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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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정릉은 조선 성종과 정현왕후, 중종의 능으로, 사적 제199호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임진왜란 때 훼손되어 시신이 없는 상태이며, 중종의 능은 원래 고양시에 있었으나 이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선정릉은 도심 속 역사 공간으로, 인근 테헤란로의 옛 이름은 삼릉로였다.

선정릉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위치 정보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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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이름선정릉
한자宣靖陵
로마자 표기Seonjeongneung
문화재 유형사적
지정 번호199
주소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100길 1 (삼성동 131)
시대조선
지정일1970년 5월 26일
문화재청 번호13,01990000,11
관할 기관문화재청
세계유산
등재 연도2009
등재 회차33회 세계유산위원회
유형문화
등재 기준iii, iv, vi
등재 번호1319
지역아시아 및 오스트랄라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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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릉은 조선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의 단릉으로, 원래 중종의 정릉 옆에 묻히길 원했으나 침수 문제로 현재 위치에 안장되었으며, 제향은 태릉봉향회에서 주관하고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 인근에 강릉과 태릉선수촌이 있고 2014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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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오릉은 조선 왕실의 왕릉군으로, 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 등 5기의 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순창원, 수경원, 대빈묘도 포함되어 있다.

2. 역사

2.1. 조성 배경

2.2. 임진왜란과 수난

선릉과 정릉은 임진왜란 때 파헤쳐져 재궁이 전부 불타 버렸기 때문에, 선릉과 정릉의 세 능상 안에는 시신이 없다. 정릉의 경우는 좀 더 특수한데,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침에서는 아예 잿더미들만 나왔지만 중종의 능침에서는 시신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시신이 중종의 것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해 원로 대신에서부터 궁중의 나인들까지 동원되어 살펴보았지만 중종이 승하한 지 오래 되어 외모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몇 없었고 남은 사람들도 고령이라 확인이 힘들었다. 남아있던 기록과 시신의 모습이 달랐고 중종이 승하할 당시가 더운 여름이었는데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남아있다는 점 때문에 왜군이 왕릉을 욕보이기 위해 가져다 둔 시신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혹시나 중종의 시신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정릉 근처의 정결한 곳에 묻었다. 어쨌든 선정릉의 세 능상은 모두 비어있으며(정확히는 보수하면서 새로 만들어 올린 의복들만 묻혀있다), 그 시신이 정말 중종의 시신이었는지 아닌지 확실하게 확인할 방법은 아직은 없다.

2.2.1. 역사적 기록과 논란

선릉과 정릉은 임진왜란 때 파헤쳐져 재궁이 전부 불타 버렸기 때문에, 선릉과 정릉의 세 능상 안에는 시신이 없다. 정릉의 경우는 좀 더 특수한데,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침에서는 아예 잿더미들만 나왔지만 중종의 능침에서는 시신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시신이 중종의 것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해 원로 대신에서부터 궁중의 나인들까지 동원되어 살펴보았지만 중종이 승하한 지 오래 되어 외모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몇 없었고 남은 사람들도 고령이라 확인이 힘들었다. 남아있던 기록과 시신의 모습이 달랐고 중종이 승하할 당시가 더운 여름이었는데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남아있다는 점 때문에 왜군이 왕릉을 욕보이기 위해 가져다 둔 시신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혹시나 중종의 시신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정릉 근처의 정결한 곳에 묻었다. 어쨌든 선정릉의 세 능상은 모두 비어있으며(정확히는 보수하면서 새로 만들어 올린 의복들만 묻혀있다), 그 시신이 정말 중종의 시신이었는지 아닌지 확실하게 확인할 방법은 아직은 없다.

3. 구조 및 특징

3.1. 선릉

3.2. 정릉

4. 문화적 가치

4.1. 사적 지정 및 세계유산 등재

1495년 성종의 능인 선릉이 조성되었고, 1530년 성종의 제2계비인 정현왕후의 능이 선릉 동쪽에 안장되었다. 왕과 왕비의 능을 정자각 배후 좌우 두 언덕에 각각 한 봉분씩 조성한 경우로 동원(同原) 이강(異岡) 형식이다. 1562년 문정왕후1544년에 축조된 중종의 능인 정릉을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 원당리에서 이곳으로 옮겼으나, 이 곳 또한 매년 여름이면 능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결국 중종과 함께 안장되기를 바랐던 문정왕후는 태릉에 홀로 안장되었다. 선정릉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해 파헤쳐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선정릉은 사적 제199호이고,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4.2. 도심 속 역사 공간

5. 기타

5.1. 테헤란로 명칭 유래

인근 테헤란로의 원래 이름은 이 선정릉에 봉분 세 개가 있다는 것에 착안한 '삼릉로'(三陵路)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