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노프 An-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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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토노프 An-71은 소련의 안토노프 설계국이 개발한 조기 경고 통제기(AWACS)로, An-72 수송기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소련 공군(VVS-FA)의 전술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며, E-2C와 같은 전술적 지원 능력을 목표로 했다. 1985년 첫 비행을 했으나, 소련의 경제 악화와 베가-M 콴트 레이더의 문제로 인해 개발이 중단되었다. 또한 해군형(An-75) 개발도 검토되었으나, 항공모함 탑재에 따른 설계 변경의 어려움으로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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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노프 An-7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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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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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종 | 전술 조기 경보 관제기 |
제작사 | 안토노프 |
최초 비행 | 1985년 7월 12일 |
생산 대수 | 3대 |
상태 | 취소됨 |
주요 운용국 | 소련 공군 (예정) |
개발 기반 | 안토노프 An-72 |
2. 개발 배경
소련 붕괴 이전, 소련 공군은 장거리 항공(VVS-DA), 전선 항공(VVS-FA), 군 수송 항공(VVS-VTA)의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주요 전투기/요격기 및 지상 기반 방어 부대인 방공군(Voyska PVO)은 공군(VVS) 소속이 아니었다. A-50 메인스테이 AWACS와 그 전신인 Tu-126 모스는 오직 방공군에서만 운용되어 전술 항공기 지휘를 지원하지 않았다.[1] An-71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소련의 AWACS 운용은 Tu-126에서 시작되었으며 전적으로 방공군에 한정되었다. 소련은 공군과 방공군이 각각 독립된 군종이었고, 공군은 VVS-DA, VVS-FA, VVS-VTA로 나뉘어 있었다. 방공군에서도 Tu-126의 후계기가 필요했고, 소련 공군(VVS-FA)에서도 사용될 신형 AWACS 개발이 계획되었다. 베리예프 설계국의 A-50은 "E-3 센트리 같은", An-71은 "E-2C 같은" 운용이 기획되었다.
2. 1. 소련 공군 및 방공군의 AWACS 운용 교리
소련 붕괴 이전, 소련군은 크게 공군(VVS)과 방공군(PVO)으로 나뉘어 있었다. 공군은 다시 장거리 항공(VVS-DA), 전선 항공(VVS-FA), 군 수송 항공(VVS-VTA)으로 구분되었다. 기존의 A-50 메인스테이 AWACS 항공기는 주로 방공군(PVO)에서 운용되었으며, 전술 항공기의 지휘를 지원하는 역할은 제한적이었다.[1]An-71은 전선 항공(VVS-FA)의 전술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육상 기지에서 운용될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이는 대부분의 서방 공군이 지상 기반 AWACS 항공기를 사용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1] 소련은 1982년 레바논 전쟁에서 이스라엘 공군의 E-2C가 시리아 공군과의 전투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을 분석하여, AWACS의 지원 능력이 전투 효율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3. 개발 과정
An-71은 소련의 안토노프 설계국(현 우크라이나의 ANTK 안토노프)이 An-72 수송기를 기반으로 개발한 STOL 제트기이다. 동체 후방을 재설계하고 수직 꼬리 날개 위에 레이더 돔(로토돔)을 장착하는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1985년 7월 12일 첫 비행을 했으나, 소련 붕괴와 베가-M 콴트 레이더의 문제로 개발은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중단되었다.[2]
3. 1. 주요 특징
An-71은 An-72를 기반으로 설계되었으며, 넓은 시위 전방으로 굽은 핀 위에 레이더 돔(로토돔)을 지지하는 완전히 재설계된 후방 동체를 갖추고 있었다.[2] 화물칸에는 전자 장비와 6개의 운영자 스테이션이 있었다.
An-71은 코안다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고익 배치된 주익 상부에 엔진을 배치하였고, 레이다돔은 수직 꼬리 날개 상단에 장착하여 전고가 9미터를 넘었다.[2] 또한, 레이다돔을 양력 중심에 가깝게 하기 위해 수직 꼬리 날개에는 전진각이 주어졌다.
