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이 시게타다
1. 개요
사카이 시게타다는 젊은 시절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긴 무장이다. 1569년 가케가와성 공격, 1570년 아네가와 전투 등 이에야스의 초기 주요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으며, 혼노지의 변 당시에는 이세에서 이에야스를 구출하는 데 기여했다. 관동 지방으로 봉해진 이에야스를 따라 무사시 가와고에 번을 다스렸고,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에도 참여했다. 1617년 69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그의 혈통은 사카이 치카치카 대에서 단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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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센고쿠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
| 출생 | 덴분 18년 (1549년) |
| 사망 | 겐나 3년 음력 7월 21일 (1617년 8월 22일) |
| 묘소 | 군마현 마에바시시 홍운정의 용해원 |
| 관위 | 종5위 하, 가와치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이에야스 → 히데타다 |
| 번 | 무사시 가와고에번 주 → 고즈케 우마야바시번 주 |
| 씨족 | 사카이 씨 |
| 부모 | 아버지: 사카이 마사치카, 어머니: 묘겐니 (이시카와 기요카네의 딸) |
| 형제 | 시게타다, 다다토시 |
| 배우자 | 정실: 야마다 시게타쓰의 딸 |
| 자녀 | 다다요, 다다카즈, 니시오 다다나가, 다다마사, 딸 (혼다 마사즈미 정실), 딸 (이나 다다마사 정실, 후 와케베 미쓰노부 계실) |
| 이름 | 사카이 시게타다 (酒井重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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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바시번주 -
사카이 다다유키 (1599년)
사카이 다다유키는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로 사카이 다다요의 아들이며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이에미쓰를 섬겼고 오사카 전투에서 공을 세운 후 마에바시 번주가 되었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
마에바시번주 -
마쓰다이라 나오카쓰
마쓰다이라 나오카쓰는 에도 시대 후기의 다이묘이자 메이지 시대의 화족으로, 막부 말기 정사총재를 역임하며 막정 개혁에 참여했고 메이지 유신 이후 신정부에서 활약했다. -
센고쿠 무장 -
오다 나가마스
오다 나가마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센노 리큐에게 다도를 배워 유라쿠류를 창시한 다인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호 유라쿠는 도쿄도 유라쿠초 지명의 유래 설이 있다. -
센고쿠 무장 -
사나다 노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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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씨 -
사카이 다다카타
사카이 다다카타는 마쓰야마 번주 사카이 다다노리의 아들로 태어나 쇼나이번 번주로서 번교 창설, 간척 사업, 양잠업 장려, 덴포 대기근 구제, 덴포 의민 사건 농민 요구 수용 등 번정 운영에 힘썼다. -
사카이씨 -
사카이 다다쓰네 (1639년)
사카이 다다쓰네는 1639년에 태어나 데와 쇼나이번 번주 사카이 타다카츠의 아들로, 마쓰야마번을 개척하고 슨푸성, 에도성 니노마루 성벽 축조, 심광사 창건에 기여했으며, 1675년에 사망했다.
2. 생애
사카이 시게타다는 미카와 국 사카이 고 출신으로, 도쿠가와 씨를 대대로 섬겨온 가신 사카이 마사치카의 차남이다. 젊은 시절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기며 1569년 도토미 가케가와성 공격, 1570년 아네가와 전투 등 이에야스 초기 주요 전투에 참가하여 무공을 세웠다. 1576년 아버지 마사치카가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미카와 니시오성 성주이자 사카이가 우타노카미파 종가 당주가 되었다. 1582년 혼노지의 변 때는 이가 넘기를 통해 탈출하던 이에야스를 이세 시라코에서 배로 맞이하여 구출하는 공을 세웠다.
이러한 공적을 바탕으로 1590년에는 무사시 가와고에 1만 석 영주가 되었고, 1601년에는 세키가하라 전투의 공으로 고즈케 우마야바시 3만 3천 석 영주로 봉해졌다. 1592년 임진왜란 시기에는 에도성 유수를 맡았고, 1614년 오사카 전투에서는 에도성 유수 및 병량 수송 책임 등을 담당하며 이에야스를 계속 지원했다.
1617년 음력 7월 21일 69세로 병사하였으며, 그의 직계 혈통은 치카치카 대에서 단절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이에야스 섬김
미카와 국 사카이 고 출신으로, 대대로 도쿠가와 씨를 섬겨온 가신 사카이 마사치카의 둘째 아들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1569년 (에이로쿠 12년) 도토미의 가케가와성 공격, 1570년 (겐키 원년) 아네가와 전투 등 이에야스 초기 시절의 주요 전투 대부분에 참가하여 무공을 세웠다.
1576년 (덴쇼 4년) 아버지 마사치카가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미카와 니시오성의 성주가 되었다. 1582년 (덴쇼 10년)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하고 이에야스가 위험에 처했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당시 이에야스 일행은 이가 넘기를 통해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고, 시게타다는 본국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이에야스 일행이 이세의 시라코까지 도망쳐 왔을 때, 시게타다는 직접 배를 준비하여 그들을 맞이했고 안전하게 피신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이에야스를 구출하면서 배에 내걸었던 깃발을 이후 자신의 말 깃발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1590년 (덴쇼 18년) 이에야스가 간토로 영지를 옮기게 되자, 시게타다는 무사시 가와고에에 1만 석의 영지를 받게 되었다.
2.2. 혼노지의 변과 이에야스 구출
덴쇼 10년(1582년),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행은 위험에 처해 이가 넘기를 통해 탈출을 시도했다. 사카이 시게타다는 당시 본국을 지키는 유수(留守) 임무를 맡고 있었으나, 이에야스 일행이 이세 국의 시라코까지 도망쳐 오자, 직접 배를 준비하여 그들을 맞이하고 안전하게 피신시켰다. 시게타다는 이때 이에야스를 구출한 배에 세웠던 깃발을 이후 자신의 말 깃발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2.3. 도요토미 정권 하에서의 활동
159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간토로 이봉되었을 때, 시게타다는 이전까지의 공적을 인정받아 무사시 가와고에 1만 석 영지를 하사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文禄の役일본어)이 발발하자 에도성의 유수(留守, 성을 대신 지키는 역할)를 맡았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측에 서서 본전에 참전하였고, 전투 후에는 오미 오쓰성 수비를 담당했다. 이 공적으로 고즈케 우마야바시(厩橋일본어) 3만 3천 석으로 영지가 늘어났다.
2.4.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
1600년 (게이초 5년)에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하여 본 전투에 직접 참여하였다. 전투가 끝난 후에는 오미의 오쓰성 수비를 담당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시게타다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기존 영지였던 무사시 가와고에 1만 석에서 고즈케 마에바시(우마야바시) 3만 3천 석으로 영지를 늘려 봉하였다.
1614년 (게이초 19년)부터 시작된 오사카 전투에서는 에도성에 머무르며 성을 비운 주인을 대신하여 지키는 유수(留守) 역할을 맡았고, 병량(군량미) 수송 책임자 등으로 후방 지원 임무를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