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희
1. 개요
부희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젊어서부터 학문을 익혀 뜻을 드높였다. 애제 시기에 태자중서자, 위위, 우장군을 역임했으며, 왕망이 물러난 후 대사마가 되기를 기대받았으나 사양했다. 이후 대사마에 임명되었으나 외척 세력과의 갈등으로 파면당하고 봉국으로 쫓겨났다. 평제 즉위 후 왕망에게 발탁되어 특진의 지위를 받았으나 두려워 봉국으로 돌아갔다. 고무정후 15년(9년)에 사망했으며, 시호는 정(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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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사망 -
해명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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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사망 -
푸블리우스 큉크틸리우스 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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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외척 -
박소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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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외척 -
여통 (연왕)
여통은 고황후 여씨의 외척으로, 추후에 봉해졌다가 연영왕 유건 사후 연왕이 되었으나, 여씨 일족 주살 때 함께 죽임을 당했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2. 생애
젊어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뜻이 높았다. 수화 원년(기원전 8년)에 성제가 정도왕 유흔을 황태자로 책봉한 후 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가 되었고, 이듬해에 유흔이 즉위하면서(애제) 위위·우장군을 역임하였다.
대사마 왕망이 물러나자 사람들은 부희가 뒤를 잇기를 바랐다. 그러나 종제 부안이 애제의 장인이었고, 애제의 외삼촌 정명도 있었기 때문에, 부희는 병을 핑계로 사양하였다. 결국 애제는 좌장군 사단을 대사마에 임명하고, 부희의 장군 인수를 거두고 황금 백 근을 주어 광록대부에 임명하여 치료에 전념하게 하였다. 그러나 대사공 하무·상서령 당림은 부희를 기용할 것을 상주하여, 건평 원년(기원전 6년) 대사마가 되고 고무후(高武侯)에 봉해졌다.
애제의 외척 정(丁)씨·부씨는 부희를 질투하였고, 부희는 황태후의 존호를 원하던 부태후를 공광·사단과 함께 제지하였기 때문에, 그녀의 미움을 받았다. 애제는 사단을 파면하고 부희에게 재고할 시간을 주었으나, 부희는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부희도 파면되었다. 부태후는 부희가 조정에 나오는 것조차 금하였고, 봉국으로 쫓아냈다.
원수 2년(기원전 1년), 애제가 붕어하고 평제가 즉위하였다. 권력을 되찾은 왕망은 부씨 일족의 관작을 추탈하였는데, 부희만은 예전에 부태후에 맞섰기 때문에 조정에 불러 특진 지위를 주었다. 부희는 포상을 받았지만 두려워하여 봉국으로 돌아갔다.
고무정후 15년(9년),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시호를 정(貞)이라 하였고, 아들 부경이 작위를 이었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젊어서부터 학문을 익혔고, 뜻이 드높았다. 수화 원년(기원전 8년)에 성제가 정도왕 유흔을 황태자로 책봉한 후 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가 되었고, 이듬해에 유흔이 즉위하면서(애제) 위위·우장군을 역임하였다.
이때 대사마 왕망이 물러났는데, 사람들은 부희가 뒤를 잇기를 바랐다. 그러나 부희의 종제 부안이 애제의 황후의 아버지였고, 또 애제의 외삼촌 정명도 있었기 때문에, 부희는 병을 핑계로 사양하였다. 결국 애제는 좌장군 사단을 대사마에 임명하고, 부희의 장군 인수를 거두고, 황금 백 근과 함께 광록대부의 지위에 두어 치료에 전념하게 하였다. 대사공 하무·상서령 당림은 부희를 기용할 것을 상주하여, 건평 원년(기원전 6년) 대사마가 되고 고무후(高武侯)에 봉해졌다.
2.2. 왕망과의 관계 및 대사마 임명
대사마 왕망이 물러나자 사람들은 부희가 뒤를 잇기를 바랐다. 그러나 부희의 종제 부안이 애제의 장인이었고, 또 애제의 외삼촌 정명도 있었기 때문에, 부희는 병을 핑계로 사양하였다. 결국 애제는 좌장군 사단을 대사마에 임명하고, 부희의 장군 인수를 거두고, 황금 백 근과 함께 광록대부의 지위에 두어 치료에 전념하게 하였다. 그러나 대사공 하무·상서령 당림은 부희를 기용할 것을 상주하여, 결국 건평 원년(기원전 6년) 대사마가 되고 고무후(高武侯)에 봉해졌다.
애제의 외척 정(丁)씨·부씨는 부희를 질투하였고, 또 부희는 황태후의 존호를 원하던 부태후를 공광·사단과 함께 제지하였기 때문에, 그녀의 미움을 받았다. 애제는 어쩔 수 없이 일단 사단을 파면하고, 부희에게 재고할 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부희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애제는 부희도 파면하였다. 부태후는 부희가 조정에 나오는 것조차 금하였고, 봉국으로 쫓아냈다.
2.3. 외척 세력과의 갈등 및 파면
애제의 외척인 정(丁)씨·부씨는 부희를 질투하였고, 또 부희는 황태후의 존호를 원하던 부태후를 공광·사단과 함께 제지하였기 때문에, 그녀의 미움을 받았다. 애제는 어쩔 수 없이 일단 사단을 파면하고, 부희에게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부희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애제는 부희도 파면하였다. 부태후는 부희가 조정에 나오는 것조차 금하였고, 봉국으로 쫓아냈다.
2.4. 왕망 집권 이후
원수 2년(기원전 1년), 애제가 죽고 평제가 즉위하였다. 왕망은 권력을 되찾아 부씨 일족의 관작을 빼앗았으나, 부희는 예전에 부태후에 맞섰기 때문에 오히려 조정에 불려 특진 지위를 받았다. 부희는 포상을 받았지만 두려워하여 봉국으로 돌아갔다.
고무정후 15년(9년), 부희는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시호를 정(貞)이라 하였고, 아들 부경이 작위를 이었다.
2.5. 죽음
부희는 시호를 정(貞)이라 하였고, 아들 부경이 작위를 이었다. 고무정후 15년(9년)에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