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취 (사람)
1. 개요
공취는 전한 고제를 섬긴 인물로, 해하 전투에서 공을 세워 열후에 봉해졌다. 고제 원년에 탕에서 집순으로 시작하여 좌사마로 한나라에 들어갔으며, 해하 전투에서 한신과 함께 항우를 공격하여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고제 6년에 요 땅을 받아 열후가 되었으며, 문제 8년에 사망했다. 《공자가어》에서는 공자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위서 논란과 사마천, 반고의 기록 부재로 인해 이 설은 의혹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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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72년 사망 -
하후영
하후영은 전한 초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기여한 개국공신으로, 젊은 시절부터 유방을 비호하고 팽성 전투에서 유방과 자녀들을 보호하는 등 초한쟁패 시기에 활약하며 여음후에 봉해졌고 혜제, 고황후, 문제까지 중용된 인물이다. -
기원전 172년 사망 -
당려
당려는 전한 초기 고제를 도와 항우를 격파하고 영포를 치는 데 공을 세워 척구후에 봉해진 인물로, 좌사마, 동군도위, 중위를 역임했다. -
전한의 귀족 -
장량
장량은 전국시대 말기부터 초한쟁패기를 거쳐 전한 초기에 활약한 한나라 귀족 출신 인물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 유후에 봉해진 뛰어난 지략가이자 책사이다. -
전한의 귀족 -
소하
소하는 전한 초기의 정치가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공을 세웠으며, 군수 보급, 내정 담당, 한신 천거, 승상으로서 국가 기틀을 다지는 데 헌신한 인물이다. -
전한 사람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사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2. 생애
고제 원년(기원전 206년), 탕에서 집순(執盾)으로서 처음 고제를 섬겼고, 좌사마로서 한나라에 들어갔다. 해하 전투에서는 좌군을 맡아 전군을 맡은 한신이 항우와 싸워 불리해 물러나자 우군을 맡은 진하와 함께 항우를 쳤다. 초군이 불리해지자 한신이 되돌아와 싸워 초군은 대패했다. 이 공적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1년)에 요(蓼) 땅을 받아 열후가 되었다. 문제 8년(기원전 172년)에 죽어 아들 공장이 뒤를 이었다.
2.1. 초기 활동
고제 원년(기원전 206년), 탕에서 집순(執盾)으로서 처음 고제를 섬겼고, 좌사마로서 한나라에 들어갔다. 해하 전투에서는 좌군을 맡아 전군을 맡은 한신이 항우와 싸워 불리해 물러나자 우군을 맡은 진하와 함께 항우를 쳤다. 초군이 불리해지자 한신이 되돌아와 싸워 초군은 대패했다. 이 공적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1년)에 요(蓼) 땅을 받아 열후가 되었다. 문제 8년(기원전 172년)에 죽어 아들 공장이 뒤를 이었다.
2.2. 해하 전투
고제 원년(기원전 206년), 탕에서 집순(執盾)으로서 처음 고제를 섬겼고, 좌사마로서 한나라에 들어갔다. 해하 전투에서는 좌군을 맡아 전군을 맡은 한신이 항우와 싸워 불리해 물러나자 우군을 맡은 진하와 함께 항우를 쳤다. 초군이 불리해지자 한신이 되돌아와 싸워 초군은 대패했다. 이 공적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1년)에 요(蓼) 땅을 받아 열후가 되었다. 문제 8년(기원전 172년)에 죽어 아들 공장이 뒤를 이었다.
2.3. 열후 책봉
고제 원년(기원전 206년), 탕에서 집순(執盾)으로서 처음 고제를 섬겼고, 좌사마로서 한나라에 들어갔다. 해하 전투에서는 좌군을 맡아 전군을 맡은 한신이 항우와 싸워 불리해 물러나자 우군을 맡은 진하와 함께 항우를 쳤다. 초군이 불리해지자 한신이 되돌아와 싸워 초군은 대패했다. 이 공적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1년)에 요(蓼) 땅을 받아 열후가 되었다. 문제 8년(기원전 172년)에 죽어 아들 공장이 뒤를 이었다.
2.4. 사망
문제 8년(기원전 172년)에 사망하였고, 아들 공장이 뒤를 이었다.
3. 공자의 후손?
《공자가어·후서》에서는 공안국의 계보를 설명하는데, 여기에서는 공취가 공자의 10세손 공부(孔祔)의 아들로 자는 자산(子産)이며, 53세에 죽었다고 한다. 행적은 한서와 사기의 기록과 일치한다. 공자가어는 위서이고, 공자를 존숭한 사마천과 반고 둘 다 공취의 혈통을 공자와 연결하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 계보도 의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