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은조그비아
1. 개요
샤를 은조그비아는 콩고 민주 공화국 출신의 축구 선수로, 르 아브르 AC 유소년팀을 거쳐 2004년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하여 프리미어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위건 애슬레틱 FC, 아스톤 빌라 FC를 거쳐 프랑스 국가대표팀으로도 활약했다. 2006년 UEFA 인터토토컵에서 뉴캐슬 소속으로 우승했으며, 2014-15 시즌에는 FA컵 준우승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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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샤를 은조그비아 |
|---|---|
| 출생일 | 1986년 5월 28일 |
| 출생지 | 알플뢰르 |
| 신장 | 1.70m |
| 포지션 | 윙어 |
| 주발 | 왼발 |
| 유소년 클럽 | 1995-1998: SC 드 프릴뢰즈 1998-2004: 르아브르 |
|---|---|
| 프로 클럽 | 2004-2009: 뉴캐슬 유나이티드 (118경기 9골) 2009-2011: 위건 애슬레틱 (83경기 15골) 2011-2016: 애스턴 빌라 (80경기 4골) |
| 총 출장 및 득점 | 281경기 28골 |
| 청소년 대표팀 | 2007-2009: 프랑스 U-21 (13경기 0골) |
|---|---|
| 성인 대표팀 | 2010-2011: 프랑스 (2경기 0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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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에마뉘엘 프티
에마뉘엘 프티는 프랑스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AS 모나코, 아스널 FC, FC 바르셀로나, 첼시 FC 등에서 뛰었고, 특히 아스널과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주요 우승을 차지했으며, 은퇴 후 축구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
프랑스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에티엔 마틀레
에티엔 마틀레는 프랑스 축구 선수로, FC 소쇼에서 스위퍼로 활약하며 1930년대 후반 프랑스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고, 프랑스 국가대표팀으로 46경기 출전, 세 번의 FIFA 월드컵 출전, 리그 1 2회 우승, 쿠프 드 프랑스 1회 우승을 기록했다. -
프랑스 남자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에마뉘엘 프티
에마뉘엘 프티는 프랑스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AS 모나코, 아스널 FC, FC 바르셀로나, 첼시 FC 등에서 뛰었고, 특히 아스널과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주요 우승을 차지했으며, 은퇴 후 축구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
프랑스 남자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가엘 클리시
프랑스 출신 전 축구 선수 가엘 클리시는 AS 칸에서 데뷔하여 아스널 FC, 맨체스터 시티 FC,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에서 뛰며 프리미어리그와 쉬페르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활약했으며, 현재 프랑스 U-21 및 올림픽 대표팀의 수석 코치이다. -
잉글랜드에 거주한 프랑스인 -
에마뉘엘 프티
에마뉘엘 프티는 프랑스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AS 모나코, 아스널 FC, FC 바르셀로나, 첼시 FC 등에서 뛰었고, 특히 아스널과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주요 우승을 차지했으며, 은퇴 후 축구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
잉글랜드에 거주한 프랑스인 -
볼테르
볼테르는 이성, 자유, 관용을 옹호하며 종교적 불관용과 전제 정치를 비판하고 프랑스 사회 개혁을 촉구한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작가, 역사가이다.
2. 클럽 경력
콩고 민주 공화국에 뿌리를 둔 아프리카 이민자 집안 출신으로, 센마리팀 주 아르플뢰르에서 태어났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 근처)에서 자랐으며, 르 아브르 AC 유소년 팀에 입단하여 성장했다. 2004년 프리미어리그의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 스카우트되었다.
2007년10월, 뉴캐슬과의 계약을 2012년까지 연장했다. 2007-08 시즌부터는 왼쪽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2009년2월 2일, 라이언 테일러와의 트레이드로 위건 애슬레틱 FC로 이적했다. 계약 기간은 3년 반이었다. 조 키니어 감독이 TV에서 은조그비아의 이름을 "Insomnia(불면증)"이라고 잘못 발음한 것에 분노한 것이 이적 배경으로 보도되었다.
