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케 유리코
1. 개요
고이케 유리코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1952년 효고현 아시야시 출생이다. 간세이 가쿠인 대학 사회학부를 중퇴 후 이집트에서 유학하며 카이로 대학교 문학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야세르 아라파트, 무아마르 카다피 등과의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1992년 참의원 의원, 1993년 중의원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여러 정당을 거치며 환경대신, 방위대신,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등을 역임했고,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당선되어 여성 최초의 도쿄도지사가 되었다. 도쿄도지사 재임 중에는 환경 정책, 여성 정책, 도쿄도정 개혁 등을 추진했으며, 관동 대학살 관련 발언, 학력 위조 논란, 정치 자금 문제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 이름 | 고이케 유리코 |
|---|---|
| 원어 이름 | 小池 百合子 |
| 로마자 표기 | Koike Yuriko |
| 출생일 | 1952년 7월 15일 |
| 출생지 | 일본 효고현 아시야시 |
| 학력 | 간세이 가쿠인 대학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교 카이로 대학교 문학부 사회학과 졸업 |
| 직업 | 정치인, 뉴스 캐스터, 아랍어 통역 |
| 소속 정당 | 무소속 (2018년–현재) |
| 이전 소속 정당 | 일본 신당 (1992년–1994년) 신진당 (1994년–1997년) 자유당 (1997년–2000년) 보수신당 (2000년–2003년) 자유민주당 (2003년–2017년) 도민퍼스트회 (2017년) 희망의 당 (2017년–2018년) |
| 공식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 현재 직책 | 도쿄도지사 |
|---|---|
| 임기 시작 | 2016년 8월 1일 |
| 부지사 | 다라오 미쓰치카 가지하라 히로시 다케치 케이 미야사카 마나부 |
| 이전 직책 | 요이치 마스조에 |
| 국방대신 | 일본 방위대신 |
| 총리 | 아베 신조 |
| 국방대신 임기 시작 | 2007년 7월 4일 |
| 국방대신 임기 종료 | 2007년 8월 27일 |
| 이전 국방대신 | 규마 후미오 |
| 다음 국방대신 | 고무라 마사히코 |
| 오키나와 및 북방 영토 담당 대신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담당) |
| 총리 | 고이즈미 준이치로 |
| 오키나와 및 북방 영토 담당 대신 임기 시작 | 2004년 9월 27일 |
| 오키나와 및 북방 영토 담당 대신 임기 종료 | 2006년 9월 26일 |
| 이전 오키나와 및 북방 영토 담당 대신 | 모테기 도시미쓰 |
| 다음 오키나와 및 북방 영토 담당 대신 | 다카이치 사나에 |
| 환경대신 | 일본 환경대신 |
| 환경대신 임기 시작 | 2003년 9월 22일 |
| 환경대신 임기 종료 | 2006년 9월 26일 |
| 이전 환경대신 | 스즈키 슌이치 (정치인) |
| 다음 환경대신 | 와카바야시 마사토시 |
| 중의원 의원 | 중의원 |
| 중의원 의원 임기 시작 | 1993년 7월 19일 |
| 중의원 의원 임기 종료 | 2016년 7월 14일 |
| 선거구 | 효고 2구 (1947–1993) (1993년–1996년) 효고 6구 (1996년–2003년) 긴키 비례대표 블록 (2003년–2005년) 도쿄 10구 (2005년–2009년; 2012년–2016년) 도쿄 비례대표 블록 (2009년–2012년) |
| 이전 중의원 의원 | 다선거구 |
| 다음 중의원 의원 | 와카사 마사루 |
| 참의원 의원 | 참의원 |
| 참의원 의원 임기 시작 | 1992년 7월 26일 |
| 참의원 의원 임기 종료 | 1993년 7월 4일 |
| 선거구 | 일본 참의원 비례대표구 |
| 도쿄도지사 당선 횟수 | 3회 |
| 아버지 | 고이케 유지로 |
|---|---|
| 학위 | 사회학 학사 (카이로 대학교, 1976년) |
| 서명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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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아메리칸 대학교 동문 -
시그리트 카흐
네덜란드의 외교관이자 정치인인 시그리트 카흐는 유엔 및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다 네덜란드 국내 정치에 참여하여 장관직을 역임했으며, 현재 가자를 위한 유엔 고위 인도주의 및 재건 조정관으로 국제 외교 무대에 복귀한 다국어 능통자이다. -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교 동문 -
요르단 왕비 라니아
라니아 알 압둘라 여왕은 1970년 쿠웨이트에서 태어나 요르단 압둘라 2세 국왕과 결혼하여 1999년 여왕이 되었으며, 교육, 아동 권리, 문화 간 대화 증진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며,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아랍 및 무슬림 세계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
호소카와 모리히로 -
일본신당
일본신당은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1992년 창당한 일본 정당으로, 정치 개혁과 55년 체제 타파를 목표로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호소카와 내각 구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나, 정책 혼선과 내부 갈등으로 1994년 해산되었음에도 일본 정치에 큰 변화를 가져온 정당으로 평가받는다. -
호소카와 모리히로 -
호소카와 내각
호소카와 내각은 1993년 자민당 과반수 붕괴 후 신생당 중심의 비자민당 연립 정부로 출범하여 정치 개혁 4법을 통과시켰으나, 이념 갈등, 스캔들, 정책 실패로 1년 안에 총사퇴하며 다당제 연립 정부 운영의 어려움을 보여주었다. -
도쿄도지사 -
미노베 료키치
일본의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인 미노베 료키치는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를 바탕으로 도쿄도지사를 3선 역임하며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했으나, 재정 적자와 친북 논란에 휩싸인 인물이다. -
도쿄도지사 -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 대학 법학부 조교수 출신인 마스조에 요이치는 자유민주당 소속 참의원 의원, 후생노동대신, 신당개혁 창당, 도쿄도지사를 역임했으나 정치자금 유용 논란으로 사임한 정치인, 정치학자, 저술가이다.
