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니 고이코에체아 올라스코아가
1. 개요
안도니 고이코에체아 올라스코아가는 스페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80년대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라리가 2회 우승, 코파 델 레이 우승,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을 경험했다. 그는 거친 플레이 스타일로 유명했으며, 특히 디에고 마라도나에게 가한 반칙으로 악명을 떨쳤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39경기에 출전했으며, UEFA 유로 1984 준우승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여러 스페인 클럽과 적도 기니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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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 콤포스텔라의 축구 감독 -
안토니오 마세다
스페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감독인 안토니오 마세다는 스포르팅 히혼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수비수로 활약하며 라리가 우승과 UEFA컵 우승을 경험했고,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도 활약하며 UEFA 유로 1984 준우승에 기여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활동했다. -
AD 세우타의 축구 감독 -
라몬 칼데레
라몬 칼데레는 FC 바르셀로나에서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하고 스페인 국가대표로도 활약한 스페인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은퇴 후 스페인 하위 리그 클럽들의 감독을 맡아 테르세라 디비시온에서 우승을 이끈 축구 감독이다. -
적도 기니에 거주한 스페인인 -
마누엘 산치스 마르티네스
마누엘 산치스 마르티네스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주로 활약하며 1960년대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1966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은퇴 후에는 여러 팀의 감독을 역임한 스페인의 축구 선수 및 감독이다. -
적도 기니에 거주한 스페인인 -
비센테 엥공가
비센테 엥공가는 스페인 국적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 포지션에서 활약했으며, 레알 바야돌리드, 셀타 비고, 발렌시아 CF 등에서 뛰었고, 1998년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여 14경기에 출전했다.
2. 클럽 경력
고이코에체아는 비스카야 주 알론소테기 출신으로, 인근의 아르부요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1973년에 아틀레틱 빌바오로 이적, 2군을 거쳐 1군에서 활약했다. 데뷔 시즌에는 27경기에 출전해 4골을 기록했지만, 이후 3년간은 출전 기회가 줄었다.
1980년대, 다니, 호세 라몬 가예고, 호세 누녜스, 마누엘 사라비아, 안도니 수비사레타 등과 함께 하비에르 클레멘테 감독 아래 빌바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3-84 시즌 리그 우승과 코파 델 레이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며 2관왕을 차지했다.
1983년 9월 24일, 캄 노우에서 열린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에게 심각한 반칙을 가해 "빌바오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반칙으로 마라도나는 발목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고, 고이코에체아는 10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는 마라도나에게 부상을 입힐 때 신었던 축구화를 유리 케이스에 보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2년 전에는 베른트 슈스터에게도 심각한 부상을 입힌 적이 있다.
1984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마라도나와 다시 만났을 때, 경기 중 난투극에 가담하여 마라도나의 가슴을 걷어차는 등 또다시 물의를 일으켰다. 이로 인해 처음에는 18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으나, 나중에 7경기로 감면되었다.
이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3년간 선수 생활을 했지만,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33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그는 아틀레틱에서 총 369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하여 44골을 기록했다.
2.1. 아틀레틱 빌바오
고이코에체아는 비스카야 주 알론소테기 출신으로, 인근의 아르부요에서 축구를 시작한 뒤 1973년에 아틀레틱 빌바오로 이적했다. 이듬해 2군 경기에 출전하였고, 이후 1군 선수단에 이름을 올렸다. 데뷔 첫 해에 27번의 라 리가 경기에 출전해 4골을 기록했지만, 이어지는 3년 동안 도합하여 24경기에 나서는 데에 그쳤다.
1980년대, 다니, 호세 라몬 가예고, 호세 누녜스, 마누엘 사라비아, 안도니 수비사레타와 더불어 고이코는 하비에르 클레멘테 감독이 이끄는 빌바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3-84 시즌 바스크 연고 구단은 리그 정상을 차지하였고, 같은 해 코파 델 레이도 석권해 2관왕을 달성하였다.
2.1.1. 마라도나에게 가한 반칙
1983년 9월 24일, 고이코에체아는 디에고 마라도나에게 악명 높은 반칙을 범했는데, 이 사건은 "스페인 축구 역사상 범한 최악의 반칙"으로 수식된다. 캄 노우에서 벌어진 이 리그 경기에서, 고이코에체아는 아르헨티나인을 뒤에서 걸어 넘어뜨렸고, 그 결과 발목이 골절되었다. 마라도나는 골절 당시 들은 소리를 나무 부러지는 소리에 비교했고, 이후 잉글랜드 기자 에드워드 오언은 고이코에체아를 묘사할 때 "빌바오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이 별명은 현역 시절 내내 따라다녔다. 마라도나와 같은 국적이며, 당시 바르셀로나의 감독이었던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는 고이코에체아를 "'반축구인'의 족속"이라고 비난하며 영구 출장 정지를 요청했다.
고이코에체아는 이 사건으로 스페인 왕립 축구 연맹으로부터 1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후 보도에 따르면, 마라도나의 발목 힘줄을 파괴하는데 쓰인 축구화는 자택의 유리 상자 안에 보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전, 고이코에체아는 베언트 슈스터에게도 중상을 입혔는데, 슈스터는 카탈루냐 연고 구단인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던 미드필더였다. 이 부상으로 슈스터는 오른쪽 무릎을 심하게 다쳤고, 복귀 후에도 완전히 재활하지 못했다.