2010-2011 시즌 종료 후 아스톤 빌라 FC로 이적했다. 2015-2016 시즌을 끝으로 계약 만료에 따라 빌라를 퇴단하고, 선덜랜드 AFC의 훈련에 참가했지만 입단에는 이르지 못했다.
2.1. 초기 경력
샤를 은조그비아는 센마리팀 주의 아르플뢰르 출신으로, 콩고 민주 공화국에 뿌리를 둔 아프리카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 근처)에서 성장했다. 유소년 육성에 높은 실적을 자랑하는 르 아브르 AC 유스에 입단했다. 16세 때,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전 수석 스카우트인 찰리 우즈에 의해 발탁되었고, 그는 은조그비아가 구단에서 테스트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다. 뉴캐슬에서 한 달 동안 훈련한 후, 구단은 그를 영입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뉴캐슬로의 이적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르아브르는 그를 교육 계약에 묶어두었지만, 뉴캐슬은 선수가 자유 계약으로 이적할 수 있는 계약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FIFA는 이 주장을 지지했다.
2004년에는 프리미어리그의 뉴캐슬에 스카우트되었다. 2007년 10월, 뉴캐슬과의 계약을 2012년까지 연장했다. 2007-08 시즌부터는 왼쪽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2.2. 뉴캐슬 유나이티드
르 아브르 AC 유스 출신인 샤를 은조그비아는 2004년 프리미어리그의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했다. 이적 과정에서 스포츠 중재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위협이 있을 정도로 난항을 겪었으나, 결국 뉴캐슬은 르 아브르에 약 25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은조그비아를 영입했다. 이는 바비 롭슨 경이 영입한 마지막 선수였다. 뉴캐슬 팬들은 그에게 "조그 온 더 타인"(린디스판의 노래 "타인 강가의 안개"를 인용)이라는 별명 '조그'를 붙여주었다.
2004년 9월 11일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른 은조그비아는 2005-06 시즌에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풀럼과의 홈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첫 골을 기록하는 등 총 6골을 기록하며 득점력을 과시했고, 라이벌 선덜랜드를 상대로도 골을 넣었다. 좋은 활약으로 아스널의 관심을 받기도 했지만, 시즌 말 뉴캐슬과 3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2006-07 시즌에는 글렌 로더 감독 아래에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부상으로 결장하기도 했다. 2007년 5월 13일 왓포드와의 시즌 최종 경기에는 교체 출전을 거부하여 스쿼드에서 제외되었다.
여름에 팀을 떠날 것이라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뉴캐슬에 잔류한 은조그비아는 볼턴 원더러스와의 개막전에서 골을 넣으며 샘 앨러다이스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고, 2007년 9월 4일, 2012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007년10월에는 왼쪽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주전으로 활약했다.
2008년 12월, 은조그비아는 더 높은 수준의 팀으로 이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2009년 1월 조 키니어 감독이 그의 이름을 "인솜니아(불면증)"로 잘못 발음하자, 은조그비아는 팬들에게 사과하면서도 키니어 감독 아래에서는 뛰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2009년 2월 2일 라이언 테일러와의 트레이드로 위건 애슬레틱 FC로 이적했다.
2.3. 위건 애슬레틱
2009년 1월 30일, 이적 마감 몇 시간 전, 샤를 은조그비아는 60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위건 애슬레틱과 3년 반 계약을 체결했다. 이 거래에는 라이언 테일러가 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이적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2009년 2월 2일에 있었던 라이언 테일러와의 트레이드로 갑작스럽게 위건 애슬레틱 FC로 이적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계약 기간은 3년 반이었다. 이 보도의 배경에는 조 키니어 감독이 TV에서 은조그비아의 이름을 "Insomnia(불면증)"이라고 잘못 발음한 것에 분노한 것이 배경으로 보도되었다
은조그비아는 2009년 3월 29일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열린 선덜랜드와의 2-1 원정 승리에서 하프라인 뒤쪽에서 시작하여 위건에서의 첫 리그 골을 기록했다. 2010-11 시즌에는 등번호 10번을 받았으며, 시즌 마지막 6경기에서 5골을 기록하는 등 위건을 프리미어 리그에 잔류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넣어 3-2로 승리하는 골도 포함되었다.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10골을 기록하며 시즌을 클럽 최고 득점자로 마쳤다.
