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콜라스티카
1. 개요
스콜라스티카는 480년경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에서 태어난 기독교 성녀로, 누르시아의 베네딕토의 쌍둥이 남매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하느님께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수녀원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으며, 몬테카시노 산기슭의 푸마롤라로 옮겨 수도 생활을 이어갔다. 스콜라스티카는 오빠 베네딕토와 일 년에 한 번 만나 영적인 대화를 나누었는데, 마지막 만남에서 그녀의 간절한 기도에 폭풍우가 내려 베네딕토가 밤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녀는 베네딕토가 세상을 떠난 며칠 뒤 비둘기 형상으로 하늘로 올라갔으며, 몬테카시노에 시신이 안치되었다.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토회 수녀, 교육, 경련을 앓는 아이들의 수호성인이며, 축일은 2월 10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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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년 사망 -
누르시아의 베네딕토
누르시아의 베네딕토는 480년경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547년경 사망한 기독교 성인으로, 서방 교회의 수도원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베네딕도 규칙서》를 제정하여 중세 유럽 수도 제도의 기초를 다졌다. -
480년 출생 -
유스티니아누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527년부터 38년간 동로마 제국을 통치하며 로마법 대전 편찬,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건설 등의 업적을 남겼고 벨리사리우스 장군을 통한 정복 전쟁, 교회 정책 추진 등으로 제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결코 잠들지 않는 황제"였다. -
480년 출생 -
보이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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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로마 가톨릭 수녀 -
마리아 아녜시
마리아 가에타나 아녜시는 18세기 이탈리아의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미적분학 교과서를 출판하여 유럽에 영향을 미치고 "아녜시의 마녀" 곡선으로 알려졌으며, 아버지 사망 후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
이탈리아의 로마 가톨릭 수녀 -
아시시의 클라라
아시시의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의 영향을 받아 가난한 삶을 실천하고 여성 수도 공동체인 클라라회를 창설하여 여성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 이탈리아의 수녀이자 성녀이다.
2. 생애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의 쌍둥이 누이동생인 스콜라스티카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성인전》에 그 기록이 남아있다. 이탈리아 노르치아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하느님께 자신을 바친 스콜라스티카는 수비아코와 몬테카시노 기슭의 푸마롤라에서 수도생활을 했다.
스콜라스티카와 베네딕토는 정기적으로 만나 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마지막 만남에서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토에게 밤새 함께 있기를 청했지만, 베네딕토는 수도원 규칙 때문에 거절했다. 스콜라스티카의 기도에 하느님은 폭풍으로 응답했고, 베네딕토는 밤새 머물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베네딕토는 스콜라스티카의 영혼이 비둘기 모양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2.1. 초기 생애
스콜라스티카는 480년경 이탈리아 움브리아 누르시아(현재의 노르치아)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니키우스 유프로피우스, 어머니는 클라우디아 아본단티아 레과르다티였으며, 성 베네딕토와 쌍둥이 남매였다. 그레고리오 1세는 스콜라스티카가 베네딕토의 누이라고만 언급했지만, 후대의 전승에서는 쌍둥이였다고 전해진다.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깊었던 스콜라스티카는 일찍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기로 결심했다. 이는 당시 로마 여성으로서 결혼을 통한 안정적인 삶 대신 종교적인 삶을 선택한 드문 경우였다. 당시 스콜라스티카와 같은 계층의 젊은 로마 여성은 주로 정략결혼을 하거나, 봉헌된 삶을 살기 전까지 아버지의 집에서 머무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때로는 여러 명의 봉헌된 동정녀가 한 가구에서 함께 살면서 공동체를 이루기도 했다.
2.2. 수도 생활
스콜라스티카는 초기에는 수비아코의 수녀원에서 생활했으며, 나중에는 몬테카시노 기슭의 푸마롤라에서 수도 생활을 했다. 베네딕토회 전승에 따르면, 스콜라스티카는 몬테카시노에서 약 8km 떨어진 곳에 은둔소를 세웠으며, 이곳은 베네딕토회 수녀들의 최초의 수도원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스콜라스티카가 몬테카시노 산기슭의 여러 가옥 중 한두 명의 다른 봉헌된 동정녀와 함께 은둔하며 살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곳에는 그녀의 후원을 받는 고대 교회인 '모나스테로 디 산타 스콜라스티카'가 있다.
2.3. 베네딕토와의 만남과 기적
스콜라스티카는 일 년에 한 번씩 오빠인 베네딕토를 만나 함께 예배를 드리고 영적인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 날, 베네딕토가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자, 스콜라스티카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짐을 느꼈는지 그에게 밤새 함께 머물며 대화를 계속하자고 부탁했다. 그러나 베네딕토는 자신이 세운 규칙을 어길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스콜라스티카는 간절히 기도했고, 잠시 후 거센 폭풍우가 몰아쳤다. 베네딕토는 "무슨 짓을 한 거요?"라고 물었고, 스콜라스티카는 "저는 당신에게 부탁했지만 당신은 듣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 하느님께 부탁했더니 그분은 들어주셨죠. 이제 갈 수 있으면 가보세요."라고 대답했다. 결국 베네딕토는 수도원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그들은 밤새도록 대화를 나누었다.
사흘 뒤, 베네딕토는 자신의 방에서 여동생의 영혼이 빛나는 흰 비둘기의 모습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2.4. 죽음과 유산
베네딕토는 스콜라스티카가 세상을 떠난 며칠 뒤, 그녀의 영혼이 비둘기 형태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스콜라스티카의 시신은 몬테카시노의 베네딕토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3. 평가와 영향
스콜라스티카에 대한 기록은 주로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대화》에 의존하고 있다. 초기 달력과 몬테카시노 주변 지역의 지명은 성 그레고리오 1세가 기록한 스콜라스티카의 생애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앵글로색슨 주교이자 학자인 알드헬름도 스콜라스티카의 이야기를 자신의 저술에 인용했다.
4. 수호성인 및 기념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토회 수녀, 교육, 경련을 앓는 아이들의 수호 성인이며, 폭풍과 비를 막아주는 존재로 여겨진다. 축일은 2월 10일이다. 아헨 교구 달력에는 2월 6일에 스콜라스티카 유해 이장 추가 축일이 있다. 성 스콜라스티카 축일은 베네딕토회 수도원 달력에서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성상에서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토회 수도복을 입고 있으며, 종종 수녀원장의 모습으로 묘사되며, 성 베네딕토 규칙서를 들고 십자가나 승천하는 비둘기를 지니고 있다.
2002년 3월 13일 발행된 오스트리아 50EUR '기독교 수도회' 주화 앞면에는 스콜라스티카가 베네딕토와 함께 묘사되어 있다.
5. 대중문화
Sancta Scholastica라틴어는 2002년 오스트리아에서 발행된 50EUR 기념 주화에 베네딕토와 함께 도안되었다.
6. 같이 보기
* 성 베네딕토
* 몬테카시노 대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