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곤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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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라곤 국왕은 809년부터 1707년까지 존재했던 아라곤 왕국의 군주를 의미한다. 아라곤 백작령은 809년 아스나르 1세 갈린데스가 프랑크 백작을 대신하여 아라곤 백작이 되면서 시작되었고, 925년 나바라 왕국에 병합되었다. 1035년에는 아라곤 왕국이 성립되었으며, 히메네스 왕조, 바르셀로나 왕조, 트라스타마라 왕조를 거쳐 합스부르크 왕조가 아라곤을 통치했다. 1700년 부르봉 왕조의 펠리페 5세가 즉위했으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패배한 후 1707년 누에바 플란타 칙령으로 아라곤 왕국의 자치권이 폐지되면서 아라곤 국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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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틴 1세는 1396년부터 1410년까지 아라곤 왕국을 통치하며 왕실 권력 강화, 귀족 갈등 억제, 산적 소탕에 힘썼고 아비뇽 교황을 지지했으며 사르데냐 지배력을 강화했으나, 후계자 없이 사망하여 카스페 타협으로 왕위 계승자가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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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곤 국왕 | 
|---|
2. 아라곤 백작령 (809년-1035년)
초기 아라곤은 프랑크 왕국의 변경 백작령으로 시작되었으며, 9세기 말부터 토착 귀족 가문이 통치하며 자치권을 확대해 나갔다. 아스나르 1세 갈린데스가 809년 프랑크 백작을 대신하여 아라곤(하카) 백작이 되었고, 이후 그 자손들이 아라곤 백작을 계승했다.[4]
2. 1. 아스나르 가문
아스나르 1세 갈린데스가 809년 프랑크 백작을 대신하여 아라곤(하카) 백작이 되었고, 이후 그 자손들이 아라곤 백작을 계승했다.[4]| 이름 | 재위 기간 | 
|---|---|
| 아스나르 1세 갈린데스 | 809년 - 839년 | 
| 가르시아 엘 마로 (아스나르 갈린도 1세의 사위) | 839년 - 833년 | 
| 갈린도 가르세스 (가르시아 엘 마로의 아들) | 833년 - 844년 | 
| 갈린도 1세 아스나레스 (아스나르 1세 갈린데스의 아들) | 844년경 - 867년 | 
| 아스나르 2세 갈린데스 (갈린도 1세 아스나레스의 아들) | 867년경 - 893년 | 
| 갈린도 2세 아스나레스 (아스나르 2세 갈린데스의 아들) | 893년 - 922년 | 
| 안드레고트 갈린데스 (갈린도 2세 아스나레스의 딸, 나바라 왕 가르시아 산체스 1세와 결혼) | 922년 - 925년 | 
1035년 나바라 왕국의 산초 3세가 사망하면서 그의 아들 라미로 1세가 아라곤을 상속받아 독립적인 왕국이 되었다.[1]
이후 아라곤 영토는 나바라 왕가(히메노 가문)에 계승되었다.
3. 아라곤 왕국 (1035년-1707년)
마르티노 1세는 바르셀로나 백작 기프레 1세의 마지막 남계 혈통으로, 적자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후 2년간의 공위 시대를 거쳐 1412년 카스페 타협을 통해 트라스타마라 왕가 출신의 페르난도 1세가 아라곤 국왕으로 즉위했다.
