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야퐁 피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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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삐야퐁 피우온은 1980년대에 활약한 태국 출신 축구 선수로, 태국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K리그 최초의 외국인 선수로 1984년부터 1986년까지 럭키금성 황소에서 활약하며 1985년 득점왕과 도움왕을 동시에 석권했고, 팀의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말레이시아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태국 대표팀에서 100경기 출전 70골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서 태국 공군 축구팀과 U-18 대표팀을 지도했으며, 2004년에는 영화 배우로도 활동했다.

삐야퐁 피우온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본명퍼뎃 칸크루아
출생일1959년 11월 14일
출생지쁘라쭈압키리칸주, 태국
178cm
포지션축구 공격수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2010년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의 피야퐁 푸에온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항공 기술 훈련 학교 (1976–1978)
클럽로열 타이 에어 포스 (1979–1984)
럭키-금성 FC (1984–1986)
파항 FA (1986–1989)
로열 타이 에어 포스 (1989–1997)
출전 (골)145 (91) (로열 타이 에어 포스, 1979–1984)
34 (17) (럭키-금성 FC, 1984–1986)
61 (70) (파항 FA, 1986–1989)
248 (164) (로열 타이 에어 포스, 1989–1997)
총 출전 (골)488 (342)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태국 (1981–1997)
출전 (골)100 (70)
감독 경력
감독로열 타이 에어 포스 (1997–2008)
TPL 올스타 (2008–2013)
나콘 파톰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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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경력

삐야퐁 피우온은 1980년대에 활약한 태국 축구 역사에 남는 공격수(FW)이다. 태국 공군 유스팀의 스트라이커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K리그 최초의 외국인 선수로서 1984년부터 1986년까지 럭키금성 황소 (현 FC 서울)에서 활약했다. 1985년에는 득점왕과 도움왕을 차지하며 럭키금성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그 후 말레이시아에서 선수 생활을 한 뒤 친정팀인 태국 공군으로 복귀하여 선수 겸 감독도 맡았다.

2.1. 초기 경력

1983년 10월부터 럭키금성 황소의 창단 멤버로 영입이 추진되어 1984년 5월 31일 입단에 합의하였고, 당시 공군 상사였던 피아퐁은 군 문제 등 태국에서 신변 정리 후 1984년 8월 29일 럭키금성에 합류하였다.

1984시즌 9월 8일 포항제철 돌핀스전에 출장하여 데뷔골을 기록하며 K리그 데뷔전을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이 경기 포함 그 후 4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85시즌 럭키금성 황소의 첫 K리그 우승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그 해 득점상도움상을 최초로 동시에 수상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7월 2일 프로축구선수권대회 현대 호랑이전을 마지막으로 2년간의 계약 기간을 마치고 팀을 떠났다.

1987년 5월 럭키금성 황소로 재입단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2.2. 럭키금성 황소 (현 FC 서울)

럭키금성 황소의 창단 멤버로 1983년 10월부터 영입이 추진되어 1984년 5월 31일 입단에 합의하였고, 당시 공군상사였던 삐야퐁의 군 문제 등 태국에서 신변 정리 후 1984년 8월 29일 럭키금성에 합류하였다.

1984시즌 9월 8일 포항제철 돌핀스전에 출장하여 데뷔골을 잡아내며 K리그 데뷔전을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이 경기 포함 그 후 4경기 연속골을 잡아내며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85시즌 럭키금성 황소의 첫 번째 K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1985년 12골 6도움을 기록하며 그 해 득점상도움상을 최초로 동시 수상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7월 2일에 치러진 프로축구선수권대회 현대 호랑이전을 마지막으로 2년간의 계약 기간을 마치고 팀을 떠났다.

