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주 효민제
1. 개요
북주 효민제는 서위의 실력자 우문태의 아들로, 557년 북주를 건국하고 천왕으로 즉위했으나, 우문태의 조카 우문호에게 폐위되어 살해된 인물이다. 9세에 약양군공에 봉해졌으며, 우문태 사후 태사, 대총재 자리를 계승했다. 즉위 후 우문호의 전횡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폐위되었고, 1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사후 우문호가 제거되면서 효민황제로 추존되었으며, 2023년에는 능묘가 발견되었다.
| 작위 | 주 천왕 |
|---|---|
| 휘 | 우문 각(宇文 覺) |
| 가문 | 우문씨 |
| 씨족 | 미상 |
| 출생 | 542년 |
| 사망 | 557년 (15세) |
| 아버지 | 우문태 |
| 어머니 | 하남 원씨 부인 |
| 배우자 | 효민황후 |
| 자녀 | 우문 강 |
| 북주 통치 시작 | 557년 2월 15일 |
|---|---|
| 북주 통치 종료 | 557년 10월 말 |
| 섭정 | 우문호 |
| 계승자 | 북주 명제 |
| 시호 | 효민황제(孝閔皇帝, "효성스럽고 신중한") |
|---|---|
| 묘호 | 미상 |
| 능묘 | 정릉(靜陵) |
| 연호 | 없음 |
| 즉위 전 작위 | 주국공(周國公) (557년 2월 1일 ~ 557년 2월 15일) 안정군공(安定郡公) (556년 11월 22일 ~ 557년 2월 1일) 약양군공(略陽郡公) (551년 ~ 556년 11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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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조 시대의 태사 -
우문태
우문태는 중국 남북조 시대 서위의 실권자이자 북주의 추존 황제로, 하발악 사후 세력을 흡수하여 서위의 실력자가 되었고 효무제 독살 후 문제 옹립, 부병제 확립, 균전제 부활 등 내정 개혁을 통해 북주 건국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사후 태조 문황제로 추존되었다. -
남북조 시대의 태사 -
소륜
소륜은 양나라 무제의 아들로, 총명하고 문장에 능했으나 기행과 불법을 저질러 파면과 복직을 반복했으며, 후경의 난을 진압하려다 실패하고 서위의 공격으로 사망하여 소릉장무왕으로 추증되었다. -
557년 사망 -
서위 공제
서위 공제 원곽은 서위 문제의 아들로, 폐제 폐위 후 우문태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실권 없이 우문씨의 영향력 아래 있다가 우문각에게 제위를 선양하고 살해되어 서위는 멸망했으며, 재위 기간 동안 연호는 사용되지 않았다. -
557년 사망 -
독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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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태의 아들 -
북주 무제
북주 무제 우문옹은 권신 우문호를 제거하고 친정을 통해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폐불 정책을 통해 재정을 확보하였으며, 북제를 멸망시키고 화북을 통일했으나 진나라 공격을 앞두고 병사한 북주의 제3대 황제이다. -
우문태의 아들 -
북주 명제
2. 생애
556년 3월, 우문태의 적자로 인정받아 세자가 되었고, 4월에 대장군에 임명되었다. 10월에 우문태가 사망하자 태사와 대총재 자리에 올랐다. 12월에 주공(周公)으로 봉해졌고, 557년 1월에 서위 공제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아 북주를 건국했다. 그러나 우문태의 조카이자 우문각 옹립의 주역인 우문호가 조귀와 독고신 등의 정적을 숙청하여 실권을 장악했다.
주서에 따르면 우문각은 강하고 과감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557년 9월, 우문호의 전횡을 막기 위해 측근들과 우문호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폐위되었다. 이후 약양공(略陽公)으로 강등되어 유폐된 뒤 16세의 나이로 살해되었다. 이복형인 우문육이 우문호에 의해 옹립되었다.
훗날 우문호가 동생인 무제에게 살해되자 복권되어 효민황제(孝閔皇帝)로 추존되었다.
2.1. 출생과 성장
542년 서위의 권력자 우문태의 셋째 아들로 동주 관사(同州 官舎)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풍익공주는 북위 효무제의 여동생이다. 9살 때 서위의 약양군공(略陽郡公)으로 책봉되었다. 『주서』 효민제기에 의하면 고귀하지만 오래 살 수 없는 인상으로 점쳐졌다고 한다.
556년 봄, 우문태는 후계자 문제를 고민했다. 우문각은 풍익공주의 아들이었지만, 우문육은 나이가 더 많았고, 우문태의 핵심 장군 중 한 명인 독고신의 딸과 결혼했다. 아내는 첩의 아들보다 항상 우선한다는 이원(李遠)의 조언에 따라 우문태는 우문각을 태자로 삼았다. 같은 해 3월에 안정공 우문태의 세자가 되었고, 우문태의 적자로서 인정받았다. 4월에 대장군에 임명되었다.
2.2. 북주 건국과 폐위
556년 10월, 우문태가 사망하자 태사와 대총재 자리에 올랐다. 556년 12월에 주공(周公)으로 봉해졌고, 557년 1월에 서위의 공제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아 북주를 건국한다. 북주 효민제는 황제(皇帝)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고 주 왕조식 칭호인 "천왕(天王, Tian Wang)"을 사용했다. 우문태의 조카로 우문각 옹립의 주역인 우문호가 조귀와 독고신 등의 정적을 숙청하여 실권을 장악했다.
주서에 의하면 우문각은 강하고 과감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557년 9월에 우문호의 전횡을 막기 위해, 측근들과 우문호를 살해하는 계획을 하지만 사전에 탄로났고 폐위되어 약양공(略陽公)으로 격하당하고 뒤에 살해되었다. 그의 나이가 16세였다. 그의 이복형인 우문육이 우문호에 의해 옹립되었다.
3. 가족 관계
효민황후는 북주 효민제의 사촌이며, 이름은 호마이다. 부인 육씨는 우문강을 낳았다.
3.2. 후궁
| 봉호 | 이름(성씨) | 비고 |
|---|---|---|
| 부인(夫人) | 팽씨(彭氏) | |
| 부인(夫人) | 육씨(陸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