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피 매키니스
1. 개요
스터피 매키니스는 1909년부터 1927년까지 19시즌 동안 활약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였다. 통산 2,128경기에서 타율 .307, 20홈런, 1,063타점을 기록했고, 12시즌 동안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 1910년대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왕조의 일원이었으며, 1루수로서 뛰어난 수비 실력을 보였다. 1921년에는 1루수 한 시즌 최고 수비율 기록을 세웠고, 163경기 연속 무실책 기록도 보유했다. 또한 극도로 삼진을 당하지 않는 타자였으며, 희생 번트에도 능했다. 은퇴 후에는 대학 야구팀 코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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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 | 미국 |
|---|---|
| 출생일 | 1890년 9월 19일 |
| 출생지 | 미국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 |
| 사망일 | 1960년 2월 16일 |
| 사망지 | 미국 매사추세츠주 입스위치 |
| 신장 | 175 센티미터 |
| 체중 | 73 킬로그램 |
| 투구 | 우 |
| 타석 | 우 |
| 수비 위치 | 1루수 |
| 프로 입단 연도 | 1908년 아마추어 FA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 첫 출장 | MLB / 1909년 4월 12일 |
| 마지막 경기 | MLB / 1927년 8월 1일 |
| 획득 타이틀 | 4× 월드 시리즈 우승 (1911, 1913, 1918, 1925) |
|---|
| 선수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09~1917) 보스턴 레드삭스 (1918~1921)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22) 보스턴 브레이브스 (1923~1924) 피츠버그 파이리츠 (1925~1926) 필라델피아 필리스 (1927) |
|---|---|
| 감독 | 필라델피아 필리스 (1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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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필리스 감독 -
라인 샌드버그
라인 샌드버그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카고 컵스에서 2루수로 16시즌을 뛰며 뛰어난 수비와 타격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이자 감독으로, 골드 글러브 9회 수상, 올스타 10회 선정, 1984년 MVP 수상 등의 업적을 남겼으며 시카고 컵스 등번호 23번은 영구 결번되었다. -
필라델피아 필리스 감독 -
버키 해리스
버키 해리스는 미국의 프로 야구 선수, 감독, 단장으로, 선수 시절 2루수로 활약했으며 1924년 워싱턴 세네터스의 선수 겸 감독으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한 후 1975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20세기 미국 사람 -
앤드루 쿠오모
앤드루 쿠오모는 뉴욕 주지사를 역임한 미국 민주당 정치인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과 요양원 사망자 은폐 의혹 및 성추행 혐의로 논란이 되었다. -
20세기 미국 사람 -
지미 카터
지미 카터는 해군 장교와 땅콩 농장 운영을 거쳐 조지아 주지사를 역임하고 도덕적, 진보적 이미지로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퇴임 후 카터 센터 설립과 인도주의 활동으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
아일랜드계 미국인 -
린지 모건
린지 모건은 《제너럴 호스피털》의 크리스티나 데이비스, 《더 100》의 레이븐 레예스, 《워커》의 미키 라미레즈 역으로 알려진 미국의 배우로, 2013년 데이타임 에미상 드라마 시리즈 부문 신인 여배우상 후보에 올랐다. -
아일랜드계 미국인 -
미셸 오바마
미셸 오바마는 버락 오바마의 부인이자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로, 건강한 식습관 장려 캠페인을 펼쳤으며, 《나는 되고 있다》의 저자이다.
2. 선수 경력
19개 시즌 동안 매키니스는 2,128경기에 출전해 20개의 홈런과 1,063개의 타점을 기록하며 .307의 타율을 기록했다.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09년 ~ 1917년) ===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 출신인 매키니스는 1909년 유격수로서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2시즌 후, 그는 1루에서 해리 데이비스를 대체하며 2루수 에디 콜린스, 3루수 프랭크 베이커, 유격수 잭 배리와 함께 "10만 달러 내야진"의 일원이 되었다. 당시 "10만 달러 내야진"은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다.
애슬레틱스는 1910년, 1911년, 1913년, 1914년 아메리칸 리그 우승과 1910년, 1911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1914년 월드 시리즈에서 보스턴 브레이브스에 패배한 후, 구단주 코니 맥은 선수들을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며 팀을 해체하기 시작하였다. 에디 콜린스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프랭크 베이커는 뉴욕 양키스로, 잭 배리는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하면서, 10만 달러 내야진은 해체되었다. 매키니스는 팀에 남아있다가 1917년 시즌 말에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하였다.
