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경
1. 개요
성원경은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과 해방 이후 정치 활동을 한 인물이다. 일본 주오 대학 경제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취체역, 호서은행 천안지점장 등을 역임하며 기업인으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며, 친일 단체에 가담하여 1935년 《조선공로자명감》에 수록되었다. 해방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예산군지부 운영위원장 등을 지내며 우익 운동에 참여했다. 대한민국 제3대,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나, 친일 행적으로 인해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2. 일제강점기 활동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동아일보 취체역을 지내는 등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호서은행 천안지점장, 충남제사회사 사장 등 금융, 섬유 기업을 경영했다. 예당수리조합장, 충청남도 도의회원, 면협의원 등을 역임하며 예산군 지역을 넘어 충남을 대표하는 유지로도 활동했다.
1930년대부터 천도교 신파의 시중회와 배영동지회, 조선임전보국단 등 친일 및 전쟁 협력 단체에 꾸준히 가담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제 강점기 말기에 중추원 참의로 발탁되었다.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원숙한 인격과 식견으로 신망을 얻어 충남에서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라는 인물평이 실려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공개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분야,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3. 해방 이후 정치 활동
태평양 전쟁 종전으로 미군정이 시작되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예산군지부 운영위원장과 반탁독립투쟁위원회 예산지부장을 지내는 등 우익 운동에 뛰어들었다.
1954년 치러진 대한민국 제3대 총선에서는 조선민족청년단 계열의 중진인 윤병구를 누르고 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사사오입 개헌 이후 자유당을 이탈해 민주당에 입당해 있던 중,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붕괴되었다. 4·19 혁명 직후 실시된 대한민국 제5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소속으로 재선의원이 되었다. 1955년 민주당 중앙상무위원회장과 대한농지개발영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4. 친일 논란
일제 강점기 당시 총독부가 1935년에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는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성원경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 실린 인물평에는 성원경이 원숙한 인격과 식견으로 여러 방면에서 신망을 얻어 각종 공직에 등용되었고, 충남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적혀 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공개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분야, 그리고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명단에는 친일단체 부문에도 중복 선정되어 있다.
5. 역대 선거 결과
|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1954년 |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 | 자유당 | 24,583표 (44.71%) | 1위 | 당선 | 초선 |
| 1958년 |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 | 민주당 | 27,388표 (44.45%) | 2위 | 낙선 | |
| 1960년 | 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 선거 | 민주당 | 25,798표 (42.52%) | 1위 | 당선 | 재선 |
| 1963년 | 대한민국 제6대 국회의원 선거 | 민주당 | 1,252,827표 (13.5%) | 전국구 9번 | 승계 전 사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