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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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태국은 평안도 대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대한제국 하급 관료로 시작하여 민족 계몽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재명 사건과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3·1 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가 1920년 상하이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안태국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안태국
원래 이름안태국(安泰國)
출생일알 수 없음
사망일1920년 4월 11일
사망 장소중화민국 장쑤 성 상하이시
출생지조선 평안도 대동군 대흥면 이리 9통 10호
본관순흥(順興)
종교유교(성리학)
배우자성주 배씨 부인(星州 裵氏 夫人)
자녀슬하 6남 2녀
친인척홍재형(첫째사위)
거주지대한제국 평안남도 평양
중화민국 장쑤 성 상하이
경력
직책대한제국 평안남도 남포군 부군수
직책 2대한제국 평안남도 대동군 부군수
임기 21901년 3월 20일 ~ 1902년 3월 20일
군주 2고종 이형
섭정 2윤용선(前)
직책 3대한제국 평안남도 순천군 부군수
임기1898년 3월 20일 ~ 1901년 3월 20일
군주고종 이형
임기 31902년 3월 20일 ~ 1902년 12월 20일
군주 3고종 이형
직책 4前 대한민국 임시 내무총장 행정공보비서관
대통령 4이승만
총리 4이동휘
임기 41919년 9월 16일 ~ 1920년 3월 16일
기타 정보
정당무소속
서훈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웹사이트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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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안태국은 1882년부터 1886년까지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이후 평안남도 용강을 거쳐 1890년 평안남도 평양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1898년 대한제국 하급 관료로 입문하였으나 1902년 퇴임하고 대한제국 민족 계몽 운동에 투신하였다. 1909년 이재명 사건에 연루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1911년에 만기 출감하였으며, 같은 해 105인 사건으로 5년형을 선고받고 1916년 만기 출감하였다. 1919년 3.1 운동 직후 평양을 떠나 중화민국 만주 지린성 지린으로 갔으며, 이후 중화민국 장쑤성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병으로 대한임정 내무총장 비서관 직을 사직하고 같은 해 상하이에서 별세하였다.

2.1. 주요 이력

* 1882년~1886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유년기를 보냄.
* 1886년 평안남도 용강으로 이주.
* 1890년 평안남도 평양으로 이주하여 성장.
* 1898년 대한제국 하급 관료로 입문.
* 1902년 관료직 퇴임, 이후 대한제국 민족 계몽 운동에 투신.
* 1909년 이재명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1911년 만기 출감.
*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1916년 만기 출감.
* 1919년 3.1 운동 직후 평양을 떠나 중화민국 만주 지방 지린성 지린으로 감.
* 이후 중화민국 장쑤성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동.
* 1920년 병으로 대한임정 내무총장 비서관 직을 사직하고, 같은 해 상하이에서 별세.

3.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3월 1일을 기해 도산 안창호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