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목부인
1. 개요
숙목부인은 고려 태조의 후궁으로, 아들 원녕태자를 낳았다. 숙목부인의 출신지는 진주이며, 성씨는 전해지지 않는다. 아버지 임명필이 순군부령에 임명된 인물과 동일인이라는 견해가 있으며, 이 경우 진천 임씨가 된다. 숙목부인의 생애와 능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원녕태자는 976년에 왕선에게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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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 출신 -
이용길
이용길은 1970년대 후반부터 사회운동과 정치 활동을 활발히 펼친 한국의 정치인으로, 노동 운동과 시민 운동에 참여하고 진보 정당에서 주요 직책을 역임했으며 2017년 노동당을 탈당했다. -
진천군 출신 -
김능환
김능환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판사,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대법관 시절 판결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재임 시절 총선과 대선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
몰년 미상 -
미와 와사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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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미상 -
이태준
이태준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로, 섬세한 문체와 서정적인 분위기로 현실을 그린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여 주목받았으며, 특히 1930년대 〈달밤〉, 〈까마귀〉, 〈복덕방〉 등의 작품으로 한국 단편소설의 미학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월북 후 숙청되어 정확한 사망 시기와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
고려 태조 -
궁예
궁예는 신라 왕족의 서자로 추정되며 후삼국시대에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태봉으로 국호를 변경한 인물이며, 말년에 폭정을 일삼다 신하들에게 축출되어 사망했다. -
고려 태조 -
태봉
태봉은 궁예가 건국한 후고구려의 국호로, 고려 건국에 영향을 미치고 불교 문화 발전에 기여했으나 궁예의 폭정으로 멸망했으며, 도성터가 비무장지대에 있어 연구가 어렵다.
2. 생애
진주(지금의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이며, 성씨는 전해지지 않는다. 대광을 지낸 명필의 딸인데, 명필 역시 성씨가 전해지지 않는다. 한편 태조 즉위 직후 있었던 인사이동에서 임명필(林明弼)이 순군부령에 임명되는데, 일부에서는 고려 초기 진주 출신은 대부분 임씨였던 점, 또 고려 초기에는 같은 이름의 한자 표기가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임명필을 숙목부인의 아버지 명필과 동일인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게 될 경우 숙목부인은 진천 임씨 출신이 된다.
충북대학교 교수 신호철은 1997년 발표한 연구 논문 〈고려의 건국과 진주 임씨의 역할〉에서 숙목부인을 진주 임씨라고 주장하였으며, 그 혼인 시기에 대해서는 왕건이 궁예의 휘하에 있으면서 진주 지역을 정벌하러 갔을 때, 즉 고려 건국 전으로 추측하였다.
《고려사》 등에 그녀의 자세한 생애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며, 생몰년이나 능지에 대한 기록도 없다. 호는 숙목부인(肅穆夫人)이다.
태조와의 사이에서 아들 원녕태자를 낳았다. 원녕태자는 진주낭군(鎭州郞君)으로도 불리며, 976년(경종 원년)에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왕선에게 귀족 억제 정책에 대한 복수 정책의 일환으로 살해당했다. 원녕태자는 아들 효당태자(孝當太子)를 낳았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
| 아버지 | 임명필(林名必) |
| 어머니 | 미상 |
| 남편 | 태조 (877~943, 재위: 918~943) |
| 아들 | 원녕태자 (?~976) |
4. 출신과 가문에 대한 논란
숙목부인의 출신과 가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숙목부인은 진주(지금의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이며, 성씨는 전해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대광을 지낸 명필인데, 명필 역시 성씨가 전하지 않는다.
한편 태조 즉위 직후 있었던 인사이동에서 임명필(林明弼)이 순군부령에 임명되었는데, 일부에서는 고려 초기 진주 출신은 대부분 임씨였던 점, 고려 초기에는 같은 이름의 한자 표기가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임명필을 숙목부인의 아버지 명필과 동일인으로 보기도 한다. 이 경우 숙목부인은 진천 임씨 출신이 된다.
충북대학교 신호철 교수는 1997년 발표한 연구 논문 〈고려의 건국과 진주 임씨의 역할〉에서 숙목부인을 진주 임씨라고 주장하였으며, 왕건이 궁예의 휘하에 있으면서 진주 지역을 정벌하러 갔을 때 혼인한 것으로 보아, 혼인 시기는 고려 건국 이전으로 추측하였다.
4.1. 숙목부인의 성씨
숙목부인은 진주(지금의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이며, 성씨는 전해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대광을 지낸 명필인데, 명필 역시 성씨가 전하지 않는다. 한편 태조 즉위 직후 있었던 인사이동에서 임명필(林明弼)이 순군부령에 임명되었는데, 일부에서는 고려 초기 진주 출신은 대부분 임씨였던 점과 고려 초기에 같은 이름의 한자 표기가 여러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임명필을 숙목부인의 아버지 명필과 동일인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게 될 경우 숙목부인은 진천 임씨 출신이 된다.
충북대학교 신호철 교수는 1997년 발표한 연구 논문 〈고려의 건국과 진주 임씨의 역할〉에서 숙목부인을 진주 임씨라고 주장하였으며, 왕건이 궁예의 휘하에 있으면서 진주 지역을 정벌하러 갔을 때 혼인한 것으로 보아, 혼인 시기는 고려 건국 이전으로 추측하였다.
4.2. 임명필 동일인설
태조 즉위 직후 있었던 인사이동에서 임명필(林明弼)이 순군부령에 임명되었는데, 일부에서는 고려 초기 진천 출신은 대부분 임씨였던 점과 고려 초기에 같은 이름의 한자 표기가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임명필을 숙목부인의 아버지 명필과 동일인으로 보기도 한다. 이 경우 숙목부인은 진천 임씨 출신이 된다.
4.2.1. 신호철 교수의 주장
충북대학교 교수(敎授) 신호철은 1997년 발표한 연구 논문 〈고려의 건국과 진주 임씨의 역할〉에서 숙목부인을 진주 임씨라고 주장하였으며, 숙목부인의 혼인 시기에 대해서는 왕건이 궁예의 휘하에 있으면서 진주 지역을 정벌하러 갔을 때, 즉 고려 건국 전으로 추측하였다.
5. 기타
숙목부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매우 부족하다. 《고려사》에는 숙목부인의 자세한 생애, 생몰년, 능지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숙목부인'이라는 호만 남아있다.
5.1. 역사적 기록의 부족
《고려사》에는 숙목부인의 자세한 생애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며, 생몰년이나 능지에 대한 기록도 없다. 호는 숙목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