2. 생애
고이케 유리코는 참의원 의원, 제5·6·7대 환경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담당), 내각총리대신 보좌관(국가안전보장문제 담당), 제2대 방위대신을 역임했다.
효고현 아시야시 출신으로, 1971년 9월에 간세이 가쿠인 대학 사회학부를 중퇴했다. 의류 관련 무역상을 하던 부친 고이케 유지로가 이시하라 신타로의 신당 결성 움직임에 발맞춰 중의원 선거에서 효고 2구에 입후보했지만 낙선하자, 일가가 모두 이집트로 건너갔다.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아랍어를 배우면서 카이로 대학교에 진학, 1976년 10월에 문학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나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등과의 단독 인터뷰를 성공시켜 이름을 알렸다.
1992년 7월 일본신당 비례구에서 참의원 의원에 당선되었고, 1993년 7월 총선거에서 효고 2구에 출마해 중의원 의원이 되었다. 이후 여러 정당의 분열·통합 과정에서 신진당으로 이동해 “신진당의 결성은 매튜 C. 페리, 더글러스 맥아더에 이은 제3의 흑선(黑船, 구로후네)이다”라고 평했지만, 자유당, 보수당을 거쳐 2002년 12월 27일 자유민주당으로 이동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오자와 이치로, 니카이 도시히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등 유력 정치인이 있는 정당을 거쳐왔기 때문에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환경대신 겸 오키나와 및 북방영토 담당 국무대신을 역임했다. 고야마 사츠키와 후지노 마키코와 함께 고이케는 2005년 중의원 선거에서 고이즈미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민당 강경파 후보를 상대로 도쿄에서 출마하여 고이즈미의 "암살자" 중 한 명으로 알려졌다.
아베 신조 내각에서 최초의 여성 방위대신으로 임명되었지만, 2007년 8월 이지스 기밀 정보 유출 사건을 이유로 사임했다. 고이케는 이후 관방장관 시오자키 야스히사와의 갈등이 사임의 진짜 이유였다고 밝혔다.
2008년 9월 8일,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여 일본 최초로 총리 자리를 노리는 여성이 되었으나, 아소 다로에게 패배했다.
카이로 대학교 졸업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학력 위조 혐의를 받았다. 2020년 6월, 카이로 대학교는 성명을 통해 "고이케 유리코가 1976년 10월 카이로 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했음을 증명한다"고 밝히며 이러한 주장을 부인했다.
| 연표 | 경력 | |
|---|---|---|
| 1971년 (쇼와 46년) | 3월 | 고난 여자 고등학교 졸업 |
| 4월 | 간사이가쿠인 대학 사회학부 입학 (후에 중퇴) | |
| 1976년 (쇼와 51년) | 10월 | 카이로 대학교 문학부 사회학과 졸업 |
| 1979년 (쇼와 54년) | 4월 | 닛폰TV 『룩룩 곤니치와』의 한 코너로 이전한 『타케무라 켄이치의 세상 이야기』 어시스턴트 캐스터 취임 ( - 1985년 3월) |
| 1985년 (쇼와 60년) | 도쿄TV 『머니 정보』 캐스터 취임 ( - 1988년 3월) | |
| 1988년 (쇼와 63년) | 도쿄TV 『월드 비즈니스 새털라이트』 초대 메인 캐스터 취임 ( - 1992년 6월) | |
| 1992년 (헤이세이 4년) | 7월 | 참의원에 첫 당선 (일본신당 추천·비례구) |
| 1993년 (헤이세이 5년) | 중의원에 첫 당선 (일본신당 추천·구 효고 2구) | |
| 8월 12일 | 총무정무차관 취임 ( - 1994년 4월 28일) | |
| 1994년 (헤이세이 6년) | 12월 10일 | 신당일본 해산, 신진당 결성에 참가 |
| 1996년 (헤이세이 8년) | 10월 | 중의원 재선 (신진당 추천·효고 6구) |
| 1997년 (헤이세이 9년) | 12월 | 신진당 해산 |
| 1998년 (헤이세이 10년) | 1월 | 자유당 결성에 참가 |
| 1999년 (헤이세이 11년) | 10월 5일 | 경제기획총괄정무차관 취임 |
| 2000년 (헤이세이 12년) | 4월 | 자유당 탈당, 보수당 결당에 참가 |
| 4월 5일 | 경제기획총괄정무차관 재임 ( - 같은 해 7월 4일) | |
| 2000년 (헤이세이 12년) | 6월 | 중의원 3선 (보수당 추천·효고 6구) |
| 2002년 (헤이세이 14년) | 12월 | 보수당 해산, 자유민주당 입당 |
| 2003년 (헤이세이 15년) | 9월 22일 | 환경대신 취임 |
| 11월 | 중의원 4선 (자유민주당 추천·비례근기블록) | |
| 11월 19일 | 환경대신 재임 | |
| 2004년 (헤이세이 16년) | 9월 27일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겸임 |
| 2005년 (헤이세이 17년) | 9월 | 중의원 5선 (자유민주당 추천·도쿄 10구) |
| 9월 21일 | 환경대신·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재임 | |
| 2006년 (헤이세이 18년) | 9월 26일 |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국가안전보장문제 담당) 취임 |
| 2007년 (헤이세이 19년) | 7월 4일 | 방위대신 취임 ( - 같은 해 8월 28일) |
| 2008년 (헤이세이 20년) | 9월 |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 아소 다로, 요시노 케이에 이어 득표수 3위로 낙선 |
| 2009년 (헤이세이 21년) | 8월 | 중의원 6선 (자유민주당 추천·비례도쿄블록) |
| 10월 | 자유민주당 홍보본부장 취임 | |
| 2010년 (헤이세이 22년) | 9월 | 자유민주당 총무회장 취임 ( - 2011년 9월) |
| 2012년 (헤이세이 24년) | 12월 | 중의원 7선 (자유민주당 추천·도쿄 10구) 자유민주당 홍보본부장 취임 |
