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은 19세기 프랑스 법조인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이 마푸체족의 지지를 받아 남미에 세운 단명 왕국이다. 투낭은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압력에 시달리던 마푸체족을 설득하여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칠레 육군에 의해 체포되어 왕국은 멸망했다. 이후 투낭은 정신병자로 취급되어 프랑스로 추방되었고, 그의 후손들이 왕위 계승을 주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 왕국은 기묘하고 반쯤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로 평가받으며, 현재는 왕위 요구자들 간의 분쟁 대상이 되기도 한다.

2. 역사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은 19세기에 남미에 세운 단명 왕국으로, 프랑스의 법조인이자 모험가인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Orélie-Antoine de Tounens)이 마푸체 지도자 망인 웨누(Mangin wenu)를 비롯한 여러 마푸체족 지도자, 곧 롱코들에게 왕으로 추대받아 세워졌다.

오렐리-앙투안 드 투넹스, 아라우카니아 및 파타고니아 국왕 오렐리-앙투안 1세.


1860년대에 오렐리가 남미 지역을 찾았을 때, 아라우카니아주지역과 파타고니아(Patagonia)에 살던 토착민 마푸체족은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칠레아르헨티나 정부의 군사적, 경제적 압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렐리는 마푸체의 족장인 롱코들을 설득해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게 했고, 이들과 오렐리가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이란 나라를 세웠다.

1858년, 프랑스 페리고의 전직 변호사였던 앙투안 드 투넹스는 알론소 데 에르실라의 저서 ''라 아라우카나''를 읽고 아라우카니아의 왕이 되려는 영감을 받아 아라우카니아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칠레의 코킴보 항구에 상륙하여 비오비오 남부에 도착한 후 몇몇 론코(마푸체 부족 지도자)를 만났다. 그는 칠레로부터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에게 무기와 프랑스의 도움을 약속했다. 인디언들은 그를 마푸체의 대토키, 최고 추장으로 선출했다.[9][10]

1860년 11월 17일과 1860년 11월 20일, 자칭 군주[4][11][6][12][13]는 두 개의 칙령을 통해 아라우카니아와 동부 파타고니아 지역은 다른 국가에 의존할 필요가 없으며, 스스로를 오렐리-앙투안 1세 국왕으로 칭하며 아라우카니아 왕국을 건국한다고 선포했다. 그는 페르켄코를 자신의 왕국의 수도로 선언하고, 국기를 만들었으며, ''누벨 프랑스''라는 이름으로 화폐를 주조했다.

아라우카니아 및 파타고니아 왕국의 원래 문장.


그는 1863년 회고록에서 "나는 1860년 11월 17일의 조례에 따라 왕의 칭호를 얻었는데, 이 조례는 내가 세운 세습적 입헌 정부의 기초를 세웠다 [...] 11월 17일, 나는 아라우카니아로 돌아가 왕으로 공개적으로 인정받았는데, 이는 12월 25일, 26일, 27일, 30일에 이루어졌다. 아라우카니아인들은 나에게 권력을 부여하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자유가 있지 않았는가?"라고 썼다.[14]

오렐리는 이 나라의 국제적 승인을 위해 애썼으나, 아라우카니아 및 파타고니아 왕국의 건국은 칠레군의 아라우카니아 점령으로 이어졌다. 칠레 육군이 아라우카니아 지역을 밀고 들어와 오렐리를 사로잡음으로서 이 왕국은 간단히 무너졌다. 칠레 대통령 호세 호아킨 페레스는 1862년 1월 5일, 칠레 군대 사령관 코르넬리오 사아베드라 로드리게스에게 앙투안 드 투넹스를 체포할 권한을 부여했다. 투넹스는 1862년 9월 2일, 산티아고 법원에 의해 정신 이상자로 판결을 받고[7] 1862년 10월 28일 프랑스로 추방되었다.[8] 오렐리는 칠레, 아르헨티나 양국 정부로부터 제정신이 아닌 정신병자처럼 다뤄졌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고문이나 형벌은 받지 않고 칠레의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가 프랑스로 돌아와 1878년에 죽었다.

