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공산당
1. 개요
일본공산당은 1922년 창당된 일본의 정당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한 과학적 사회주의를 이념으로 한다. 창당 초기에는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았으며, 일제강점기에는 탄압을 받았다. 전후에는 합법 정당으로 재건되어 민주화 운동을 전개했으나, 50년 문제와 무장 투쟁 노선으로 분열을 겪기도 했다. 1955년 평화 노선으로 전환한 후, 자주 독립 노선을 추구하며 의회주의를 중시하고 있다. 현재는 미일 안보 조약 반대, 헌법 9조 수호 등 평화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며, 2024년 다무라 도모코가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일본공산당은 기업 및 단체 헌금과 정당 보조금을 받지 않으며, 기관지 구독료가 주요 수입원이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을 지지하며, 한일 간 대화를 촉구한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정당 명칭 | 일본공산당 |
|---|---|
| 로마자 표기 | Nihon Kyōsan-tō |
| 약칭 | JCP |
| 본부 | 도쿄도 시부야구 센다가야 4-26-7, 151-8586 일본 |
| 청년 조직 | 일본민주청년연맹 |
| 창당일 | 1922년 7월 15일 |
| 신문 | '신문 아카하타' |
| 당원 수 | 250,000명 (2024년 1월) |
| 공식 웹사이트 | 일본어 영어 |
| 국제 조직 | IMCWP |
| 공식 색상 | 빨강 |
| 상징 | |
| 당기 |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깃발) |
| 중앙위원회 의장 | 다무라 도모코 |
|---|---|
| 서기국장 | 고이케 아키라 |
| 대표 지도자 | 다카하시 지즈코 (중의원) 가미 도모코 (참의원) |
| 부위원장 | 야마시타 요시키 다나카 오사무 이치다 다다요시 오가타 야스오 구라바야시 아키코 하마노 다다오 |
| 정치적 스펙트럼 | 좌익 ~ 극좌 |
|---|---|
| 이념 |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 과학적 사회주의 진보주의 평화주의 국민주권 좌익 민족주의 애국주의 호헌 반핵 운동 원자력 철폐 반파시즘 쿠릴 열도 전체의 영유권 대대파 기존 좌익 반신좌익 |
| 참의원 | 11석 / 248석 |
|---|---|
| 중의원 | 8석 / 465석 |
| 도도부현 의회 | 113석 / 2644석 |
| 시정촌 의회 | 2226석 / 29135석 |
| 유튜브 채널 이름 | 일본공산당의 공식 YouTube 채널 |
|---|---|
| 유튜브 채널 URL | @jcpmovie |
| 활동 기간 | 2007년 ~ 현재 |
| 구독자 수 | 14.3만 명 |
| 조회수 | 1억 1700만 회 |
| 마지막 업데이트 날짜 | 2024-12-03 |
-
1922년 설립된 정당 -
오스트레일리아 국민당
오스트레일리아 국민당은 1913년 농민 이익 대변을 위해 창당되어 자유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으나, 2021년 지구 온난화 문제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등 쇠퇴하고 있는 정당이다. -
1922년 설립된 정당 -
브라질 공산당
브라질 공산당은 1922년 코민테른 브라질 지부에서 기원하여 1962년 소련 공산당에 반대하는 분파에 의해 결성되었으며, 군사 독재 시대를 거쳐 합법화 후 노동자당과의 연대를 통해 브라질 좌익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반으로 다양한 이념적 변화를 겪은 정당이다. -
일본 제국의 정당 -
입헌정우회
입헌정우회는 1900년 이토 히로부미가 창당한 일본 정당으로, 게이엔 시대를 거치며 원내 제1당 지위를 유지하고 하라 다카시 시대에는 정당 내각을 구성하는 등 전성기를 맞았으나, 이후 분열과 군부 영향력 확대로 1940년 해산되었다. -
일본 제국의 정당 -
입헌국민당
입헌국민당은 1910년 헌정본당 등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헌정주의와 책임내각제 수립을 주장하며 이누카이 쓰요시가 주도했지만, 다이쇼 정변 이후 쇠퇴하여 1922년 해산되었다. -
일본의 극좌 정치 -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는 1955년 결성된 재일 조선인 단체로, 북한을 지지하며 교육, 금융, 언론 기관을 산하에 두고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일본 정부의 감시 대상이자 사회 갈등, 북한 관계 변화, 재정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일본의 극좌 정치 -
문세광
문세광은 1974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 암살 미수와 육영수 여사 살해를 저지른 범인으로, 조총련의 영향을 받아 좌익 사상에 심취하여 범행을 계획했으며 사형 집행되었다.
