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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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산 자의 기록은 핵전쟁의 공포 속에서 가족을 브라질로 이주시키려는 노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주인공은 주물 공장을 운영하는 노인 나카지마 키이치로, 핵전쟁을 두려워하며 전 재산을 처분하려 하지만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가족들은 그의 행동을 막기 위해 준금치산자 지정을 신청하고, 법정 투쟁 끝에 그의 계획은 좌절된다. 결국 정신적으로 붕괴된 키이치는 자신의 공장에 방화하고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이 영화는 핵전쟁의 공포, 가족 간의 갈등, 그리고 개인의 정신적 붕괴를 다루며, 비평가들로부터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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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의 기록 - [영화]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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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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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生きものの記録 |
로마자 표기 | Ikimono no Kiroku |
영어 제목 | Record of a Living Being |
한국어 제목 (직역) | 살아있는 것의 기록 |
영화 정보 | |
감독 | 구로사와 아키라 |
각본 | 하시모토 시노부 오구니 히데오 구로사와 아키라 |
제작 | 모토키 소지로 |
출연 | 미후네 도시로 시무라 타카시 |
음악 | 하야사카 후미오 |
촬영 | 나카이 아사카즈 |
편집 | 오바타 초조 |
제작사 | 도호 |
배급사 | 도호 |
개봉일 | 1955년 11월 22일 |
상영 시간 | 103분 |
국가 | 일본 |
언어 | 일본어 |
제작비 | ¥1억 3천만 |
2. 줄거리
주물 공장을 운영하는 노인 나카지마 키이치(미후네 도시로)는 핵전쟁의 위협 속에서 가족들을 브라질로 이주시키려 한다.[4] 그는 핵전쟁이 임박했다고 믿고, 가족의 안전을 위해 모든 재산을 처분하려 하지만, 가족들은 법원에 그를 준금치산자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한다.
2. 1. 핵전쟁에 대한 공포
주물 공장을 소유한 노인 나카지마 키이치(미후네 도시로)는 핵전쟁이 임박하면 일본에 머무는 한 모두 죽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가족들을 브라질의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로 결심한다.[4]가족들은 아버지가 자신의 계획에 상속 재산을 낭비하지 못하도록 무능력 판정을 받게 한다. 가정법원에서 자원 봉사하는 치과의사 하라다 박사(시무라 타카시)는 기이치의 우려에 공감하며,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이 일본의 모든 시민에게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이후 기이치는 이사를 추진할 방법을 찾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점점 더 절망에 빠진 그는 가족들이 더 이상 일본에 묶여 있는 직업이나 수입원이 없다면 남아메리카로 가려고 할 것이라고 결정하고, 주물 공장을 불태운다.
하라다는 기이치가 보내진 정신 병원을 방문한다. 하라다는 기이치가 자신이 다른 행성으로 탈출했다고 믿고 있으며, 주변 환경으로부터 심하게 고립되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방문 중에 기이치는 창문을 통해 태양을 보고 지구의 불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흥분한다.
2. 2. 가족과의 갈등
나카지마 기이치(미후네 도시로)는 핵전쟁에 대한 과도한 불안으로 브라질 이민을 추진하며 재산을 낭비하려 하자, 가족들은 그를 준금치산자로 만들고자 한다.[4] 기이치의 세 자녀는 아내를 설득하여 아버지가 상속 재산을 낭비하지 못하도록 무능력 판정을 받게 하려 하고, 가정법원에 조정위원으로 참여하는 치과의사 하라다 박사(시무라 타카시)를 포함한 3인 중재 위원회에 그를 데려간다.

가족들은 기이치의 방사능 피해 망상을 호소하며, 준금치산자가 되지 않으면 생활이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이치는 재판을 무시하고 브라질 이주를 추진하며 브라질 이민 노인을 데려와 가족들 앞에서 현지 필름을 보여준다.