1984년 5월, 고이코에체아와 마라도나는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다시 만났고, 경기는 빌바오의 1-0 승리로 끝났다. 이 경기에서 양 선수단 간의 패싸움이 일어났는데, 고이코에체아는 마라도나의 가슴을 걷어찼다. 이 사건으로 그는 처음에 18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지만, 이후 7경기로 감경되었다.
2.2.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3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지만, 고이코에체아는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아틀레틱 소속으로 369번의 공식 경기에 나서 44골을 넣었으며, 거의 34세가 되어서 은퇴하였다.
3. 국가대표팀 경력
고이코에체아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경기에 39번 출전하였는데, 1983년 2월 16일에 네덜란드를 상대로 국가대표팀 신고식을 치렀다. 그는 스페인을 대표로 UEFA 유로 1984와 1986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1986년 FIFA 월드컵 덴마크와의 16강전 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국가대표팀에서 기록한 4골 중 1골을 기록해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와 함께 5-1 승리를 이끌었다.
고이코에체아는 1978년과 1990년 사이 바스크 대표팀 경기에 4번 출전하기도 했다.
; 출장 경기 수
| 연도 | 출장 | 득점 |
|---|---|---|
| 1983 | 6 | 0 |
| 1984 | 11 | 2 |
| 1985 | 9 | 0 |
| 1986 | 9 | 2 |
| 1987 | 3 | 0 |
| 1988 | 1 | 0 |
| | 39 || 4 |
; 득점
4. 감독 경력
고이코에체아는 은퇴 2년 후인 1996년부터 감독일을 시작했다. 살라망카(2번), 콤포스텔라, 누만시아(2번), 라싱 산탄데르, 라요 바예카노 감독을 역임했다. 1996-97 시즌에는 살라망카를 준우승으로 이끌며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1994년 FIFA 월드컵에서는 빌바오 시절 감독이었던 클레멘테 감독을 보좌하여 스페인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를 맡기도 했다.
2007년 6월, 2부 리그 구단인 에르쿨레스에 합류했지만, 구단 내부 조직에 대해 "석연치 않다"라고 비판하여 구단으로부터 자격 정지 처분을 받고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2013년 2월, 적도 기니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나, 201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개막 3주 전인 2015년 1월, 친선 경기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면서 경질되었다.
5. 플레이 스타일
1983년 9월 24일, 고이코에체아는 디에고 마라도나에게 "스페인 축구 역사상 범한 최악의 반칙"으로 수식되는 악명 높은 반칙을 범했다. 캄 노우에서 벌어진 리그 경기에서, 고이코에체아는 아르헨티나인을 뒤에서 걸어 넘어뜨렸고, 그 결과 발목이 골절되었다. 마라도나는 골절 당시 들은 소리를 나무 부러지는 소리에 비교했고, 이후 잉글랜드 기자 에드워드 오언은 고이코에체아를 묘사할 호칭으로 "빌바오의 도살자"를 붙였고, 그에게 붙은 꼬리표는 현역 시절에 계속 따라다녔다.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당시 바르셀로나 감독은 스페인 선수를 "'반(反)축구인'의 족속"이라고 비난하였고, 영구 출장 정지를 요청했다. 고이코에체아는 이 사건으로 스페인 왕립 축구 연맹으로부터 1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후의 보도에 따르면 "(마라도나의) 발목 힘줄을 파괴하는데 쓰인... 축구화"는 자택의 유리 상자 안에 보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발생 2년 전, 고이코에체아는 또다른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 베른트 슈스터에게 중상을 입혔고, 독일인은 복귀 후로도 당시 당한 오른쪽 무릎 부상에서 완전히 재활하지 못했다. 1984년 5월 1984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고이코에체아와 마라도나가 다시 만났을때, 1-0으로 빌바오가 승리한 이 경기에서, 양 선수단 간의 패싸움이 일어났는데, 고이코에체아는 이번에 마라도나의 가슴을 걷어찼다. 이후, 그는 처음에 18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지만, 이후 징계는 7경기 출장 정지로 경감되었다.
고이코에체아는 거친 경기 방식으로 악명이 높은데, 특히 마라도나에 범한 반칙에서 언급된 마라도나와 슈스터에 대한 두 번의 심한 반칙으로 인해 "빌바오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7년, 잉글랜드 정간지 타임스는 그를 "역대 가장 거친 수비수"로 선정했다.
6. 수상 내역
| 국가대표 | |
|---|---|
| 스페인 U-21 | |
6.2. 감독
고이코에체아는 은퇴 2년 후인 1996년부터 코치 경력을 시작하여 클럽 레벨에서 활동했으며, UD 살라망카 (2차례), SD 콤포스텔라, CD 누만시아 (2차례), 라싱 산탄데르, 라요 바예카노의 감독을 맡았다. 1996-97 세군다 디비시온 시즌에는 살라망카를 이끌고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승격했으며, 2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는 1994년 FIFA 월드컵 기간 동안, 과거 자신의 감독이었던 클레멘테의 스페인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를 맡았다.
2007년 6월, 고이코에체아는 2부 리그의 알리칸테를 연고로 하는 에르쿨레스 CF에 합류했지만, 구단의 내부 구조가 "악취가 난다"고 암시하여 구단으로부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은 후 2007-08 세군다 디비시온 시즌이 끝날 때 해고되었다. 2013년 2월 말, 그는 적도 기니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지만, 친선 경기에서의 부진, 특히 포르투갈 하위 리그 팀에게 패배한 것을 포함하여, 201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시작 3주 전인 2015년 1월에 해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