2. 역사
일본공산당은 1922년 창당 이래 현재까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 2024년 1월 현재 약 25만 명의 당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브라질 공산당과 함께 서방 국가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산당 중 하나이다. 중의원에서 8석, 참의원에서 11석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의원에서는 야당 제5당, 참의원에서는 야당 제4당이다. 약 2,500명의 지방의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0년 8월 현재 64곳의 지자체에서 여당이다. 여성 의원 수가 가장 많은 정당이기도 하다.
당 대표는 일반 당원의 직접 선거가 아닌, 당대회에서 선출된 대의원들이 중앙위원회를 선출하고, 중앙위원회에서 의장, 간부회 위원장 등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지도부를 구성한다. 이 때문에 간부회 위원장은 당의 결정에 구속되며, 임의적인 언행을 할 수 없다.
일본공산당 본부는 도쿄도 신주쿠구 센다가야에 있지만, 요요기역과 가깝기 때문에 '요요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일본공산당을 비판하는 신좌파 등 다른 공산주의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명칭이다. 이들은 1955년 일본공산당이 무장 투쟁 노선을 중단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통한 정권 획득을 목표로 한 것을 비판한다.
일본공산당의 당기는 4개의 붉은 깃발 위에 벼 이삭을 관통한 톱니바퀴 모양이다. 일본국 국회에서는 여당으로 정권에 참여한 적이 없지만, 류큐 정부에서는 사실상 일본공산당의 류큐 지부였던 오키나와 인민당이 야라 조슈 행정 주석을 지지하며 "여당"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다음은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역대 간부 명단이다.
| 서기(대회) | 중앙위원회 의장 | 간부회 위원장 | 간부회 부위원장 | 중앙위원회 서기국장 | 정책위원장 | 국회대책위원장 | 참의원 의원단장 |
|---|---|---|---|---|---|---|---|
| 1970년 (11회 대회) | 노사카 산조 | 미야모토 겐지 | 하카마다 사토미, 오카 마사요시 | 후와 테츠조 | 우에다 코우이치로 | ||
| 1973년 (12회 대회) | 세나가 키지로 | 무라카미 히로시, 이와마 마사오 | |||||
| 1977년 (14회 대회) | 무라카미 히로시 | 니시자와 토미오 | |||||
| 1980년 (15회 대회) | 에비스야 하루마츠 | 마츠모토 요시아키 | |||||
| 1982년 (16회 대회) | 미야모토 겐지 | 후와 테츠조 | 카네코 미츠히로 | 요시오카 요시노리 | |||
| 1985년 (17회 대회) | 타카하라 신이치 | ||||||
| 1987년 (18회 대회) | 오가사와라 사다코, 이와마 마사오 | 테라마에 이와오 | |||||
| 1990년 (19회 대회) | 카네코 미츠히로 | 시이 가즈오 | 쵸토 히로시 | ||||
| 1994년 (20회 대회) | |||||||
| 1997년 (21회 대회) | 타테기 요시 | 후데사카 히데요시 | 코쿠다 케이지 | ||||
| 2000년 (22회 대회) | 후와 테츠조 | 시이 가즈오 | 이시이 이쿠코 | 이치다 타다요시 | |||
| 2004년 (23회 대회) | 코이케 아키라, 요시카와 하루코 | ||||||
| 2006년 (24회 대회) | 공석 | 오가타 야스오 | 코이케 아키라 | ||||
| 2010년 (25회 대회) | 히로이 노리코 | 이치다 타다요시 | |||||
| 2014년 (26회 대회) | 코이케 아키라 | 이치다 타다요시 | 야마시타 요시오 | 야마시타 요시오 | |||
| ― | 후지노 야스시 | ||||||
| 코이케 아키라 | 코이케 아키라 | ||||||
| 2017년 (27회 대회) | 다무라 토모코, 야마시타 요시오 | 카사이 료 | |||||
| 2020년 (28회 대회) | 쿠라바야시 아키코 | 다무라 토모코 | |||||
| 2024년 (29회 대회) | 시이 가즈오 | 다무라 토모코 | 타나카 유 | 야마조에 타쿠 | 카미 지코 |
※ 1976년 제13회 대회에서는 인사 안건 없음.
