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말리크
1. 개요
알말리크는 13세기 몽골 제국 시대에 페르시아 역사학자들과 중국 여행가들의 기록에 등장하는 도시로, 현재는 톈산 산맥과 일리 강 사이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211년 칭기즈 칸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이후 칭기즈 칸의 손녀와 알말리크 통치자의 결혼을 통해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1351년부터 1363년까지 무굴리스탄 칸 투글루크 티무르의 통치하에 이슬람 중심지가 되었으며, 14세기에는 네스토리우스교 기독교인과 가톨릭 선교사들이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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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타이 칸국 -
차가타이어
차가타이어는 징기스칸의 아들 차가타이 칸에게 상속된 차가타이 칸국과 관련된 튀르크어의 일종으로, 15세기 후반 중앙아시아에서 발전하여 알리 시르 나바위 등의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통해 고전 시대를 이루었으며 우즈베크어와 위구르어에 영향을 미쳤다. -
차가타이 칸국 -
모굴리스탄 칸국
모굴리스탄 칸국은 14세기 차가타이 칸국에서 분리되어 건국된 몽골계 국가이며, 티무르 제국과의 관계 속에서 흥망성쇠를 겪다가 17세기 말 준가르 칸국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
중앙아시아의 역사 -
돌궐
돌궐은 6세기 중반 몽골 초원에서 유연을 멸망시키고 건국되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유목 제국으로, 사산 제국과 연합하여 에프탈 제국을 멸망시키고 자체 문자를 창제하는 등 중앙아시아 및 동아시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당나라와의 전쟁 후 분열되어 멸망했다. -
중앙아시아의 역사 -
소그드인
소그드인은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 출신으로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무역 활동을 펼치며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활약한 상인 집단으로, 다양한 제국 및 국가와 교류하며 여러 상품을 거래하고 종교와 문화를 전파했으나, 이슬람 제국 확장과 함께 점차 동화되었다. -
중앙아시아 -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스탄 공화국은 중앙아시아 내륙국으로 톈산 산맥 중심의 산악 지형이 대부분이며 여러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키르기스인 등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며 유목민 전통의 문화를 지녔으나, 소련 붕괴 후 독립했음에도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어려움, 국경 분쟁, 권위주의적 성향 강화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
중앙아시아 -
시베리아
우랄 산맥 동쪽에 위치한 시베리아는 러시아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다양한 유목 민족의 터전이었으나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어 자원 개발이 이루어졌고, 현재는 러시아 연방의 일부로서 경제 성장과 함께 환경 문제, 민족 문제 등의 과제를 안고 있는 지역이다.
2. 역사
알말리크는 원래 돌궐 카간국의 카를루크 도시 중 하나였다. 이 도시는 13세기 도교 수도자 추처기(장춘)를 포함하여 13~15세기 몽골 제국 시대 페르시아 역사학자들과 중국 여행가들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2.1. 몽골 제국 시기
알말리크는 원래 돌궐 카간국의 카를루크 도시 중 하나였다. 13~15세기 몽골 제국 시대 페르시아 역사학자들과 중국 여행가들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칭기즈 칸의 최고 고문 야율초재의 여행 기록에 따르면, 알말리크는 톈산 산맥과 일리 강 사이에 위치해 있었으며, 주변에는 사과 나무가 많았다. 원주민들은 그 나무들을 "알말리크"라고 불렀고, 이것이 도시의 이름이 되었다.
1211년 알말리크의 오자르 왕자는 칭기즈 칸의 지배를 인정했다. 이후 왕은 카라키타이의 구르칸에게 살해당했다. 칭기즈 칸은 왕의 아들 시크나크 테킨에게 알말리크의 왕위를 계승하도록 명령하고, 그의 맏아들 조치의 외동딸을 시집보냈다. 1219년, 칭기즈 칸이 페르시아 원정을 이끌었을 때, 시크나크 테킨이 그를 따랐다.
알말리크의 통치자와 칭기즈 칸의 손녀 사이의 결혼은 당시 도시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거주했던 이 도시는 1363년까지 무굴리스탄의 칸인 투글루크 티무르의 통치하에 중요한 이슬람 중심지가 되었다. 투글루크 티무르의 무덤은 여전히 이 도시에서 볼 수 있다. 비문은 또한 14세기 3분기에 이 도시에서 네스토리우스교 기독교인의 존재를 보여준다.
14세기에 조반니 데 마리뇰리를 포함한 많은 가톨릭 선교사들이 알말리크에서 활동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많은 중세 중국의 유럽인들이 여행 중에 이곳에 들렀다. 1339년 6월, 이 지역의 술탄인 칸 알리는 전임 통치자 예순 테무르 칸을 암살했는데, 그의 명령에 의해 6명의 수도사, 한 명의 주교, 그리고 한 명의 제노바 상인이 살해되었다. 그들의 기록에서 이 도시는 일반적으로 "아르말렉"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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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차가타이 칸국 시기
알말리크는 원래 돌궐 카간국의 카를루크 도시 중 하나였다. 칭기즈 칸의 최고 고문 야율초재의 여행 기록에 따르면, 알말리크는 톈산 산맥과 일리 강 사이에 위치해 있었으며, 주변에는 "알말리크"라고 불리는 사과 나무가 많아 도시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1211년, 알말리크의 오자르 왕자는 칭기즈 칸의 지배를 인정했으나, 이후 카라키타이의 구르칸에게 살해당했다. 칭기즈 칸은 왕의 아들 시크나크 테킨에게 알말리크의 왕위를 계승하도록 명령하고, 그의 맏아들 조치의 외동딸을 시집보냈다. 1219년, 칭기즈 칸의 페르시아 원정에 시크나크 테킨이 동행했다. 알말리크 통치자와 칭기즈 칸 손녀의 결혼은 당시 도시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1351년부터 1363년까지 무굴리스탄의 칸인 투글루크 티무르의 통치하에 알말리크는 중요한 이슬람 중심지가 되었으며, 투글루크 티무르의 무덤이 남아있다. 14세기 3분기에 이 도시에서 네스토리우스교 기독교인이 존재했다는 비문도 발견되었다.
14세기에는 조반니 데 마리뇰리를 포함한 많은 가톨릭 선교사들이 알말리크에서 활동했다. 1339년 6월, 칸 알리는 전임 통치자 예순 테무르 칸을 암살하고, 6명의 수도사, 주교, 제노바 상인을 살해했다. 이 도시는 당시 기록에 "아르말렉"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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