=== 보스턴 레드삭스 (1918년 ~ 1921년) ===
매키니스는 1917년 시즌 후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되었다. 1918년 월드 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일원으로서, 시카고 컵스와의 첫 경기에서 베이브 루스의 1 대 0 투구 승리에 단 하나의 득점을 올리는 히트를 쳐 주자를 몰아냈다.
1921년, 매키니스는 152경기에 출장하여 .9993의 수비율로 1,651번의 기회 중 단 하나의 실책만을 기록, 1루수 메이저 리그 수비 기록을 세웠다. 이 시즌에 기록한 1,300번의 무실책 기회 역시 해당 시즌 최고 기록이었다. 1921년 5월 31일부터 1922년 6월 22일 사이에는 163경기 연속 무실책, 1,700번의 기회에서 무실책으로 세 번째 기록을 세웠다. 2007년 6월 25일, 케빈 유킬리스가 120경기 연속 무실책으로 1921년 매키니스의 종전 레드삭스 기록을 경신했고, 2008년 4월 27일에는 205경기 연속 무실책, 1,701번째 연속 무실책 수비를 기록하며 매키니스의 1,700번 기록을 넘어 메이저 리그 신기록을 세웠다.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보스턴 브레이브스, 피츠버그 파이리츠, 필라델피아 필리스 (1922년 ~ 1927년) ===
매키니스는 1922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한 시즌을 뛰었다. 1923년 내셔널 리그로 옮긴 그는 보스턴 브레이브스와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활약하였고, 1927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선수 겸 감독을 맡으며 메이저 리그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좋은 접촉의 라이너 타자인 매키니스는 자신의 19개 시즌 중 12개 동안 .300 점을 타구하였다. 그는 1925년 파이리츠 우승 팀을 위하여 59개의 경기에서 .368 점을 타구하였다. 극단적으로 스트라이크아웃 되기 어려운 그는 7,822개의 타석과 2,405개의 안타에서 189번 밖에 스트라이크아웃 되지 않았다. 1921년 그는 584개의 타석에서 9번만 스트라이크아웃 되었다.
매키니스는 또한 희생 번트들과 득점자들을 옮기는 데 뛰어났다. 그의 총 348개의 경력 희생 번트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3번째로 최고이다.
매키니스는 또한 특별히 완고한 방어적 선수였다. 10년간 세월 동안 그는 한 시즌에 1루수를 위하여 메이저 리그 수비 기록들을 보유하였다.
2.1.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09년 ~ 1917년)
매키니스는 1909년 유격수로서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2개의 시즌 후, 그는 1루에 해리 데이비스를 대체하여, 2루수 에디 콜린스, 3루수 프랭크 베이커, 유격수 잭 배리와 함께 "10만 달러 내야진"의 일원이 되었다. 당시 "10만 달러 내야진"은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다.
애슬레틱스는 1910년, 1911년, 1913년, 1914년 아메리칸 리그 우승과 1910년, 1911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1914년 월드 시리즈에서 보스턴 브레이브스에 패배한 후, 구단주 코니 맥은 선수들을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며 팀을 해체하기 시작하였다. 에디 콜린스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프랭크 베이커는 뉴욕 양키스로, 잭 배리는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하면서, 10만 달러 내야진은 해체되었다. 매키니스는 팀에 남아있다가 1917년 시즌 말에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하였다.
2.2. 보스턴 레드삭스 (1918년 ~ 1921년)
매키니스는 1917년 시즌 후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되었다. 1918년 월드 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일원으로서, 시카고 컵스와의 첫 경기에서 베이브 루스의 1 대 0 투구 승리에 단 하나의 득점을 올리는 히트를 쳐 주자를 몰아냈다.
1921년, 매키니스는 152경기에 출장하여 .9993의 수비율로 1,651번의 기회 중 단 하나의 실책만을 기록, 1루수 메이저 리그 수비 기록을 세웠다. 이 시즌에 기록한 1,300번의 무실책 기회 역시 해당 시즌 최고 기록이었다. 1921년 5월 31일부터 1922년 6월 22일 사이에는 163경기 연속 무실책, 1,700번의 기회에서 무실책으로 세 번째 기록을 세웠다. 2007년 6월 25일, 케빈 유킬리스가 120경기 연속 무실책으로 1921년 매키니스의 종전 레드삭스 기록을 경신했고, 2008년 4월 27일에는 205경기 연속 무실책, 1,701번째 연속 무실책 수비를 기록하며 매키니스의 1,700번 기록을 넘어 메이저 리그 신기록을 세웠다.
