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학선
1. 개요
송학선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운동가이다. 1926년 순종의 사망 이후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 암살을 시도했으나, 오인으로 일본인들을 살상하고 체포되어 사형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며,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에 의거 터 표석이 설치되었다.
| 본관 | 은진(恩津) |
|---|---|
| 자 | 자명(子明) |
| 호 | 만옹(晩翁) |
| 생년월일 | 1541년(중종 36) |
| 사망일 | 1613년(광해군 5) |
| 관직 |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동래부사(東萊府使)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형조참판(刑曹參判) |
|---|---|
| 주요 업적 |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을 지켜내는데 공헌 |
| 아버지 | 송희경(宋希璟) |
|---|---|
| 어머니 | 정부인(貞夫人) 안동 권씨(安東權氏) |
| 배우자 | 숙부인(淑夫人) 청주 한씨(淸州韓氏) |
| 자녀 | 슬하 3남 |
| 묘소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신양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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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
한국 사람에 관한 -
한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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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에 관한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1927년 사망 -
김학렬
김학렬은 일제강점기 출신으로 고등고시 합격 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에서 요직을 거쳐 재무부 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하며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발 정책 추진과 포항종합제철소 건설을 위한 경제협력자금 유치에 기여한 관료이다. -
1927년 사망 -
이해조
이해조는 일제강점기 신소설 작가이자 언론인으로, 《제국신문》, 《매일신보》 등에서 활동하며 《고목화》, 《빈상설》, 한국 최초 추리소설로 평가받는 《쌍옥적》 등 다수의 신소설을 발표했고, 고전 소설 재해석, 쥘 베른 소설 번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한국 신소설 창시자로 인정받는다.
2. 생애
송학선은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어릴 적 가세가 기울어 떠돌이 생활을 하며 어렵게 자랐다. 성인이 된 후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농기구 가게에 다녔으며, 1926년 거사 무렵에는 병으로 가게를 그만두었다가 완치된 상태였다.
1926년 4월 26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이 사망하자 빈소가 마련된 창덕궁 앞에는 호곡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고종은 망국의 상징이었고 일본인들에게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에 비통함이 더욱 컸다. 송학선은 조선총독부의 고관들이 창덕궁 서남문이자 빈소의 출입구인 금호문(金虎門)으로 드나드는 것을 보고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처단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송학선은 사이토 마코토 총독 암살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체포 및 처형되었으며,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서를 참고하면 된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2.1. 어린 시절과 성장 배경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어릴 적 가세가 기울어 떠돌이 생활을 하며 어렵게 자랐다. 성인이 된 후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농기구 가게에 다녔으며, 1926년 거사 무렵에는 병으로 가게를 그만두었다가 완치된 상태였다.
2.2. 사이토 마코토 총독 암살 시도
1926년 4월 26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이 사망하자 빈소가 마련된 창덕궁 앞에는 호곡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고종은 망국의 상징이었고 일본인들에게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에 비통함이 더욱 컸다. 송학선은 조선총독부의 고관들이 창덕궁 서남문이자 빈소의 출입구인 금호문(金虎門)으로 드나드는 것을 보고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처단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26일, 27일 양일간 이 곳에서 칼을 품고 사이토를 기다리다가 사흘째인 4월 28일 창덕궁에서 조문을 하고 나오는 일본인 세 명이 탄 무개차 안에 사이토가 탄 것으로 착각하고 이 차를 습격하여 경성부회 평의원 다카야마, 사토, 이케다 등을 죽였고, 이 중 사이토로 오인한 한 사람을 찔러 중상을 입혔다.
현장에서 달아나던 중 그를 추격하던 조선인 순사 오환필을 찌른 후 휘문고등보통학교 인근에서 일본 경찰과 격투 끝에 붙잡혔으며, 사형 선고를 받고 이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되었다. 사건 당시 미혼으로 자손은 없었다.
2.3. 체포 및 처형
1926년 4월 28일 송학선은 창덕궁에서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일본인 세 명이 탄 무개차를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탄 것으로 오인하여 습격했다. 이 습격으로 경성부회 평의원 다카야마, 사토, 이케다 등이 사망했고, 이들 중 한 명은 사이토로 오인되어 중상을 입었다. 현장에서 달아나던 송학선은 자신을 추격하던 조선인 순사 오환필을 찌르고 휘문고등보통학교 인근에서 일본 경찰과 격투 끝에 체포되었다.
송학선은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고, 이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되었다. 사건 당시 그는 미혼이었기 때문에 자손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