1987년 5월 럭키금성 황소로 재입단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삐야퐁 피우온의 럭키금성 황소 유니폼, 대한민국 현대사 박물관 전시
삐야퐁 피우온의 럭키금성 황소 유니폼, 대한민국 현대사 박물관 전시

2.3. 파항 FA

럭키금성 황소(현 FC 서울)에서 1984년부터 1986년까지 활약한 후, 말레이시아의 파항 FA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2.4. 태국 공군 복귀

삐야퐁 피우온은 말레이시아에서 선수 생활을 한 뒤 친정팀인 태국 공군으로 복귀하여 선수 겸 감독을 맡았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코치, 감독으로서 태국 국내 클럽, 유스 대표팀 등을 지도하고, 해설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공군 군적은 지금도 유지하고 있으며, 2009년 현재는 공군 소령(นาวาอากาศตรี) 계급에 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1981년에 처음으로 태국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1982년 FIFA 월드컵 지역 예선에 참가했고, 이 대회의 쿠웨이트와의 경기를 통해 A매치에 데뷔하였다. 1982년에는 태국 청소년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1983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의 예선 대회인 1982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였다. 이 대회에서 17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이후에도 태국 국가대표팀의 핵심 공격수로 활약하여 킹스컵과 월드컵 아시아 예선,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 활동하였고, 특히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는 1981년 대회부터 1997년 대회까지 금메달 5개를 획득하였다.

선수 생활 말기인 1997년 3월 2일에 열린 199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경기인 대한민국과의 경기에도 출전하여 동점골을 넣는 활약을 보였고, 1997년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였다.

삐야퐁 피우온은 16년(1981년~1997년) 동안 태국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100번의 A매치에 출전해 70골을 기록했다.

4. 지도자 경력

태국 공군 대위 신분으로 태국 왕실 공군 FC 감독과 태국 U-18 국가대표팀 코치를 겸했다. 1997년부터 2008년까지 로열 타이 공군 축구 클럽의 감독을 맡았다. 현역 은퇴 후에는 코치, 감독으로서 태국 국내 클럽, 유스 대표팀 등을 지도하였다.

5. 개인사

2004년 판나 리띠끄라이 감독의 태국 액션 영화 《본 투 파이트》에 출연했다.

2007년 K리그 득점왕 모임인 황금발 클럽의 초청으로 21년 만에 은퇴한 외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초청되어 대한민국을 방문하였으며, 친정팀인 FC 서울의 8월 1일 FA컵 16강전 홈경기 행사에도 참석하였다.

K리그에서 활약할 당시 현재 축구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항서와 절친한 사이였으며, 2008년 전남 드래곤즈가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할 당시 박항서태국 축구팀인 촌부리 FC의 전력을 문의하기도 하였다.

그의 아들인 뽕삐숫 피우온 또한 축구 선수로 활동하였으며, 2004년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고 K리그 진출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뽕삐숫은 부상으로 축구 선수의 꿈을 접고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다.

2010년 10월 13일 아들 뽕삐숫과 함께 친정팀 FC 서울의 훈련장인 GS챔피언스파크를 방문하여 당시 넬로 빙가다 감독 및 선수들과 상견례를 갖고 훈련 시설을 둘러보기도 하였다.

6. 수상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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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선수

1980년대에 활약한, 태국 축구 역사에 남는 명공격수(FW)이다. 태국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기록(103득점)을 보유하고 있다.

태국 공군 유스팀의 스트라이커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K리그 최초의 외국인 선수로서 1984년부터 1986년까지 럭키금성 황소 (현 FC 서울)에서 활약했다. 1985년에는 득점왕(12골)과 도움왕(6도움)을 차지하며 럭키금성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그 후 말레이시아에서 선수 생활을 한 뒤 친정팀인 태국 공군으로 복귀하여 마지막에는 선수 겸 감독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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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경력
소속팀대회기록
럭키금성 황소K리그1 우승1985
K리그1 준우승1986
1985년 K리그 득점상, 1985년 K리그 도움상, 1985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파항 FA말레이시안 리그 우승1987

6.2. 감독

현역 은퇴 후에는 코치, 감독으로서 태국 국내 클럽, 유소년 대표팀 등을 지도하고, 해설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공군의 군적은 지금도 유지하고 있으며, 2009년 현재는 공군 소령(นาวาอากาศตรี) 계급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