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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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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루구는 1260년 아릭 보케에 의해 차가타이 칸국의 수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어린 칸 무바라크 샤와 그의 어머니 오르가나에 반대하여 오르가나와 결혼했다. 그는 중앙 아시아를 장악하고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점령했으며, 툴루이드 내전에서 아릭 보케를 지지했으나 나중에는 배신했다. 1262년 아릭 보케에 반란을 일으키고 투르키스탄의 대칸 총독 마수드 베그와 오르가나의 지지를 얻어 15만 대군을 지휘하여 아릭 보케를 약화시켰다. 1263년 쿠빌라이 칸에게 충성을 맹세한 후 카이두를 공격했으나 패배했고, 이후 알말리크에 묻혔다. 제위 계승 전쟁 종결 후 쿠릴타이 개최를 표명했으나 실현되기 전에 사망했다.

2. 생애

알루구는 차가타이의 아들 바이다르의 아들이자 칭기스 칸의 증손이다. 차가타이 가문 내에서는 방계였으나, 제4대 카안 몽케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발생한 혼란 속에서 급속히 그 지위를 높였다.

1260년 쿠빌라이와 아리크부케 사이에서 제위 계승 전쟁이 발발하자, 알루구는 아리크부케에 의해 차가타이 칸국의 수장으로 임명되었다.[1] 처음에는 아리크부케를 지지했으나, 이후 그를 배신하고 1263년에는 쿠빌라이에게 충성을 맹세했다.[4]

제위 계승 전쟁이 끝난 후, 쿠빌라이가 통일 쿠릴타이 개최를 제창했을 때 알루구는 가장 먼저 참가를 표명했지만, 실현되기 전에 병사했다. 그의 사후, 아들 추베이 등은 차가타이 울루스를 병합하려던 카이두와 다투다 패배하여 대원 울루스로 망명, 하미 왕가의 조상이 되었다. 阿魯忽|아로홀중국어

2. 1. 차가타이 칸국 지배

1260년, 알루는 쿠빌라이 칸의 경쟁자인 아릭 보케에 의해 차가타이 칸국의 수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어린 칸 무바라크 샤와 그의 어머니 오르가나에게 반대하여 그녀와 결혼했다.[1] 1261년 그는 중앙 아시아로 파견되어 차가타이 칸국의 상당 부분과 특히 킵차크 칸국의 지배를 받던 지역을 빠르게 장악했다. 그는 또한 사마르칸트부하라를 점령했는데, 이 도시는 이전에 차가타이 칸과 대칸이 공동으로 통치했다. 알루는 툴루이드 내전에서 쿠빌라이 칸에 맞서 아릭 보케를 지지했지만, 나중에는 그를 배신했다.[2]

1262년 알루는 아릭 보케에 반란을 일으키고 그를 상대로 15만 명의 군대를 지휘했다. 이 분쟁은 이후 2년 동안 일련의 격렬한 충돌을 겪었다.[3] 알루는 투르키스탄의 대칸 총독 마수드 베그의 지지를 얻어 그를 재상으로 삼았고, 오르가나의 지지도 얻었다. 이 반란은 아릭 보케를 심각하게 약화시켰고, 결국 쿠빌라이 칸에게 패배하는 원인이 되었다.

1263년 알루는 쿠빌라이 칸에게 충성을 맹세한 후, 아릭 보케를 지지했다는 구실로 자신의 영토와 경계를 접하고 있던 카이두를 공격했다.[4] 카이두는 킵차크 칸국의 칸 베르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베르케는 그에게 자원과 군대를 제공했다. 알루는 자신의 영토가 침략당했고, 카이두와의 전투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알루는 반격하여 오트라르 근처에서 벌어진 새로운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는 알말리크에 묻혔다.

알루는 차가타이의 아들 바이다르의 아들이다. 칭기스 칸의 증손에 해당한다. 차가타이 가문 내에서는 방계였으나, 제4대 카안 몽케의 급사, 이에 따른 혼란 속에서 급속히 그 지위를 높였다.

1260년, 쿠빌라이와 아리크부케 사이에서 제위 계승 전쟁이 발발하자, 처음 차가타이 가문은 남편이 죽은 후 섭정으로서 정무를 담당하던 오르가나의 지휘 하에 아리크부케를 지지했다. 그러나 아리크부케는 쿠빌라이에게 연패한 데다 경제 봉쇄책으로 심각한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궁지에 몰린 아리크부케는 카라코룸에 식량을 보내는 것을 조건으로 측근이었던 알루를 차가타이 가문 당주로 임명하여 차가타이 가문에 보냈다. 실권을 빼앗긴 오르가나는 알루의 비가 되도록 강요받았고, 오르가나는 카라 훌레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무바라크 샤를 후계자로 할 것을 조건으로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차가타이 가문의 영토에 들어가 오르가나로부터 실권을 빼앗자 알루는 아리크부케에 반기를 들었다. 이는 즉위 시 차가타이 가문의 유력자들을 대거 숙청한 몽케 정권을 잇는 형태로 만들어진 아리크부케 정권에 대한 차가타이 가문의 반발이 배경에 있었다고도 한다. 한때 쳐들어온 아리크부케에게 본거지 알마리크를 점령당해 사마르칸트로 퇴각하기도 했지만, 1264년에 아리크부케가 쿠빌라이에게 항복하면서 마침내 차가타이 가문의 전 영토를 통일했다.

제위 계승 전쟁 종결 후, 쿠빌라이가 통일 쿠릴타이 개최를 제창했을 때, 알루는 가장 먼저 참가를 표명했지만, 실현되기 전에 병사했다. 아들 추베이 등은 차가타이 울루스를 병합하려던 카이두와 다투어 패배하여 대원 울루스로 망명하면서 하미 왕가의 조상이 되었다.

