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데오 비아바티
1. 개요
아메데오 비아바티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1933년 볼로냐 FC 1909에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고, 볼로냐의 전성기를 이끌며 세리에 A 3회 우승, 파리 만국박람회 국제 대회 우승, 상부 이탈리아 컵 우승을 경험했다. 1938년부터 1947년까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18경기 8골을 기록했고, 1938년 FIFA 월드컵과 중부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은퇴 후에는 감독으로 활동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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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아메데오 비아바티 |
|---|---|
| 출생일 | 1915년 4월 4일 |
| 출생지 | 이탈리아 볼로냐 |
| 사망일 | 1979년 4월 22일 |
| 사망지 | 이탈리아 볼로냐 |
| 포지션 | 공격수 / 미드필더 (은퇴) |
| 청소년 클럽 | 1930–1932: 볼로냐 |
|---|---|
| 클럽 | 1934–1935: 볼로냐 (16경기, 6골) 1934–1935: 카타니아 (30경기, 9골) 1935–1947: 볼로냐 (203경기, 58골) 1948–1949: 레지나 (경기수와 득점수 정보 없음) 1949–1950: 이몰레세 (경기수 정보 없음, 3골) 1950–1951: 마젠타 (경기수와 득점수 정보 없음) 1951–1952: 만두리아 스포르트 (경기수와 득점수 정보 없음) 1953–1954: 몰페타 (1경기 이상, 1골 이상) 1954–1955: 벨루노 (9경기 이상, 3골 이상) |
| 국가대표팀 | 1938–1947: 이탈리아 (18경기, 8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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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클럽 | 1949–1950: 이몰레세 1950–1951: 마젠타 1951–1952: 만두리아 스포르트 1953–1954: 몰페타 1954–1955: 벨루노 B 알마 유벤투스 파노 1906: 파노 보카 산 라차로 1969–1970: 로베레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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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달 | FIFA 월드컵: 1938 프랑스 우승 중부 유럽 선수권 대회: 1933-35 시즌 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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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자 표기 | ameˈdɛːo bjaˈvaːt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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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몰레세 칼초 1919의 축구 선수 -
에드몬도 파브리
에드몬도 파브리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으로, 선수 시절 윙어로 활동했으며 만토바 FC의 세리에 A 승격,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토리노 FC와 볼로냐 FC 1909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
이몰레세 칼초 1919의 축구 선수 -
죄르지 가리치
헝가리 태생의 오스트리아 축구 선수 죄르지 가리치는 우측 풀백으로 활약하며 오스트리아 국가대표로 UEFA 유로 2008에 출전했고, 라피트 빈, SSC 나폴리 등 여러 클럽에서 뛰었다. -
1938년 FIFA 월드컵 선수 명단 -
실비오 피올라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실비오 피올라는 세리에 A 역대 최다 득점자 중 한 명으로, 여러 클럽에서 활약하며 1938년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끄는 등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고 사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1938년 FIFA 월드컵 선수 명단 -
올드르지흐 네예들리
올드르지흐 네예들리는 AC 스파르타 프라하의 전성기를 이끌고 체코슬로바키아 국가대표팀에서 맹활약하며 1934년 FIFA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축구 선수이다. -
칼초 카타니아의 축구 선수 -
다비드 수아소
다비드 수아소는 온두라스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공격수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칼리아리 칼초에서 두각을 나타내 세리에 A 득점 3위에 올랐고, 온두라스 국가대표팀으로 57경기에 출전하여 17골을 기록했으며, 은퇴 후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
칼초 카타니아의 축구 선수 -
엔초 베아르초트
엔초 베아르초트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프로 선수 시절 세리에 A에서 251경기에 출전했고, 감독으로서는 '언론 침묵' 전략과 함께 다양한 상과 훈장을 수상하며 2011년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1. 볼로냐 전성기를 이끌다
비아바티는 1933년 5월 21일, 볼로냐 소속으로 7-0으로 이긴 카살레전에서 세리에 A 신고식을 치렀다. 그는 같은 시기 세리에 B의 카타니아로 건너가 경기를 뛰기도 했다. 볼로냐는 그의 현역 시절에 전성기를 구가하며, 1936-37 시즌, 1938-39 시즌, 그리고 1940-41 시즌에 총 3번의 세리에 A 우승을 들어올렸고,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국제 대회도 정상에 올랐고, 1946년 상부 이탈리아컵도 손에 넣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비아바티는 1938년부터 1947년까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 18번 출전해 8골을 기록했다. 1938년 FIFA 월드컵과 제3회 중부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1938년 6월 12일, 개최국 프랑스와의 1938년 월드컵 8강전에서 첫 국가대표팀 경기를 치렀다. 1939년 5월 13일, 밀라노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수비진과 골키퍼를 모두 제치고 텅 빈 골대에 공을 넣은 것으로 유명하다.
3.1. 1938년 FIFA 월드컵 우승
비아바티는 1938년부터 1947년까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경기에 18번 출전해 8골을 기록했고, 프랑스에서 열린 1938년 월드컵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했으며, 제3회 중부 유럽 선수권 대회도 우승했다. 그는 1938년 6월 12일, 개최국 프랑스를 3-1로 이긴 1938년 월드컵 8강전에서 첫 국가대표팀 경기를 치렀다.
3.2. 잉글랜드를 상대로 한 기억에 남는 골
비아바티는 1939년 5월 13일에 밀라노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수비진과 골키퍼를 모두 제치고 텅 빈 골대에 공을 넣은 골로 회자된다.
3.3. 중부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
비아바티는 1938년부터 1947년까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경기에 18번 출전해 8골을 기록했고, 1938년 월드컵과 제3회 중부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4. 감독 경력
은퇴 후, 비아바티는 감독으로 전향하여 축구 경력을 이어나갔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5. 수상 내역
Amedeo Biavati이탈리아어는 볼로냐 소속으로 3번의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고,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38년 월드컵과 제3회 중부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5.1. 클럽
비아바티는 1933년 5월 21일, 볼로냐 소속으로 7-0으로 이긴 카살레전에서 세리에 A 신고식을 치렀다. 같은 시기 세리에 B의 카타니아에서 경기를 뛰기도 했다. 볼로냐는 그의 현역 시절에 전성기를 구가하며, 1936-37 시즌, 1938-39 시즌, 1940-41 시즌에 총 3번의 세리에 A 우승을 들어올렸고,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국제 대회도 정상에 올랐고, 1946년 상부 이탈리아컵도 손에 넣었다.
5.2. 국가대표팀
비아바티는 1938년부터 1947년까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경기에 18번 출전해 8골을 기록했고, 프랑스에서 열린 1938년 월드컵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했으며, 제3회 중부 유럽 선수권 대회도 우승했다. 1938년 6월 12일, 3-1로 이긴 개최국 프랑스와의 1938년 월드컵 8강전에서 첫 국가대표팀 경기를 치렀다. 비아바티는 1939년 5월 13일에 밀라노에서 열린 잉글랜드전에서 잉글랜드 수비진과 골키퍼를 모두 농락하고 텅 빈 골망을 흔들어 회자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