2.1. 창당과 초기 활동 (1922년 ~ 1945년)
사카이 도시히코, 야마가와 히토시 등 사회주의자들의 주도로 1922년 7월 15일 치안경찰법 위반 상태에서 비밀리에 창당되었다. 창당 초기에는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으며, 군주제 폐지, 귀족원 폐지, 보통선거권, 8시간 노동제, 최저임금제 등 급진적인 요구를 내걸었다.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군, 경찰, 자경단 세력에 의해 오스기 사카에를 포함한 핵심 좌파 지도자들이 암살당하는 등 탄압을 받았다. 1925년 보통선거법과 치안유지법이 제정되면서 더욱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1928년 선거에서는 노농당에서 여러 당원이 출마하였으며, 야마모토 센지가 당선되어 최초의 "일본 공산당 계열 국회의원"이 탄생하였다. 하지만, 3·15 사건, 4·16 사건 등 대규모 검거로 인해 조직이 약화되었고, 무장 공산당 시대에는 테러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1932년 32년 테제를 통해 2단계 혁명론을 확립하고, 천황제 타도, 기생적 토지 소유 폐지 등을 목표로 내걸었다.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으나, 하카마다 사토미 체포 이후 조직은 붕괴되었다.
초기 지도부는 아나코-생디칼리즘과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에서 왔다. 무정부주의자 고토쿠 슈스이의 지지자였던 야마카와 히토시, 사카이 도시히코, 아라하타 칸손이 있었으며, 또 다른 초기 당 지도자였던 가타야마 센은 기독교 사회주의자였다.
다음은 창당과 초기 활동에 참여한 주요 인물들이다.
* 아라하타 칸손
* 가타야마 센
* 카와카미 하지메
* 후쿠모토 카즈오
* 고바야시 타키지
* 사카이 도시히코
* 야마카와 히토시
* 사카구치 키이치로
* 김철해
* 노사카 산조
* 시가 요시오
* 토쿠다 규이치
2.2. 전후 재건과 민주화 운동 (1945년 ~ 1950년)
1945년 일본의 항복 이후, 연합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의 지령에 따라 도쿠다 규이치, 미야모토 겐지 등 공산주의자들이 석방되어 일본공산당은 합법 정당으로 재건되었다. 노사카 산조의 지도 아래, 연합군을 "해방군"으로 규정하고, 평화 혁명론을 내세웠다.
1946년에는 일본인민공화국 헌법 초안을 발표하는 등 민주화 운동을 전개했다.
1949년 일본 총선거에서는 35석을 획득하며 약진했으나, 냉전 심화와 함께 붉은 숙청으로 탄압을 받았다.
1950년 5월 3일, 더글러스 맥아더는 일본공산당 해산을 고려했고, 6월 6일에는 당 중앙위원회 위원 24명이 해임되었으며, 6월 27일에는 당 기관지인 아카하타의 발행이 중단되었다.
2.3. 50년 문제와 무장 투쟁 노선 (1950년 ~ 1955년)
1950년 코민포름은 요셉 스탈린 소련 총리의 지시에 따라 일본공산당의 평화 노선을 "기회주의", "미국 제국주의 미화"라고 비난했다. 또한 일본공산당에게 마오쩌둥식의 즉각적인 폭력 혁명을 요구했다. 이 "코민포름 비판"으로 인해 일본공산당 내에서는 경쟁하는 파벌들이 코민포름의 승인을 얻기 위해 경쟁했다. 결국,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수단으로 일본의 해방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실수"라고 선언하고, 즉각적인 폭력 혁명을 촉구한 급진적인 51년 강령을 채택하게 되었다. 이 강령은 스탈린주의와 마오쩌둥주의 사상이 결합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일본공산당은 산촌 공작대를 조직하여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러한 무장 투쟁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1952년 제2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당 후보 전원이 낙선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55년 일본공산당은 제6회 전국협의회(육전협)를 통해 무장 투쟁 노선을 "극좌 모험주의"라고 비판하며 중단했다. 이후 의회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당으로 전환했다.