하라다는 기이치의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죽임을 당하는 것은 싫다"라는 말에 공감하지만, 위원회는 결국 기이치의 비합리적인 행동이 가족의 재정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제거할 만하다고 결정한다. 준금치산자가 된 기이치는 재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되어 계획이 좌절되고, 가족들에게 브라질행을 간청하다 쓰러진다.
2. 3. 법정 투쟁과 좌절
치과의사이자 가정법원의 조정위원인 하라다(시무라 타카시)는 가족들이 준금치산자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한 나카지마 키이치(미후네 토시로)에 대한 재판을 담당하게 된다.[4] 주물 공장 경영자인 키이치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에 대한 공포 때문에 브라질로 이주할 계획을 세우고, 전 재산을 이주 비용으로 사용하려 한다. 가족들은 키이치의 방사능 피해 망상을 주장하며, 준금치산자가 되지 않으면 가족의 생활이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키이치는 재판을 무시하고 브라질 이주를 서둘러 추진하며, 브라질 이민 노인을 데려와 가족들 앞에서 현지 필름을 보여주어 가족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키이치의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죽임을 당하는 것은 싫다"라는 말에 하라다는 공감하지만, 결국 법원은 가족들의 손을 들어준다.[4] 준금치산자가 된 키이치는 재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이주 계획은 좌절되고, 가족들에게 브라질행을 간청하다가 쓰러진다.
2. 4. 정신적 붕괴와 방화
준금치산자가 되어 재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된 나카지마는 절망한다. 그는 가족들에게 브라질행을 간청하지만 거절당하고, 결국 자신이 경영하던 주물 공장에 불을 지른다.[4] 이후 정신 병원에 수용된 키이치를 하라다가 찾아갔을 때, 키이치는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지구를 탈출하여 다른 행성에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병실 창문으로 태양을 보며 키이치는 하라다에게 "지구가 불타고 있어"라고 외쳤다.2. 5. 정신병원 수감과 결말
가정법원의 조정위원을 맡고 있던 치과의사 하라다는 준금치산자 신청을 받은 나카지마 키이치가 정신 병원에 수용되자 그를 찾아갔다.[4] 키이치는 주물 공장을 경영하는 노인으로, 핵전쟁에 대한 공포로 브라질 이주를 계획하다 재산을 탕진하려 했었다. 하라다가 병원을 찾아갔을 때, 키이치는 밝은 표정으로 자신이 지구를 탈출하여 다른 행성에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4] 그는 병실 창문으로 보이는 태양을 보며 "지구가 불타고 있어"라고 하라다에게 외쳤다.[4]3. 등장인물
등장인물은 크게 주요 인물, 나카지마 가족, 그 외 인물로 나눌 수 있다. 각 인물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1. 주요 인물
배우 | 배역 | 비고 |
---|---|---|
미후네 도시로 | 나카지마 키이치 | |
시무라 타카시 | 하라다 박사 | |
치아키 미노루 | 나카지마 지로 | 키이치의 둘째 아들 |
미요시 에이코 | 나카지마 토요 | 키이치의 아내 |
아오야마 쿄코 | 나카지마 스에 | 키이치의 막내딸 |
토고 하루코 | 나카지마 요시 | 키이치의 장녀 |
센고쿠 노리코 | 나카지마 키미에 | 이치로의 아내 |
네기시 아케미 | 쿠리바야시 아사코 | 키이치의 현재 정부이자 어린 아이의 어머니 |
타치카와 히로시 | 사야마 료이치 | 죽은 전 정부와의 키이치의 맏이 사생아 |
우에다 키치지로 | 쿠리바야시 씨 | 아사코의 아버지 |
시미즈 마사오 | 야마자키 타카오 | 요시의 남편 |
사다 유타카 | 나카지마 이치로 | 키이치의 장남 |
후지와라 카마타리 | 오카모토 | |
미츠다 켄 | 아라키 판사 | |
토노 에이지로 | 브라질에서 온 노인 | |
와타나베 아츠시 | 이시다 | |
미즈노야 키요미 | 사토코 | 키이치의 세 번째 첩 |
오가와 토라노스케 | 호리 | 변호사 |
나카무라 노부오 | 정신과 의사 | |
츠치야 요시오 | 주조소 직원 | |
타니 아키라 | 유치인 A | |
타카도 코쿠텐 | 공원의 아버지 | |
혼마 후미코 | 공원의 어머니 | |
카토 카즈오 | 하라다의 아들, 스스무 | |
오무라 센키치 | 유치인 B | |
사쿠라이 키로 | 주조소 직원 |
3. 2. 나카지마 가족
배역 | 배우 |
---|---|
나카지마 키이치 | 미후네 도시로 |
나카지마 지로 (키이치의 차남) | 치아키 미노루 |
나카지마 토요 (키이치의 아내) | 미요시 에이코 |
나카지마 스에 (키이치의 차녀) | 아오야마 쿄코 |
나카지마 요시 (키이치의 장녀) | 토고 하루코 |
나카지마 키미에 (이치로의 아내) | 센고쿠 노리코 |
