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계백
1. 개요
송계백은 평안남도 평원군 출신으로, 1915년 보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19년 2·8 독립선언에 9인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여했으며, 국내에 밀파되어 독립선언서 인쇄를 위한 활자와 운동 자금을 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2·8 독립선언 이후 체포되어 금고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1922년 숙환으로 사망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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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군 출신 -
우동측
우동측은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후 요직을 두루 거치며 김정은 체제 안착을 위한 숙청을 주도했으며, 뇌졸중 또는 숙청설 이후에도 열병식에 참가하여 건재함을 과시했다. -
평원군 출신 -
박흥주
박흥주는 일제강점기 출생으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 중앙정보부 근무, 김재규 전속부관을 거쳐 10·26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다. -
일제강점기의 장로교도 -
여운형
여운형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독립운동 단체 활동, 임시정부 참여, 좌우합작을 통한 통일 노력으로 알려졌으나 해방 후 암살당했고 그의 삶과 죽음은 친일 논란과 암살 배후에 대한 논쟁을 낳고 있다. -
일제강점기의 장로교도 -
이승훈 (1864년)
이승훈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교육자, 기업인으로, 오산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신민회 활동, 3·1 운동 참여 등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2. 생애
평안남도 평원군 출신으로, 1915년 보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19년 3·1 운동의 도화선이 된 도쿄 2·8 독립 선언에 9인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그해 1월 초 유학생 대표로 국내에 밀파되어 이광수가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인쇄할 활자와 운동 자금을 구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월 8일 독립선언서 낭독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금고 7개월 15일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1922년 1월 12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2.1. 2·8 독립 선언 참여
1919년 와세다 대학교 학생으로 있을 때, 3·1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도쿄에서의 2·8 독립 선언에 9인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1918년 말부터 일본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파리강화회의로 국제정세의 변동이 예견되면서 독립 운동 실행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이들은 송계백을 비롯하여 최팔용, 김도연 등 11명의 실행위원을 선임하여 독립 선언 계획을 추진했다.
1919년 1월 초, 송계백은 유학생 대표로 국내에 밀파되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의 목적은 이광수가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인쇄할 수 있는 활자와 운동 자금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선언서를 비단 조각에 써서 학생복 속에 바늘로 꿰매어 숨기고 국내에 잠입한 뒤, 보성중학교 교장인 최린과 1년 선배인 현상윤을 통하여 최남선, 송진우 등을 만나 거사 계획을 알리고 논의했으며, 정노식에게서는 운동 자금을 협조받았다.
2월 8일 오후 2시에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고, 송계백을 비롯한 선언서 서명자 9명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금고 7개월 15일형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2.2. 국내 밀파 및 독립운동 지원
1919년 1월 초, 송계백은 2·8 독립 선언에 참여한 도쿄 유학생 대표로 국내에 밀파되어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의 임무는 이광수가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인쇄할 활자와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는 독립선언서를 비단 조각에 써서 학생복 속에 바늘로 꿰매어 숨기고 국내에 잠입했다. 보성중학교 교장 최린과 1년 선배 현상윤을 통해 최남선, 송진우 등을 만나 거사 계획을 알리고 논의했으며, 정노식에게서는 운동 자금을 지원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