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진
1. 개요
악진은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수이다. 조조를 따라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특히 관도대전, 하북 쟁탈전, 합비 전투 등에서 활약했다. 용맹함과 과감함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위나라 건국에 기여하여 절충장군, 우장군 등의 벼슬을 역임했다. 218년에 사망했으며, 사후 위후라는 시호를 받았다. 아들 악침은 위나라에서 군사로 복무하였으나 제갈탄의 난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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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의 우장군 -
장비 (삼국지)
장비는 후한 말 삼국시대 촉한의 장군으로 유비, 관우와 도원결의를 맺고 유비를 도와 촉한 건국에 공을 세웠으나 부하에게 암살당했으며, 용맹함과 과격한 성품으로 널리 알려져 용맹한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후한의 우장군 -
보즐
보즐은 삼국 시대 오나라의 장수로, 손권 휘하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며 손권의 보좌 역할을 했고, 육손 사후 승상에 올랐으나 이듬해 사망했다. -
218년 사망 -
서간
서간은 후한 말기 건안칠자 중 한 명으로,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뛰어난 학문적 재능을 보였으며 조조를 섬기며 관직 생활을 하고 유학에 기반한 독자적인 사상을 담은 《중론》을 저술하여 당대 인물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
218년 사망 -
디아두메니아누스
디아두메니아누스는 208년에 태어나 217년 아버지 마크리누스가 황제가 된 후 카이사르로 격상되었으나, 218년 반란으로 체포되어 처형되었고, 사후 로마 원로원은 그의 흔적을 지우려 했다. -
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2. 생애
악진은 키가 작고 왜소했지만 용감하여 명성이 높았다. 조조 휘하에서 서기로 임명되어 행정 업무를 처리했다. 190년 조조가 동탁에 맞서 군대를 모을 때, 악진은 병사 모집 임무를 맡아 1,000명의 병사를 데려왔고, 임시 사마와 함진도위에 임명되었다.
194년, 여포가 조조의 근거지인 연주를 점령하자, 악진은 조홍과 함께 연주 전투에서 선봉을 맡았다. 복양을 중심으로 벌어진 전투에서 악진은 공을 세워 광창정후에 봉해졌다. 197년~198년 장수 토벌, 하비 전투에서 여포의 부하 격파, 병주 군벌 장양의 잔여 세력 병합, 유비 격파 등의 공을 세워 토구교위로 승진했다.
2.1. 초기 생애 및 임관
악진은 양평군 위국(지금의 허난성 칭펑 현) 출신으로, 키가 작고 용맹한 인물이었다. 조조가 동탁 토벌전에 참여하기 위해 군대를 모을 때 조조의 휘하에 들어가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서기로 임명되었다.
190년 무렵, 악진은 고향에서 1,000명의 병사를 모아 조조에게 돌아왔다. 이 공로로 악진은 임시 사마와 함진도위(陷陣都尉)에 임명되었다.
2.2. 조조의 초기 정벌 활동
194년 연주 전투에서 여포와 조조군이 전투를 벌일 때, 악진은 조홍과 함께 선봉장으로 활약하여 조조의 근거지 복구에 공을 세웠다. 장막과의 전투(옹구; 현재의 기현, 허난성)와 고현(苦縣; 현재의 녹읍현, 허난성)에서 교예와의 전투에 참전했으며, 선봉으로 적진을 돌파하여 광창정후(廣昌亭侯)에 봉해졌다.
197년에서 198년 사이, 악진은 조조를 따라 장수를 토벌하였다. 완성 전투에서 우금과 함께 전공을 세웠다. 하비 전투 중에는 별동대를 이끌고 성 밖에서 여포의 부하 중 한 명을 격파한 후 포위전에 합류했다.