쿠리바야시 아사코 (키이치의 넷째 첩) | 네기시 아케미 |
스야마 료이치 (두 번째 첩의 셋째 아들) | 타치카와 히로시 |
나카지마 이치로 (장남) | 사다 유타카 |
사토코 (키이치의 세 번째 첩) | 미즈노야 키요미 |
묘코 (세 번째 첩의 셋째 딸) | 요네무라 사호코 |
3. 3. 그 외 인물
4. 제작진
역할 | 담당 |
---|---|
감독 | 구로사와 아키라 |
제작 | 모토키 소지로 |
각본 | 하시모토 시노부, 오구니 히데오, 구로사와 아키라 |
촬영 | 나카이 아사카즈 |
미술 | 무라키 요시로 |
녹음 | 야노구치 후미오 |
조명 | 기시다 규이치로 |
음악 | 하야사카 후미오[5][6], 사토 마사루[7], 마쓰이 하치로 |
감독 조수 | 마루바야시 히사노부 |
편집 | 오바타 초조 |
제작 담당 | 네즈 히로시 |
조감독 | 노나가세 사마지, 다지쓰 야스라, 사노 겐, 나카무라 고후 |
촬영 조수 | 사이토 다카오 |
미술 조수 | 가토 친자 |
조명 조수 | 하네다 사부로 |
기록 | 노가미 테루요 |
음향 효과 | 미나와 이치로 |
스틸 | 후쿠다 마사오 |
미술 소품 | 도다 기요시 |
의상 | 스즈키 미유키 (교토 의상) |
맺음머리 | 오카다 사다코 |
분장 | 야마다 준지로 |
''살아있는 기록''은 하야사카 후미오가 1955년 결핵으로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작업한 영화였다. 그는 1948년 ''술 취한 천사'' 이후 구로사와 아키라의 절친한 친구였으며, 여러 영화에서 그와 협력했다. 작곡가와 감독은 "음악과 연기의 대립적 처리"를 실험했고, ''어떤 자서전''에서 구로사와는 하야사카와 함께 작업한 것이 영화 음악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는 음악을 단순히 반주가 아닌 이미지에 대한 "대위법"으로 보았다. 구로사와는 1954년 수소폭탄 실험 사고 이후 핵무기에 대한 하야사카와의 대화가 ''살아있는 기록''의 줄거리에 영감을 주었다고 회상했다.[5][6] 하야사카의 제자 사토 마사루는 그가 영화의 악보를 완성했다고 적었다.[7]
5. 제작 과정
生きものの記録일본어은 하야사카 후미오가 1955년 결핵으로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작업한 영화였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1954년 수소폭탄 실험 사고 이후 핵무기에 대한 하야사카와의 대화가 이 영화의 줄거리에 영감을 주었다고 회상했다.[5][6] 하야사카는 1948년 술 취한 천사 이후 구로사와 아키라와 여러 영화에서 협력하며 "음악과 연기의 대립적 처리"를 실험했고, 구로사와는 어떤 자서전에서 하야사카와 함께 작업한 것이 영화 음악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하야사카의 제자 사토 마사루는 스승이 영화의 악보를 완성했다고 적었으나,[7] 실제로는 하야사카가 촬영 중 사망하여 연출에 차질이 생겼다. 구로사와는 그 충격으로 "힘이 부족했다"라고 회고했다.[12][19] 하야사카는 타이틀 백 등의 스케치를 남겼고, 제자 사토 마사루가 이를 바탕으로 전체 음악을 완성했다.[19][20]
5. 1. 기획 및 각본 집필
본 작품의 구상은 7인의 사무라이 촬영 중 구로사와 아키라가 친구 하야사카 후미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비키니 환초의 수소 폭탄 실험 뉴스를 들은 하야사카가 "이런 식으로 생명을 위협받으면, 제대로 일할 수 없겠군"이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12]。 당초에는 『죽음의 재』라고 이름 붙여진 이 기획은, 고구니 히데오와 하시모토 시노부의 공동 각본으로, 1955년 1월에 시즈오카현 이마이하마의 여관 "마이코엔"에 묵으며 집필 작업을 시작했고, 3월 초순에 『살아있는 것의 기록』으로 개제한 결정고가 완성되었다[13][14]。5월 중순에 촬영 준비에 들어가, 6월 20일에 리허설을 시작했지만, 7월 6일에 구로사와가 촌충 때문에 입원하여, 2주간 리허설을 중단했다[15]。 8월 1일에 도호 촬영소 내 세트에서 촬영을 시작했다[14]。 9월 8일에 출연자 네기시 아케미가 자동차 사고로 머리를 다쳐, 약 2주 정도 촬영을 중단했다[16]。 10월 11일에는 태풍 25호로 공장의 오픈 세트가 거의 궤멸되어, 다시 만들면서 촬영을 중단했다[16]。 10월 21일에 촬영을 재개했고, 10월 31일에 마지막 장면의 태양 샷 촬영으로 크랭크업했다[16]。
본 작품에서는, 『7인의 사무라이』에서 채택한, 여러 대의 카메라로 동시에 촬영하는 "멀티 카메라 촬영법"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3대의 카메라를 다른 각도에서 동시에 촬영함으로써, 배우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끌어냈다[17]。 주인공의 방화로 불탄 공장 세트는, 도호 촬영소 내에 신축된 제8 스튜디오 앞에 설치되었고, 신축된 스튜디오의 벽면을 불탄 자국으로 보이게 칠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화를 냈다고 한다[18]。 또한, 도덴오츠카역의 세트는 전차의 앞부분을 포함하여, 진짜와 똑같이 만들어졌다。
