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프리트 보이니치
1. 개요
빌프리트 보이니치는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난 폴란드 귀족 출신으로, 혁명가이자 골동품 서적상이었다. 바르샤바 대학교 등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약사 면허를 취득했으며, 1885년 혁명 조직에 가입하여 러시아 제국에 저항하다 체포되어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탈출 후 런던에서 혁명 활동을 이어가다 서적상으로 전업하여 희귀 서적을 수집, 판매했다. 1912년에는 보이니치 필사본을 입수했는데, 이는 현재까지 해독되지 않은 신비로운 중세 시대 문서로 알려져 있다. 보이니치는 1930년 사망했으며, 보이니치 필사본은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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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샤이 출신 -
롤란다스 팍사스
롤란다스 팍사스는 리투아니아의 정치인이자 전직 곡예 비행사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탄핵되었으며, 곡예 비행 국가대표, 빌뉴스 시장, 총리를 역임한 후 질서와 정의당을 창당했으나 러시아 사업가와의 연루 의혹으로 탄핵되어 유럽 최초로 탄핵된 국가 원수가 되었다. -
텔샤이 출신 -
기에드류스 아를라우스키스
기에드류스 아를라우스키스는 리투아니아의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동하며 리투아니아 국가대표팀에서 57경기 출전, 2014년 리투아니아 올해의 축구 선수 선정,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리그 우승 및 트레블 달성, 왓퍼드 FC, RCD 에스파뇰 등 다양한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
폴란드의 혁명가 -
레오 요기헤스
레오 요기헤스는 폴란드계 유대인 혁명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로, 러시아 제국에서 초기 사회주의 운동을 조직하고 로자 룩셈부르크와 함께 폴란드 왕국 사회민주주의를 창립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중 스파르타쿠스단의 지하 활동을 이끌다가 암살당했다. -
폴란드의 혁명가 -
펠릭스 제르진스키
펠릭스 제르진스키는 볼셰비키 혁명에 기여하고 비밀경찰 체카를 창설하여 적색 테러를 자행하며 공포 통치를 펼쳤으며, 소련 정부의 요직을 역임했으나 냉전 종식 후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
폴란드의 역사가 -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는 폴란드 귀족 가문 출신으로 반체제 활동가로 활동하다 폴란드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이며, 국방장관, 하원 의장 등을 거쳐 친 EU 정책을 추진했다. -
폴란드의 역사가 -
브와디스와프 그랍스키
브와디스와프 그랍스키는 제2 폴란드 공화국 시기에 활동하며 농업부, 재무부 장관 및 총리를 역임했고, 폴란드 은행 설립과 금본위제 도입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한 폴란드의 정치인이다.
2. 생애
미하우 합당크-보이니치는 리투아니아 텔샤이에서 폴란드 귀족 가문 출신으로 태어났다. 그의 성씨 중 "합당크"는 폴란드 문장 클랜의 이름이며, 아버지는 폴란드인 하급 관리였다. 바르샤바 대학교,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등에서 공부했으며,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약사 면허를 취득했다.
1885년 바르샤바에서 혁명 조직 프롤레타리아트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886년 동료들을 탈출시키려다 실패하고 러시아 경찰에 체포되어 시베리아 툰카에서 강제 노역형을 선고받았다.
1890년 시베리아에서 탈출하여 런던으로 망명하였고, 세르게이 스테프냐크와 함께 반차르주의 활동을 했다. 1895년 스테프냐크가 사망한 후 혁명 활동을 중단하고, 1897년부터 골동품 서적 판매업자로 일했다. 1898년 런던에 서점을 열었고, 1902년에는 에텔 릴리언 불과 결혼했다. 1904년 영국 시민권자가 되었다.
1914년 뉴욕에 또 다른 서점을 열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골동품 서적 거래와 관련된 여러 카탈로그를 저술했다. 1917년에는 FBI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30년 뉴욕에서 폐암으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와 혁명 활동
미하우 합당크-보이니치는 1865년 당시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던 리투아니아 텔샤이에서 폴란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수와우키의 김나지움을 거쳐 바르샤바 대학교,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약사 면허를 취득했다.
1885년 바르샤바에서 루드비크 바린스키의 혁명 조직 '프롤레타리아트'에 가입했다. 1886년, 사형 선고를 받은 동료 피오트르 바르도프스키폴란드어와 스타니스와프 쿠니츠키를 바르샤바 요새에서 탈출시키려다 실패한 후, 러시아 경찰에 체포되었다. 1887년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근처 툰카에서 강제 노역형을 선고받았다.
1890년 6월, 시베리아에서 탈출하여 함부르크를 거쳐 1890년 10월 런던에 도착했다. 초기에는 이반 켈체프스키라는 가명으로, 혁명가 세르기우스 스테프냐크와 함께 런던에서 반차르주의 러시아 자유의 친구 협회에서 활동했다.
2.2. 시베리아 유형과 망명
보이니치는 시베리아 유형 중에 18개 언어를 습득했지만, 능숙하지는 않았다. 1890년 6월, 시베리아에서 탈출하여 기차로 서쪽으로 이동해 함부르크에 도착했고, 결국 1890년 10월 런던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이반 켈체프스키라는 가명으로, 동료 혁명가인 세르게이 스테프냐크와 함께 런던에서 반차르주의 러시아 자유의 친구 협회 활동을 했다. 1895년 스테프냐크가 철도 사고로 사망한 후, 보이니치는 혁명 활동을 중단했다.
2.3. 서적상으로서의 활동
1895년 세르기우스 스테프냐크가 철도 사고로 사망하자, 보이니치는 혁명 운동에서 물러났다. 그는 1897년경부터 골동품 서적 판매업자가 되었으며, 대영 박물관 큐레이터인 리처드 가넷의 조언을 따랐다. 1898년 런던 소호 광장에 서점을 열었다. 그는 희귀 서적을 찾는 데 놀라운 행운을 보였으며, 1902년에는 이탈리아에서 니콜로 말레르미 성경을 발견하기도 했다.
1902년, 그는 1890년부터 알고 지내던 영국의 수학자 조지 불의 딸이자 전 혁명가인 에텔 릴리언 불과 결혼했다. 1904년 4월 25일, 보이니치는 영국 시민권자가 되었고, 법적인 이름을 윌프리드 마이클 보이니치로 사용했다.
1914년, 보이니치는 뉴욕에 또 다른 서점을 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그는 점점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골동품 서적 거래에 깊이 관여했으며, 이 주제에 대한 여러 카탈로그와 기타 텍스트를 저술했다.
1917년, 보이니치는 런던 서점을 피카딜리 175번지로 이전했다. 같은 해, 그는 베이컨 암호를 소지하고 있다는 루머에 따라 FBI의 조사를 받았다. 보고서에는 그가 13세기, 12세기, 11세기의 필사본을 취급했으며, 당시 그의 책 가치가 500였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그가 거의 천년이나 된 비밀 코드를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별다른 중요한 점을 밝혀내지 못했다.
3. 보이니치 필사본
보이니치가 소유했던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보이니치 문서로, 1912년 이탈리아 빌라 몬드라곤에서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1915년에 처음 공개되었으며,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1404년에서 1438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보이니치는 사망할 때까지 이 필사본을 소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