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노에 미치루
1. 개요
스미노에 미치루는 일본의 배우이자 가수로, 다카라즈카 가극단에서 활동하다가 가수로 전향했다. 1939년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입단하여 1946년 퇴단했으며, 이후 하나다 미도리, 로시타 하나다, 하네다 타카코 등의 예명으로 활동하며 가수로 활동했다. NHK 오사카 방송국과 TBS 텔레비전의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1988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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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라즈카 가극단 29기생 -
아와시마 치카게
아와시마 치카게는 다카라즈카 가극단 주연 여성 역할 출신으로 쇼치쿠와 도호의 간판 여배우로 활약하며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가진 일본의 배우이다. -
다카라즈카 가극단 29기생 -
미나미 유코
미나미 유코는 1939년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1941년 다카라즈카 가극단 29기생으로 데뷔한 일본의 배우이자 무용가이며, 1971년 퇴단 후 무용가로 활동하다 2013년 사망했고, 2014년 다카라즈카 가극단 전당에 헌액되었다. -
효고현 출신 -
고이케 유리코
고이케 유리코는 카이로 대학교 졸업 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하여 환경대신, 방위대신 등을 역임하고 현재 도쿄도지사로 재임 중인 일본의 정치인으로, 도민제일회를 창당하고 희망의 당을 이끌기도 했으며 경제 자유주의와 우익 포퓰리즘 성향으로 논란을 겪기도 했다. -
효고현 출신 -
후지토 치카
일본 효고현 출신인 후지토 치카는 《디지몬 어드벤처 02》를 보고 성우의 꿈을 키워 《케이온!》의 마나베 노도카 역으로 데뷔, 에이벡스 플래닝 & 개발, 슈퍼 샤크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활동 후 현재 프리랜서 성우로 활동 중이며 2018년 결혼하여 2021년에 출산하였다. -
1926년 출생 -
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
1926년 출생 -
미셸 푸코
미셸 푸코는 프랑스의 철학자, 역사가, 사회학자로서 권력, 지식, 담론 등을 탐구하며 서양 사상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다카라즈카 시절
1939년에 29기생으로, 다카라즈카 음악무용학교(현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1942년에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입단하여, 1946년에 퇴단하였다.
동기생으로는 아와시마 치카게, 쿠지 아사미, 미나미 유코, 고사토 아케미(입단 시에는 고사토 치아키) 등이 있다. 당시 프로그램상에서는 1945년(쇼와 21)까지 "스미에", 1946년은 "스미노에"로 표기되어 있다.
1942년 5월 대극장 유키구미 공연으로, 행군 악보 '군함기 가는 곳', 무용 '돌아오는 다리', 가극 '피노키오'로 첫 무대를 밟았다. 그 후, 종전까지 유키구미에 소속, 종전 후에는 편성표에서는 츠키구미의 소속이 되어 있지만, 프로그램상으로는 같은 조에서 공연한 기록은 없고, 하나구미 공연의 배역표에서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1946년 11월 하나구미 공연, 동화 가극 '빨간 두건과 늑대', 그랜드 쇼 '센티멘탈 쟈니'를 마지막으로 퇴단한다.
2.1. 입단 및 초기 활동
1939년에 29기생으로, 다카라즈카 음악무용학교 (현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에 입학하였다. 1942년에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입단하여, 주로 유키구미에서 활동했다. 아와시마 치카게, 구지 아사미 등과 동기생이다. 재단 중에 우즈 히데오 작품 「피노치오(ピノチオ)」에 출연했다. 1946년에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퇴단하였다.
2.2. 주요 공연 기록
1942년 5월, 다카라즈카 대극장 유키구미 공연에서 첫 무대를 가졌다. "피노키오", "군함기 가는 곳", "돌아오는 다리"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전쟁 중에는 농촌, 공장, 병원 등을 위문하는 이동 연극에도 참여했다.
2.3. 전후 활동과 퇴단
종전 후에는 츠키구미 소속이었으나, 하나구미 공연에 주로 참여했다.1946년 11월, 하나구미 공연 "빨간 두건과 늑대"를 마지막으로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퇴단했다.진주군 위문 공연에 참가하는 등, 가극단 재건에 힘썼다.
3. 가수 시절
1946년부터 "하나다 미도리(花田みどり)", "로시타 하나다(ロシータ・花田)", "하네다 타카코(羽田隼子)" 등의 예명으로 가수로 활동했다.
3.1. 방송 출연
1946년부터 "하나다 미도리(花田みどり)", "로시타 하나다(ロシータ・花田)", "하네다 타카코(羽田隼子)"의 예명으로 가수로 활동했던 스미노에 미치루는 NHK 오사카 방송의 "식후의 음악"에 출연하였다. 1960년에는 TBS테레비의 음악 프로그램 "음악 수첩 계절의 노래"에도 출연했다.
3.2. 음반
스미노에 미치루는 1961년 12월 5일에 발매된 "매혹적인 샹송집 III"에서 물랑 루즈와 "가랑비 내리는 지름길"을 불렀다. 이 앨범은 엔젤 앙상블이 연주하고 이토 에이지가 지휘를 맡았으며, 하네다 타카코 외 3명이 노래했다. 같은 날 발매된 "꿈의 남십자성"에서는 악단 남십자성의 연주에 맞춰 로시타 하나다라는 이름으로 "라무르 오리엔탈", "엔젤 세레나데", "나는 별의 카르멘", "보석", "분가원 솔로", "붕가 빈탄", "에스트렐리타", "벽공"을 불렀다.
4. 평가 및 영향
스미노에 미치루는 1939년에 29기생으로 다카라즈카 음악무용학교(현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1942년에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입단했다. 1942년부터 1946년까지 약 5년간 재적했으며, 경력이 짧아 맡은 역할의 대부분이 단역이었지만, 입단 초기에는 유키구미 댄스과였으나, 2년 후에는 유키구미 성악과로 이동했다. 이는 훗날 가수로 전향한 그녀의 자질을 가극단도 일찍이 발견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공연이 된 "센티멘탈 쟈니"에서는 쓰시마 이토미, 히노시타 테루코와 함께 트리오를 맡았다. "트리오" 역할은 1940년대 다카라즈카 가극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배역으로, 신인 여가수의 등용문과 같은 역할이었다.
스미노에는 태평양 전쟁의 큰 영향을 받아,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공연을 지속하기 위해 각지의 농촌이나 공장, 병원 등을 위문하는 이동 연극에 참여했다. 전후에는 진주군에게 접수된 다카라즈카 대극장의 반환에도 힘썼으며, 1946년 2월 2일 후쿠오카 다이하쿠 극장에서의 진주군 위문 공연에도 참가했다. 당시 프로그램에는 스미노에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기념 사인이 적혀 있어 단역이었기 때문에 기재에서 누락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진주군을 상대로 한 파티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접대하는 사진도 남아 있다.
종전 후, 1946년 3월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학생은 204명이었고, 그중 68명이 전후에 첫 무대를 밟은 신인이었다. 태평양 전쟁 개전 직후인 1941년 말에는 313명이 있었고, 전쟁을 거쳐 가극단에 남아 짧은 시간이라도 후세를 위해 가극단의 재건에 힘쓴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