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아노 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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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바스티아노 로시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AC 밀란의 골키퍼로 1990년부터 2002년까지 12시즌 동안 뛰며 세리에 A 5회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특히 1993-94 시즌에는 세리에 A 최장 시간 무실점 기록(929분)을 세웠으며, 밀란 소속으로 330경기에 출전했다. 2002-03 시즌에는 AC 페루자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세바스티아노 로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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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의 로시
전체 이름Sebastiano Rossi
출생일1964년 7월 20일
출생지체세나, 이탈리아
1.97m
포지션골키퍼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 연도1979–1982
유소년 클럽체세나
클럽 연도1982–1990
클럽체세나
출장127
득점0
클럽 연도1982–1983
클럽→ 폴리 (임대)
출장11
득점0
클럽 연도1984–1985
클럽→ 엠폴리 (임대)
출장0
득점0
클럽 연도1985–1986
클럽→ (임대)
출장28
득점0
클럽 연도1990–2002
클럽밀란
출장240
득점0
클럽 연도2002–2003
클럽페루자
출장12
득점0
총 출장418
총 득점0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 연도1994
국가대표 출장0
국가대표 득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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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력

로시는 AC 밀란의 황금기를 이끈 골키퍼로, 1990년 안드레아 파차리의 백업 선수로 밀란에 합류했다. 12시즌 동안 활약하며 프랑코 바레시 등과 함께 튼튼한 수비진을 구축하여 세리에 A 5회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에 기여했다.

1991-92 시즌, 파차리가 볼로냐로 이적하면서 주전 골키퍼가 되었고, 이 시즌 리그 무패 우승을 달성했다. 1992-93 시즌에는 프란체스코 안토니올리와 주전 경쟁을 벌였으나, 안토니올리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주전 자리를 지켰다. 1993-94 시즌에는 1994년 3월 27일 포지아전에서 디노 초프가 가지고 있던 기록을 깨고 세리에 A 929분 무실점 기록을 달성했으나, 이고르 콜리바노프에게 실점하며 기록이 중단되었다. 이 기록은 2016년 3월 잔루이지 부폰에게 깨질 때까지 세리에 A 최장시간 무실점 기록이었다. 이후 안젤로 페고토, 마시모 타이비, 옌스 레만 등이 팀에 합류했지만, 주전 골키퍼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1998-99 시즌, 1999년 1월 17일 페루자전에서 퇴장당한 이후 크리스티안 아비아티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2000-01 시즌 지다가 합류하면서 3번째 골키퍼로 밀려났다.

2002-03 시즌 AC 페루자에서 활약하다가 38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1994년 이탈리아 대표팀에 두 차례 소집되었지만, 잔루카 팔리우카가 주전 골키퍼였기 때문에 출전 기회는 없었다.

2.1. 체세나 (1979-1990)

로시는 1979년 15세의 나이로 고향의 체세나에 입단했다. 1982-83 시즌, 포를리로 임대되어 세리에 C1에서 성인 무대에 데뷔했지만, 주로 후보 선수로 뛰며 팀의 강등을 겪었다.

이후 두 번의 임대를 거쳐, 로시는 1986-87 시즌 체세나로 복귀, 1986-87 시즌에 단 5경기만 결장하며 에밀리아-로마냐 연고 클럽의 세리에 A 승격을 이끌었다. 이후 3시즌 동안 체세나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팀의 세리에 A 잔류에 기여했고, 1989-90 시즌에는 리그 12위를 기록했다. 그는 1987년 9월 13일 나폴리와의 홈 경기에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

2.2. AC 밀란 (1990-2002)

로시는 이탈리아 1부 리그에서 단 한 시즌 만에 밀란의 관심을 끌었고, 이후 1990년대를 지배하게 되는 적흑 군단(Rossoneri, 당시 꿈의 선수단(Dream Team)으로도 수식되었다)에 합류했다. 밀란 1년차에 그는 주로 안드레아 파찰리의 후보 골키퍼로 대기했지만, 노장이 이듬해 여름에 볼로냐로 떠나면서 기회를 잡았다.

로시는 이후 프란체스코 안토니올리와 주전 지위를 놓고 경합하다가 붙박이 주전 수문장을 꿰찼고, 마우로 타소티, 프랑코 바레시,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그리고 파올로 말디니로 구성된 역대 최고의 수비진으로 회자되는 4인방 뒤에서 활약했다. 그는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지도 하에 성공기를 보냈고, 무패 우승을 비롯해 58경기 무패행진을 벌이고, 작은 방패를 5번이나 거머쥐었으며, 1994년에는 챔피언스리그도 우승했다.