2.4. 평화 노선과 자주 독립 노선 (1955년 ~ 현재)
1955년 제6회 일본공산당 전국협의회를 계기로 무장투쟁 노선을 포기하고 평화 노선을 채택했으며, 주변국 공산당들과는 별개로 민주주의를 수용하는 독자 노선을 채택하였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일본에서는 '정치의 계절'로 불릴 만큼 학생운동과 나리타 공항 건설 반대운동 같은 사회운동이 활발하였는데, 일본공산당도 학생운동과 관련이 있었다. 당시 학생운동은 일본공산당의 지도 여부에 따라 요요기계(代代木系)와 반요요기계(反代代木系)로 양분되었는데, 요요기라는 말은 일본공산당 본부가 있었던 도쿄 요요기에서 유래한다. 일본공산당의 지도를 받은 요요기계는 비폭력과 의회주의 성격을 띤 온건한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반 요요기계는 혁명과 가두 투쟁을 지향하는 급진적인 사람들로 '신좌익'으로 불리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로는 계급 투쟁을 포기하고 극좌단체와의 연계를 끊으며 시장경제체제의 급진적인 변혁을 주장하지 않도록 변화되었다.
1960년, 일본 공산당은 일본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위였던 미일안보조약 반대 시위(Anpo protests) 조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일본 공산당은 주요 저항 대상이 일본 독점 자본주의라고 주장한 일본 사회당, [[전국총련](Sohyo)] 노동조합 및 기타 단체들과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 일본 공산당은 주요 적이 미국의 제국주의라고 주장하며, 관련 단체들과 함께 도쿄 주재 미국 대사관을 중심으로 시위를 집중했다. 따라서 일본 공산당 관련 단체들은 1960년 6월 10일 도쿄 하네다 공항(Haneda Airport) 밖에서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의 언론 비서관 제임스 헤거티(James Hagerty)가 탄 차량이 폭행당한 ""헤거티 사건"(The "Hagerty Incident")의 주도 세력이었고, 이는 주요 국제적 사건을 야기하고 기시 노부스케(Nobusuke Kishi) 내각의 몰락을 재촉하는 데 기여했다.
미일안보조약 반대 시위는 1950년대 초 폭력 혁명으로의 극단적인 전환 이후 정치적 운명을 되살리려는 일본 공산당의 지속적인 시도에 있어 전환점이었다.
1960년대 중반, 미국 국무부는 당원 수를 약 12만 명(생산가능인구의 0.2%)으로 추산했다. 미야모토 겐지는 1964년 당원 수가 10만 명을 넘었다고 보고했고, 1970년에는 약 30만 명의 당원을 확보했다.
1972년 총선에서 일본 공산당은 38석을 획득하여 1949년의 최고 기록인 35석을 넘어섰고, 1950년대 초의 극렬한 노선에서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보여주었다. 1970년대에도 당원 수는 계속 증가했지만, 1960년대보다는 느린 속도였으며, 1980년에는 약 50만 명에 달했다.
일본 공산당(JCP)은 중소 분쟁(Sino-Soviet split) 기간 중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미야모토는 당이 어느 쪽 편을 들 필요가 없다고 믿었다.
일본 공산당은 중인 전쟁(Sino-Indian War) 중 중국을 지지했다. 미야모토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침공(1968 invasion of Czechoslovakia)에 대한 일본 공산당의 반대를 발표했다. 동시에 당은 마오쩌둥(Mao)과 마오이즘(Maoism)과 거리를 두었다. 1969년 7월, 일본 공산당은 만약 집권하게 된다면 야당의 자유로운 활동을 허용할 것이라고 선언하여 소련과 중국의 일당 국가(one-party state)와 차별화하려고 노력했다. 1976년에는 당 강령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Marxism–Leninism)"에 대한 언급이 "과학적 사회주의(scientific socialism)"로 변경되었다.
