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공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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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애국공당은 1874년과 1890년에 각각 결성된 일본의 정치 결사이다. 1874년의 애국공당은 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이 결성하여 천부인권론에 기반한 민선의원 설립을 요구했으나, 활동 중단으로 자연 소멸되었다. 1890년의 애국공당은 대동단결운동의 분열 이후 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이 구 자유당 세력을 재결집하기 위해 결성되었으며, 자유당, 대동구락부와의 통합을 거쳐 입헌자유당 결성의 기반이 되었다.

애국공당 - [정당]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국기
국기
창립1874년 1월
해산1875년
창립자이타가키 다이스케
에토 신페이
고토 쇼지로
정치 이념
이념자유주의
입헌주의
진보주의
국가
국가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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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874년 애국공당

애국공당은 일본 최초의 정치결사 중 하나로, 이타가키 다이스케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정한론메이지 6년 정변으로 하야한 이타가키 등은 천부인권론에 기반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민선 의원 설립을 정부에 요구하였다.

애국공당은 일본에서 초기의 정치 결사로, 후에 이타가키 다이스케나 카타오카 켄키치가 토사에서 립지사를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창립 멤버인 에토 신페이가 사가의 난에 가담하면서 표면적인 활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고치현에서는 립지사로 대체되는 형태가 되었고, 이타가키 다이스케는 오사카를 거점으로 애국사 결성에 분주했다. 이는 국회기성동맹을 거쳐 일본 최초의 정당인 자유당의 기원이 되었다.

애국공당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애국'을 명칭에 붙인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2.1. 결성 배경

정한론메이지 6년 정변으로 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은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들은 행복안전사(幸福安全社)를 기반으로 1874년(메이지 7년) 1월 12일 도쿄 교바시구 긴자의 소에지마 다네오미 저택에서 새로운 정치결사를 결성했다. 이들은 천부인권론에 의거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민선 의원 설립을 정부에 요구하는 것을 당면한 첫 번째 정치적 문제로 삼았다. 1월 17일, 이타가키와 소에지마 등은 정부에 『민선 의원 설립 건백서』를 제출했다. 건백서에는 이 두 사람 외에 고토 쇼지로, 에토 신페이, 코무로 시노부, 유리 키미마사, 오카모토 켄자부로, 후루사와 시게루가 연명했다.

2.2. 주요 활동

정한론메이지 6년 정변 등으로 하야한 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은 1874년 1월 12일 소에지마 다네오미 저택에서 행복안전사(幸福安全社)를 기초로 애국공당을 결성했다. 이들은 천부인권론에 의거하여 인간 기본권을 보호하는 민선의원 설립을 정부에 요구하는 것을 당면한 첫 번째 정치적 문제로 삼았다.

1874년 1월 17일, 이타가키와 소에지마 등은 정부에 『민선의원설립건백서』를 제출했다. 건백서에는 이 두 사람 외에 고토 쇼지로, 에토 신페이, 코무로 시노부, 유리 키미마사, 오카모토 켄자부로, 후루사와 시게루가 서명했다.

애국공당은 일본 정치사에서 극초기의 정치결사로 꼽힌다. 하지만 의회가 개설되기 전에 활동을 시작했고, 이타가키는 귀향, 에토가 사가의 난에 연루되어 주살되었기 때문에 활동이 중단되고 자연 소멸했다.

2.3. 해산

사가의 난에 에토 신페이가 연루되어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후 입지사 등으로 이어져 자유당 결성의 기반이 되었다.

3. 1890년 애국공당

1890년 5월 5일 구 자유당 토사파를 중심으로 결성된 정당이다. 대동단결운동 분열 이후, 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이 구 자유당원들을 결집시키려 한 것이 창당의 계기가 되었다.

3.1. 결성 배경

대동단결운동이 분열되면서, 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은 구 자유당 세력을 재결집하고자 한 것이 창당의 계기가 되었다.

3.2. 주요 활동

1890년 5월 5일 구 자유당 토사파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대동단결운동 분열 이후 이타가키 등이 구 자유당원들을 애국공당으로 결집시키려 하였다. 창당 이후 자유당, 대동구락부와 통합 교섭을 진행, 5월 14일 경인구락부를 결성하기로 결의했다. 8월 4일 애국공당은 해산하고 규슈동지회와 함께 9월 15일 입헌자유당을 결성하였다.

3.3. 해산

1890년 8월 4일에 해산되어 입헌자유당에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