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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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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치듀크(Archduke)는 '권위' 또는 '주요'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아르키-'와 '지도자'를 의미하는 라틴어 '둑스'에서 유래된 칭호로, 독일어로는 '에르츠헤르초크', 네덜란드어로는 '아르츠헤르토흐'로 불린다. 이 칭호는 1453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3세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으며, 합스부르크 가문의 모든 구성원이 사용했다. 16세기부터 '대공'과 여성형인 '대공녀'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모든 구성원들이 사용하게 되었으며, 오스트리아 공화국에서는 귀족 작위 사용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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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듀크
기본 정보
오스트리아의 작은 국장
오스트리아의 작은 국장
유형작위
국가오스트리아
해당 지역신성 로마 제국
역사
창설자프리드리히 3세
창설일1453년
계승 정보
상위 작위공작
하위 작위황제

2. 용어

"아치듀크"라는 영어 단어는 1530년에 처음 기록되었으며, 중세 프랑스어 ''archeduc|아르셰뒤크fro''에서 파생되었다. 이는 15세기에 중세 라틴어 ''archidux|아르키둑스la''에서 파생된 것으로, "권위" 또는 "주요"를 의미하는 ἀρχι-|아르키-grc (고대 그리스어)와 ''dux|둑스la'' (문자 그대로 "지도자")를 의미한다.[2]

"아치듀크"(Erzherzog|에르츠헤르초크de; Aartshertog|아르츠헤르토흐nl)는 "대공"(Grand-Duc|그랑뒤크프랑스어; Groussherzog|그루스헤르초크lb; Großherzog|그로스헤르초크de; Groothertog|흐로트헤르토흐nl)과 구별되는 칭호이다. 대공은 다른 유럽 국가(예: 룩셈부르크)의 통치자들이 사용한 후대의 군주 칭호이다.

3. 역사적 연원

대공 칭호는 10세기 쾰른 대주교이자 로트링겐 공작이었던 브루노 대주교를 언급하며 처음 등장했지만, 당시에는 공식적인 직책이 아닌 명예로운 호칭으로 사용되었다.[3] 14세기 오스트리아 공작 루돌프 4세가 위조한 ''프리빌레기움 마이우스''(1358–1359)에서 "오스트리아 대공"이라는 칭호가 처음 등장했다. 루돌프 4세는 신성 로마 제국선제후들과 동등한 지위를 얻기 위해 이 칭호를 주장했다.[4]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4세는 이 칭호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오스트리아 공작 에른스트와 그의 후손들은 일방적으로 ''대공'' 칭호를 사용했다.

1453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3세에 의해 대공 칭호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는데, 이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선출된 신성 로마 황제의 왕위를 장악하여 사실상 세습화했기 때문이다.[5][6] 이후 합스부르크-로렌 가문의 분가인 오스트리아-에스테 가문에서는 오스트리아-에스테 대공 (Erzherzog von Österreich-Estede)의 칭호도 사용되었다.

4. 일반 대공(Grand duke)과의 차이점

일반적인 대공의 경우, 자손들이 모두 대공이라는 직함을 갖지 못한다. 장자나 장녀(여성도 작위를 계승할 수 있는 경우)만 대공의 직함을 얻으며, 그 이외의 자식들은 모두 대공자의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대공은 첫 오스트리아 대공이었던 프리드리히 3세의 후손이라면 모두 오스트리아 대공 작위를 태어나면서 얻게 된다. 여대공의 경우, 같은 가문의 대공과 결혼해서 낳은 자녀가 아닌 이상 자손들에게 작위가 전해지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대공의 왕관

5. 사용

16세기부터 "대공(Archduke)"과 여성형인 "대공녀(Archduchess)"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모든 구성원들이 사용하게 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남성 계열이 단절되고, 상속녀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로렌 공작 프란츠 스테판과 결혼하여 합스부르크-로렌 가문을 형성하면서 이 칭호는 계속 사용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 해체 이후에는 오스트리아 제국(1804–1867)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1867–1918)에서 유지되었다.

오스트리아 공화국에서는 1919년 4월 3일 귀족 폐지법(''Gesetz vom 3. April 1919 über die Aufhebung des Adels, der weltlichen Ritter- und Damenorden und gewisser Titel und Würden') 이후 귀족 작위 및 "대공"을 포함한 모든 세습 작위의 공식적 사용이 금지되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구성원은 단순히 "합스부르크-로트링겐"이라는 이름과 성씨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국가에 거주하는 가문의 구성원은 해당 국가의 법률과 관습에 따라 작위를 사용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마지막 합스부르크 황제의 장남인 오토 합스부르크-로트링겐(1912–2011)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 시민이었다. 독일에서는 세습 작위를 민간 성의 일부로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므로(출신 표시, 예: "폰" 또는 "추" 포함), 그의 공식적인 민간 이름은 오토 폰 합스부르크(직역: 오토 ''of'' 합스부르크)였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오토 합스부르크로 등록되었다.

스페인 국왕은 스페인 부르봉 왕조가 스페인 왕위를 차지하면서 이전 스페인 합스부르크 가문이 보유했던 모든 작위를 채택했기 때문에, 그의 전체 작위 목록의 일부로 명목상 오스트리아 대공 칭호를 사용한다. 그러나 "대공"은 스페인 부르봉 왕조에게 실질적인 위엄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며, 합스부르크 왕조 시대(1516–1700) 이후 스페인 국왕의 전통적인 부가 작위로 여겨졌다. 따라서 국왕 외에는 왕족 구성원 중 아무도 "대공"이라는 추가 칭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오른쪽)과 그의 가족. 페르디난트 대공은 부인과 함께 1914년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했으며,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을 촉발했다.


합스부르크가는 원래 형제끼리 영지를 분할하거나 공동 통치하는 형태로 상속했기 때문에, 남자 구성원은 모두 대공 칭호를 사용했다. 이후 장자 상속으로 바뀌었지만, 대공 칭호는 그대로 동등하게 사용되었다.

이후 합스부르크-로렌 가문의 분가인 오스트리아-에스테 가문에서는 오스트리아-에스테 대공 (Erzherzog von Österreich-Estede) 칭호도 사용되었다.

6. 휘장

오스트리아 대공의 휘장은 대공관으로,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는 화관이다.

참조

[1] 서적 Meyers Taschenlexikon Geschichte 1982
[2] OED archduke
[3] 서적 Brun von Köln (925–965). Sein Leben, sein Werk und seine Bedeutung M. Leidorf
[4] 서적 Hermeneutik des Gesichts. Das Bildnis im Blick aktueller Forschung De Gruyter
[5] 서적 Genealogisches Hanbduch des Adels, Furstliche Hauser Band XIV C. A. Starke Verlag
[6] 문서 Erzherzog Albrecht VI. von Österreich (1418–1463). Ein Fürst im Spannungsfeld von Dynastie, Regionen und Reich. https://www.research[...]
[7] 서적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 다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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