1870년 톨텐에서 열린 마푸체 론코들과 사아베드라의 만남에서, 마푸체 추장들은 사아베드라에게 앙투안 드 투넹이 다시 아라우카니아에 나타났다고 밝혔다.[15] 1871년 아르헨티나 당국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압수한 무기 선적은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이 주문한 것이라는 보고가 있다.[16]

1870년 칠레 코랄에 정박한 프랑스 군함, ''당트르카스토''는 사아베드라에게 프랑스의 어떤 간섭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15] 1870년 압돈 시푸엔테스에게 나폴레옹 3세의 ''국무원''에서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을 지지하여 칠레에 대항하는 개입이 논의되었다는 정보가 제공되면서 이러한 두려움에 근거가 있을 수 있다.[17]

1873년 8월 28일, 파리 형사 법원은 초대 "아라우카니아-파타고니아 왕"인 앙투안 드 투넹이 주권 지위에 대한 그의 주장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판결했다.[18] 그는 수년간 그의 왕국을 되찾기 위해 애썼지만 실패한 후, 1878년 9월 17일 프랑스 투르토락에서 가난 속에 사망했다.[19]

오렐리의 후손들은 지금까지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의 계승을 자처하며 현재 그의 후손은 1952년에 태어난 펠리페(Felipe)이다.

역사가 사이먼 콜리어와 윌리엄 F. 세이터는 아라우카니아 왕국을 "기묘하고 반쯤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라고 묘사했다.[19] 여행 작가 브루스 채트윈에 따르면, 이 "왕국"의 후기 역사는 "남아메리카의 정치보다는 부르주아 프랑스의 강박관념"에 가깝다고 한다.[20] 아라우카니아와 파타고니아의 왕위 요구자들은 환상의 군주이자 주권자로 불렸으며,[23][24][25][26][27] "법적 실체가 없는 왕국에 대한 공상적인 주장을 할 뿐이며 국제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다".[28] 따라서 "아라우카니아의 왕위"는 때때로 "왕위 요구자"들 사이의 분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29]

일부 언론인들은 "1860년 자칭 왕이었던 프랑스 모험가 오렐리-앙투안의 기억과 마푸체족의 권리 옹호가 이 기묘한 상징적 군주의 행동을 이끌고 있다"고 보도했다.[30]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마푸체 분쟁이 격화되면서 오랫동안 프랑스 사회에서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아라우카니아와 파타고니아 왕국에 새로운 목적이 부여되었다"고 썼다.[31]

마푸체 작가 페드로 카유케오는 이 왕국을 놓쳐버린 기회로 여기며, 프랑스가 지배하는 아라우카니아에서는 마푸체족이 2018년 국민투표에서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가능성을 부여받은 카나크족과 유사한 권리를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32][33]

2. 1. 건국 배경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은 마푸체 지도자 망인 웨누(Mangin wenu)를 비롯한 여러 마푸체 지도자, 곧 롱코들이 프랑스의 법조인이자 모험가인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Orélie-Antoine de Tounens)를 왕으로 추대하여 19세기에 남미에 세운 단명 왕국이다.

오렐리가 1860년대에 남미 지역을 찾았을 때, 아라우카니아주지역과 파타고니아(Patagonia)에 살던 토착민 마푸체족은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칠레아르헨티나 정부의 군사적, 경제적 압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렐리는 마푸체의 족장인 롱코들을 설득해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게 했고, 이들과 오렐리가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이란 나라를 세웠다.

오렐리는 이 나라의 국제적 승인을 위해 애썼으나 칠레 육군이 아라우카니아 지역을 밀고 들어와 오렐리를 사로잡음으로서 이 왕국은 간단히 무너졌다. 오렐리는 칠레, 아르헨티나 양국 정부로부터 제정신이 아닌 정신병자처럼 다뤄졌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고문이나 형벌은 받지 않고 칠레의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가 프랑스로 돌아와 1878년에 죽었다.

2. 2.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의 등장

19세기에 남미에 세워진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은 마푸체 지도자 망인 웨누(Mangin wenu)를 비롯한 여러 마푸체 지도자, 곧 롱코들이 프랑스의 법조인이자 모험가인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을 왕으로 추대하여 세운 단명 왕국이다.