| 2013년 (헤이세이 25년) | 4월 | 르노 사외이사 취임 |
| 6월 | 일본역도협회 신 회장으로 선임 (여성 최초) ( - 2016년 9월) | |
| 2014년 (헤이세이 26년) | 12월 | 중의원 8선 (자유민주당 추천·도쿄 10구) |
| 2016년 (헤이세이 28년) | 7월 14일 | 도쿄도지사 선거 공고, 출마와 함께 중의원 의원 자동 실직 |
| 7월 31일 | 도쿄도지사 선거가 실시되어 초선, 8월 2일, 도지사 취임 (여성 최초) | |
| 2017년 (헤이세이 29년) | 4월 | 지역 정당 『도민 퍼스트의 회』 특별 고문 취임 |
| 6월 | 도민 퍼스트의 회 대표 취임 | |
| 7월 | 도민 퍼스트의 회 대표 사임, 특별 고문 취임 | |
| 9월 | 국정 정당 『희망의 당』을 설립하고 대표 취임 | |
| 11월 | 희망의 당 대표 사임. 특별 고문 취임 | |
| 2020년 (레이와 2년) | 7월 |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 재선 |
2.1. 초기 생애 및 교육
고이케 유리코는 1952년 7월 15일 효고현 아시야시에서 태어났다. 코난 여자 중고등학교에서 중등 및 고등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는 석유 관련 무역상을 하던 고이케 유지로로, 이시하라 신타로를 지지하고 1969년 일본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고이케는 아시야시립 이와조노 초등학교와 코난 여자 중학교를 거쳐 1968년 코난 여자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재학 중에는 테니스부, 소프트볼부, ESS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69년 12월, 아버지 유지로는 제3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71년 3월, 코난 여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4월, 간사이가쿠인 대학 사회학부에 입학했다. 조도인 다이카쿠에 따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회사가 도산하여 가족은 도쿄도 롯폰기로 이사했다고 한다. 1971년 9월, 고이케는 간세이 가쿠인 대학 사회학부를 중퇴하고 이집트로 건너가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아랍어를 공부했다. 1976년 10월, 카이로 대학교 문학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2.2. 언론인 경력
고이케 유리코는 카이로 대학교 문학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등과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켜 이름을 알렸다.
귀국 후에는 아랍어 통역으로 활동했다. 아버지 유지로의 친구이자 민족주의자인 나카타니 무네요가 회장을 맡은 일본 아랍 협회에서 통역 겸 아랍어 강사를 맡았으며, 1989년에는 이 협회의 사무국장이 되었다.
1979년 일본 텔레비전 토크 프로그램 《타케무라 켄이치의 세상 이야기》 보조 캐스터로 발탁되었다. 프리랜서 출신 여성 캐스터로서는 선구자적인 존재였으며, 1985년까지 이 프로그램의 보조 캐스터를 맡았다.
1984년 누스렛 산자크리의 항의로 '터키탕'이라는 명칭이 '소프랜드'로 바뀔 때, 고이케 유리코는 이 운동을 지원했다. 후생성에 찾아가 당시 장관이었던 와타나베 코우조에게 직접 '터키탕' 명칭 사용 중단을 요청했고, 와타나베의 지시에 따라 해당 명칭은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1988년 텔레비전 도쿄 《월드 비즈니스 새털라이트》 초대 메인 캐스터로 취임했다. 1990년 일본 여성 방송 관계자 협의회상을 수상했다.
2.3. 정치 경력
고이케 유리코는 참의원 의원, 환경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담당), 내각총리대신 보좌관(국가안전보장문제 담당), 방위대신을 역임했다.
이집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1992년 일본신당 소속으로 참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1993년 효고현 제2구에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1996년에는 신진당 소속으로 효고현 제6구에서 중의원 의원에 재선되었으며, 2000년 선거에서는 보수신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에는 자유민주당에 입당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오자와 이치로, 니카이 도시히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등 유력 정치인이 있는 정당을 거쳐왔기 때문에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는 환경대신 겸 오키나와 및 북방영토 담당 국무대신을 역임했다. 2005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고야마 사츠키, 후지노 마키코와 함께 고이즈미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민당 강경파 후보를 상대로 도쿄에서 출마하여 고이즈미의 "암살자" 중 한 명으로 알려졌다.
아베 신조 내각에서는 최초의 여성 방위대신으로 임명되었으나, 2007년 8월 이지스 기밀 정보 유출 사건을 이유로 사임했다. 고이케는 이후 관방장관 시오자키 야스히사와의 갈등이 사임의 진짜 이유였다고 밝혔다.
2008년 9월,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여 일본 최초로 총리 자리를 노리는 여성이 되었으나, 아소 다로에게 패배했다.
2017년 6월 1일, 도민퍼스트회를 창당하면서 자유민주당을 탈당했고, 같은 해 9월 25일에는 희망의 당을 창당했다.
1992년부터 2017년까지 일본신당, 신진당, 자유당, 보수당, 자유민주당 등 5개 정당에 소속되었다.
