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호
1. 개요
송일호는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북일친선협회 상무위원, 조선로동당 국제부 일본 담당 부부장, 외무성 연구원을 역임하고 외무성 부총국장을 거쳐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 담당 대사를 지냈다. 그는 북일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 참여했다. 일본의 고등학교 무상화 법안에 따른 조선학교 배제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일본 정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 이름 | 송일호 |
|---|---|
| 한자 표기 | 宋日鎬, 宋日昊 |
| 가타카나 표기 | ソン・イロ |
| 로마자 표기 | Song Il-Ho |
| 국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
| 직책 | 북일 국교정상화교섭 담당대사 |
| 군주 | 김정은 |
| 군주 칭호 | 주석 |
| 출생일 | 1955년 4월 |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시 |
| 학력 | 평양사범대학 |
| 정당 | 조선로동당 |
| 직업 | 외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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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직사범대학 동문 -
윤명찬
윤명찬은 1949년 평양 출신으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감독, 국가체육위원회 부서기장을 역임했으며, 1998년 대한민국으로 귀순하여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분과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17년 사망했다. -
김형직사범대학 동문 -
김병훈 (1929년)
김병훈은 1929년 평양 출생으로 평양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조선문학창작사 사장을 역임했으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을 지낸 북한의 문학가이자 정치인이다. -
1955년 출생 -
자이르 보우소나루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브라질의 정치인으로, 군사 독재를 옹호하고 차별적인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으며,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브라질 대통령을 역임했으나 2022년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하고 공직 활동이 금지되었다. -
1955년 출생 -
강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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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 -
김여정
김여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에서 태어나 김정은의 여동생이며, 조선로동당 핵심 실세로 부상하여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 주요 외교 행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대외적으로 강경한 어조의 담화를 발표하며 대남·대미 압박을 주도하기도 한다. -
21세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 -
김정일
김정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2대 최고지도자로, 김일성 사망 후 권력을 승계하여 조선로동당 총비서 및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통치하며 3대 세습, 핵무기 개발, 남북 정상회담 등의 사건과 경제난, 인권 탄압 등의 문제를 겪은 인물이다.
2. 약력
그는 조선 사회주의 청년 동맹(현재는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중앙위원, 북일 친선협회 상무위원(1985년 6월 임명), 조선로동당 국제부 일본 담당 부부장, 외무성 연구원을 역임했다. 외무성 부총국장을 거쳐 아사히와의 국교 정상화 교섭 담당 대사가 되었다.
2010년 4월 17일, 일본의 고등학교 무상화 법안에 따른 조선학교 배제는 민족 차별이라며 일본 정부에 시정을 요구하였다. 또한 무상화가 되면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 9월 9일,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납치 문제에 대한 보고가 거의 완료되었다고 밝혔다.
2016년 10월 5일, 후쿠오카현 일조 친선협회 회원들과 면담했다.
2019년 9월 18일, 자유민주당 전 부총재 가나마루 신의 차남인 신고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과의 회담에 참석하여 "일본 측의 구체적인 행동"을 언급했다.
2.1. 주요 경력
| 직책 | 취임 년도 |
|---|---|
|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 |
| 북일친선협회 상무위원 | 1985년 6월 |
| 조선로동당 국제부 일본 담당 부부장 | |
| 외무성 연구원 | |
| 외무성 부총국장 | |
|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 담당 대사 |
2.2. 북일 관계 주요 활동
1990년 가나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 등 자민당 대표단의 방북 때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등장하였다. 1991년에는 김용순 당 비서를 단장으로 하는 조선로동당 대표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 정계와 관계를 구축했다.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방북에 관여했으며, 2006년 2월 북일 포괄 병행 협의 이후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 담당 대사로 임명되었다.
2008년 8월 11일~12일, 중국 선양에서 열린 북일 실무자 협의에 참석하여 납치 문제 재조사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그 후 북한 당국의 허가 없이 납치 피해자가 더 있음을 시사하여 자기 비판을 명령받았다는 정보가 있다.
2010년 4월 17일, 일본 고등학교 무상화 법안에서 조선학교 제외에 대해 민족 차별이라며 일본 정부에 시정을 요구하였다. 또한 무상화가 되면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2012년 4월 16일, 일본 전 국회의원 등으로 구성된 방북단과 평양에서 만나, 일본이 역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관계 개선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나카이 아츠시 납치 문제 담당상과의 회담 내용을 공개하며, 북한 건국 전 소련에 억류되어 사망한 일본 민간인과 군인의 묘지가 북한 각지에서 발견되었고, 유족의 참배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11월 13일에는 '북일 정부 간 협의' 참석을 위해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2014년 9월 29일, 납치 피해자 재조사 결과 보고를 평양에서 직접 들을 것을 일본 정부에 요구하며, 당초 합의했던 '여름~가을 초' 보고 약속을 어겼다. 이에 일본 정부는 10월 하순에 외무성 아시아 대양주 국장을 평양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2015년 9월 9일, 교도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납치 문제 보고서가 거의 완성되었다고 밝혔다.
2016년 10월 5일, 후쿠오카현 북일 우호 협회 회원들과 면담했다.
2019년 9월 18일, 가나마루 신 전 자민당 부총재의 차남이 이끄는 방북단과의 회담에 참석하여 일본 측의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하였다.
3. 인물 및 평가
일본어에 능통하며, 강경한 협상가적인 면모를 보인다. 1990년대부터 일본 자민당 등 일본 정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2006년 북일 포괄 병행 협의 이후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 담당 대사가 되었다.
2008년 북일 실무자 협의에서 납치 문제 재조사에 합의했지만, 이후 북한 당국의 허가 없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가 더 있음을 시사하여 자기 비판을 명령받았다는 정보가 있으며, 1997년에도 일시적으로 실각한 경험이 있다.
2010년에는 일본의 고등학교 무상화 법안에서 조선학교가 제외된 것에 대해 민족 차별이라며 비판하고, 무상화가 이루어지면 납치 문제 해결에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012년에는 일본 전 국회의원 방북단과의 면담에서 역사 문제 해결 없이는 관계 개선이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북한 건국 전 소련에 억류되어 사망한 일본인들의 묘지가 발견되었으며, 유족들의 참배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2014년에는 납치 피해자 재조사 결과 보고를 평양에서 직접 들으라고 일본 정부에 통보하여, 당초 합의했던 시기를 어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5년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납치 문제 보고서가 거의 완료되었다고 밝혔다.
2019년에는 가나마루 신 전 자민당 부총재의 차남이 이끄는 방북단과의 간담회에서 일본 측의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했다.
4. 기타
1997년 당시에도 일시적으로 실각한 경험이 있다. 북한 건국 전 소련에 억류되어 사망한 일본 민간인 및 군인의 묘지 참배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