1860년대 오렐리가 남미 지역을 찾았을 때, 아라우카니아주지역과 파타고니아에 살던 토착민 마푸체족은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칠레아르헨티나 정부의 군사적, 경제적 압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렐리는 마푸체의 족장인 롱코들을 설득해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게 했고, 이들과 오렐리가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을 세웠다.

오렐리는 이 나라의 국제적 승인을 위해 애썼으나 칠레 육군이 아라우카니아 지역을 밀고 들어와 오렐리를 사로잡음으로서 이 왕국은 간단히 무너졌다. 오렐리는 칠레, 아르헨티나 양국 정부로부터 제정신이 아닌 정신병자처럼 다뤄졌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고문이나 형벌은 받지 않고 칠레의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가 프랑스로 돌아와 1878년에 죽었다. 오렐리의 후손들은 지금까지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의 계승을 자처하며 현재 그의 후손은 1952년에 태어난 펠리페(Felipe)이다.

2. 3. 왕국 건국

19세기에 남미에 세워진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Orélie-Antoine de Tounens)를 왕으로 추대한 단명 왕국이다. 프랑스의 법조인이자 모험가인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은 마푸체 지도자 망인 웨누(Mangin wenu)를 비롯한 여러 마푸체 지도자, 곧 롱코들의 지지를 받았다.

1860년대 남미 지역을 찾은 오렐리는 아라우카니아주 지역과 파타고니아(Patagonia)에 살던 토착민 마푸체족칠레아르헨티나 정부의 군사적, 경제적 압력에 시달리는 상황을 파악했다. 오렐리는 마푸체의 족장인 롱코들을 설득해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게 했고, 이들과 함께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을 건국했다.

오렐리는 왕국의 국제적 승인을 위해 노력했으나, 칠레 육군의 침공으로 체포되면서 왕국은 무너졌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정부는 오렐리를 정신병자로 취급하여 정신병원에 수감했고, 이후 프랑스로 돌아가 1878년 사망했다. 오렐리의 후손들은 현재까지 왕국 계승을 주장하고 있으며, 1952년생 펠리페(Felipe)가 그 후손이다.

2. 4. 칠레의 진압과 왕국의 멸망

19세기마푸체족 지도자 망인 웨누(Mangin wenu)를 비롯한 여러 롱코들이 프랑스의 법조인이자 모험가인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을 왕으로 추대하여 남미에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을 세웠다.

1860년대에 오렐리가 남미 지역을 찾았을 때, 아라우카니아주 지역과 파타고니아에 살던 마푸체족칠레아르헨티나 정부의 군사적, 경제적 압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렐리는 마푸체 족장들을 설득해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게 했고, 이들과 함께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을 건국했다.

오렐리는 왕국의 국제적 승인을 위해 노력했으나, 칠레 육군이 아라우카니아 지역을 점령하고 오렐리를 체포하면서 왕국은 멸망했다. 오렐리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정부에 의해 정신병자로 취급되어 칠레의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가 프랑스로 추방되었고, 1878년에 사망했다. 오렐리의 후손들은 현재까지 왕국의 계승을 주장하고 있으며, 현재 후손은 1952년생 펠리페(Felipe)이다.

2. 5. 오렐리앙투안 1세의 귀환 시도와 프랑스 개입설

1870년 톨텐에서 열린 마푸체 론코들과 사아베드라의 만남에서, 마푸체 추장들은 사아베드라에게 앙투안 드 투넹이 다시 아라우카니아에 나타났다고 밝혔다.[15] 아라우카니아에 자신의 존재가 드러났다는 소식을 들은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은 아르헨티나로 도주했지만, 킬라판에게 무기를 얻을 것을 약속했다.[15] 1871년 아르헨티나 당국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압수한 무기 선적은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이 주문한 것이라는 보고가 있다.[16]

1870년 칠레 코랄에 정박한 프랑스 군함, ''당트르카스토''는 사아베드라에게 프랑스의 어떤 간섭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15] 1870년 압돈 시푸엔테스에게 나폴레옹 3세의 ''국무원''에서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을 지지하여 칠레에 대항하는 개입이 논의되었다는 정보가 제공되면서 이러한 두려움에 근거가 있을 수 있다.[17]

