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하
1. 개요
안병하는 군인 및 경찰 출신으로, 6·25 전쟁에 참전하여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으며, 경찰로 전직하여 부산 중부경찰서장, 서울 서대문경찰서장 등을 역임했다. 1968년에는 무장공비 소탕에 기여하여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전라남도경찰국장으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하고 시위대를 보호하다 직위 해제 및 고문을 당했다.
| 이름 | 안병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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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대한민국 |
| 직책 | 제37대 전라남도지방경찰청 청장 |
| 임기 | 1979년 2월 20일 ~ 1980년 5월 26일 |
| 장관 | 구자춘 내무부 장관 김종환 내무부 장관 |
| 대통령 | 박정희 대통령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 최규하 대통령 |
| 총리 | 최규하 국무총리 신현확 국무총리 박충훈 국무총리 서리 |
| 차관 | 서정화 내무부 차관 손수익 내무부 차관 |
| 전임 | 정갑순 |
| 후임 | 송동섭 |
| 출생일 | 1928년 7월 23일 |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강원도 양양 |
| 사망일 | 1988년 10월 10일 |
| 사망지 | 대한민국 광주 |
| 정당 | 무소속 |
| 배우자 | 전임순 |
| 자녀 | 안호재(아들) |
| 군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
| 복무 기간 | 1949년 ~ 1962년 |
| 계급 | 대한민국 육군 중령 |
| 지휘 | 대대장 |
| 참전 | 한국 전쟁 |
| 경력 | 내무부 치안본부 경찰관 경찰 치안감 특진 추서 |
|---|
| 서훈 | 화랑무공훈장(1951년) 녹조근정훈장(1968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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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동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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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은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대통령경호처장과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2024년 12월 10일 내란 혐의로 구속되었다. -
육군사관학교 동문 -
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
1988년 사망 -
허정
허정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해방 후 제헌 국회의원, 교통부 장관, 사회부 장관, 서울특별시장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로, 4·19 혁명 후 대통령 권한대행 및 국무총리를 지내며 제2공화국 수립에 기여했다. -
1988년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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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맥브라이드는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정치인, 변호사,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며 아일랜드 독립 전쟁에 참여하고, 클란 나 포블라흐타를 창당하여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국제앰네스티 공동 설립, 노벨 평화상 수상 등 인권 및 평화 운동에 기여했다. -
육군보병학교 동문 -
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
육군보병학교 동문 -
임동원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자 외교관인 임동원은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군과 정부의 요직을 거쳐 나이지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대사,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등을 역임하며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나, 제2연평해전 발언과 불법 감청 혐의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 군인 및 경찰 경력
안병하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6·25 전쟁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1962년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 뒤 같은 해 총경 특별채용으로 경찰에 입문하여 부산 중부경찰서장, 서울 서대문경찰서장 등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1979년 2월 전라남도경찰국장으로 부임하였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하고 시민 보호에 힘썼으며, 이로 인해 직위 해제된 후 강제로 사직하였다.
2.1. 군 복무
1949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임관하여 제6사단 포병대에서 근무하였다. 6·25 전쟁 발발 당시 중위였던 안병하는 춘천 전투에서 위험한 정찰 임무를 수행하여 적의 정확한 위치를 알림으로써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하였다. 이 공으로 1961년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1962년 육군 중령으로 예편하였다.
2.2. 경찰 복무
1962년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 뒤, 같은 해 총경 특별채용으로 경찰에 투신하였다. 이후 부산 중부경찰서장, 서울 서대문경찰서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8년에는 남파 간첩선을 타고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를 소탕하는 데 공을 세워 중앙정보부장 표창과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1979년 2월에는 전라남도경찰국장으로 부임하였다.
2.3.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79년 2월 전라남도경찰국장이 되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안병하 전라남도경찰국장은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전두환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했다. 또한 우발적인 사고를 우려해 경찰의 총기를 회수했으며, 시위대에 부상자 치료와 음식 등을 제공하는 인도적인 지원을 하였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직위 해제되었고, 보안사령부에 연행되어 고문을 당했다. 결국 안병하는 1980년 6월 2일 경찰에서 사직하였다.
3.2. 녹조근정훈장 (1968)
1968년, 남파 간첩선을 타고 침투한 무장공비 소탕에 기여한 공로로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