촬영 종료 후 11월 9일부터 12일까지 더빙 작업을 했다[14]。 음악은 하야사카 후미오가 담당했지만, 촬영 중인 10월 15일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절친이었던 구로사와는 그 충격으로 연출에 힘을 쏟지 못했고, 구로사와 자신도 "힘이 부족했다"라고 말했다[12][19]。 하야사카는 타이틀 백 등의 스케치를 남겼고, 제자 사토 마사루가 그것을 바탕으로 전체 음악을 정리하여 완성시켰다[19][20]。
5. 2. 촬영
본 작품의 구상은 7인의 사무라이 촬영 중 구로사와 아키라가 친구 하야사카 후미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비키니 환초의 수소 폭탄 실험 뉴스를 들은 하야사카가 "이런 식으로 생명을 위협받으면, 제대로 일할 수 없겠군"이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12]。 고구니 히데오와 하시모토 시노부의 공동 각본으로, 1955년 1월에 시즈오카현 이마이하마의 여관 "마이코엔"에 묵으며 집필 작업을 시작했고, 3월 초순에 『살아있는 것의 기록』으로 개제한 결정고가 완성되었다[13][14]。1955년 5월 중순에 촬영 준비에 들어가, 6월 20일에 리허설을 시작했지만, 7월 6일에 구로사와가 촌충 때문에 입원하여 2주간 리허설을 중단했다[15]。 8월 1일에 도호 촬영소 내 세트에서 촬영을 시작했고[14], 9월 8일에 출연자 네기시 아케미가 자동차 사고로 머리를 다쳐 약 2주 정도 촬영을 중단했다[16]。 10월 11일에는 태풍 25호로 공장의 오픈 세트가 거의 궤멸되어 다시 만들면서 촬영을 중단했다[16]。 10월 21일에 촬영을 재개했고, 10월 31일에 마지막 장면의 태양 샷 촬영으로 크랭크업했다[16]。
본 작품에서는 『7인의 사무라이』에서 채택한, 여러 대의 카메라로 동시에 촬영하는 "멀티 카메라 촬영법"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3대의 카메라를 다른 각도에서 동시에 촬영함으로써, 배우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끌어냈다[17]。 주인공의 방화로 불탄 공장 세트는 도호 촬영소 내에 신축된 제8 스튜디오 앞에 설치되었고, 신축된 스튜디오의 벽면을 불탄 자국으로 보이게 칠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화를 냈다고 한다[18]。 또한, 도덴오츠카역의 세트는 전차의 앞부분을 포함하여 진짜와 똑같이 만들어졌다。
촬영 종료 후 11월 9일부터 12일까지 더빙 작업을 했다[14]。
5. 3. 음악
''산 자의 기록''은 하야사카 후미오가 1955년 결핵으로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작업한 영화였다. 그는 1948년 ''술 취한 천사'' 이후 구로사와 아키라의 절친한 친구였으며, 여러 영화에서 그와 협력했다. 작곡가와 감독은 "음악과 연기의 대립적 처리"를 실험했고, ''어떤 자서전''에서 구로사와는 하야사카와 함께 작업한 것이 영화 음악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는 음악을 단순히 반주가 아닌 이미지에 대한 "대위법"으로 보았다. 구로사와는 1954년 수소폭탄 실험 사고 이후 핵무기에 대한 하야사카와의 대화가 ''산 자의 기록''의 줄거리에 영감을 주었다고 회상했다.[5][6] 하야사카의 제자 사토 마사루는 그가 영화의 악보를 완성했다고 적었다.[7]
본 작품의 구상은 7인의 사무라이 촬영 중 구로사와 아키라가 친구 하야사카 후미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비키니 환초의 수소 폭탄 실험 뉴스를 들은 하야사카가 "이런 식으로 생명을 위협받으면, 제대로 일할 수 없겠군"이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12]
촬영 종료 후 11월 9일부터 12일까지 더빙 작업을 했다.[14] 하야사카 후미오가 음악을 담당했지만, 촬영 중인 10월 15일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절친이었던 구로사와는 그 충격으로 연출에 힘을 쏟지 못했고, 구로사와 자신도 "힘이 부족했다"라고 말했다.[12][19] 하야사카는 타이틀 백 등의 스케치를 남겼고, 제자 사토 마사루가 그것을 바탕으로 전체 음악을 정리하여 완성시켰다.[19][20]
6. 평가
이 영화는 뉴욕 영화제 상영 당시 빈센트 캔비로부터 영어 자막의 품질 문제를 지적받는 등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았고, 흥행에도 실패했다.[8][13]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이 영화가 자신의 유일한 적자 영화라고 언급하며, 일본인들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21] 그러나 오시마 나기사, 도쿠가와 무세이, 사토 타다오 등은 이 영화를 높이 평가했다.[24][25][26] 특히 동일본 대지진 이후 스즈키 토시오는 이 영화를 재평가하며, 현실감이 뛰어나다고 언급했다.[27]