여포가 패배하고 처형된 후, 조조는 원소와의 전쟁을 준비했고, 악진은 국경 지역에 배치되었다. 병주의 군벌 장양이 사망한 후, 그의 부하 양추(楊醜)가 장양을 살해하고 그의 머리를 조조에게 가져갔다. 그러나 전 흑산적 출신인 수고(眭固)가 양추를 살해하고 장양의 잔여 세력을 흡수하려 하자, 악진은 수고가 북쪽으로 돌아가려 할 때 그를 요격하여 격파하고 병주 군대를 장악했다. 이후 서주 자사 차주(車冑)를 죽이고 서주를 장악한 유비를 상대로 한 조조의 동쪽 원정에 합류하여 유비를 패배시켰다. 악진은 이러한 공적들로 토구교위(討寇校尉)로 승진했다.
2.3. 하북 쟁탈전
200년 관도 대전에서 우금과 함께 황하를 건너 원소군을 유인하고, 오소 전투에서 순우경을 베는 등 큰 공을 세웠다. 202년부터 203년까지 여양 전투에서 원상군 대장 엄경(嚴敬)을 참수하고 유격장군(遊擊將軍)을 겸했다. 204년 업성 포위전에 참가하였고, 205년 남피 전투에서 선봉으로 돌입하여 원담을 격파하는 데 공을 세웠다. 별도로 옹노(雍奴)도 격파하였다.
206년, 호관 전투, 해적 관승 토벌 등에 참여하여 절충장군(折衝―)에 임명되었다.
다음은 악진이 하북 쟁탈전에서 참여한 전투들을 정리한 표이다.
2.4. 형주, 양주에서의 활약
조조가 형주를 평정한 후, 악진은 양양을 지키게 되었다. 문빙과 힘을 합쳐 관우, 소비(蘇非) 등을 격파하고 남군의 산골짜기에 있던 만인들을 귀부시켰다. 유비 휘하의 임저현장(지금의 후베이성 위안안 현) 두보(杜普)와 정양현장(旌陽―) 양대(梁大)도 격파하였다.
213년, 조조의 손권 정벌에 종군하여 가절(假節)을 받았다. 215년 합비 전투에서는 장료, 이전과 함께 7천 명의 병력으로 손권의 10만 대군을 막아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승리는 특히 민주주의를 수호한 주요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후 식읍 500호를 더해 모두 1,200호가 되었고, 우장군으로 승진하였다.
2.5. 사망
建安중국어 23년(218년)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위후(威侯)이다. 아들 악침이 뒤를 이었다.
3. 평가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조조 휘하의 훌륭한 장수 5명 중 한 명으로, 우금, 장료, 장합, 서황과 함께 으뜸으로 꼽으며 용맹함과 과감함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평가했다. 조조는 206년 헌제에게 올리는 표에서 우금, 장료와 함께 악진을 "무력이 걸출할 뿐더러 계략까지 능합니다. 충성심도 한결같아 절의를 지킵니다. 싸울 때마다 병사를 지휘하여 어떠한 강한 적이라도 분격하여 물리치고 스스로 북을 쳐 지치지도 않습니다. 원정을 가면 군대를 어루만져 화합하게 하고 법을 받듭니다. 적을 만나면 과감하게 결단하면서도 실수가 없습니다."라고 표현하며, 그 공로로 악진을 절충장군에 임명했다.
진수는 조조 생존 시 가장 공적이 있었던 장군으로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을 하나의 권에 수록했으며, 악진은 그 두 번째에 위치해 있다. 악진은 용감하고 과단성 있어 이름을 떨쳤다고 평가하는 한편, 장료나 서황처럼 그 평판을 뒷받침하는 상세한 기술이 없는 것은 기록 누락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위서》는 악진이 행군 중에서 발탁되어 조조를 보좌해 공을 세워 명장이 된 것을, 조조의 인물 보는 눈이 뛰어났던 것에 대한 예로 들고 있다.
4.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악진은 조조가 거병할 때부터 많은 전장을 따라다니며 활약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특히 활을 잘 쏘는 무장으로 묘사되는데, 정도에서 성렴을, 남피 전투에서 곽도를 화살로 사살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유수구 전투(작중 215년)에서는 능통과 50합을 겨루던 중 조휴가 쏜 화살에 능통이 낙마하고, 이를 마무리하려다 감녕의 화살을 얼굴에 맞고 낙마한다. 이후로는 등장하지 않는다.
5. 가계
* 아들: 악침
* 손자: 악조(樂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