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자위
1. 개요
서자위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원정 6년(기원전 112년)에 장군 이식과 함께 서강을 평정했다. 태초 원년(기원전 104년)에는 중위 왕온서의 사건을 비판하며 당시 가혹한 법 집행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태초 3년(기원전 102년)에는 광록대부로서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오원에서부터 성채와 망루를 구축했으나, 흉노의 침입으로 시설이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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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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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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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전한의 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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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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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
장량은 전국시대 말기부터 초한쟁패기를 거쳐 전한 초기에 활약한 한나라 귀족 출신 인물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 유후에 봉해진 뛰어난 지략가이자 책사이다. -
전한 사람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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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2. 행적
원정 6년(기원전 112년)에는 장군 이식과 함께 서강을 평정하는 데 참여하였다. 태초 원년(기원전 104년)에는 중위 왕온서가 죄를 짓고 그의 일족까지 처형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광록훈이었던 서자위는 이를 두고 가혹한 처사라며 비판하였다. 이후 태초 3년(기원전 102년)에는 광록대부로서 흉노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오원에서 여구산(廬朐山)에 이르는 지역에 성채와 망루 등 방어 시설을 구축하였으나, 같은 해 가을 흉노의 침입으로 인해 일부 파괴되는 일을 겪었다.
2.1. 강족 평정 (기원전 112년)
원정 6년(기원전 112년) 12월, 장군 이식과 함께 서강을 쳐 평정하였다.
2.2. 왕온서 사건 비판 (기원전 104년)
태초 원년(기원전 104년), 중위 직책에 있던 왕온서가 죄를 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왕온서뿐만 아니라 그의 두 아우와 사돈 집안까지 연루되어 모두 처형당하는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이를 지켜본 당시 광록훈 서자위는 다음과 같이 탄식하며 당시의 가혹한 법 집행을 비판하였다.
>"슬픈 일이다. 예로부터 (죄를 지으면) 삼족(三族)을 멸한다고 하는데, 왕온서의 죄는 오족(五族)이 멸하게 만들었구나!"
2.3. 흉노 방어 시설 구축 (기원전 102년)
태초 3년(기원전 102년), 흉노의 선우 오사려가 사망하고 구리호가 새로운 선우로 즉위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광록대부 서자위는 조정의 명령을 받아 오원의 요새에서 출발하여 흉노를 견제하기 위한 방어 시설 구축에 나섰다. 그는 가깝게는 수백 리, 멀게는 천 리까지 진출하여 성채와 망루를 쌓았으며, 이 방어선은 여구산(廬朐山)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같은 해 가을, 흉노는 정양과 운중 지역을 침입하여 수천 명의 인명 피해를 입혔으며, 돌아가는 길에 서자위가 구축했던 성채와 망루를 파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