2. 2. 아릭 부케와의 대립

1260년, 알루는 쿠빌라이 칸의 경쟁자인 아릭 보케에 의해 차가타이 칸국의 수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어린 칸 무바라크 샤와 그의 어머니 오르가나에게 반대하여 그녀와 결혼했다.[1] 알루는 툴루이드 내전에서 쿠빌라이 칸에 맞서 아릭 보케를 지지했지만, 나중에는 그를 배신했다.[2]

1262년 알루는 아릭 보케에 반란을 일으키고 그를 상대로 15만 명의 군대를 지휘했다. 이후 2년 동안 일련의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3] 알루는 투르키스탄의 대칸 총독 마수드 베그의 지지를 얻어 그를 재상으로 삼았고, 오르가나의 지지도 얻었다. 이 반란은 아릭 보케를 심각하게 약화시켰고, 결국 쿠빌라이 칸에게 패배하는 원인이 되었다.

1263년 알루는 쿠빌라이 칸에게 충성을 맹세한 후, 아릭 보케를 지지했다는 구실로 자신의 영토와 경계를 접하고 있던 카이두를 공격했다.[4] 카이두는 킵차크 칸국의 칸 베르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베르케는 그에게 자원과 군대를 제공했다. 알루는 자신의 영토가 침략당했고, 카이두와의 전투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알루는 반격하여 오트라르 근처에서 벌어진 새로운 전투에서 승리했다.

제위 계승 전쟁이 발발하자, 처음 차가타이 가문은 남편이 죽은 후 섭정으로서 정무를 담당하던 오르가나의 지휘 하에 아리크부케를 지지했다. 그러나 아리크부케는 쿠빌라이에게 연패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 봉쇄로 심각한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궁지에 몰린 아리크부케는 카라코룸에 식량을 보내는 것을 조건으로 측근이었던 알루를 차가타이 가문 당주로 임명하여 차가타이 가문에 보냈다. 실권을 빼앗긴 오르가나는 알루의 비가 되도록 강요받았고, 카라 훌레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무바라크 샤를 후계자로 할 것을 조건으로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차가타이 가문의 영토에 들어가 오르가나로부터 실권을 빼앗자 알루는 아리크부케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는 즉위 시 차가타이 가문의 유력자들을 대거 숙청한 몽케 정권을 잇는 형태로 만들어진 아리크부케 정권에 대한 차가타이 가문의 반발이 배경에 있었다고도 한다. 한때 쳐들어온 아리크부케에게 본거지 알마리크를 점령당해 사마르칸트로 퇴각하기도 했지만, 1264년에 아리크부케가 쿠빌라이에게 항복하면서 마침내 차가타이 가문의 전 영토를 통일했다.

2. 3. 쿠빌라이 칸에게 충성

1260년, 쿠빌라이와 아리크부케 사이에서 제위 계승 전쟁이 벌어졌을 때, 알루구는 아릭 보케에 의해 차가타이 칸국의 수장으로 임명되어 오르가나와 강제로 결혼했다.[1] 알루구는 아릭 보케를 지지했지만, 나중에 배신했다.[2]

차가타이 가문의 영토에 들어가 오르가나로부터 실권을 빼앗은 알루구는 아리크부케에게 반기를 들었다. 비록 아리크부케에게 본거지 알마리크를 점령당해 사마르칸트로 퇴각하기도 했지만, 1264년에 아리크부케가 쿠빌라이에게 항복하면서 차가타이 가문의 전 영토를 통일했다.

1263년 알루구는 쿠빌라이 칸에게 충성을 맹세한 후, 아릭 보케를 지지했다는 구실로 자신의 영토와 경계를 접하고 있던 카이두를 공격했다.[4] 카이두는 킵차크 칸국의 칸 베르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알루구는 카이두와의 전투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알루구는 반격하여 오트라르 근처에서 벌어진 새로운 전투에서 승리했다.

제위 계승 전쟁 종결 후, 쿠빌라이가 통일 쿠릴타이 개최를 제창했을 때, 알루구는 가장 먼저 참가를 표명했지만, 실현되기 전에 병사했다.

2. 4. 죽음

알루구(阿魯忽|아로홀중국어)는 1264년 아릭 보케가 쿠빌라이 칸에게 항복하면서 차가타이 가문의 전 영토를 통일하였다. 쿠빌라이가 통일 쿠릴타이 개최를 제창했을 때 참가를 표명했지만, 실현되기 전에 병사했다. 그는 알말리크에 묻혔다.[2]

3. 가족

알루구는 오르가나 카툰과 여러 부인을 두었으며, 슬하에 여러 아들을 두었다.

이름비고
카반
튀베이1304년에 위무왕(威武王)과 시닝왕(西宁王)으로 봉해짐[5]
토크타
야사우르
듀퀼레스
에질 부카
놈-쿨리제2대 시닝왕(西宁王), 카라 델 통치자들의 조상이 됨[6]
아크 부카
사티
다우드
감보 도르지
치긴-테무르
지르구다이
밍타시
쾨체크 도르지
토크-테무르
에센 뵈케
오크루크치


참조

[1] 서적 The Successors of Genghis Khan Columbia University Press
[2] 서적 The Empire of the Steppes: A History of Central Asia https://books.google[...] Rutgers University Press 1970
[3] 서적 Historical Dictionary of the Mongol World Empire https://books.google[...] Rowman & Littlefield 2018-04-06
[4] 서적 Qaidu and the rise of the independent Mongol state in Central Asia https://www.worldcat[...] Curzon 1997
[5] 간행물 Prince Manggala – The Forgotten Prince of Anxi https://www.zora.uzh[...] 2018-02-23
[6] 문서 A 14th Century Mongolian Letter Fragment https://www2.ihp.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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