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루이스바산
1. 개요
다니엘 루이스바산은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주로 공격수로 활약했다. 아틀레틱 빌바오 소속으로 1974년에 라 리가에 데뷔하여 1986년 은퇴할 때까지 302경기 147골을 기록했으며, 1976-77 시즌에는 UEFA컵 결승에 진출했다. 그는 1982-83, 1983-84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끌었으며, 1983-84 시즌 코파 델 레이와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을 차지했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는 1977년부터 1980년까지 25경기에 출전하여 10골을 기록했고, 1978년 FIFA 월드컵과 UEFA 유로 1980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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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다니엘 루이스-바산 후스타 |
|---|---|
| 출생일 | 1951년 6월 28일 |
| 출생지 | 소푸에르타, 스페인 |
| 신장 | 1.69m |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 별칭 | 엘 그란 카피탄 (위대한 주장) 엘 페케뇨 (작은 남자) |
| 유소년 클럽 | 1968–1969: 소두페 1969–1970: 게초 1970–1971: 비요사 |
|---|---|
| 클럽 | 1971–1972: 빌바오 아틀레틱 (33경기 8골) 1972–1986: 아틀레틱 빌바오 (302경기 147골) 1972–1974: → 바라칼도 (임대) (65경기 9골) |
| 통산 | 400경기 164골 |
| 청소년 국가대표 | 1977: 스페인 U-21 (1경기 3골) |
|---|---|
| 아마추어 국가대표 | 1976: 스페인 아마추어 (1경기 1골) |
| B 국가대표 | 1981: 스페인 B (2경기 1골) |
| 국가대표 | 1977–1981: 스페인 (25경기 10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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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라우디오의 축구 선수 -
우르코 베라
우르코 베라는 스페인 출신 축구 선수로, 공격수로 활동하며 K리그1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뛰었으며, 다양한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에이바르, 전북 현대 모터스, CFR 클루지에서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
CD 게초의 축구 선수 -
루이스 마리아 에체베리아
루이스 마리아 에체베리아는 스페인 아틀레틱 빌바오의 수비수로서 코파 델 레이 우승을 견인하고 300경기 이상을 뛰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로 1962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한 축구 선수였다. -
CD 게초의 축구 선수 -
호세 마리아 아모로르투
호세 마리아 아모로르투는 스페인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아틀레틱 빌바오와 레알 사라고사에서 활약했으며, 은퇴 후 여러 클럽의 감독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소년부 단장, 아틀레틱 빌바오 단장 등을 역임했다. -
바라칼도 CF의 축구 선수 -
아르만도 리베이로
아르만도 리베이로는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하며 카디스 CF에서 세군다 디비시온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고,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활약하다 은퇴 후 코치진으로 합류했다. -
바라칼도 CF의 축구 선수 -
이냐키 사에스
이냐키 사에스는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활약하며 코파 델 레이 우승과 스페인 국가대표팀 출전, 그리고 스페인 U-21 및 U-20 대표팀 감독으로서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와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끈 스페인의 축구인이다.
2. 클럽 경력
비스카이아도 소푸에르타 출신인 다니는 바스크 지역의 여러 클럽에서 유소년 축구를 했다. 1971년 20세의 나이로 아틀레틱 빌바오와 계약을 맺고, 테르세라 디비시온(당시 3부 리그) 빌바오 아틀레틱(2군)에서 한 시즌을 보냈다.
이후 세군다 디비시온(2부 리그)의 이웃 바라칼도 CF에서 2년 동안 임대 생활을 한 후, 아틀레틱으로 복귀하여 10년 중 9시즌 동안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1976–77 시즌에는 UEFA컵 결승전과 코파 델 레이에 진출했고, 리그에서도 3위를 차지했으며, 그는 46번의 공식 경기에서 총 29골을 기록했다.
다니는 아틀레틱에서 두 번의 리그 우승(1982-83, 1983-84)과 한 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1983-84)을 달성했다. 그러나 마누엘 사라비아의 등장으로 출전 시간이 줄었고, 훌리오 살리나스의 1군 승격 이후 더욱 밀려났다. 결국 1986년 6월 35세의 나이로 은퇴했으며, 리그 302경기에 출전하여 147골을 기록했다.