1996년 작은 방패의 주인이 된 밀란은 이후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했는데, 1997년에는 리그 11위, 1998년에는 10위의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고, 로시 또한 기량이 하락해 마시모 타이비와 주전 수문장 자리를 놓고 경합했다. 1998-99 시즌, 밀란은 17차전에서 페널티 킥 득점을 허용하면서 페루자에 0-2로 밀리고 있었다. 나카타 히데토시가 주자로 나서 골망을 흔든 후, 로시가 공을 회수하러 간 나카타의 동료 크리스티안 부키를 뒤에서 가격했다. 로시는 그 결과 퇴장당했고, 경기 후 5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신입생 옌스 레만(레만은 5경기 출전에 그친 채 구단을 떠났다)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그는 1998-99 시즌에도 등번호 1번을 달았지만, 로시는 끝내 신예 크리스티안 아비아티에게 페루자전을 계기로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2.3. 페루자 (2002-2003)

2001-02 시즌 후, 로시는 골키퍼를 물색하던 페루자로 이적했다. 그는 2002-03 시즌 페루자가 1부 리그에 잔류하는데 기여했고, 1년 만에 39세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4. 국가대표 경력

아리고 사키 감독은 1994년 월드컵에서 잔루카 팔리우카, 루카 마르케자니, 루카 부치를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골키퍼로 발탁했기 때문에, 로시는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다. 사키 감독은 1994년 말에 로시를 국가대표팀 경기에 두 번 차출했으나, 로시는 국가대표팀 경기에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평론가들은 로시를 주전 골키퍼 팔리우카를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 언급했다. 로시는 1994년에 이탈리아 대표팀에 두 차례 소집되었지만, 주전 골키퍼가 잔루카 팔리우카였기 때문에 출전 기회는 없었다.

3. 경기 스타일

로시는 장신으로 위압감 있고 강인한 골키퍼였다. 자신감이 넘치고 지역 조율에 능했으며, 공을 잡거나 공격진에 넘기는 공, 뜬공을 효율적으로 처리했다. 문전에서 큰 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내 수비진을 조직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반사신경, 민첩성, 안정적인 위치 선정으로 효율적으로 공을 막았고,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운동신경이 뛰어나 페널티 킥도 잘 막아냈다.

발밑 기술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후방 방어와 골문 앞 걷어차기로 공 배급 능력을 보완했다. 골문 앞으로 빠르게 쇄도하여 밀란의 지역 방어 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게 만들었고, 수비진을 높게 올릴 수 있었다.

로시는 때때로 시한폭탄 같은 태도, 거만함, 논란이 되는 성격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3.1. 논란

1998-99 시즌 밀란페루자의 경기에서 페루자가 페널티 킥 득점을 성공시킨 후, 로시는 공을 회수하러 가던 크리스티안 부키를 뒤에서 가격하여 퇴장당했다. 그 결과 로시는 5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4. 기록

로시는 세리에 A 역사상 최장 시간 무실점 기록을 세웠다. 1993년 12월 12일부터 1994년 2월 27일까지 11경기에서 포자의 이고르 콜리바노프에게 장거리 슛으로 골망이 흔들리기 전까지 929분 연속으로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는 1972-73 시즌에 디노 초프가 세운 기록을 26분 더 늘리며 경신했고, 그의 기록은 이후 잔루이지 부폰이 2016년 3월 20일에 45분 차이로 다시 경신했다.

로시는 세리에 A 역사상 최장 시간 원정 무실점 기록(1993년 11월 7일부터 1994년 3월 27일까지 825분)도 세웠다.

또한 로시는 이탈리아 리그가 1시즌 34경기 체제였던 시기에 밀란의 역대 최저 실점 기록(11골)도 세웠다.

밀란에서 330경기에 출전한 그는 밀란 골키퍼 역대 최다 출전 2위이며, 크리스티안 아비아티(380경기)만이 그보다 더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5. 수상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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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클럽

AC 밀란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골키퍼로, 1990년 안드레아 파차리의 백업 선수로 밀란에 합류했다. 12시즌 동안 활약하며 프랑코 바레시 등과 함께 견고한 수비진을 구축하여 세리에 A 5회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에 기여했다.

1991-92 시즌, 파차리가 볼로냐로 이적하면서 주전 골키퍼가 되었다. 이 시즌 리그 무패 우승을 달성했다. 1992-93 시즌에는 프란체스코 안토니올리와 주전 경쟁을 벌였으나, 안토니올리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주전 자리를 지켰다. 1993-94 시즌에는 1994년 3월 27일 포지아전에서 디노 초프가 가지고 있던 기록을 깨고 세리에 A 929분 무실점 기록을 달성했으나, 그 경기에서 이고르 콜리바노프에게 실점하며 기록이 끊겼다. 2016년 3월 잔루이지 부폰에게 기록이 깨질 때까지 세리에 A 최장시간 무실점 기록 보유자였다. 이후 안젤로 페고토, 마시모 타이비, 옌스 레만 등이 팀에 합류했지만, 주전 골키퍼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1998-99 시즌, 1999년 1월 17일 페루자전에서 퇴장을 당한 이후 크리스티안 아비아티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2000-01 시즌 지다가 합류하면서 3번째 골키퍼로 순위가 밀렸다.

2002-03 시즌 AC 페루자에서 활약하다가 38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5.2. 개인

* AC 밀란 명예의 전당 헌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