6. 1. 비평
이 영화는 1963년 뉴욕 시 현대 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 뉴욕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빈센트 캔비는 "이 영화의 가장 큰 결점은 늙은이의 진정성을 전혀 믿을 수 없다는 것, 또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평했으며, 영어 자막의 품질도 거의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8]본작은 흥행에 실패했고[13], 구로사와 아키라는 "자신의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적자였다"고 말하며, 그 이유에 대해 "일본인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분석했다.[21] 제29회 키네마 준보 베스트 10에서는 4위에 올랐고[22], 제9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되었다.[23] 오시마 나기사는 쇠막대기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고[24], 도쿠가와 무세이는 "이 영화를 찍었으니, 당신은 이제 언제 죽어도 좋다"고 격찬했다고 한다.[25] 사토 타다오는 "구로사와 작품 중에서도 문제작"이라고 언급했다.[26]
스즈키 토시오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 작품을 다시 보면서 "이전에 비해 '받아들이는 인상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나'라고 생각했고, 매우 현실감이 있었다. 구로사와라는 사람은 정말 재미있다고, 새삼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지금 보면 말하고 싶은 것도 분명해서 매우 현실감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 보라고 하고 싶은 작품", "구로사와 감독은 간토 대지진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잔해와 사람들의 죽음이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았다고 저서에 써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도 전쟁과 핵 문제에 민감했던 것이겠죠. 예전에 봤을 때는 '산 자의 기록'은 오히려 '코미디 영화인가'라는 인상이었지만, 지진을 겪으면서 구로사와 감독이 작품에 담은 생각이 드디어 전해져 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라고 말했다.[27]
7. 기타
- 제목과 관련하여 크레딧에는 "마루오카 아키라 씨의 호의에 의한"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는 마루오카의 동명 소설이 이미 존재했고, 마루오카가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마루오카의 소설과 본 작품은 내용상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제목만 같다.
- 당시 중의원 의원이었던 나카무라 우메키치가 시사회에 참석했을 때, 구로사와에게 "원자폭탄이 뭐가 무섭다는 거냐, 저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구로사와는 이 발언을 신문에 내라고 도호에 요청했지만, 도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21]
- 브라질 이민으로 성공한 노인 역의 히가시노 에이지로가 히로시마 사투리를 사용한다.
참조
[1]
서적
The Complete Works of Akira Kurosawa
Iwanami Shoten
1988-02-18
[2]
웹사이트
生きものの記録とは
https://kotobank.jp/[...]
kotobank
2020-02-15
[3]
웹사이트
Festival de Cannes: I Live in Fear
http://www.festival-[...]
2009-02-03
[4]
웹사이트
I Live in Fear: What Kurosawa's forgotten film about the bomb captures about post-9/11 America
http://www.slate.com[...]
Slate
2008-01-29
[5]
서적
Something Like an Autobiography
Vintage
1982
[6]
서적
Akira Kurosawa and Modern Japan
McFarland & Co.
2022
[7]
간행물
CinemaScore: The Film Music Journal #15
Fandom Unlimited, Sunnyvale, California
[8]
잡지
New York Film Festival Reviews
https://archive.org/[...]
2024-02-11
[9]
웹사이트
I Live in Fear
https://www.criterio[...]