2010년 4월 18일, 은조그비아는 아스날을 상대로 3-2로 승리하는 후반 막판 역전 골을 성공시켰다. 이 결과는 위건의 프리미어 리그 잔류를 거의 확정지었다. 그는 2009-10 시즌 위건의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와 서포터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2010년 5월, 버밍엄 시티가 이 선수에 대한 800만 파운드 입찰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8월 27일, 위건은 "약 900만 파운드"로 추정되는 추가 제안을 수락했음을 확인했고, 선수에게 버밍엄 시티와 협상할 수 있는 허가가 주어졌다. 그러나 은조그비아와 버밍엄이 개인 조건에 합의하지 못해 이적은 무산되었다.
은조그비아가 이적 시장에서 위건을 떠날 것이라는 추측이 여름 내내 커졌다. 애스턴 빌라, 리버풀, 뉴캐슬 유나이티드, 선덜랜드를 포함한 많은 클럽들이 이 윙어에게 관심을 표명했다.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위건 감독은 클럽이 최고의 선수를 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데이브 휠란 회장은 은조그비아가 계약 마지막 해에 있기 때문에 위건이 '은조그비아를 팔아야 할 것'이라고 나중에 말했다.
2.4. 애스턴 빌라
2009년 2월 2일, 라이언 테일러와의 트레이드로 위건 애슬레틱 FC으로 이적한 샤를 은조그비아는 2010-2011 시즌 종료 후 아스톤 빌라 FC로 이적했다. 7월 15일, 아스톤 빌라는 은조그비아에게 910만 파운드를 제안했지만, 위건은 은조그비아의 가치를 1000만 파운드로 평가하며 거절했다. 빌라는 950만 파운드를 다시 제안했고, 위건은 이를 수락했다. 2011년 7월 29일, 은조그비아는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고 5년 계약을 체결했으며, 등번호 10번을 받았다. 2011년 8월 6일 브라가와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하여 39분에 득점하여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2011/12 시즌 첫 경기인 풀럼과의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은 0-0으로 끝났다. 2012년 2월 1일,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빌라 소속 첫 골을 넣었고(2-2 무), 2012년 3월 3일,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을 기록했다(1-1 무).
2013년 2월 10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2013년 6월, 휴가 중 아킬레스건 부상을 입었고, 긴 재활로 인해 폴 램버트 감독은 은조그비아가 시즌이 끝나기 전에 복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복귀 후 등번호 28번을 받은 그는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안드레아스 바이만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6경기 만의 첫 골에 기여했다.
2016년 6월 10일, 은조그비아는 계약 만료로 아스톤 빌라를 떠났다. 이후 낭트 이적이 심장 문제로 무산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2015-2016 시즌을 끝으로 빌라를 퇴단한 후, 선덜랜드 AFC 훈련에 참가했지만 입단하지는 못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은조그비아는 2002년 프랑스 U-16 국가대표팀에서 두 번 출전했다. 2006년 여름, 포르투갈에서 열린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프랑스 U-21 축구 국가대표팀 24인 예비 명단에 선발되었으나, 뉴캐슬, 르아브르, 프랑스 축구 협회 간의 이적 분쟁으로 인해 최종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2007년 9월 뉴캐슬에서의 활약 이후 프랑스 U-21 팀에 소집되어, 9월 7일 웨일스 U-21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콩고 민주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소집 제안을 받았으나, 자신의 국제 축구 미래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갖기 위해 거절했다. U-21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1경기에 출전했다.
2010년 8월 5일, 로랑 블랑 감독에 의해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를 위해 프랑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소집되었다. 8월 11일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서 전반전을 소화하며 성인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나, 팀은 1-2로 패했다.
5. 수상 경력
뉴캐슬 유나이티드
* UEFA 인터토토컵: 2006
애스턴 빌라
* FA컵 준우승: 2014-15
5.1. 뉴캐슬 유나이티드
샤를 은조그비아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2006년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차지했다.
5.2. 애스턴 빌라
FA컵 준우승: 20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