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경공주
1. 개요
숙경공주는 조선 효종과 인선왕후의 여섯째 딸로, 1648년에 태어났다. 1659년 원두표의 손자 원몽린과 혼인을 약속하고, 1661년 현종 재위 기간에 가례를 올렸다. 1671년 천연두로 사망했으며, 남편 원몽린과 합장되어 경기도 여주시에 묘소가 있다. 묘역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9호로 지정되었고, 묘소에는 묘비, 석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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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효종의 자녀 -
현종 (조선)
현종은 효종의 아들이자 조선의 제18대 왕으로, 재위 기간 중 예송 논쟁, 대동법 실시, 경신대기근, 안추원 사건 등을 겪었으며 34세에 사망하여 숭릉에 안장되었다. -
조선 효종의 자녀 -
숙휘공주
숙휘공주는 조선 효종과 인선왕후의 넷째 딸로, 정제현에게 하가하여 1남 1녀를 두었으며, 설매 사건, 도방군 동원 문제 등 논란과 사치스러운 생활로 비판을 받았고, 한글 편지를 모은 《숙휘신한첩》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
1648년 출생 -
페드루 2세 (포르투갈)
페드루 2세는 정신 질환을 앓는 형을 대신하여 섭정이 된 후 왕위를 계승하여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고 브라질의 금광 개발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했으며,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참전했다. -
1648년 출생 -
골웨이 백작 앙리 드 마스
골웨이 백작 앙리 드 마스는 프랑스 출신으로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활동한 군인이자 외교관으로, 찰스 2세와의 협상, 윌리엄 3세 휘하 복무, 아일랜드 최고 사령관 역임 등의 활동을 했으며 오그림 전투 공훈으로 작위를 받았으나 알만사 전투 패배는 오점으로 남았다. -
1671년 사망 -
레 현종 (20대)
레 현종은 후 레 왕조의 20대 황제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권신의 영향력 아래 청나라와의 외교 관계 수립, 기독교 금지, 도량형 제정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
1671년 사망 -
앤 하이드
앤 하이드는 평민 출신으로 요크 공 제임스의 첫 번째 부인이 되어 메리 2세와 앤 여왕을 낳았고, 가톨릭으로 개종 후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2. 생애
2.1. 출생과 혼인
1648년(인조 26년) 1월 29일, 당시 왕세자였던 효종과 세자빈 장씨(인선왕후)의 여섯째 딸로 태어났다.
1659년(효종 10년) 3월, 우의정 원두표의 손자이자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 원만리의 아들 흥평위(興平尉) 원몽린과 혼인을 약속하였다. 같은해 5월 효종이 승하하자 효종의 상을 마치고, 1661년(현종 2년) 가례를 올렸다.
2.2. 공주 시절
1664년(현종 5년), 현종은 도방군(到防軍)을 숙경공주의 저택을 짓는데에 보내어 부역을 시켰는데 승지 이원정(李元禎)이 법에 어긋난다며 사역을 중지시킬것을 청하였으나 현종은 이를 묵살하였다. 이후에도 숙경공주의 저택 공사와 관련하여 간원이 중지할 것을 청하였다.
숙경공주의 저택 터를 여염집이 즐비한 곳에다 잡아 철거된 인가가 30여 호(戶)에 이른다는 이유로 연달아 아뢰고 힘써 쟁론하였으나, 상(현종)이 따르지 않았다.
2.3. 사망
1671년(현종 12년) 1월 9일, 숙경공주는 입궁하여 왕과 대비를 알현하려다가 갑작스럽게 천연두를 앓아 집으로 되돌아갔다. 공주의 생명이 위독해지자 현종은 공주의 시아버지인 원만리를 불러 병구완을 하게 하였으나 곧 죽었다.
숙경공주의 상에 현종이 백관과 함께 숭문당에서 곡을 하였다. 당시 현종의 건강이 좋지 않아 약방에서 만류하였지만 현종은 이를 듣지 않았다.
숙경공주의 남편 원몽린도 공주가 죽고 3년 뒤 사망했다. 원몽린의 묘비에는 공주가 《소학》과 《내훈》에 통달하였다고 적고 있다. 자식은 외동딸밖에 없어 시조카인 원명구(元命龜)를 양자로 들여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3. 사후
묘소는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상구리, 죽서 원몽린 묘역에 있다. 2004년 5월 6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29호로 지정되었다. 봉분은 단분으로 남편 원몽린과 합장묘이다.
석물로는 묘비 1기, 상석, 향로석 각 1기, 망주석, 문인석 각 1쌍 및 계체석 등이 있다. 봉분은 원형의 호석을 두르고 있고 봉분 주위에는 곡장(曲墻)이 설치되어 있다. 묘역에 이르는 입구에는 신도비가 1기 세워져 있다. 묘역 좌우에는 망주석과 그 앞쪽으로 문인석이 각각 1쌍씩 배치되어 있다. 망주석은 폭이 159cm의 규모로 좌우측 모두 올라가는 형태의 쥐모양이 양각되어 있다.
문인석의 형태는 양관조복에 홀을 들고 있는 형상이다. 조복 앞면에는 홀을 든 손등으로부터 포(袍)의 주름이 묘사되어 있고 뒷면에는 연화문양이 있는 대(帶)와 여의운문이 양각되어 있는 후수(後綬)를 묘사하였다.
묘소를 둘러싸고 있는 곡장은 좌우 측면만 높게 조성되어 묘역을 보호하고 후면은 3단의 석축으로만 쌓고 뒤쪽에 조성되어 있는 묘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돌계단을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