2.3.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보스턴 브레이브스, 피츠버그 파이리츠, 필라델피아 필리스 (1922년 ~ 1927년)
매키니스는 1922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한 시즌을 뛰었다. 1923년 내셔널 리그로 가기 전에 그는 보스턴 브레이브스와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활약하였고, 1927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선수 겸 감독을 맡으며 메이저 리그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좋은 접촉의 라이너 타자인 매키니스는 자신의 19개 시즌 중 12개 동안 .300 점을 타구하였다. 그는 1925년 파이리츠 우승 팀을 위하여 59개의 경기에서 .368 점을 타구하였다. 극단적으로 스트라이크아웃 되기 어려운 그는 7,822개의 타석과 2,405개의 안타에서 189번 밖에 스트라이크아웃 되지 않았다. 1921년 그는 584개의 타석에서 9번만 스트라이크아웃 되었다.
매키니스는 또한 희생 번트들과 득점자들을 옮기는 데 뛰어났다. 그의 총 348개의 경력 희생 번트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3번째로 최고이다.
매키니스는 또한 특별히 완고한 방어적 선수였다. 10년간 세월 동안 그는 한 시즌에 1루수를 위하여 메이저 리그 수비 기록들을 보유하였다. 1921년 그는 레드삭스와 152개의 경기에 활약하여 .9993 평점을 위하여 1,651개의 토탈 챈스에서 1개 만의 실책을 일으켰고, 그의 실책없는 1,300개의 토탙 챈스도 또한 시즌의 평점을 대표하였다. 1921년 5월 31일과 1922년 6월 22일 사이에 매키니스는 163개의 실책없은 1,700개의 토탈 챈스와 3번째 기록을 세웠다.
3. 선수 기록 및 통산 성적
스터피 매키니스는 19개의 시즌 동안 2,12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07, 20홈런, 1,063타점을 기록했다. 12시즌 동안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으며, 특히 1912년에는 .327의 타율을 기록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극도로 삼진을 당하지 않는 타자로, 통산 7,822타석에서 189개의 삼진만을 기록했다. 1921년에는 584타석에서 9번만 삼진을 당하기도 했다. 희생 번트에 능숙하여 통산 348개의 희생 번트를 기록, 메이저 리그 역대 3위에 해당한다.
뛰어난 수비 실력을 보인 1루수였다. 1921년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으로 152경기에 출전하여 1,651개의 기회에서 단 1개의 실책만을 기록, .9993의 수비율을 기록했다. 이는 당시 1루수 한 시즌 최고 수비율 기록이었다. 1921년 5월 31일부터 1922년 6월 22일 사이에는 163경기 연속 무실책, 1,700회의 연속 무실책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4. 은퇴 이후
5. 평가 및 유산
스터피 매키니스는 뛰어난 타격과 안정적인 수비를 겸비한 선수였다. 19개 시즌 동안 2,128개의 경기에서 20개의 홈런과 1,063개의 타점, .307의 타율을 기록했다. 특히 1910년대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의 왕조를 이끈 "10만 달러 내야진"의 일원으로, 1루수로서 해리 데이비스를 대체하여 2루수 에디 콜린스, 3루수 프랭크 베이커, 유격수 잭 배리와 함께 활약했다. 애슬레틱스는 1910년, 1911년, 1913년, 1914년 아메리칸 리그 우승과 1910년, 1911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매키니스는 좋은 컨택의 라인 드라이브 타자로, 19개 시즌 중 12개 시즌에서 .300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 특히 1912년에는 .327의 타율을 기록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는 또한 스트라이크아웃을 극도로 당하지 않는 선수로, 7,822개의 타석에서 2,405개의 안타를 기록하는 동안 189번의 스트라이크아웃만을 당했다. 1921년에는 584타석에서 9번만 스트라이크아웃되었다. 매키니스는 희생 번트에도 능숙하여 통산 348개의 희생 번트를 기록했는데, 이는 메이저 리그 역사상 3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매키니스는 수비에서도 뛰어난 선수였다. 1921년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으로 152경기에 출장하여 1,651번의 수비 기회에서 단 1개의 실책만을 기록, .9993의 수비율을 기록했다. 이는 당시 1루수 메이저 리그 기록이었다. 또한 1921년 5월 31일부터 1922년 6월 22일까지 163경기 연속 무실책, 1,700번의 연속 무실책 수비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오랫동안 깨지지 않다가 2007년 6월 25일 케빈 유킬리스가 120경기 연속 무실책으로 매키니스의 레드삭스 기록을 경신했고, 2008년 4월 27일에는 205경기 연속 무실책, 1,701번의 연속 무실책 수비로 메이저 리그 신기록을 세웠다.
선수 은퇴 후 매키니스는 노리치 대학교(1931년 ~ 1944년)와 하버드 대학교(1949년 ~ 1954년) 야구팀 코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