고이케는 신진당, 자유당 시절 오자와 이치로를 지지했으나, 오자와의 정치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특히 오자와가 국기·국가법에 대한 입장을 번복한 것을 비판하며 결별을 선언했다.
3. 주요 정책 및 활동
고이케 유리코는 경제 자유주의를 지지하며, 행정 및 예산 개혁, 여성의 사회 진출 증진을 주장한다. 그녀는 "여성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도쿄에 좋고 수도에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개혁 기본 원칙은 "5C: 확인(Check), 도전(Challenge), 변화(Change), 창조(Creative), 소통(Communication)"이다. 정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일본 자산의 적극적인 민영화를 추진해왔으며, IT 개발, 자연 과학, 지속 가능한 인프라, 효율성 기반 행정 개혁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우익 포퓰리즘 진영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극우 보수"라고도 불린다.
재정정책은 “재정에 가계의 상식을 도입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며, 국채 발행을 통한 경기 부양책에 비판적이다. 재정 지출은 변동환율제 하에서는 효과가 없다는 입장이며, 일본국헌법에 재정 규율 조항을 추가하는 것을 제안한다. 2017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아베노믹스에 대항하는 “유리노믹스”를 내걸었다.
선택적 부부별성(夫婦別姓) 제도에 대해서는 당의(黨議) 구속을 풀 경우 찬성한다고 밝혔다. 여성 팔리아제 설립에도 찬성한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의 묘사를 규제하는 법안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불건전한 묘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이케 도지사 취임 이후, 도쿄도에서는 BL(ボーイズラブ) 작품의 불건전 지정이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 참정권에 대해서는 과거 보수당 소속 시절에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반대를 표명했다.
2017년에는 전국 정당인 "희망의 당"을 창당하여 이끌었으나, 2017년 10월 총선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2018년 4월 희망의 당 해산 후에는 어떤 후속 정당에도 합류하지 않았다.
2023년,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중 62위에 올랐다.
3.1. 환경 정책
고이케 유리코는 제1차 고이즈미 내각 제2차 개조내각에서 환경대신으로 임명되었다. 2005년 여름에는 가벼운 복장을 입자는 쿨 비즈 캠페인을 이끌었다. 환경대신 재임 중에는 온난화 대책을 명목으로 환경세 도입을 추진했으나 반대가 많아 보류되었다.
자민당 무전주화 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일본 전국의 전선 지중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무전주화의 추진에 관한 법률」의 성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3.2. 여성 정책
고이케는 야나가와 하쿠오 후생노동대신이 여성을 "아이를 낳는 기계"로 비유한 발언에 대해, 2007년 2월 4일 출연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야나가와 씨뿐만 아니라, 이슬람 국가보다도 일본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시각이 뒤떨어진 것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3.3. 도쿄도정
도쿄도지사 재보궐선거에서 여성 최초로 도쿄도지사에 당선되어 공식 취임하였다. 2016년 8월 21일 2016년 하계 올림픽 폐막식에서 리우데자네이루 시장 에두아르두 파이스(Eduardo Paes)로부터 토마스 바흐(Thomas Bach)를 통해 올림픽 깃발을 받았다.
2017년 5월 31일, 지방 선거를 앞두고 자유민주당을 탈당하고 도민제일회(도쿄 시민 우선)의 대표가 되었다. 공명당(Komeito)과 연합하여 2017년 7월 3일 지방 선거에서 과반수를 확보, 127석 의회에서 79석을 차지했다.
일본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정부 대응과 2020 도쿄 하계 올림픽의 2021년 연기 문제를 이끌었다.
2022년 8월 14일, 자카르타 주지사 아니에스 바스웨단(Anies Baswedan)과 만나 환경 친화적인 대중교통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 도쿄와 자카르타는 자매 도시 관계를 맺고 있다.
2022년 8월 29일, 도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모바일 인터넷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고이케는 도쿄 주민들이 직면한 사회경제적 문제인 7가지 제로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을 구축했다. 어린이집 입학 대기자 수 감소, 안락사 당하는 개와 고양이 수 감소 등은 성공했지만, 과도한 업무 문화 해결, 러시아워 열차 혼잡 완화, 지상 전주 제거 등은 아직 달성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다음 도쿄 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고이케와 그녀가 지지하는 후보인 오토타케 히로타다(Hirotada Ototake)가 중의원 도쿄 제15구 보궐선거에서 5위를 차지하면서, 고이케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논의가 증가했다.
2024년 8월 6일, 메이지 신궁 경기장(Meiji Jingu Stadium)에서 열린 센트럴 리그 야구 경기 시구식 중 왼쪽 무릎 골절로 원격 근무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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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주간 분슌의 특종으로 시작된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도지사의 사적 이용 문제로 도민들의 불만이 1만 9천 건을 넘었다. 고이케와 자민당의 와카사 마사루는 도지사 선거 출마를 협의했다.
2016년 6월 15일, 마스조에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고이케는 도쿄도지사 선거 출마에 대해 "노 코멘트"라고 답하며 부인하지 않았다. 6월 29일, 출마를 선언했다. 자민당 도쿄도 연에 추천을 요청했지만, "도쿄 개혁을 위해 각오를 가지고 임하고 싶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추천을 철회했다. 자민당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자민당은 고이케 지지자 징계를 통지했지만, 고이케는 마스조에와 도쿄도의회 자민당 의원들의 체질을 비판했다. 7월 31일, 291만 2628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고, 여성 최초로 도쿄도지사에 취임했다.
