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영
1. 개요
심현영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선린상업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3년 현대건설에 입사하여 현대그룹에서 다양한 직책을 역임했다. 현대산업개발 사장, 현대건설 사장을 거쳐 청구그룹 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대건설 사장으로 복귀하여 회사를 회생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2002년 국민주거환경 개선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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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 심씨 -
심국무
심국무는 민주공화당과 민주정의당에서 활동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12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이후 선거에서는 낙선하였다. -
풍산 심씨 -
심정 (1471년)
심정은 조선의 문신으로, 태종을 도운 심귀령의 증손이며, 연산군과 중종 시대에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를 숙청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나 김안로와의 갈등으로 유배 후 사사되었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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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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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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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2.2. 선린상업고등학교 졸업
1957년 서울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3. 경력
1963년 현대건설 공채 1기로 입사하여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 회장, 이명박 대통령 등과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 1975년 1월부터 1981년 2월까지 현대중공업 이사, 상무이사, 전무이사, 부사장을 역임했다. 1981년 3월부터 1984년 4월까지 한라건설 부사장을, 1984년 5월부터 1986년 12월까지 현대제철 부사장을 역임했다. 1986년 12월부터 1987년 1월까지 현대산업개발 부사장을 역임했고, 1987년 1월부터 1996년 6월까지 현대산업개발 사장을 역임했다. 이 기간 중 1993년 3월부터 1995년까지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장을 겸임하면서 정주영 회장의 대선 출마로 인한 정치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1993년 6월부터 7월까지 극동정유 사장, 1993년 7월부터 1996년 6월까지 현대정유 사장을 겸임했다. 1994년 11월부터 1996년까지 한국공정경쟁협회 이사를 겸임했다.
1996년 6월부터 9월까지 현대건설 사장을 역임했다. 1996년 9월 정몽구, 정몽헌, 정몽준 등 2세들이 현대그룹 경영 일선에 진출하자 현대그룹을 떠나 청구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1997년 1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청구그룹 부회장으로 재직 후 다시 현대그룹으로 복귀하였다. 1999년 12월부터 2001년 5월 17일까지 현대엔지니어링플라스틱 사장을 역임했다.
2001년 5월 18일 다시 현대건설 사장으로 복귀하여 부채 위기에 처한 회사를 구조조정하고 회생시켜, 당시 최고의 건설사로 성장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말기에 불거진 현대상선의 대북 송금설 등으로 인해 이란 가스 정제 수주 공사(12억불)에 대한 은행단의 신용장 개설이 무산되자, 2003년 3월 11일 현대건설 사장직을 퇴임했다. 2002년 3월부터 2003년 3월 11일까지 현대엔지니어링 회장을 겸임했다. 2002년 4월 26일 현대건설 사장 재임 시절, 국민주거환경 개선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산업훈장 1등급, 최고등급)을 수상했다. 2002년 5월 대한건설협회 부회장을 겸임했다. 2003년 3월 11일 현대건설 사장을 퇴임했다. 2005년 동양강철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알루미늄 명예 회장으로 영입되었다.
3.1. 현대그룹에서의 경력
1963년 현대건설 공채 1기로 입사하여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 회장, 이명박 대통령 등과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 1975년 1월부터 1981년 2월까지 현대중공업 이사, 상무이사, 전무이사, 부사장을 역임했다. 1981년 3월부터 1984년 4월까지 한라건설 부사장을, 1984년 5월부터 1986년 12월까지 현대제철 부사장을 역임했다. 1986년 12월부터 1996년 6월까지 현대산업개발 사장을 역임했으며, 이 기간 중 1993년 3월부터 1995년까지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장을 겸임하면서 정주영 회장의 대선 출마로 인한 정치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1993년 6월부터 1996년 6월까지는 극동정유(1993년 7월 현대정유로 상호 변경) 사장을 겸임했다. 1994년 11월부터는 한국공정경쟁협회 이사를 겸임했다.
1996년 6월부터 9월까지 현대건설 사장을 역임했다. 1996년 9월 정몽구, 정몽헌, 정몽준 등 2세들이 현대그룹 경영 일선에 진출하자 현대그룹을 떠나 청구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1997년 1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청구그룹 부회장으로 재직 후 다시 현대그룹으로 복귀하였다. 1999년 12월부터 2001년 5월 17일까지 현대엔지니어링플라스틱 사장을 역임했다.
2001년 5월 18일 다시 현대건설 사장으로 복귀하여 부채 위기에 처한 회사를 구조조정하고 회생시켜, 당시 최고의 건설사로 성장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말기에 불거진 현대상선의 대북 송금설 등으로 인해 이란 가스 정제 수주 공사(12억불)에 대한 은행단의 신용장 개설이 무산되자, 2003년 3월 11일 현대건설 사장직을 퇴임했다. 2002년 3월부터 2003년 3월 11일까지 현대엔지니어링 회장을 겸임했다. 2002년 4월 26일 현대건설 사장 재임 시절, 국민주거환경 개선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산업훈장 1등급, 최고등급)을 수상했다. 2002년 5월 대한건설협회 부회장을 겸임했다. 2005년 동양강철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알루미늄 명예 회장으로 영입되었다.
3.2. 청구그룹 및 기타 경력
1996년 정몽구, 정몽헌, 정몽준 등 2세들이 현대그룹의 경영 일선에 진출하자 현대그룹을 떠나 청구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7년 1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청구그룹 부회장을 역임했다. 2005년 동양강철그룹 계열사인 현대알루미늄 명예회장으로 영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