소련 해체 이후, 일본 공산당은 "강대국 쇼비니즘과 패권주의라는 역사적 악의 화신이었던 당의 종말을 환영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사회주의를 포기한 동구권 국가들을 비판하며 그들의 결정을 "역사의 역행"이라고 묘사했다.
2018년 아베 총리가 세금을 동원하여 자신의 지역구에서 벛꽃 모임을 열었다는 정치 스캔들과 관련하여 원내정당들 중에 가장 강도높게 비판을 하였다. 2020년도에는 중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신강령을 채택하였다.
2020년 일본 공산당은 2004년 이후 처음으로 당 강령을 개정했다. 새로운 강령은 중국 공산당(Chinese Communist Party)을 비판하며, 중국의 "대국 쇼비니즘과 패권주의"를 "세계 평화와 진보에 역행하는 흐름"으로 규정했다. 또한 중국을 "사회주의를 향한 새로운 탐구를 시작한 나라"로 묘사한 당 강령의 문구를 삭제했다. 일본 공산당 당원들은 이것이 중국의 인권 상황(Human rights in China)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는 일본 공산당의 비난을 "근거 없고 편향된 것"이라고 비난했다.
2021년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중의원 의석수가 12석에서 10석으로 감소하였다. 2022년에 치러진 제2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도 4석을 얻어 의석수가 13석에서 11석으로 감소하였다.
다무라 도모코 의원이 2024년 1월 18일 시이 가즈오의 뒤를 이어 일본 공산당의 첫 여성 의장으로 취임했다. 시이 가즈오는 23년 이상 의장직을 수행했다.
3. 이념 및 정책
일본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한 과학적 사회주의를 이념으로 삼고,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여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1990년대 정책 수정 이후 보다 전통적인 민주사회주의 정당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당은 좌익에서 극좌까지 좌우 이념 스펙트럼에 위치한다.
현재 일본 사회가 사회주의 혁명이 아닌, 대미 종속과 대기업·재계의 지배를 타파하고 민주주의적 개혁을 실현하는 민주주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통일 전선 세력이 국회에서 안정적인 과반수를 차지하면, 민주 연합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고 본다.
주요 정책:
* 평화주의: 일미 동맹 종식, 주일 미군 기지 철거, 비동맹 중립 외교, 일본 헌법 9조 수호를 주장한다.
* 경제 정책: 대기업에 대한 민주적 규제,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문제 해결, 사회보장 확충 등 분배를 중시한다.
* 사회 정책: 2004년 천황을 일본의 국가원수로 인정하며, 일본 황실에 대한 기존 반대 입장을 바꾸었다. LGBT 권리 옹호, 페미니즘 운동 지지 등 사회적 진보주의 성향을 보인다.
* 외교 정책: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의 행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한다. 독도와 센카쿠 열도에 대한 일본의 영토 주장을 지지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했던 몇 안 되는 일본 정당 중 하나이며, 조선공산당과 협력하여 한국 혁명가들을 위한 훈련 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4. 조직
일본공산당은 민주집중제를 조직 원칙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는 당내 민주주의와 중앙 집권적 지도를 결합한 것으로, 당의 결정은 민주적인 토론을 거쳐 다수결로 이루어지며, 파벌이나 분파는 허용되지 않는다.
당의 최고 의결 기관은 일본공산당대회이며, 2~3년마다 중앙위원회가 소집한다. 특별한 상황에서는 연기될 수 있다. 당대회 사이에는 당대회에서 선출된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최고 의결 기관이다. 중앙위원회는 매년 두 차례 회의를 열며, 위원 3분의 1의 요청이 있을 경우 전체회의를 열 수 있다.