2016년 9월 16일, "도민 퍼스트의 회"가 발족했다. 2017년 1월 23일, 지역 정당이 되었다. 6월 1일, 도민 퍼스트의 회 대표에 취임하고 자민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탈당계는 7월 3일에 접수)
2017년 7월 2일 도쿄도의회 의원 선거에서 고이케가 주최하는 정치 사교육 기관인 '희망의 塾' 수강생 등을 공천했고, 고이케 계 세력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도의원 선거 후, 당 대표직을 사퇴하여 '먹튀'라는 비판을 받았다. 도지사 취임 후 쓰키지 시장 이전 문제 대응에 착수했다.
도쿄 츠키지 시장의 이전지인 도쿄 도요스 시장 시설은 2016년 5월에 완공되었고, 11월 10일 완전 이전 및 개장을 예정했으나, 8월 31일 "토양 오염 대책에 불안감이 남는다"는 이유로 개장 연기를 선언했다. 이후, 2017년 6월 20일에는 "일단 도요스로 이전하고, 5년 후 다시 츠키지로 돌아온다"고 했지만, 12월 20일에는 "2018년 11월 10일에 이전하고, 츠키지 시장은 해체한다"고 변경했다. 연기 결정부터 츠키지 시장 해체 결정까지 1년 4개월 가까이 걸렸고, 고이케가 여러 차례 입장을 바꾼 탓에 시장 관계자뿐 아니라 큰 혼란을 야기했다. 2018년 7월 31일, 토양 오염 대책 추가 공사가 완료되어 "미래 위험을 고려한 안전성이 확보되었다"는 이유로 고이케 유리코에 의해 도요스 시장의 안전 선언이 발표되었다. 같은 해 9월 13일에 개장 기념식이 거행되었고, 10월 11일에 거래를 시작했다. 이 이전 연기로 인해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츠키지 시장 이전 문제 문서를 참고.
자신의 의지로 간접흡연을 피하기 어렵고,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조례이다. 2018년 4월 1일 시행되었다.
조례는 보호자에게 18세 미만 아이가 있는 실내나 차 안에서 흡연하지 않을 것과 분연이 불충분한 시설에 출입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며, 노력 의무이기 때문에 벌칙 규정은 없다.
자민당은 “조례가 가정 내부까지 간섭하는 것은 ‘법은 가정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원칙에서 납득할 수 없다. 계속 심의해야 한다”고 반대했지만, 2017년 10월 5일 자민당을 제외한 찬성 다수로 가결, 성립되었다.
종업원을 고용하는 음식점에 원칙적으로 실내흡연을 금지하는 등의 처벌 규정이 포함된 간접흡연 방지 조례를 제정했다. 2020년 4월 1일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국가와의 조정을 맞춘다”는 이유로 조례안 제출을 보류했었지만, 정부가 영업장 면적 100㎡ 이하 음식점에서 흡연을 허용하는 등 예외가 많은 내용의 건강증진법 개정안을 각의결정한 것을 계기로, 국가 방침보다 엄격한 조례 제정을 목표로 했다. 정부안에서는 국내 음식점의 45%만 규제 대상이지만, 본 조례에서는 도내 음식점의 84%가 규제 대상이 된다.
음식점 협회와 담배 판매점 등으로부터 강한 반대가 있었고, 스기나미구청장 다나카 요시(田中良)도 “도가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파시스트적이다”라고 비판했다. 도의회에서는 자유민주당(自由民主党)이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음식점을 늘리는 수정안을 제출하는 등 반대했고, 다카하시 노부히로(高橋信博) 도의원으로부터는 “실효성이 없는 황당한 기준이다”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2018년 6월 27일 자민당을 제외한 찬성 다수로 가결, 성립되었다.
고이케 도지사는 조례 성립에 대해 “이전에는 반대하는 음식점이 더 많았다. 이 1년 동안 여러 가지로 호소했고, 도중에 조례 설계의 재검토도 필요했지만, 이해를 얻어 이번 성립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2020년 3월 12일, WHO 테드로스 사무총장이 "팬데믹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도(都)는 준비를 거듭해 왔기에 중단이라는 선택은 없다"고 언급하며 도쿄올림픽 개최를 목표로 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3월 23일, 코로나19 관련 첫 기자회견을 열고 3밀(밀접, 밀집, 밀폐)을 피할 것 등을 요청했다. 4월 23일 임시 기자회견에서는 "4월 25일부터 12일간을 '생명을 지키는 스테이홈 주간'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주간 신초는 2020년 5월 21일호(5월 13일 배포)에서 도쿄도가 입원 환자 수를 속였다고 보도했다. 도쿄도 감염증 대책과에 따르면 5월 11일 현재 3300병상이 확보되어 있다고 한다. 동 잡지는 고이케에 대해 "3월 하순 3연휴 전, 올림픽을 의식해 대응하지 않고 감염 확대의 원흉이 된 사람이, 생명을 깎는 자숙을 강요하면서도 그 전제가 되는 숫자를 제시하지 않는 것은 도민 나아가 국민에 대한 배신 행위다"라고 지적했다.
2020년 5월 12일, 코로나19 감염 이력을 조사하는 "항체 검사"를 6월부터 월 3천 건 속도로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2020년 5월 19일, 코로나19 긴급사태 선언 연장에 따른 휴업 요청 추가 협력금 930억 엔 등을 포함한 5832억 엔의 2020년도 보정 예산안을 발표하며 고이케는 "감염 확산을 방지한다는 큰 목표에는 (경제적인)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책비 총액은 약 1조 엔으로 확대되었다. 자민당 도의원은 "고이케 유리코 도지사는 코로나19 대책 1조 엔으로 재선을 산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지적했다.
