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니야
1. 개요
아도니야는 형 암논과 압살롬이 죽은 후 왕위 계승을 시도한 인물이다. 그는 육군 사령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의 지지를 얻었으나, 솔로몬과 그 지지자들을 초대하지 않고 왕위 계승을 위한 제사를 지내 솔로몬의 즉위를 방해하려 했다. 나단의 조언으로 다윗 왕이 솔로몬을 왕으로 선포하자 제단에 피신하여 사면받았지만, 아비삭과의 결혼을 요청하여 다시 왕위를 노리는 것으로 의심받아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했다.
-
다윗 -
베들레헴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에 위치한 도시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로 알려진 중요한 순례지이자 관광 도시이며, 고대 유다 왕국의 도시이자 다윗 왕의 고향으로 구약성서에 언급되고, 다양한 문명의 지배를 거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중심지 중 하나이며, 현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치 아래 이스라엘의 서안 지구 장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
다윗 -
골리앗
골리앗은 블레셋 출신의 거인으로, 다윗과의 대결로 유명하며, 이스라엘 군에게 일대일 대결을 제안했으나 다윗에게 죽임을 당한다. -
열왕기 -
솔로몬
솔로몬은 다윗 왕의 아들로 이스라엘 왕국의 제3대 왕이었으며 뛰어난 지혜와 현명한 재판으로 유명하고,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경제적 번영과 국제적 명성을 누렸지만 사회적·종교적 갈등 또한 심화되었으며,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것으로도 유명하여 그의 삶은 다양한 전설과 신화, 문학 작품 등에서도 중요한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 -
열왕기 -
바빌론 유수
기원전 6세기 초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유다 왕국이 멸망하면서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된 바빌론 유수는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 문화에 영향을 받는 동시에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유대교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유대 역사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솔로몬 -
시바의 여왕
시바의 여왕은 성경, 에티오피아, 유대교, 이슬람교 등에서 언급되는 전설적인 인물로, 솔로몬 왕을 방문하여 그의 지혜를 시험하고, 에티오피아 왕조의 기원과 관련되며, 예술 작품과 대중문화에서도 다양하게 묘사된다. -
솔로몬 -
지혜서
지혜서는 19장으로 구성된 성경의 지혜서로, 의와 불의, 삶과 죽음의 대조를 통해 세상 통치자들에게 지혜를 추구하도록 권고하며, 헬레니즘 문화와 유대교적 특징이 혼합된 기원전 1세기 말에서 기원후 1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어로 쓰여진 찬사이자 권고적 담론이다.
2. 생애
아도니야는 암논과 압살롬이 죽은 후, 스스로 왕위 계승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전차와 많은 수행원을 거느렸다. 다윗 왕은 건강이 악화되어 다른 도시에 있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도니야는 육군 사령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의 지지를 얻기 위해 상담했다. 그러나 제사장 사독, 브나야(왕의 경호대장), 나단(궁정 예언자) 등은 아도니야 편에 서지 않았다.
2.1. 왕위 계승 시도
아도니야는 형인 암논과 압살롬이 죽은 후 스스로 왕위 계승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전차와 많은 수행원을 거느렸다. 다윗 왕은 건강이 악화되어 "늙어" 다른 도시에 있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도니야는 육군 사령관 요압과 영향력 있는 제사장 아비아달의 지지를 얻기 위해 상담했다. 그러나 제사장 사독, 브나야(왕의 경호대장), 나단(궁정 예언자) 등은 아도니야 편에 서지 않았다.
아버지의 임박한 죽음을 예상하고 아도니야는 형제 왕자들과 궁정 관리들을 불러 왕위 계승을 선포하기 위한 엄숙한 제사를 지냈다. 특히 그는 솔로몬과 그의 지지자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유대교 연구 성경에 따르면, 솔로몬을 제외함으로써 아도니야는 자신이 사실상 왕위를 찬탈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2. 솔로몬과의 갈등
예언자 나단은 밧세바와 솔로몬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다윗 왕에게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겠다는 약속을 상기시키도록 조언했다. 밧세바와 나단의 설득으로 다윗 왕은 솔로몬을 왕으로 선포하고 즉위시켰다. 아도니야는 솔로몬에게 사면을 받았으나, 다윗 왕을 섬겼던 수넴 출신 아비삭과의 결혼을 요청하면서 다시 왕위를 노린다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아도니야는 아버지 다윗을 죽을 때까지 섬겼던 아비삭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 요청을 왕위를 차지하려는 두 번째 시도로 해석하여, 밧세바가 아도니야를 위해 간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약혼에 대한 승인을 거부했고, 아도니야는 결국 죽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