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로 타르탈리아
1. 개요
안젤로 타르탈리아는 15세기 이탈리아의 용병대장이었다. 그는 피렌체 공화국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카살레키오 전투에서 패배하여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 석방 후 무초 아텐돌로 스포르차와 경쟁 관계를 형성했으며, 나폴리의 라디슬라오를 섬기며 페루자와 치비타베키아를 방어하고 로마를 점령했다. 이후 토스카넬라 영주로 임명되었고, 교황 마르티노 5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여러 영토를 차지했지만, 라이벌 스포르차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후 1421년 아베르사에서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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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로 출신 -
고어 비달
고어 비달은 미국의 소설가, 극작가, 수필가, 시나리오 작가, 배우, 정치 평론가로서, 전쟁 소설 《윌리워》로 데뷔하여 동성애, 정치 풍자, 역사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며 명성을 얻었고, 특히 미국사를 배경으로 한 "제국의 이야기" 연작과 진보적인 가치 및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작품들로 유명하며 논쟁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
1421년 사망 -
회안대군
태조 이성계의 넷째 아들인 회안대군 이방간은 조선 건국 공신으로 회안군에 봉해졌으나,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유배 생활을 하다 병사했고, 사후 고종 때 신원 회복되어 시호를 받았다. -
1421년 사망 -
안성 (1344년)
안성 (1344년)은 (주제 1), (주제 2), (주제 3), (주제 4)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하위 주제 1.1), (하위 주제 1.2), (하위 주제 2.1), (하위 주제 2.2), (한국 관련 하위 주제 3.1), (한국 관련 하위 주제 3.2) 등을 포함한다. -
콘도티에로 -
프란체스코 부소네 다 카르마뇰라
프란체스코 부소네 다 카르마뇰라는 미천한 농민 출신으로 밀라노와 베네치아에서 활약한 이탈리아의 콘도티에로였으나, 권력 관계를 오판하여 반역죄로 참수되었다. -
콘도티에로 -
존 호크우드
존 호크우드는 1323년경 잉글랜드에서 태어나 백년 전쟁 참전 후 이탈리아에서 용병으로 활동하며 백색 용병대를 이끌고 카시나 전투 등에서 승리했으며, 1394년 피렌체에서 사망하였다.
2. 생애
안젤로 타르탈리아는 바실리카타 주 라벨로 출신의 콘도티에로이다. 체콜로 브롤리아 군사 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피렌체 공화국에서 복무했다. 1402년 카살레키오 전투에 참전했으나, 레노 다리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음에도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자리를 비워 패배하고 포로로 잡혔다. 이 일로 무초 아텐돌로 스포르차와 경쟁 관계가 되었다.
1409년, 나폴리의 라디슬라오를 섬기며 브라초 다 몬토네로부터 페루자와 치비타베키아를 방어하고 로마를 정복하여 대립 교황 요한 23세를 몰아냈다. 1413년 라디슬라오에게서 토스카넬라 군주 작위를 받았고, 1418년에는 교황 마르티노 5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아시시 등 여러 영토를 차지했으나, 1421년 스포르차에게 붙잡혀 고문 끝에 아베르사에서 참수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군사 경력
안젤로 타르탈리아는 바실리카타 주 라벨로에서 태어나 체콜로 브롤리아(Ceccolo Broglia) 군사 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피렌체 공화국에서 복무했다. 1402년 6월 26일, 카살레키오 전투에 참전하여 레노 다리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이 때문에 그의 쪽 방어선이 무너져 패배했고, 타르탈리아는 포로로 잡혀 투옥되었다.
풀려난 후 패배에 대한 책임을 졌지만, 무초 아텐돌로 스포르차의 분노를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타르탈리아와 스포르차의 관계는 악화되어 강력한 경쟁 관계가 되었다. 1409년, 나폴리의 라디슬라오를 섬기며 브라초 다 몬토네로부터 페루자와 치비타베키아를 방어하고 로마를 정복하여 대립 교황 요한 23세를 몰아냈다.