중앙위원회는 정식 위원과 후보 위원으로 구성되며, 후보 위원은 회의에 참석할 수 있지만 투표권은 없다. 중앙위원회는 중앙위원회 집행위원회와 위원장 및 부위원장, 그리고 사무국장을 선출한다. 현재 중앙위원회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다무라 토모코이다. 중앙위원회는 또한 징계위원회와 감사위원회를 임명하며,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선출할 수도 있다. 현재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시이 가즈오이다.
집행위원회는 중앙위원회 회의 사이에 당무를 관리하며, 당 중앙의 일상 업무를 관리하는 사무국과 중앙 기관지 편집위원회 위원을 임명한다. 또한 집행위원회 상무위원회를 선출한다.
당의 기관지로는 신문 아카하타(赤旗新聞)가 있으며, 전국적인 일간 신문이다. 과거에는 《무산자 신문》(無産者新聞), 《제2 무산자 신문》(第二無産者新聞) 등의 기관지도 발행되었다.
가나가와현의 《신 가나가와》(新神奈川)와 같은 일부 지역 신문은 현재도 발행되고 있다.
일본 공산당의 청년 조직은 일본민주청년동맹이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이 조직은 Rēnin Seinenja-latn (레닌 청년영어)과 프롤레타리아 청년을 포함한 여러 자체 신문을 발행했다.
일본 공산당은 제휴 의료 및 소비자 조합을 가지고 있다. 일본 협동조합 운동의 상위 기구인 일본 소비자협동조합연합회(JCCU)에는 많은 공산당원이 있으며, 정확한 수는 확인하기 어렵다.
5. 재정
일본공산당은 당규약에 따라 당비, 당 사업 수입, 개인 기부금 등으로 정치자금을 충당한다(규약 제45조). 기업·단체 헌금과 정당 보조금은 받지 않는다.
수입의 약 90%는 사업 수입이 차지하며, 대부분 '신문 아카하타'(しんぶん赤旗) 등 기관지 구독료 수입이다. 지출 또한 기관지 발행 사업비가 60% 이상을 차지한다. 이처럼 기관지 사업 규모가 커서 매년 총액은 일본 정당 중 최대 규모인 150에서 200에 달한다.
2022년 수입(전년도 이월금 제외)은 약 1909500, 지출(다음 해 이월금 제외)은 1832300이었다. 수입 내역은 다음과 같다.
| 항목 | 금액 | 비율 |
|---|---|---|
| 당비 | 약 514 | 약 2.69% |
| 기부금 | 466 | 2.44% |
| 사업 수입 | 1665300 | 87.21% |
| 차입금 | 3 | 0.02% |
| 본부 또는 지부 교부금 | 1066 | 5.58% |
| 기타 수입 | 394 | 2.06% |
기부금은 전액 개인으로부터 받았으며, 사업 수입 중 기관지 수입은 1658700로 전체 수입의 약 87%를 차지한다.
지출(다음 해 이월금 포함) 내역은 경상비가 약 3381, 정치활동비가 1604300(이 중 본부 또는 지부 교부금 지출이 5468)이다. 기관지 발행 사업비는 정치활동비에 포함되며, 1228300로 지출 전체의 63%를 차지한다. 정치자금 파티 개최 사업비는 지출하지 않았다.
일본공산당은 이러한 재정 구조에 대해 "국민과 풀뿌리에서 연결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며, 다른 정당과 완전히 다른 당 재정의 건전성을 보여준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당비는 실수입의 1%이며, 월별 또는 일정 기간 분을 선납한다. 생활이 어려운 당원은 당비를 감면받을 수 있다(제46조). 일본민주청년동맹 동맹원으로 활동하는 당원은 납입하는 당비에서 동맹비(550엔)를 공제한 금액을 납입한다. 2022년에는 연인원 약 240만 명이 당비를 납입했다.
기업 헌금은 "정치를 부패시키는 원흉"이라는 이유로, 단체 헌금은 "단체 구성원의 사상·신조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받지 않는다. 다만, 기업 경영자나 노동조합·각종 단체 임원으로부터의 개인 헌금은 받고 있다.
정당 보조금은 헌법 위반 제도라며 수령을 거부하는 유일한 정당이다. 정무활동비는 수령하고 있다.