다니는 유럽 대회에서 25골을 기록하여 오랫동안 클럽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했으나, 2012년 페르난도 요렌테에게 기록이 깨졌다. 그는 페널티킥 전담 선수였다.
2.1. 아틀레틱 빌바오
비스카이아 도 소푸에르타 출신인 다니는 바스크 연고의 다수 구단 유소년부를 거쳤고, 1971년에 20세의 나이로 아틀레틱 빌바오에 입단하여 테르세라 디비시온에 속한 2군 선수로 1년을 보냈다.
이후 2부 리그에 속한 이웃 구단 바라칼도로 임대되어 경험을 쌓은 그는 모구단으로 복귀해 이어지는 10년 중 9시즌에 두 자리 수의 득점을 올렸다. 다니의 첫 라 리가 경기는 1974년 9월 29일자 경기로, 빌바오는 발렌시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0-3으로 완패하였다. 1976–77 시즌, 사자 군단은 UEFA컵과 코파 델 레이에서 각각 결승전에 올랐고, 리그는 3위로 마쳤으며, 다니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46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해 29골을 기록했다. 그는 빌바오와 12년을 동행하며 두 차례 20골을 기록했다.
다니는 이후 1982–83 시즌과 1983–84 시즌에 연달아 아틀레틱이 우승할 수 있도록 도왔는데, 두번째 우승을 한 시즌에는 또다른 유소년부 출신인 마누엘 사라비아가 경기 현장에 발을 들이면서 후보로 밀려나 10경기 출장 3골에 그쳤다. 그는 훌리오 살리나스가 1군으로 승격하면서 출전 서열이 한 칸 더 뒤로 물려났고, 결국 1986년 6월에 35세의 나이로 302경기 출장 147골의 기록을 남긴 채 은퇴를 선언했다.
다니는 유럽 대항전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로 25골을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2012년에 페르난도 요렌테가 경신하였다.
3. 국가대표팀 경력
다니는 1977년 9월 21일 스위스와의 친선경기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이 경기에서 스페인은 2-1로 승리했다. 그는 4년 2일 동안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25경기에 출전해 10골을 기록했다.
다니는 1978년 FIFA 월드컵과 UEFA 유로 1980에 참가했다. 1978년 FIFA 월드컵에서는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UEFA 유로 1980에서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득점했지만, 두 경기 모두 스페인이 1-2로 패배했고, 두 대회 모두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3.1.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 번호 | 날짜 | 경기장 | 상대 | 점수 | 최종결과 | 대회 |
|---|---|---|---|---|---|---|
| 1 | 1978년 1월 25일 | 스페인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 이탈리아이탈리아어 | 2–0 | 2–1 | 친선경기 |
| 2 | 1978년 3월 29일 | 스페인 히혼 엘 몰리논 | 노르웨이노르웨이어 | 3–0 | 3–0 | 친선경기 |
| 3 | 1978년 4월 26일 | 스페인 그라나다 로스 카르메네스 | 멕시코스페인어 | 2–0 | 2–0 | 친선경기 |
| 4 | 1978년 6월 3일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호세 아말피타니 | 오스트리아독일어 | 1–1 | 1–2 | 1978년 FIFA 월드컵 |
| 5 | 1979년 4월 4일 |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중앙 경기장 | 루마니아루마니아어 | 1–1 | 2–2 | UEFA 유로 1980 예선전 |
| 6 | 1979년 4월 4일 |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중앙 경기장 | 루마니아루마니아어 | 2–2 | 2–2 | UEFA 유로 1980 예선전 |
| 7 | 1979년 9월 26일 | 스페인 비고 발라이도스 | 포르투갈포르투갈어 | 1–0 | 1–1 | 친선경기 |
| 8 | 1980년 1월 23일 | 스페인 비고 발라이도스 | 네덜란드네덜란드어 | 1–0 | 1–0 | 친선경기 |
| 9 | 1980년 6월 18일 | 이탈리아 나폴리 산 파올로 | 잉글랜드영어 | 1–1 | 1–2 | UEFA 유로 1980 |
| 10 | 1980년 11월 12일 |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리아 | 폴란드폴란드어 | 1–1 | 1–2 | 친선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