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렴
1. 개요
성렴은 후한 시대의 무장으로, 여포를 섬겼다. 여포가 장연과의 전투에서 수십 명의 기병으로 수차례 돌격할 때 위월과 함께 항상 곁을 지켰으며, 건안 3년(198년) 하비 전투에서 조조에게 사로잡힌 이후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후한서》에서는 건장, 《삼국지》에서는 효장으로 묘사될 만큼 용맹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여포 휘하 팔건장 중 한 명으로 등장하며, 조조를 추격하다 전위에게 저지당하고 복양 전투에서 악진에게 죽는 것으로 묘사된다.
-
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문화에 관한 -
르네상스 미술
르네상스 미술은 14세기부터 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미술 양식의 변화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부흥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적 세계관과 사실적 표현 기법이 발달했으며, 회화, 조각, 건축 분야에서 다양한 발전을 이루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거장들이 활약하며 유럽 각 지역에서 특색을 반영하여 발전했다. -
문화에 관한 -
삼국지연의
2. 생애
성렴은 후한 말 여포를 섬긴 무장이다. 장안에서 쫓겨난 여포가 원소와 함께 상산에서 장연과 싸울 때, 여포는 수십 기의 기병으로 하루에도 서너 번씩 장연의 본진을 공격했는데, 이때 성렴은 위월과 함께 항상 여포의 곁을 지켰다. 10여 일 후, 여포는 장연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198년, 하비에서 조조와의 전투에 참전했으나 여포군이 패하면서 포로로 잡혔다. 이후 성렴에 대한 기록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후한서》에서는 '건장(健將)', 《삼국지》에서는 '효장(驍將)'으로 표현되어 그의 용맹함을 짐작할 수 있다.
2.1. 여포를 섬기다
여포를 섬겼다. 장안을 빠져나온 여포는 원소와 함께 상산(常山)에서 장연과 교전하였다. 이때 여포는 단 수십 명의 기병으로 하루에 서너 번씩이나 장연의 본진으로 돌격하였는데, 이때 성렴과 위월은 항상 여포의 곁에 있었다. 이러하기를 10여 일 후, 결국 여포는 장연의 군세를 격파하였다.
건안 3년(198년) 10월, 하비(下邳)에서 조조와의 야전에 참전하였으나 여포는 패하였고, 성렴은 조조에게 생포당하였다. 성렴에 관한 기록은 사서에 거의 보이지 않으나, 《후한서》에서는 건장(健將), 《삼국지》에서는 효장(驍將)이라고 표현하는 등 상당히 용맹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2.2. 조조와의 전투와 최후
여포를 섬겼다. 장안을 빠져나온 여포는 원소와 함께 상산(常山)에서 장연과 교전하였다. 이때 여포는 단 수십 명의 기병으로 하루에 서너 번씩이나 장연의 본진으로 돌격하였는데, 이때 성렴과 위월은 항상 여포의 곁에 있었다. 이러하기를 10여 일 후, 결국 여포는 장연의 군세를 격파하였다.
건안 3년(198년) 10월, 하비에서 조조와의 야전에 참전하였으나 여포는 패하였고, 성렴은 조조에게 생포당하였다. 이후 성렴에 관한 기록은 사서에 거의 보이지 않으나, 《후한서》에서는 건장(健將), 《삼국지》에서는 효장(驍將)이라고 표현하는 등 상당히 용맹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3. 《삼국지연의》 속 성렴
성렴은 여포 휘하 팔건장 중 한 명(서열 5위)으로 등장한다. 첫 전투에서 조조를 한 걸음 거리까지 추격하였으나, 조조의 부장 전위가 이를 물리쳤다. 그 후, 복양에서 조조의 부장 악진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4. 평가
성렴은 여포를 따르던 무인이었다. 여포가 장안에서 쫓겨난 후, 원소와 함께 상산에서 장연과 싸울 때, 여포는 불과 수십 기(騎)로 하루에 3~4번이나 장연의 본진에 돌격했는데, 성렴과 위월은 항상 여포 곁에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싸움을 10여 일 계속한 끝에 마침내 장연의 군대를 격파했다.
건안 3년(198년) 10월, 하비에서 조조와의 야전에 참전했지만, 여포군은 패배했고 성렴은 포로가 되었다. 이후 성렴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사서에서 성렴에 대한 기술은 단편적이지만, 『후한서』 여포전에서는 "건장", 『삼국지』 위서 여포전에서는 "효장"이라고 쓰여 있으며, 모두 용장 내지는 맹장을 의미하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