1873년 8월 28일, 파리 형사 법원은 초대 "아라우카니아-파타고니아 왕"인 앙투안 드 투넹이 주권 지위에 대한 그의 주장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판결했다.[18] 그는 수년간 그의 왕국을 되찾기 위해 애썼지만 실패한 후, 1878년 9월 17일 프랑스 투르토락에서 가난 속에 사망했다.[19]

2. 6. 왕국 멸망 이후

19세기에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Orélie-Antoine de Tounens)이 마푸체족의 왕으로 추대되어 세워진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칠레아르헨티나의 군사적, 경제적 압력으로 인해 멸망했다.[19] 오렐리는 칠레 군대에 사로잡혀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가 프랑스로 돌아와 1878년에 사망했다.[19]

역사가 사이먼 콜리어와 윌리엄 F. 세이터는 아라우카니아 왕국을 "기묘하고 반쯤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라고 묘사했다.[19] 여행 작가 브루스 채트윈에 따르면, 이 "왕국"의 후기 역사는 "남아메리카의 정치보다는 부르주아 프랑스의 강박관념"에 가깝다고 한다.[20] 오렐리의 후손들은 현재까지 왕국 계승을 주장하고 있으며, 현재 후손은 1952년생 펠리페(Felipe)이다.

아라우카니아와 파타고니아의 왕위 요구자들은 환상의 군주이자 주권자로 불렸으며,[23][24][25][26][27] "법적 실체가 없는 왕국에 대한 공상적인 주장을 할 뿐이며 국제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다".[28] 따라서 "아라우카니아의 왕위"는 때때로 "왕위 요구자"들 사이의 분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29]

일부 언론인들은 "1860년 자칭 왕이었던 프랑스 모험가 오렐리-앙투안의 기억과 마푸체족의 권리 옹호가 이 기묘한 상징적 군주의 행동을 이끌고 있다"고 보도했다.[30]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마푸체 분쟁이 격화되면서 오랫동안 프랑스 사회에서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아라우카니아와 파타고니아 왕국에 새로운 목적이 부여되었다"고 썼다.[31]

마푸체 작가 페드로 카유케오는 이 왕국을 놓쳐버린 기회로 여기며, 프랑스가 지배하는 아라우카니아에서는 마푸체족이 2018년 국민투표에서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가능성을 부여받은 카나크족과 유사한 권리를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32][33]

3. 왕위 계승자

앙투안 드 투넹은 자녀가 없었지만, 1878년 그가 사망한 이후, 그와 아무런 친족 관계가 없는 일부 프랑스 시민들이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의 왕위 계승자를 자처했다. 마푸체족이 이를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인식조차 하는지는 불분명하다.[34]

번호이미지칭호이름재위 기간참고기타 정보
1
117x117px
오렐리-앙투안 1세오렐리-앙투안 드 투넹
(1825–1878)
1860–1862앙투안 드 투넹은 1860년 11월 17일 칙령으로 아라우카니아 왕국을 창건하고 스스로를 선포하거나 마푸체 민족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오렐리-앙투안 1세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는 프랑스와 마푸체 출신 각료를 임명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군대에 의해 전복된 후 프랑스로 돌아가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칭호를 유지했다.



번호이미지칭호이름
(출생–사망)
재위 기간참고기타 정보
1
80px
오렐리-앙투안 1세오렐리-앙투안 드 투넹
(1825–1878)
1862–1878
2
80px
아킬 1세구스타브-아킬 라비아르드
(1841–1902)
1878–1902[35][36]전임자의 비서. 앙투안 드 투넹에 의해 오카스 공작 및 키알레온 공작으로 칭해졌으며, 1882년 3월 앙투안 드 투넹의 계승자를 자처했다.
3
80px
앙투안 2세앙투안-이폴리트 크로
(1833–1903)
1902–1903[35][37]아킬 라비아르드에 의해 니아칼렐 공작으로 칭해졌으며 아라우카니아 왕국의 인장 보관인으로 임명되었다.
4
80px
로르 테레즈 1세로르-테레즈 크로
(1856–1916)
1903–1916앙투안 2세의 딸
5
80px
앙투안 3세자크 앙투안 베르나르
(1888–1952)
1916–1952필립 공에게 양위했다.
6
80px
필립 공필리프 폴 알렉상드르 앙리 보아리
(1927–2014)
1952–2014[37]
-
63x63px
섭정 필리프 드 라발레트필리프 드 라발레트2014–2014섭정 위원회에 의한 후임자 선출 전까지 왕국의 섭정.
7
80px
앙투안 4세장-미셸 파라실리티 디 파라
(1942–2017)
2014–2017
-섭정 쉴라 라니쉴라 라니2017–2018섭정 위원회에 의한 후임자 선출 전까지 왕국의 섭정.
8
80px
프레데릭 1세프레데릭 로드리게스-루스
(1964–)
2018–현재현재 군주