2020년 5월 22일, 긴급사태 선언 해제 시 휴업 요청을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히가시코쿠바라 히데오는 고이케의 로드맵으로 완전 해제까지 2개월이라고 추측하며 경제가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021년 2월 2일, 정부의 긴급사태 선언 연장 결정에 따라 임시 기자회견을 실시했다. "회식, 집에서 친구와의 식사도 없음. 사회인 여러분도 환송회, 워크샵도 없음. 이벤트 후 즐겁게 식사도 없음. 노래방, 게임센터도 없음."이라고 말했다. 또한 "학생 여러분은 졸업 파티나 송별회는 올해는 없애 주세요. 친구와의 여행, 졸업 여행도 없음. 부탁드립니다"라며 젊은이들에게 오락을 자발적으로 제한할 것을 권장했다.
고이케 유리코의 2020년 출마 공약에 따라 2021년 “도쿄도닥터헬기 운항사업”(DH)이 공모되었고, 히라타가쿠엔(ヒラタ学園)이 195.2에 낙찰되었다. 그러나 실제 지불된 금액은 265.04으로, 입찰 당시 금액을 크게 상회한다. 이가라시 이리(五十嵐衣里)는 “원래 입찰 시 예상 금액보다 높아지면 ‘계약 내용 변경 합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 매우 문제입니다.”라고 지적했다. 전일본항공사업연합회(全日本航空事業連合会)가 작성한 2023년도 닥터헬기 운항 실적에 따르면, 운항 횟수 1360회 중 환자를 싣지 않고 돌아온 취소 건수가 1054회로, 취소율이 77%에 달한다. 일본항공의료학회(日本航空医療学会) 이사장 이구치 사다키(猪口貞樹)도 “도쿄도의 취소율은 있을 수 없는 수치”라며 의아해했다. 항공사 관계자는 “공고된 DH 사업 입찰 요강에는 ‘계약 내용 변경은 없다’라고 명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실비로 지불되고 있다. 이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하다"라고 말했다. 히라타가쿠엔은 국토교통성(国交省) 오사카항공국(大阪航空局)으로부터 2024년 5월 28일 “사업 개선 명령”과 “경고서”를 받았다. 항공국은 사용 수명이 만료된 항공기에서 부품을 유용하고, 결함을 해소하지 않은 상태로 운항하는 등 30개 항목에 달하는 위반 사항을 지적하면서, DH와 같이 공익성이 높은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충분한 예비 부품이 배치되어 있지 않다고 비난했다. 또한, 항공일지에 결함 발생 사실을 기록하지 않는 등 항공법 위반 행위를 반복했으며, 항공국은 이러한 위반 행위를 정비부장 및 정비관리과장도 인지하고 있었던 조직적인 위반이었다고 판단했다.
히라타가쿠엔이 고베공항(神戸空港)에서 사고를 일으킨 5월 31일, 주간문춘(週刊文春)이 쿄린가쿠엔(杏林学園) 이사장 마츠다 타카아키(松田剛明)를 직격하자, “(사업 개선 명령이 나온 후) 그들이 ‘개선했다’고 했기에 신뢰했지만, 오늘 사고가 있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라고 답했다.
재정정책은 “재정에 가계의 상식을 도입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며, 국채 발행을 통한 경기 부양책에 비판적이다. 재정 지출은 변동환율제 하에서는 효과가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일본국헌법에 재정 규율 조항을 추가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2017년에는 희망의 당을 이끌고 싸운 중의원 선거 공약으로 아베노믹스에 대항하여 “유리노믹스”를 내걸었다.
3.4. 외교 및 안보
고이케 유리코는 외교 및 안보 정책에서 매파적인 성향을 보이며, 일본 헌법 제9조 해석 수정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한다.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고 UN 중심 외교 정책에 반대하는 등 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2008년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분쟁 중인 4개의 섬을 러시아로부터 반환받겠다고 공약했으며, 2010년에는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리비아와의 관계 강화에 기여하여 일-리비아 친선협회 설립을 이끌었다. 일본 리비아 친선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리비아 측 요청에 따라 정부 간 협정을 대체하는 새로운 합의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국제연합의 리비아 경제 제재 기간에도 양국 관계 강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카다피와 여러 차례 회담을 가졌다. 2011년에는 리비아 국민평의회 수장과 회담을 갖기도 했다.
2003년 마이니치 신문 설문조사에서 일본의 핵무장에 대해 "국제 정세에 따라 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2007년 방위대신 시절, 방위성의 정보보전 시스템 확립을 위해 모리야 타케마사 방위사무차관을 퇴임시키려 했으나, 이 과정에서 인사 정보 유출 및 아베 신조 총리와 시오자키 야스히사 관방장관의 개입으로 마스다 코헤이를 후임 사무차관으로 임명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4. 논란 및 비판
고이케 유리코는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부간사장을 역임하는 등 국수주의적 성향을 보이며, 여러 보수 정치 단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극우 단체와의 연루 가능성이 제기되자, 재특회 관련 단체 초청 강연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도쿄 도지사 재임 중 관동 대학살 발생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아 비판받았으며, 일본 대중문화 홍보에 적극적이며, 마녀 샐리 코스프레를 하거나 도쿄를 "애니메이션의 땅"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2017년에는 시차 출퇴근제 "지사 비즈"를 시작했다.