중앙 기관지로서 매일 발행하는 '신문 아카하다'(브랭킷판)와 주간 발행하는 '신문 아카하다 일요판'(타블로이드판)을 발행하고 있다. 2019년 시점에서 일간지와 일요판을 합친 구독자 수는 100만 부를 밑돌았다.
6. 다른 정당과의 관계
자유민주당(자민당)과는 이념적으로 대립하며, 안보 정책, 경제 정책 등에서 첨예하게 대립한다.
입헌민주당, 사회민주당(사민당)과 같은 진보 정당들과는 헌법 개정 반대, 원자력 발전 반대 등 일부 정책에서 협력하기도 하지만, 선거에서는 경쟁 관계에 있다.
공명당과는 평화주의 등 일부 정책에서 협력하기도 하지만, 정교분리 원칙을 둘러싸고 대립한다.
일본유신회와는 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경쟁 관계에 있다.
일본사회당은 과거 좌익 정당이었으나 노선 차이로 인해 대립했으며, 부락 해방 동맹과의 갈등도 있었다.
신좌익 정당들과는 폭력 혁명 노선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으며, 이들을 "가짜 좌익 폭력 집단"이라고 비판한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일본 사회당과의 협력을 모색하는 이른바 '사사공투(社社共闘)'가 있었지만, 미일안보조약에 대한 입장 차이와 부락 해방 동맹 문제 등으로 인해 결렬되었다.
1990년대 이후 민주당이 부상하면서 한때 협력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아베 신조 정권의 2015년 일본 안보 관련 법안 강행 처리에 대한 반발로 야권 공조가 강화되면서, 민진당(현 입헌민주당)과의 선거 협력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2015년 9월에는 2015년 일본 안보 관련 법안을 폐지하기 위해 다른 야당과의 협력을 통해 임시정부를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여전히 정책적 차이와 과거사 문제 등으로 인해 다른 정당과의 관계는 복잡하다. 특히 부락 해방 동맹과의 갈등은 현재까지도 깊은 불화를 남기고 있다.
7. 한국과의 관계
일본 공산당은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 중 행동에 대해 추가로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난해왔다. 1930년대, 일본 공산당이 여전히 불법이었을 때, 중일 전쟁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유일한 정당이었다.
일본 공산당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토 주장을 지지한다. 일본 공산당은 독도 문제에 대해 일본이 독도(竹島)의 영유권을 갖고 있다는 정부의 주장이 근거 있는 정당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국은 독도의 일방적인 점령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일본과 한국의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다만, 1905년 대한제국이 대일본제국에 의해 사실상 외교권을 박탈당하여 일본의 영유권에 반대할 수 없었던 점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공산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일본 내 반한 감정과 혐오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일본 공산당 정치인들은 한국에 대한 경멸을 부추기는 일본 주류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한국 역사와 일본의 전쟁 범죄와 관련된 역사 수정주의에 반대한다. 일본 공산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했던 몇 안 되는 일본 정당 중 하나였다. 1940년대 후반에는 일본 공산당과 조선공산당을 포함한 여러 한국 단체들이 공동으로 한국 혁명가들을 위한 훈련 학교를 운영했다. 한국에서는 일본 공산당이 일본 내 유일한 "친한" 정당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공산당을 결성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민단은 일본 공산당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3년 당시 진보 성향의 한국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고려에 따라, 일본 공산당과 한국 정부 간의 공식적인 교류가 시작되었다.
일본 공산당은 영주 외국인에 대한 외국인 참정권 부여 문제에 대해, 선거권뿐 아니라 피선거권도 부여해야 한다는, 지방 참정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신년회에 참석한 시이 가즈오 위원장은 “역사의 진실을 한일 양국에서 공유하는 것이 우호의 기반이며, 일본 공산당은 그러한 입장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지방 참정권에 대해서는 “일본 공산당은 영주 외국인에게 선거권뿐 아니라 피선거권도 부여하는 입장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하루빨리 입법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인사말 처음과 끝을 한국어로 마무리했다. 다만, 국정에 관한 참정권 부여에 대해서는 “국가 주권에 반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또한, 일본 국적을 가지지 않으면 당원이 될 수 없다는 규약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