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이 다다유키 (15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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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카이 다다유키는 1599년에 태어나 1636년에 사망한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이다. 사카이 타다요의 적자로 태어나 도쿠가와 가문을 섬기며 오사카 전투에 참전했다. 이후 막부의 요직을 역임하며 영지를 받았으나, 니시노마루 화재로 근신하기도 했다. 아버지 사카이 타다요의 사망 후 가독을 상속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37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가독은 장남 사카이 타다키요가 이었다.

사카이 다다유키 (1599년)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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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사카이 다다유키
출생게이초 4년 (1599년)
사망간에이 13년 11월 17일 (1636년 12월 14일)
다른 이름만치요 (유년기 이름) → 다다유키
계명쇼간인덴셋소규하쿠코지
묘소군마현마에바시시 고운초의 류카이인
관위종5위하, 아와노카미
막부에도 막부
주군도쿠가와 이에미쓰
고즈케이타바나 번주 → 우마야바시 번주
씨족가가노카미 사카이 가
부모아버지: 사카이 다다요
어머니: 사카키바라 야스마사의 딸
배우자정실: 기쿠히메 (고주인, 마쓰다이라 사다카쓰의 딸)
자녀다다키요, 다다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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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간에이 9년(1632년),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사망한 후 다다유키는 혼마루 주자로 임명되어 쇼군 이에미쓰를 섬겼다. 히데타다의 니시노마루 저택은 타다요에게 주어졌고, 타다요가 에도성 도바시구치 저택에서 니시노마루 저택으로 옮겨가자, 다다유키는 오하시 밖의 저택에서 도바시구치로 들어갔다. 간에이 11년(1634년) 7월, 이에미쓰가 상경하던 중 니시노마루에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되었다. 다다유키는 니시노마루 반을 맡고 있던 아버지 타다요와 함께 근신했다.

간에이 13년(1636년) 3월, 아버지 타다요가 사망하자 다다유키는 가독과 구마가야 번의 유산을 상속받아 영지의 총합은 별저 영지를 합쳐 15만 2500석이 되었다. 그 후, 번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봉행직을 설치했지만, 병에 걸려 같은 해 11월 17일 37세로 사망했다. 사인은 위병으로 알려져 있다. 가독은 장남 타다키요가 이었다.

2.1. 초기 생애

게이초 4년(1599년), 사카이 다다요의 적자에도에서 태어났다. 정 이위 대장군·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아버지 다다요와 함께 도쿠가와 가문을 섬겼으며, 게이초 19년(1614년) 10월 오사카 겨울 전투에 처음 출진했다. 이듬해 게이초 20년(1615년) 1월 종5위 하아와 수호에 임명되었으며, 4월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무공을 세웠다. 겐나 9년(1623년) 니시노마루 주자(西の丸奏者)가 되었고, 간에이 2년(1625년) 고즈케 국이타바시에 2만 석의 영지를 받았다. 간에이 3년(1627년) 장군직을 양위한 오고쇼 히데타다와 이에미쓰 부자의 상경을 따라 니조 성에서 고미즈노 천황을 맞이하는 접대 역할을 수행했다. 간에이 8년(1631년) 히데타다의 대리로서 닛코 도쇼구참배를 수행했다.

2.2. 오사카 전투 참전

게이초 19년 10월, 오사카 겨울 전투에 처음 참전했다. 이듬해 게이초 20년 1월, 종5위 아래 아와 수호에 임명되었으며, 4월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는 무공을 세웠다.

2.3. 막부 요직 역임

게이초 19년(1599년) 사카이 다다요의 적자에도에서 태어나,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섬겼으며, 오사카 겨울 전투에 첫 출진했다. 겐나 9년(1623년) 니시노마루 주자(西の丸奏者)가 되었고, 간에이 2년(1625년) 고즈케 국이타바시에 2만 석의 영지를 받았다. 간에이 3년(1627년) 오고쇼 히데타다와 이에미쓰 부자의 상경을 따라 니조 성에서 고미즈노 천황을 맞이하는 접대 역할을 수행했고, 간에이 8년(1631년) 히데타다의 대리로서 닛코 도쇼구참배를 수행했다.

간에이 9년(1632년) 히데타다 사후 혼마루 주자로 임명되어 쇼군 이에미쓰를 섬겼다. 이듬해 간에이 10년(1633년) 이에미쓰의 쇼군 즉위에 따라 1만 석을 추가로 받았다. 간에이 11년(1634년) 7월 이에미쓰의 상경 중에 니시노마루에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되어, 니시노마루 반을 맡고 있던 아버지 다다요와 함께 근신했다.

니시노마루 화재로 인해 다다요는 필두 도시요리를 사임했지만, 다다유키는 주자로 복직했다.

2.4. 니시노마루 화재와 근신

간에이 9년(1632년),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사망한 후에는 혼마루 주자로 임명되어 쇼군 이에미쓰를 섬겼다. 히데타다의 니시노마루 저택은 타다요에게 주어졌고, 타다요가 에도성 도바시구치 저택에서 니시노마루 저택으로 옮겨가자, 다다유키는 오하시 밖의 저택에서 도바시구치로 들어갔다. 이듬해 간에이 10년(1633년)에는 이에미쓰의 쇼군 즉위에 따라 1만 석을 더 받았다. 간에이 11년(1634년) 7월, 이에미쓰가 상경하던 중 니시노마루에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되었다. 다다유키는 니시노마루 반을 맡고 있던 아버지 타다요와 함께 근신했다.

니시노마루 화재로 인해 타다요는 필두 도시요리를 사임했지만, 다다유키는 주자로 복직했다.

2.5. 마에바시 번주 상속과 사망

1636년 3월, 아버지 타다요가 사망하자 가독과 구마가야 번의 유산을 상속받아 영지의 총합은 별저 영지를 합쳐 152500석이 되었다. 그 후, 번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봉행직을 설치했지만 자신도 병에 걸려, 같은 해 11월 17일, 37세로 사망했다. 위병을 앓았다고 한다. 가독은 장남 타다키요가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