레이다는 탐지 거리 350~370km, 400개 목표를 탐지하고 120개 목표를 추적하는 "Vega-M"을 탑재했으며, 발전기는 2기에서 4기로 증설되어 발전 용량은 240kVA로 강화되었다.[2] 조종사 2명, 비행 기술자 1명, 오퍼레이터 3명, 총 6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 구역은 가압되었다. 엔진은 이브첸코-프로그레스 D-436K 쌍발 엔진이지만, AWACS로 개조되면서 중량이 증가했고, 이착륙 시 한쪽 엔진이 정지했을 경우 추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꼬리 부분에 보조 엔진으로 RD-38A를 탑재했다. RD-38A는 수직이착륙기 Yak-38M의 리프트 엔진으로도 사용되었다.[2]
3. 2. 시험 비행
An-72 시험 제작기를 개조한 1호기는 1985년 7월 12일에, An-72 양산기를 개조한 3호기는 1986년 2월 28일에 각각 초도 비행했다.[2] 총 3기의 시험 제작기가 제작되었으나, 2호기는 비행하지 않는 정적 시험기였다.[2]시험 제작기 2기는 1호기가 387회 650시간, 2호기가 362회 380시간, 총 649회 1030시간의 비행을 수행했다.[2] 짧아진 전장, 수직 꼬리 날개 위의 레이더 돔(로토돔) 등은 비행 특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문제였으나, 1988년 4월 높은 받음각 시험을 통과해 필요한 비행 안정성을 확보했다.[2]
3. 3. 개발 중단
An-71 개발은 프로토타입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첫 번째 기체는 1985년 7월 12일에 비행했다. 소련 붕괴와 함께 베가-M 콴트 레이더의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아 프로그램은 취소되었다.[2] 시험 제작기 2기는 1호기가 387회 650시간, 2호기가 362회 380시간, 총 649회 1030시간의 비행을 수행했다. 짧아진 전장, 중량물이며 양력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수직 꼬리 날개 위의 레이더 돔, 원형 기체에서는 배기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 수직 꼬리 날개 상단에 위치했지만 레이다돔 때문에 동체 후부로 이전되어 진동 문제를 일으킨 수평 꼬리 날개 등, 비행 특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있었지만, 1988년 4월에는 높은 받음각 시험을 통과하여 필요한 비행 안정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소련 경제 악화로 개발 진전이나 생산 배치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최종적으로 계획은 포기되었다.4. 해군형 (An-75)
An-71 개발 초기 단계에서, 소련 해군의 항공모함에서 운용할 수 있는 해군형(An-75)이 검토되었다. 1984년에 시제기 제작 계약이 체결되기 전인 1982년부터 1983년경에 우랴노프스크급 항공모함에서의 운용을 전제로 검토가 이루어졌다.[1] 이 계획에는 An-71K 또는 An-75라는 가칭이 주어졌으며, 레이더 시스템은 "크반트-M"을 장비하고, 레돔은 수직 꼬리 날개 상단에서 동체 후면으로 이설, 또는 동체 하면에 곤돌라식으로 장비하는 등의 아이디어가 제시되었다.[1]
An-75가 Yak-44에 패배했기 때문에 개발이 취소되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1] 야코블레프 설계국에서 1979년부터 함상 조기경보기 연구를 진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Yak-443은 레이더 시스템을 탑재할 수 없었고, 레이더 시스템 개발 실패 등으로 1983년에 개발이 중지된 상태였다.[1]
4. 1. An-75의 특징 (계획)
An-75는 소련 해군의 함재기로 제안되었던 기종으로, 우랴노프스크급 항공모함에서의 운용을 전제로 개발이 검토되었다.[1] An-75는 레이더 시스템으로 "크반트-M"을 장비하고, 레이더 돔을 동체 후방 또는 하부에 설치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1] 엔진은 An-74TK-300과 유사하게 날개 아래에 장착하는 방식으로 변경될 예정이었다.[1]그러나, 전체 중량이 30톤을 초과하고 전폭이 30미터를 넘는 기체를 항공모함 격납고에 수납할 수 있는 크기로 재설계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판단되어 개발이 취소되었다.[1] 대신 Ka-27 헬릭스의 조기경보기형(Ka-31)이 채택되었다.[1]
An-75는 Yak-44와의 경쟁에서 패배하여 개발이 취소된 것이 아니다.[1] 1979년부터 야코블레프 설계국에서 함상 조기경보기 연구를 진행했지만, Yak-443은 레이더 시스템을 탑재할 수 없었고, 레이더 시스템 개발 실패 등으로 1983년에 개발이 중지되었다.[1] 프로그레스 D-27 터보프롭 쌍발 엔진을 탑재한 Yak-44E의 개발이 소련 각료회의에서 인가된 것은 1989년 1월의 일이다.[1]
4. 2. 개발 취소
그러나 고도로 개조된 설계인 '''An-75'''는 건설 중이던 소련 항공모함에서 운용될 예정이었으나, AV-MF(소련 해군 항공대)는 An-75를 항공모함에서 안전하게 운용하려면 설계를 대폭 변경해야 함을 인지하고 개발을 취소했다.[1] 1982년부터 1983년경, 우랴노프스크급 항공모함에서의 운용을 전제로 한 해군형 검토 결과, An-71K 또는 An-75는 전체 중량 30톤 초과, 전폭 30미터가 넘어 항공모함 격납고에 수납 가능한 크기로 재설계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비현실적이라고 판단되었다. 이에 따라 Ka-27 헬릭스의 조기경보기형(Ka-31)이 채택되었다.[1]5. 수출 시도
2000년대 초, 우크라이나는 인도와 2억 달러에 달하는 An-71 판매에 대한 협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An-71은 최대 370km 거리에서 400개의 표적을 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을 것이다.[3]
6. 제원 (An-71)
Rybinsk RD-38A 터보 제트 엔진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