3. 1. 역대 군주 및 왕위 요구자

앙투안 드 투넹은 자녀가 없었지만, 1878년 그가 사망한 이후, 그와 아무런 친족 관계가 없는 일부 프랑스 시민들이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의 왕위 계승자를 자처했다. 마푸체족이 이를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인식조차 하는지는 불분명하다.[34]

번호이미지칭호이름재위 기간참고기타 정보
1오렐리-앙투안 1세오렐리-앙투안 드 투넹
(1825–1878)
1860–1862앙투안 드 투넹은 1860년 11월 17일 칙령으로 아라우카니아 왕국을 창건하고 스스로를 선포하거나 마푸체 민족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오렐리-앙투안 1세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는 프랑스와 마푸체 출신 각료를 임명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군대에 의해 전복된 후 프랑스로 돌아가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칭호를 유지했다.



번호이미지칭호이름
(출생–사망)
재위 기간참고기타 정보
1오렐리-앙투안 1세오렐리-앙투안 드 투넹
(1825–1878)
1862–1878
2아킬 1세구스타브-아킬 라비아르드
(1841–1902)
1878–1902[35][36]전임자의 비서. 앙투안 드 투넹에 의해 오카스 공작 및 키알레온 공작으로 칭해졌으며, 1882년 3월 앙투안 드 투넹의 계승자를 자처했다.
3앙투안 2세앙투안-이폴리트 크로
(1833–1903)
1902–1903[35][37]아킬 라비아르드에 의해 니아칼렐 공작으로 칭해졌으며 아라우카니아 왕국의 인장 보관인으로 임명되었다.
4로르 테레즈 1세로르-테레즈 크로
(1856–1916)
1903–1916앙투안 2세의 딸
5앙투안 3세자크 앙투안 베르나르
(1888–1952)
1916–1952필립 공에게 양위했다.
6필립 공필리프 폴 알렉상드르 앙리 보아리
(1927–2014)
1952–2014[37]
-섭정 필리프 드 라발레트필리프 드 라발레트2014–2014섭정 위원회에 의한 후임자 선출 전까지 왕국의 섭정.
7앙투안 4세장-미셸 파라실리티 디 파라
(1942–2017)
2014–2017
-섭정 쉴라 라니쉴라 라니2017–2018섭정 위원회에 의한 후임자 선출 전까지 왕국의 섭정.
8프레데릭 1세프레데릭 로드리게스-루스
(1964–)
2018–현재현재 군주


3. 2. 섭정

4. 국기

출처에 따르면 투넹스가 어떤 깃발을 사용했는지 불분명하다. 그의 "정부"는 공식화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38] 일부 소식통은 녹색-파란색-흰색 깃발이 사용되었다고 말하고, 다른 소식통은 파란색-흰색-녹색 깃발이 사용되었다고 말한다.[38] 녹색-파란색-흰색 깃발은 오렐리에가 아라우카니아에서 몇 주 동안만 게양했을 가능성이 높다. 파란색-흰색-녹색 버전은 오렐리에가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디자인했으며, 그의 사후에도 왕위 참칭자들이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39]

5. 대중문화 속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


  • 1990년 조르주 캄파나와 스테판 쿠르크가 감독한 TV 미니시리즈 ''파타고니아의 왕''이 제작되었다.[40]
  • 1991년 마크 에반스가 감독한 TV 영화 ''왕의 게임''이 제작되었다.[40]
  • 2017년 영화 ''레이''는 이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40]
  • 장 라스파유는 ''나는 파타고니아의 왕 앙투안 드 투넹입니다''(1981)를 저술했다.
  • ''하츠 오브 아이언 IV'' 확장팩 "Trial of Allegiance"에서 플레이어는 칠레를 플레이하여 해당하는 중점 트리를 통해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을 복원할 수 있다.

