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량흘
1. 개요
숙량흘은 춘추 시대 노나라의 무사로, 공자의 아버지이다. 그는 복양 전투에서 성문을 지켜 아군을 탈출시키고, 제나라와의 전투에서 장무중을 구출하는 등 용맹함을 보였다. 숙량흘은 72세에 18세의 안징재와 결혼하여 공자를 낳았으며, 공자가 성인으로 추숭되면서 제국공, 계성왕 등으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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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48년 사망 -
제 장공 (25대)
제 장공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군주로, 재위 기간 동안 잦은 전쟁과 사치스러운 생활로 폭정을 자행하다 최저에게 살해당했다. -
공자 -
문묘
문묘는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을 기리는 사당으로 동아시아에 존재하며, 한반도에서는 유교 교육기관과 사림의 근거지로서 기능했고 현재도 의례가 이어진다. -
공자 -
공자 평화상
공자 평화상은 중국에서 노벨 평화상에 대한 대항으로 만들어졌으나, 여러 논란으로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수상 거부 및 불참 사태가 발생하는 등 촌극이 빚어지다 주최 측 해산 및 계승을 거쳐 2018년 최종적으로 수여가 종료되었다. -
춘추 시대의 군인 -
손무
손무는 춘추 시대 오나라의 군사 전략가로, 《손자병법》을 저술하여 전쟁과 전략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생애와 저작 시기에 대한 논쟁이 존재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
춘추 시대의 군인 -
자로
자로는 기원전 542년경 노나라에서 태어난 공자의 제자로, 공자를 호위하며 14년간 그의 가르침을 받았으나 위나라에서 괴외의 난에 휘말려 전사하고 젓갈로 담가지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강직하고 용감한 인물이다.
2. 사적
숙량흘은 첫 부인 시(施)씨와의 사이에서 딸 아홉을 얻었으나, 첩에게서 얻은 아들 공피는 다리에 기형이 있어 후계자로 삼을 수 없었다. 이에 숙량흘은 안씨 가문의 안양(顏襄)에게 청하여 그의 막내딸 안징재와 혼인하였다. 숙량흘이 안징재와 결혼할 당시 그의 나이는 72세였고, 안징재는 18세였다.
공구(공자)는 기원전 551년 9월 28일에 노나라 추읍(鄒邑, 현재의 취푸 인근)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1. 복양 전투 (기원전 563년)
기원전 563년, 진나라의 주도로 제후연합군이 복양(偪陽)을 공격하는 전쟁에 참전했다. 이때 복양국은 성문을 열어 제후군을 성 안으로 유인한 후 현문(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형태의 문)을 내려 안에 가두려고 했는데, 숙량흘은 이 성문을 떠받쳐 더 닫히지 못하게 해, 성 안으로 들어간 군대가 탈출하게 했다.
같은 해 음력 4월 69일, 숙량흘은 비양(偪阳)의 문을 열어두어 아군 병사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노(魯)나라 삼환 중 하나인 맹손 씨족의 지도자였던 맹헌자(孟獻子)는 그를 칭찬하며 "이것이 바로 '시경'에서 말하는 '호랑이의 힘'을 가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2.2. 방읍 포위전 (기원전 556년)
기원전 556년,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여 방읍에서 장흘(臧紇)을 포위하자, 숙량흘은 장주(臧疇) · 장가(臧賈)와 함께 포위를 뚫고 장흘을 노나라 구원군이 있는 여송 땅으로 보냈다. 그리고 다시 방읍으로 돌아갔다. 제나라 군대는 오래 있지 못하고 물러났다.
같은 해 가을, 제나라 영공의 군대가 노나라 국경을 공격하여 고후(高厚)가 장무중의 방어선을 포위하고 그를 사로잡았다. 숙량흘, 장추(臧 Chou), 장가(臧 Jia)는 300명의 병사를 이끌고 밤에 제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장무중을 안전하게 호송하는 것을 도왔다. 그들은 이후 제나라 군대와 다시 전투를 벌였다. 제나라는 곧 퇴각했다.
3. 가족 관계
| | 이름 | |
|---|---|
| 아버지 | 안상(顏襄) |
| 첫 번째 부인 | 시(施) 부인 |
| 첩 | (이름 미상) |
| 두 번째 부인 | 안징재(顏徵在) |
| 장녀 | (이름 미상) |
| 차녀 | (이름 미상) |
| 삼녀 | (이름 미상) |
| 사녀 | (이름 미상) |
| 오녀 | (이름 미상) |
| 육녀 | (이름 미상) |
| 칠녀 | (이름 미상) |
| 팔녀 | (이름 미상) |
| 구녀 | (이름 미상) |
| 아들(서자) | 공피(孔皮) |
| 아들(적자) | 공구 (공자) |
숙량흘은 첫 부인에게서 딸 아홉을, 첩에게서 발에 기형이 있는 아들 공피를 얻었다. 이후 안징재와 혼인하여 공자(공구)를 얻었다.
3.1. 부인
숙량흘은 첫 부인 시(施) 부인에게서 딸 아홉을 낳았다. 첩에게서는 공피(孔皮)라는 아들을 얻었으나, 공피는 발에 기형이 있어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숙량흘은 안씨 가문의 안상(顏襄)에게 청혼하여 그의 셋째 딸 안징재(顏徵在)와 결혼했다. 숙량흘이 안징재와 결혼했을 때 그는 72세였고 안징재는 18세였다.
4. 추숭
공자의 아버지이므로, 공자가 역대 왕조에서 성인으로 추숭되면서 숙량흘 역시 추숭을 받았다.
* 북송 진종 대중상부 원년(1008년) 11월, 제국공(齊國公)으로 추숭되었다.
* 1330년 원 문종이 계성왕(啓聖王)으로 추존하였다.
* 1530년 가정제가 계성공(啓聖公)으로 강봉하였다.
* 1723년 청나라의 옹정제에 의해 계성왕(啓聖王)으로 복봉(復封)되었다.
5. 사망
숙량흘은 공구가 세 살 때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공비(孔 Pi)와 공구는 그의 미망인에 의해 가난 속에서 길러졌다. 미망인이 사망한 후, 공구는 방산(Fangshan) 근처에서 숙량흘의 무덤을 찾아내어 그와 함께 미망인을 매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