페르난도 2세는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1세와 결혼하여 스페인 왕국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수확자 전쟁 동안 아라곤은 펠리페 3세에게 충성했지만, 카탈루냐는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와 루이 14세와 동맹을 맺었다. 카를로스 2세는 후계자가 없었다. 이후 펠리페 5세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승리하여 스페인 부르봉 왕조를 개창하였다. 그는 누에바 플란타 칙령을 통해 아라곤 왕국의 자치권을 폐지하고 중앙집권화를 강화했다.[1]
3. 1. 히메네스 왕조 (1035년-1164년)
산초 3세가 사망하자, 아라곤은 그의 아들 라미로에게 자치 국가로 상속되었다.[1]
| 이름 | 출생 | 결혼 | 사망 | 
|---|---|---|---|
| 레미로 1세 1035년 2월 – 1063년 5월 8일 | 1007년 산초 3세와 Sancha de Aybar의 아들 | 비고르의 에르메신다 1036년 8월 22일 5명의 자녀 | 1063년 5월 8일 그라우스 | 
| 산초 라미레스 (1076년부터 팜플로나 국왕) 1063년 5월 8일 – 1094년 6월 4일 | 1042년 레미로 1세와 비고르의 에르메신다의 아들 | 우르젤의 이사벨라 1065년 1명의 자녀 루시의 펠리시아 1076년 3명의 자녀 | 1094년 6월 4일 우에스카 48세 | 
| 페로 1세 (팜플로나 국왕) 1094년 6월 4일 – 1104년 9월 28일 | 1068년 산초 라미레스와 우르젤의 이사벨라의 아들 | 아키텐의 아그네스 1086년 2명의 자녀 아라곤의 베르타 1097년 자녀 없음 | 1104년 9월 28일 아란 계곡 36세 | 
| 알폰소 1세 (팜플로나 국왕) 1104년 9월 28일 – 1134년 9월 8일 | 1073년 산초 라미레스와 루시의 펠리시아의 아들 | 레온의 우라카 1109년 자녀 없음 | 1134년 9월 8일 우에스카 61세 | 
| 레미로 2세 1134년 9월 8일 – 1137년 11월 13일 | 1086년 4월 24일 산초 라미레스와 루시의 펠리시아의 아들 | 아키텐의 아그네스 1명의 자녀 | 1157년 8월 16일 우에스카 71세 | 
| 페이로넬라 1137년 11월 13일 – 1164년 7월 18일 | 1136년 7월 29일 우에스카 레미로 2세와 아키텐의 아그네스의 딸 | 라몬 베렝가르 4세 1137년 8월 11일 5명의 자녀 | 1174년 10월 16일 바르셀로나 38세 | 
3. 2. 바르셀로나 왕조 (1164년-1410년)
페트로닐라와 바르셀로나 백작 라몬 베렝가르 4세의 결혼으로 아라곤 왕국과 바르셀로나 백작령이 통합되어 아라곤 연합 왕국이 형성되었다.| 이름 | 출생 | 결혼 | 사망 | 
|---|---|---|---|
| 알폰소 2세 1164년 7월 18일 – 1196년 4월 25일 | 1157년 우에스카[1] 바르셀로나의 라몬 베렝게르 4세와 페트로닐라의 아들 | 카스티야의 산차 자녀 7명 | 1196년 4월 25일 페르피냥 44세 | 
| 페드로 2세 1196년 4월 25일 – 1213년 9월 13일 | 1178년 우에스카[2] 알폰소 2세와 카스티야의 산차의 아들 | 몽펠리에의 마리아 1204년 6월 15일 자녀 2명 | 1213년 9월 12일 뮈레 전투 약 35세 | 
| 하이메 1세 1213년 9월 13일 – 1276년 7월 27일 | 1208년 2월 2일 몽펠리에 페드로 2세와 몽펠리에의 마리아의 아들 | 카스티야의 엘레오노르 1221 자녀 1명 헝가리의 욜란다 1235 자녀 10명 테레사 길 데 비다우레 자녀 2명 | 1276년 7월 27일 발렌시아 68세 | 
| 페드로 3세 1276년 7월 27일 – 1285년 11월 2일 | 1240년 발렌시아 하이메 1세와 헝가리의 욜란다의 아들 | 시칠리아의 콘스탄스 1262년 6월 13일 자녀 6명 | 1285년 11월 2일 비라프랑카 델 페네데스 45세 | 
| 알폰소 3세 1285년 11월 2일 – 1291년 6월 18일 | 1265년 발렌시아 페드로 3세와 시칠리아의 콘스탄스의 아들 | 잉글랜드의 엘레오노르 1290년 8월 15일 자녀 없음 | 1291년 6월 18일 바르셀로나 27세 | 
| 하이메 2세 1291년 6월 18일 – 1327년 11월 2일 | 1267년 8월 10일 발렌시아 페드로 3세와 시칠리아의 콘스탄스의 아들 |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291년 12월 1일 자녀 없음 앙주의 블랑슈 1295년 10월 29일 자녀 10명 마리 드 뤼지냥 1315년 6월 15일 자녀 없음 엘리센다 데 몬카다 1322년 12월 25일 자녀 없음 | 1327년 11월 5일 바르셀로나 60세 | 
