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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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송기인은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사제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민주화 운동 및 사회 활동에 참여했다. 1972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부산 지역 성당에서 주임신부로 활동했고,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 및 이사,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2년 국민훈장 모란장, 2004년 중화민국 친선외교상장을 수상했다.
| 접두어 | 베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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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송기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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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미어 |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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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구 | 부산 전포성당·구포성당·삼랑진성당·당감성당·신선성당·서대신동성당 주임신부 역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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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책 | 부산교회사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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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38년 9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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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지 | 경상남도 부산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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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 천주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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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직 |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초대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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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는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으로, 페루 중앙준비은행 총재, 에너지광산부 장관, 경제재정부 장관, 총리 등을 역임했으며, 2016년 대선에서 당선되었으나 오데브레히트 스캔들로 인해 2018년에 사임했다.
2. 경력
1972년 12월 사제 서품을 받은 송기인 신부는 1973년 이후 부산 전포성당·구포성당·삼랑진성당·당감성당·신선성당·서대신동성당 주임신부를 역임하였다. 2005년 동아대학교 석좌교수(철학)를 역임하였다.
2.1. 민주화 운동 및 사회 활동
2000년 민주화운동정신계승 부산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하며 민주화 운동 정신 계승에 앞장섰다.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 및 이사를 역임하며 친일 잔재 청산과 올바른 역사 정립을 위해 노력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부산 지역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기리고 정신을 계승하는 데 힘썼다.
2.2.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
2005년 12월 1일부터 2007년 11월 30일까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위원장 재직 시절, 과거사 진실 규명과 피해자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2006년과 2007년 두 해 동안 받은 급여 전액 197을 민족문제연구소에 기부하며 과거사 청산 활동을 지원했다.
3. 수상
* 2002년 국민훈장 모란장, 황조근정 훈장
* 2004년 중화민국 정부 친선외교상장
4. 기타
노무현은 1982년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때 운동권의 후견인이자 변호사였던 송기인 신부와 처음 만났다. 1986년 부산 당감성당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는 송기인 신부에게 세례(노무현: 유스토, 권양숙: 아델라)를 받았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실제로 성당에 정기적으로 다니지는 않았다고 한다.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2006년 11월 말 1년 동안 받은 급여 97을 민족문제연구소에 기부했다. 2007년 11월 30일 위원장 직에서 물러나면서 그 해 받은 급여 1억여 원도 모두 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