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백
1. 개요
안용백은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를 한 인물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관료로 근무했다. 1941년에는 친일 논설을 기고하여 내선일체를 주장했으며, 친일 논설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 광복 후에는 경남고등학교 교장,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전라남도 교육감을 역임하며 교육계에 종사했고, 제4대 총선에서 자유당 후보로 당선되었으나 닭죽 사건으로 당선이 무효 처리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광주광역시 어린이대공원에 흉상이 세워져 친일 행적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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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 안씨 (신) -
안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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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 안씨 (신) -
신 죽산 안씨
신 죽산 안씨는 안원형을 시조로 하며, 안면이 신돈을 비판한 이후 광주에 정착했고, 조선 시대 안노생 등의 관직 진출과 근현대 안규용, 안규홍 등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성씨로, 광주, 보성, 장흥 등에 주로 거주하며 2000년 기준 7,666명이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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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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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제국대학 동문 -
박일경
박일경은 일제강점기에 학위를 받고 함평군수, 서울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법제처장, 문교부 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았다. -
경성제국대학 동문 -
서명원
서명원은 독립운동가 서재필의 종손으로, 교육학자이자 대학교수, 교육행정 관료로서 서울대학교 교수, 문교부 차관, 여러 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문교부 장관, 학술회 회원, 교육개혁심의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2. 일제강점기 활동
안용백은 전라남도 보성군 출신으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윤리학과를 졸업했다. 경상남도 하동군 군수와 조선총독부 학무국 관리 등으로 약 15년간 근무했다. 1941년 총독부 기관지 《조선》에 창씨명으로 〈유도정신 진흥의 의의〉라는 글을 투고해 일본 정신을 체득함으로써 내선일체를 이루자는 주장을 폈다.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녹기》에 글을 실었을 정도로 친일 논설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
2.1. 관료 생활
전라남도 보성군 출신이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윤리학과를 졸업하고, 경상남도 하동군 군수와 조선총독부 학무국 관리 등으로 약 15년간 근무했다. 1941년 총독부 기관지 《조선》에 창씨명으로 〈유도정신 진흥의 의의〉라는 글을 투고해 일본 정신을 체득함으로써 내선일체를 이루자는 주장을 편 바 있다. 안용백은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녹기》에 글을 실었을 정도로 친일 논설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
광복 후 경남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고,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제2대 전라남도 교육감(1964년 ~ 1968년)을 역임했다. 대한교육연합회 상임이사 등으로 교육 분야에서 활동했다. 경남고 교장 시절에는 후에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이 된 김영삼의 스승이었고, 김영삼이 대학에서 철학 전공을 선택하게 된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이 교육을 위해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실례했습니다'라는 말을 생활화하자는 '미고안실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총선에 자유당 후보로 고향 보성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개표 과정에서 야당측 참관인들에게 수면제를 탄 닭죽을 먹인 뒤 이들이 잠든 사이에 표를 조작한 이른바 '닭죽 사건'이 발각되어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
2.2. 친일 행적
전라남도 보성군 출신으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윤리학과를 졸업했다. 경상남도 하동군 군수와 조선총독부 학무국 관리 등을 약 15년간 역임했다. 1941년 총독부 기관지 《조선》에 창씨명으로 〈유도정신 진흥의 의의〉라는 글을 투고하여 일본 정신을 체득함으로써 내선일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안용백은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녹기》에 글을 실을 정도로 친일 논설 분야에서 인정받았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수록되었다. 광주광역시 어린이대공원에 안용백의 흉상이 세워져 있어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3. 광복 후 활동
경남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고,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제2대 전라남도 교육감(1964년 ~ 1968년)을 역임했다. 대한교육연합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하며 교육 분야에서 활동했다.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당 후보로 고향 보성군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이른바 '닭죽 사건'이 발각되어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수록되었다. 광주광역시 어린이대공원에 안용백의 흉상이 세워져 있어 친일 행적 논란이 있었다.
3.1. 교육계 활동
경남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고,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제2대 전라남도 교육감(1964년 ~ 1968년)을 역임했다. 대한교육연합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하며 교육 분야에서 활동했다. 경남고 교장 시절 김영삼의 스승이었고, 김영삼이 대학에서 철학 전공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이 교육을 위해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실례했습니다'라는 말을 생활화하자는 '미고안실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3.2. 미고안실 운동
안용백은 경남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지낼 당시, 훗날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이 되는 김영삼의 스승이었다. 김영삼이 대학교에서 철학 전공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안용백은 어린이 교육을 위해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실례했습니다'라는 말을 생활화하자는 '미고안실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3.3. 정치 활동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당 후보로 고향 보성군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개표 과정에서 야당측 참관인들에게 수면제를 탄 닭죽을 먹인 뒤 이들이 잠든 사이에 표를 조작한 이른바 '닭죽 사건'이 발각되어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
4. 친일 논란 및 평가
안용백은 전라남도 보성군 출신으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윤리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학무국 관리 등으로 약 15년간 근무했다. 1941년 총독부 기관지 《조선》에 창씨명으로 〈유도정신 진흥의 의의〉라는 글을 투고해 일본 정신을 체득함으로써 내선일체를 이루자는 주장을 폈다.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녹기》에 글을 실었을 정도로 친일 논설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
광복 후 경남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고,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제2대 전라남도 교육감(1964년 ~ 1968년)을 역임했다. 대한교육연합회 상임이사 등으로 교육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김영삼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미고안실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총선에 자유당 후보로 고향 보성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이른바 '닭죽 사건'이 발각되어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
4.1. 친일인명사전 등재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수록을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과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안용백이 수록되었다. 광주광역시 어린이대공원에 안용백의 흉상이 세워져 있어 친일 행적 논란이 있었다.
4.2. 흉상 논란
민족문제연구소는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에 안용백을 포함시켰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안용백을 수록했다. 광주광역시 어린이대공원에 안용백의 흉상이 세워져 있어 친일 행적 논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