| 알폰소 4세 1327년 11월 2일 – 1336년 1월 24일 | 1299년 나폴리 하이메 2세와 앙주의 블랑슈의 아들 | 엔텐사의 테레사 1314 자녀 7명 카스티야의 엘레오노르 자녀 2명 | 1336년 1월 27일 바르셀로나 37세 | 
| 페드로 4세 1336년 1월 24일 – 1387년 1월 5일 | 1319년 10월 5일 발라게르 알폰소 4세와 엔텐사의 테레사의 아들 | 나바라의 마리아 1338 자녀 2명 포르투갈의 엘레오노르 1347 자녀 없음 시칠리아의 엘레오노르 자녀 4명 | 1387년 1월 5일 바르셀로나 68세 | 
| 후안 1세 1387년 1월 5일 – 1396년 5월 19일 | 1350년 12월 27일 페르피냥 페드로 4세와 시칠리아의 엘레오노르의 아들 | 아르마냐크의 마르타 자녀 1명 바의 욜란다 자녀 3명 | 1396년 5월 19일 포이사 46세 | 
| 마르틴 1세 1396년 5월 19일 – 1410년 5월 31일 | 1356년 지로나 페드로 4세와 시칠리아의 엘레오노르의 아들 | 루나의 마리아 1372년 6월 13일 자녀 4명 프라데스의 마가렛 1409 자녀 없음 | 1410년 5월 31일 바르셀로나 54세 | 
3. 3. 공위 시대 (1410년-1412년)
1410년 마르틴 1세가 적자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바르셀로나 가문의 직계 혈통이 끊겼다. 이후 2년간 아라곤 왕국은 후계자 문제로 공위 시대를 겪었다.[5] 이 시기, 왕위 계승 후보자는 다음과 같았다.- 파드리케: 루나 백작이자 마르티노 1세의 사생아
- 하이메: 우르헬 백작이자 아라곤의 알폰소 4세의 증손자
- 알폰소: 하이메 2세의 손자이자 간디아의 공작
- 루이 3세 당주 공작: 칼라브리아 공작이자 아라곤의 후안 1세의 외손자
- 페르난도 데 트라스타마라: 아라곤의 페드로 4세의 외손자이자 카스티야의 왕자
1412년 카스페 타협(Compromiso de Caspe)을 통해, 페르난도 왕자가 총 9표 중 6표를 얻어 아라곤 국왕 페르난도 1세로 즉위하였다. 이로써 아라곤 왕국은 트라스타마라 가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3. 4. 트라스타마라 왕조 (1412년-1516년)
1410년 마르티노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아라곤 왕국은 2년간의 공위 시대를 겪었다. 1412년 카스페 타협을 통해 카스티야 왕국의 트라스타마라 왕가 출신 페르난도 1세가 아라곤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트라스타마라 왕조가 시작되었다.후안 2세의 아들 페르난도 2세는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1세와 결혼하여 스페인 왕국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는 카스티야-레온 왕국 (1474년 - 1516년), 나바라 왕국 (1474년-1504년), 시칠리아 왕국 (1474-1516), 나폴리 왕국 (1504-1516)의 왕위를 겸임하였다.
3. 4. 1. 후안 2세에 대항하는 왕 (1462년-1472년)
카탈루냐 내전 동안, 아라곤 왕위를 주장한 세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발렌시아 왕국은 포함하지 않고, 카탈루냐 지역에 한정되었다.| 이름 | 재위 기간 | 
|---|---|
| 엔리케 4세 | 1462년 ~ 1463년 | 
| 페드루 | 1463년 ~ 1466년 | 
| 르네 | 1466년 ~ 1472년 | 
3. 5. 합스부르크 왕조 (1516년-1700년)
헨트카스티야 왕 펠리페 1세와 후아나 여왕의 아들
1526년 3월 10일
자녀 3명
유스테 수도원
58세 사망
바야돌리드
카를 1세와 이사벨 데 포르투갈의 아들
1543년
자녀 1명
잉글랜드 여왕 메리 1세
1554년
자녀 없음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
1559년
자녀 2명
안나 데 아우스트리아
1570년 5월 4일
자녀 5명
마드리드
71세 사망
마드리드
펠리페 1세와 안나 데 아우스트리아의 아들
1599년 4월 18일
자녀 5명
마드리드
42세 사망
바야돌리드
펠리페 2세와 마르가리타 데 아우스트리아의 아들
1615년
자녀 7명
마리아나 데 아우스트리아
1649년
자녀 5명
마드리드
60세 사망
마드리드
펠리페 3세와 마리아나 데 아우스트리아의 아들
1679년 11월 19일
자녀 없음
마리아 안나 폰 팔츠-노이부르크
1690년 5월 14일
자녀 없음
마드리드
38세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