Criterion Collection
2022-11-27
[10]
웹사이트
生きものの記録
https://www.allcinem[...]
2015-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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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黒澤明 全作品と全生涯
東京書籍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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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黒澤明、自作を語る―生きものの記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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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浜野保樹「解説・世界のクロサワと挫折―『生きものの記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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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黒澤明 関連年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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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製作メモランダ
岩波書店
1988-01
[16]
문서
"本木荘二郎「『生きものの記録』が出来るまで」(『知性』1956年2月号)"
[17]
웹사이트
黒澤明第1部-PAG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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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31
[18]
웹사이트
黒澤明第3部-PAG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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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31
[19]
서적
黒澤明と早坂文雄 風のように侍は
筑摩書房
2005-10
[20]
서적
黒澤明MEMORIAL 10 別巻+1「野良犬」
小学館
2011-02
[21]
비디오
わが映画人生 黒澤明監督
http://www.kinenote.[...]
日本映画監督協会
2018-03-29
[22]
서적
キネマ旬報ベスト・テン85回全史 192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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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Festival de Cannes: I Live in 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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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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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DVD版の冊子18頁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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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ユーモアの力・生きる力
岩波書店
198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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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版の冊子15頁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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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起きてほしくない未来」を描く映画 岩井俊二×鈴木敏夫対談"
https://www.cinra.ne[...]
CINRA.NET
201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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