같은 해, 전국 정당 "희망의 당"을 창당했으나, 2017년 중의원 선거에서 저조한 결과를 얻고 2018년 해산했다. 2023년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중 62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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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역대 두 번째로 많은 득표수로 재선되었다. 2021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중단 요구 온라인 서명이 35만 명을 넘었다. 같은 해 5월, 18세 요크셔 테리어 애완견을 잃었다. 6월에는 과로로 입원했다가 퇴원 후 재택근무를 했다. 7월, 10일 만에 출근하여 "지금만큼 중요한 시기는 없다"고 말했다. 이후 도민파 후보 사무소들을 방문 격려했다. 2021년 도쿄도의회의원 선거에서 도민퍼스트의회는 31석을 확보했으나, 무면허 운전 의원이 제명되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논란성 발언 및 사건들이 있었다.
* 북한 납치 피해자 가족에게 "내 가방, 납치당한 줄 알았다"는 발언.
* 타마키 데니 오키나와현 지사에게 "일본어 읽을 수 있어요?" 야유.
* 미나마타병 피해자 추가 조사 및 배상 기준 재검토 거부.
* 한신·아와지 대지진 구호 활동 관련 항만노조 비판 발언 (노조 측 부인).
* 도요스 시장 이전 문제 결정 "AI" 비유.
* 시무라 켄 COVID-19 사망에 대한 "공적" 표현.
* 푸텐마 기지 이전 문제 관련 미국 "비밀" 공전 폭로.
* 오키나와 언론 비판.
* 야나가와 하쿠오 여성 비하 발언 비판하며 일본 남성 여성관 지적.
* 외국인 참정권 입장 변화: 과거 긍정적 발언에서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 반대로 선회.
* 통일교 관계 부인.
* 한신·아와지 대지진 피해자들에게 무성의한 태도.
* 2020년 도쿄 올림픽 마라톤 개최지 변경에 북방 영토 언급하며 비판.
4.1. 학력 위조 논란
고이케 유리코는 카이로 대학교 졸업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학력 위조 혐의를 받았다. 1992년 참의원 선거부터 선거 때마다 카이로 대학교 졸업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가 나오는 경향이 있다.
2016년 도쿄 도지사 선거 당시 이 의혹이 언론에 광범위하게 보도되었다. 고이케는 혐의에 대한 대응으로 졸업 증명서를 해당 프로그램에 보냈다.
2018년 1월, 고이케의 카이로 대학교 시절 룸메이트였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고이케에 관한 기사를 읽은 후 일본 월간지 '분게이슌주'에 편지를 보내면서 다시 논란이 되었다.
2020년 6월, 카이로 대학교는 성명을 통해 "고이케 유리코가 1976년 10월 카이로 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했음을 증명한다"고 밝히며 주장을 부인했다. 주일 이집트 대사관도 페이스북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
2024년, 월간지 '분게이슌주'는 웹사이트에 고이케의 변호사이자 전 보좌관인 고지마 도시로가 위조 졸업 증명서 작성을 포함한 고이케의 학력 위조에 가담했다고 말하는 영상을 포함한 기사를 게재했다. 고이케는 주장을 부인했다. 고지마는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이케를 도쿄지검에 고발했다.
고이케는 4월 12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성명서는) 카이로 대학교가 의지를 가지고 발표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개된 카이로 대학교 졸업 관련 학력은 다음과 같다.
4.2. 관동 대학살 관련 발언
고이케 유리코는 도쿄 도지사 재임 기간 동안 1923년 관동 대학살 발생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아 한국과 일본의 자유주의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2017년부터는 이전 도지사들이 매년 추모식에 조의를 표하던 관례를 깨고 생존자 후손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을 거부했다. 고이케는 학살 발생 여부가 역사적 논쟁의 대상이라는 이유로 이를 정당화했다.
1973년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조선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도립 요코아미초 공원에 추도비가 건립되었고, 1974년부터 매년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역대 도지사들은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왔으나, 2017년 고이케는 추도문 발송을 중단했다.
이에 대해 일조협회 도쿄도 연합회 회장 미야가와 야스히코는 "비참한 학살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자세"라고 비판했다. 고이케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해 "무엇이 명백한 사실인가에 대해서는 역사가가 밝힐 것이다"라고 말하며 학살 유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밝히지 않고 있다.
2024년, 도쿄대학 교직원들은 고이케에게 조선인 학살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에게 추도 메시지를 보낼 것을 요구하는 요청문을 제출했다. 이들은 고이케가 "평가가 확정된 학설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도쿄도는 추도문 발송 요청에 대해 "발송하지 않습니다"라고 회신했다.
4.3. 정치 자금 문제
신문 아카하다는 고이케 유리코가 대표였던 자금관리단체 '포럼 유레카'(2017년 6월 해산)가 1994년부터 2016년까지 수입이 1000만 엔 이상인 '특정 파티'를 18회 개최했다고 보도했다. 정치자금규정법은 특정 파티에 대해 파티권 구입자 수에 해당하는 '대가의 지불을 한 자의 수'를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카하다의 조사에 따르면, 2015년과 2016년 파티 수입을 1장의 파티권 가격(2만 엔)으로 나눈 수치, 즉 파티권 판매 매수와 같은 수치를 구입자 수로 기재했는데, 이는 1인이 1장씩 구입하지 않는 한 파티권 판매 매수와 일치할 수 없다. 실제로 '전일본 트럭 사업자 정치연맹'은 2016년 8월 31일 '정치자금 파티 회비'로 6만 엔(3장 분)을, '전국 주택산업 정치연맹'은 2016년 5월 18일 '파티권 구입'으로 10만 엔(5장 분)을 포럼 유레카에 지출했다고 수지 보고서에 기재되어 있다. 아카하다는 하나의 정치단체가 복수의 파티권을 구입했다면 판매 매수와 구입자 수가 일치할 수 없으며, 정치자금규정법 위반(허위 기재) 혐의가 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 신문은 2007년 11월 26일,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서 2003년부터 4년 연속 이월금이 0엔이었던 단체 중 하나로 고이케가 대표를 맡은 정당 지부를 지적했다. 고이케의 사무소는 "실제로 발생한 비용을 누적하여 법에 따라 적절하게 처리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산케이 신문은 2016년 7월 4일, 고이케가 대표였던 자민당 도쿄도 제10선거구 지부가 지원자가 소유한 건물의 한 칸을 시세의 절반 정도 가격으로 임차하면서, 차액을 기부금으로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재할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보도했다. 카미와키 히로유키 고베가쿠인대학 교수는 "정치자금규제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이케의 사무소는 "제시된 금액을 보고 빌리기로 했기 때문에, 기부라는 인식은 전혀 없다"고 설명하며, 산케이 신문의 보도 내용에 대해 반론했다.