라디슬라오는 감사의 표시로 1413년 타르탈리아에게 토스카넬라 군주 작위를 주었다. 1418년, 교황 마르티노 5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1년 뒤 아시시와 라치오, 움브리아 사이의 영토들을 점령했다. 그러나 타르탈리아는 경쟁자였던 무초 아텐돌로에게 잠자는 동안 붙잡혔고, 고문을 받은 뒤 1421년 아베르사에서 참수되었다.
2.2. 스포르차와의 경쟁
바실리카타 주 라벨로의 체콜로 브롤리아(Ceccolo Broglia) 군사 학교에서 훈련받고 피렌체 공화국에서 일했던 안젤로 타르탈리아는 1402년 6월 26일 카살레키오 전투에 참전했다. 그는 레노 다리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고, 이로 인해 그의 군대는 패배하고 타르탈리아는 포로로 잡혔다.
석방된 후 타르탈리아는 패배에 대한 책임을 졌지만, 무초 아텐돌로 스포르차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타르탈리아와 스포르차의 관계는 악화되어 강력한 경쟁 관계로 발전했다.
2.3. 나폴리 왕국에서의 활동
바실리카타 주 라벨로에서 체콜로 브롤리아(Ceccolo Broglia) 군사 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피렌체 공화국에서 일했다. 1402년 6월 26일, 카살레키오 전투에서 싸웠으며, 레노 다리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그의 경솔함이 패배를 불러왔고, 타르탈리아는 붙잡혀 투옥되었다.
풀려난 후 패배의 책임을 졌지만, 무초 아텐돌로 스포르차의 화를 푸는 데는 충분하지 못했다. 타르탈리아와 스포르차 사이의 관계는 강력한 경쟁 관계로 악화되었다. 1409년, 라디슬라오 디 나폴리에게 고용되어 브라초 다 몬토네에게서 페루자와 치비타베키아를 사수해내고 대립 교황 요한 23세를 쫓아내어 로마를 정복했다.
라디슬라오는 고마움의 뜻으로 1413년 타르탈리아에게 토스카넬라 군주 작위를 내려주었다. 1418년, 교황 마르티노 5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1년 뒤 아시시와 라치오 그리고 움브리아 사이에 있는 영토들을 차지했다. 타르탈리아는 잠자는 동안 무초 아텐돌로에게 붙잡혔다. 고문을 받은 뒤, 1421년 아베르사에서 참수되었다.
2.4. 교황령에서의 활동과 죽음
1409년, 안젤로 타르탈리아는 나폴리의 라디슬라오에게 고용되어 브라초 다 몬토네로부터 페루자와 치비타베키아를 지켜냈다. 또한 로마를 점령하여 대립 교황 요한 23세를 몰아냈다.
라디슬라오는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1413년 타르탈리아에게 토스카넬라 군주 작위를 내려주었다. 1418년, 그는 교황 마르티노 5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1년 뒤 아시시와 라치오, 움브리아 사이의 영토들을 차지했다. 그러나 타르탈리아는 잠자는 동안 무초 아텐돌로 스포르차에게 붙잡혔고, 고문을 받은 뒤 1421년 아베르사에서 참수되었다.
3. 평가
안젤로 타르탈리아에 대한 평가는 그에 대한 전기 자료가 출판되면서 이루어졌다.
| 저자 | 제목 | 출판 연도 |
|---|---|---|
| 안토니오 디 키코 | 라벨로의 콘도티에로 안젤로 타르탈리아 | 1957년 (1990년 재출판) |
| 파트리치아 키아티 | 콘도티에로 안젤로 타르탈리아(1370-1421)의 전기 | 2011년 |
안토니오 디 키코의 저서는 1957년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1990년에 멜피의 TARSIA 출판사에서 재출판되었다. 파트리치아 키아티의 전기는 2011년에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