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보성
1. 개요
선보성은 전한 초기의 인물로, 고제와 함께 한나라를 건국하는 데 참여했다. 패 땅에서 졸병으로 시작하여 낭중이 되었으며, 영포를 친 공로로 중모후에 봉해졌다. 고제가 어려울 때 말을 제공한 인연으로 열후가 될 수 있었다. 문제 8년에 사망했으며, 시호는 공(共)이며 아들 선보증이 작위를 이었다.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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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72년 사망 -
하후영
하후영은 전한 초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기여한 개국공신으로, 젊은 시절부터 유방을 비호하고 팽성 전투에서 유방과 자녀들을 보호하는 등 초한쟁패 시기에 활약하며 여음후에 봉해졌고 혜제, 고황후, 문제까지 중용된 인물이다. -
기원전 172년 사망 -
공취 (사람)
공취는 전한 고제를 섬기며 해하 전투에서 공을 세워 열후에 봉해졌으며, 고제 원년에 탕에서 집순으로 시작하여 좌사마로 한나라에 들어가 항우를 공격하여 승리하는 데 기여했고, 문제 8년에 사망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선보성은 패에서 졸병으로 일어나 고제와 함께 한나라에 들어갔다. 낭중이 되어 영포를 친 공으로 중모후에 봉해지고 식읍 2,300호를 받았다. 고제가 어려웠을 때 그를 도왔기 때문에 열후가 될 수 있었다. 문제 8년(기원전 172년)에 죽어 공(共)을 받고, 아들 선보증이 작위를 이었다.
2.1. 초기 활동
졸병 신분으로 패(沛) 땅에서 일어나 고제와 함께 한나라에 들어갔고, 낭중(郞中)이 되어 영포를 친 공으로 중모후(中牟侯)에 봉해지고 식읍 2,300호를 받았다. 선보성은 고제가 한미하였던 시절에, 고제가 위험에 처했을 때 말 한 필을 내어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열후에 봉해질 수 있었다.
2.2. 중모후 책봉
패(沛)에서 졸병 신분으로 일어나 고제와 함께 한나라에 들어갔고, 낭중(郞中)이 되어 영포를 친 공으로 중모후(中牟侯)에 봉해지고 식읍 2,300호를 받았다. 선보성은 고제가 한미하였던 시절에 위험에 처했을 때 말 한 필을 내어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열후에 봉해질 수 있었다.
2.3. 사망
문제 8년(기원전 172년)에 죽어 시호를 공(共)이라 하였고, 아들 선보증이 작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