1992년 7월 고이케가 참의원에 처음 당선되자, 오릭스 사장 미야우치 요시히코는 고이케에게 후원회 설립을 제안했다. 후원회는 고이케의 이름을 따서 '포럼 유레카'로 명명되었고, 미야우치가 회장에 취임했다. 이때 자금관리단체도 설립되었는데, 같은 이름인 '포럼 유레카'로 되었다. '포럼 유레카'는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 이후인 2016년 12월에 자금관리단체 지정이 취소되었고, 2017년 6월에 해산했다.
고이케는 2017년 도쿄도의회의원 선거를 앞둔 2017년 6월 1일, 도민 퍼스트의 회 대표에 취임했다. 선거에서 크게 승리한 후인 8월, 정치단체 '햐쿠노카이(百乃会)'를 설립했다. 대표와 회계 책임자에는 전 중의원 의원 스기우라 마사타케가 취임했다. 2019년 1월 4일에는 재선을 위해 새로운 자금관리단체 '햐쿠세이카이(百成会)'를 설립했다.
도쿄도 의사회의 정치단체는 2022년에 고이케의 파티권 1500, 고이케가 대표를 맡은 도민 퍼스트의 파티권 1000어치를 구입하면서 "이념과 정책의 방향성이 가깝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구분 | 단체명 | 설립일 | 해산일 | 대표자 |
|---|---|---|---|---|
| 자금관리단체 | 포럼 유레카(フォーラム・ユーリカ) | 1992년 | 2017년 6월 | 고이케 유리코 |
| 햐쿠세이카이(百成会) | 2019년 1월 4일 | 고이케 유리코 | ||
| 정치단체 | 햐쿠노카이(百乃会) | 2017년 8월 | 스기우라 마사타케 |
4.4. 기타 발언 논란
고이케 유리코는 다음과 같은 여러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 1923년 관동 대학살 추모식에 조의를 표하는 것을 거부하며, 학살 발생 여부가 역사적 논쟁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 반한 혐오 단체인 재특회와 연관된 단체의 행사에서 연설한 것에 대한 질문에, 연관성을 알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 북한의 납치 피해자 가족에게 "내 가방, 납치당한 줄 알았다"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 오키나와현 지사 타마키 데니에게 "일본어 읽을 수 있어요? 이해해요?"라며 야유를 했다고 한다.
* 미나마타병 피해자에 대한 추가 조사 및 배상 기준 재검토를 거부했다.
*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 구호 활동과 관련하여 항만노조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으나, 노조 측은 이를 부인했다.
* 도요스 시장 이전 문제에 대한 결정을 "AI"에 비유하여 논란이 되었다.
* 지무라 켄의 COVID-19 사망에 대해 "공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비판을 받았다.
* 푸텐마 기지 이전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비밀" 공전이 폭로되면서 논란이 되었다.
* 오키나와 언론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 야나가와 하쿠오 후생노동대신의 여성 비하 발언을 비판하며, 일본 남성들의 여성관이 이슬람 국가보다 뒤떨어진다고 지적했다.
* 외국인 참정권에 대해 과거에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반대 입장으로 선회했다.
* 통일교와의 관계를 부인했다.
* 한신·아와지 대지진 피해자들에게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 2020년 도쿄 올림픽 마라톤 개최지 변경에 대해 북방 영토를 언급하며 비판했다.
5. 역대 선거 결과
| 선거명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 순위 | 당락 | 비고 |
|---|---|---|---|---|---|---|---|
| 1993년 총선거 | 효고현 제2구 | 일본신당 | 136,000 | 15.1 | 2위 | 당선 | 중선거구제 |
| 1996년 총선거 | 효고현 제6구 | 신진당 | 89,672 | 38.28 | 1위 | 당선 | |
| 2000년 총선거 | 효고현 제6구 | 보수신당 | 84,647 | 33.81 | 1위 | 당선 | |
| 2003년 총선거 | 비례대표(긴키) | 자유민주당 | 20,660,185 | 34.96 | 3위 | 당선 | |
| 2005년 총선거 | 도쿄도 제10구 | 자유민주당 | 109,764 | 50.05 | 1위 | 당선 | |
| 2009년 총선거 | 도쿄도 제10구 | 자유민주당 | 96,739 | 43.31 | 2위 | 당선 | |
| 2012년 총선거 | 도쿄도 제10구 | 자유민주당 | 108,983 | 53.70 | 1위 | 당선 | |
| 2014년 총선거 | 도쿄도 제10구 | 자유민주당 | 93,610 | 50.73 | 1위 | 당선 | |
|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 | 도쿄도 | 무소속 | 2,912,628 | 44.49 | 1위 | 당선 | |
|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 | 도쿄도 | 무소속 | 3,661,371 | 59.70 | 1위 | 당선 | |
|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 | 도쿄도 | 무소속 | 2,918,015 | 42.77 | 1위 | 당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