6. 평가

참조

[1] 웹사이트 THE OPERA OF GUILLERMO FRICK AND THE ARAUCANIAN NATIONAL ANTHEM http://www.araucanie[...] 2016-05-11
[2] 서적 Historia, Geografía y Ciencias Sociales 2° Educación Media Santillana
[3] 뉴스 Why the lost kingdom of Patagonia is a live issue for Chile's Mapuche people https://www.theguard[...] 2022-05-06
[4] 서적 Patagonia: History, Myths and Legends https://books.google[...] Duggan-Webster 2001-09-10
[5]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Native Peoples of the Americas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09-10
[6] 서적 La narrativa chilena desde la independencia hasta la Guerra del Pacífico: Costumbres e historia, 1860-1879 https://books.google[...] Editorial Andres Bello 2001-09-10
[7] 서적 Latin America's Wars: The age of the caudillo, 1791-1899 https://books.google[...] Brassey's, Incorporated 2003-09-10
[8] 서적 Le roi français d'Araucanie https://books.google[...] PLB 1990-09-10
[9] 웹사이트 The red, white, and black continent: Latin America, land of reformers and rebels https://archive.org/[...] Garden City, N. Y., Doubleday 1966-09-10
[10] 서적 Le rêve du sorcier : Antoine de Tounens, roi d'Araucanie et de Patagonie : une biographie. Tome I La Lauze 2016
[11] 서적 El naufragio del naturalista belga https://books.google[...] RIL Editores 2009-09-10
[12] 웹사이트 Procesos https://books.google[...] Corporación Editora Nacional 2000-09-10
[13] 서적 Emigration politique : une perspective comparative: Italiens et Espagnols en Argentine et en France, XIXe-XXe siècles https://books.google[...] Harmattan 2001-09-10
[14] 웹사이트 Orllie-Antoine 1er, roi d'Araucanie et de Patagonie: son avénement au trône et sa captivité au Chili, relation écrit par lui-même https://books.google[...] 1863-09-10
[15] 문서 Bengoa 2000, pp. 227-230.
[16] 문서 Bengoa 2000, p. 187.
[17] 문서 Cayuqueo 2020, p. 59
[18] 서적 Le XIXe siècle : journal quotidien politique et littéraire https://gallica.bnf.[...]
[19] 문서 'A history of Chile, 1808–2002'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 문서 In Patagonia Random House
[21] 문서 Chile Insight Langenscheidt Publishing
[22] 문서 The Men who would be King
[23] 서적 Politica Hermetica Les langues secrètes https://books.google[...] L'Age d'homme
[24] 서적 Journal du droit international privé et de la jurisprudence comparée https://books.google[...]
[25] 서적 Histoire secrète de l'Aquitaine https://books.google[...] A. Michel
[26] 서적 Argentine : Le tango des ambitions https://books.google[...] Nevicata
[27] 서적 Bulletin de la Société de géographie de Lille https://books.google[...]
[28] 서적 Intermédiaire des chercheurs et curieux https://books.google[...] ICC
[29] 웹사이트 Querelle dynastique au royaume d'Araucanie https://www.lepoint.[...] 2022-11-29
[30] 뉴스 Federico I, un nieto de exiliado republicano en el 'trono' de la Patagonia https://elpais.com/i[...] 2022-11-29
[31] 웹사이트 'We are hostages': indigenous Mapuche accuse Chile and Argentina of genocide http://www.theguardi[...] 2022-11-29
[32] 문서 Cayuqueo 2020, p. 55
[33] 문서 Cayuqueo 2020, p. 60
[34] 웹사이트 France's forgotten monarchs https://www.telegrap[...] 2016-02-05
[35] 문서 Diccionario histórico argentino Ediciones Historicas
[36] 간행물 Revista chilena de historia y geografía Impr. Universitaria 1931
[37] 서적 Pequeña historia patagónica Emecé Editores 1959
[38] 웹사이트 El reino de Araucanía y Patagonia https://books.google[...] 1973
[39] 웹사이트 Kingdom of Araucania and Patagonia (1860-1862) https://www.crwflags[...]
[40] 뉴스 Rey review – dreamlike drama about a man who would be king https://www.theguard[...] 2019-02-0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