) | 윤씨공덕운(尹氏功德雲), 신씨보법운(申氏寶法雲), 박씨대혜월(朴氏大慧月), 김씨대지월(金氏大智月), 이씨보명행(李氏普明行), 이씨대자행(李氏大慈行), 이씨실상화(李氏實相華) | |
| 비구(比丘) | 긍조(亘祚), 호정(昊政), 봉섭(奉攝), 수현(守玄), 성조(性照), 인찬(仁讚), 취연(就淵), 죽선(竺禪), 태흔(太昕) | |
| 발원(發願) |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당생극락국(當生極國) 동견무량수(同見無量壽)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 |
| 조성 시기(造成時期) | 광서(光緖) 18년 임진(壬辰) 5월 초 7일 시작, 상단탱(上壇幀)·중단감로(中壇甘露) 합 6폭 조성, 20일 봉은사(奉恩寺)에 봉안. |
이 불화는 인권시주(引勸施主)인 오청정월(吳淸淨月)과 민두호(閔斗鎬)를 비롯하여 여러 상궁들의 시주에 의해 조성되었으며,[1] 이 그림을 주관한 화승 영명 천기(永明 天機)가 본사질로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영명천기는 당시 봉은사에 주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
5. 예술적, 문화재적 가치
이 불화는 세밀한 필치와 섬세한 음영 구사, 화려한 채색 등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주며, 특히 머리카락과 수염 등의 묘사에서 세밀한 필치가 돋보인다.[1] 19세기 말 서울 지역 불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당시 불교 미술의 경향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1] 청룡사 삼세불화와 함께 서울 지역의 대표적인 삼세불화로 꼽히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 및 관리되고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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