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가와 시게노부
1. 개요
야나가와 시게노부는 일본 센고쿠 시대의 무장으로, 대마도주 소 씨 가문의 가신이자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출신은 불분명하나, 쓰시마 섬에서 활동하며 소 요시토모를 섬겼다. 소 요시토모의 명으로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면회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귀순하는 사절로 활동했다. 그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도요토미 정권과 조선 조정에서 존경을 받았으며, 임진왜란 전후 외교에도 기여했다. 만년에는 양자에게 가문을 물려주고 1605년에 사망했다.
| 씨명 | 야나가와 씨 |
|---|---|
| 이름 | 야나가와 시게노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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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센고쿠 시대 - 에도 시대 |
| 출생 | 덴분 8년 ( 1539년) |
| 사망 | 게이초 10년 9월 29일 (1605년11월 10일) |
| 개명 | 쓰나 진자부로 → 야나가와 곤노스케 시게노부 |
| 계명 | 류호인 |
| 관위 | 대마수, 종5위하・시모쓰케노카미 종3품・가젠다이부 |
| 주군 | 쓰나 시게치카 → 소 요시시게 → 요시즈미 → 요시토모 |
| 번 | 대마 후추 번 |
| 씨족 | 야나가와 씨 |
| 부모 | 양부: 쓰나 시게치카, 야나가와 시게마사 |
| 형제 | 시게나가, 시게노부 |
| 배우자 | 쓰나 시게치카의 막내딸 |
| 자녀 | 도모나가, 가게나오 (도모노부)소 요시즈미의 차남 소 지쥰의 아들. 통칭은 히코사부로. 처음에는 도모노부, 나중에 가게나오로 이름을 바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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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후추번 사람 -
아메노모리 호슈
아메노모리 호슈는 1668년에 태어나 1755년에 사망한 일본의 학자이자 외교관으로, 쓰시마 번에서 조선과의 외교를 담당하며 조선어와 주자학을 배우고 《교린수지》를 저술하여 성신을 강조하며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을 보였다. -
쓰시마 후추번 사람 -
니치오
니치오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승려이자 니치렌종의 한 분파인 불수불시파의 시조로, 권력자에게 시주를 받거나 설법을 베풀지 않는 불수불시 사상을 주장하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두 차례 유배를 겪었고 그의 사상은 막부의 종교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
16세기 출생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16세기 출생 -
빌럼 바런츠
빌럼 바런츠는 북동 항로를 탐험하다가 노바야제믈랴에서 조난당해 사망했지만, 그의 탐험은 북극 지역에 대한 유럽인들의 지식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
1605년 사망 -
야마우치 가즈토요
야마우치 가즈토요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무장으로,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기며 도사국을 얻어 다이묘가 되었고, 고치성을 축조하고 가다랑어 타다키의 유래를 만들었으며 20만 석의 영주가 되었으나 자식 없이 사망했다. -
1605년 사망 -
보리스 고두노프
보리스 고두노프는 이반 뇌제 측근에서 차르까지 오른 16세기 말~17세기 초 러시아의 중요 인물로, 섭정 시절 개혁을 단행하고 차르로서는 서구 문물 수용 정책을 펼쳤으나 기근과 가짜 드미트리 1세의 난으로 혼란을 겪다 사망했다.
2. 생애
야나가와 시게노부는 소 요시토모의 집사로서 도요토미, 도쿠가와 정권뿐만 아니라 조선 조정에서도 존중받으며 외교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다. 적자 도모나가가 있었지만, 소 요시즈미의 손자 가게나오(도모노부)를 양자로 삼아 그에게 직위를 양보했다. 게이초 10년 (1605년) 9월 29일, 67세로 사망했다.
2.1. 출신 및 초기 활동
야나가와 시게노부의 출신은 불분명하며, 『소씨가보략(宗氏家譜略)』에 따르면, 후에 부조(父祖)의 땅을 성으로 삼았다는 전승에 따라 지쿠고국 야나가와 출신이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형인 시키부(후의 야나가와 조초)와 함께 쓰시마로 건너가 쓰나 조친(소 마사모리의 이복 동생)을 섬겼다. 형은 후계자가 없던 조친의 양자(의자)가 되었으며, 시게노부는 조친의 딸을 아내로 삼았다.
에이로쿠 3년 (1559년), 조친이 소 요시토모에게 모반을 일으켜 주살당하자, 시게노부는 사가촌의 야나가와 우마노스케 조마사의 양자가 되어 야나가와 성으로 고쳤다. 요시토모는 귀순한 시게노부가 인척임을 이유로 용서했다. 이나 군주 소 조쿠니가 사망하자 그 유령의 일부를 받아 이나 군대가 되었고, 덴쇼 5년(1577년)경 곤노스케 노부노리와 이름을 고쳤다.
덴쇼 4년 (1576년), 소 요시즈미의 사자로서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면회했다. 덴쇼 15년 (1587년)에 소 요시토모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귀순할 때 사자로 활약했다.
덴쇼 18년 (1590년), 수호대 사스 카게미쓰를 참언하여 소 요시토모에게 제거하게 했다. 『세이호키(晴豊記)』에 따르면, 같은 해 11월 1일 참내했을 때 관백 히데요시의 제후(배신)로서 대마 수호에 서임되었다。 덴쇼 19년 (1591년) 정월, 조선 사절의 복로에 외교 승려 경철 현소와 함께 동행하여 4월 29일에 인 정전에서 조선 국왕 선조를 알현하고 종이품 가선대부의 조선 작위도 수여받았다.
2.2. 소 요시토모 가신 시절
형인 시키부(후의 야나가와 조초)와 함께 쓰시마로 건너가 쓰나 조친(소 마사모리의 이복 동생)을 섬겼고, 형은 후계자가 없던 조친의 양자가 되었으며, 진사부로는 조친의 딸을 아내로 삼았다.
에이로쿠 3년 (1559년), 조친이 소 요시토모에게 모반을 일으켜 주살당했기 때문에, 사가촌의 야나가와 우마노스케 조마사의 양자가 되어 야나가와 성으로 고쳤다. 요시토모는 귀순한 진사부로가 인척임을 이유로 용서했다. 이나 군주 소 조쿠니가 사망하자 그 유령의 일부를 받아 이나 군대가 되었고, 덴쇼 5년(1577년)경 곤노스케 노부노리와 이름을 고쳤다.
덴쇼 4년 (1576년), 소 요시즈미의 사자로서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면회하였다. 덴쇼 15년 (1587년)에 소 요시토모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귀순할 때 사자 역할을 수행했다.
덴쇼 18년 (1590년), 수호대 사스 카게미쓰를 참언하여 소 요시토모에게 제거하게 하였다. 『세이호키(晴豊記)』에 따르면, 같은 해 11월 1일 참내했을 때 관백 히데요시의 제후(배신)로서 대마 수호에 서임되었다. 덴쇼 19년 (1591년) 정월, 조선 사절의 복로에 외교 승려 경철 현소와 함께 동행하여 4월 29일에 인 정전에서 조선 국왕 선조를 알현하고 종이품 가선대부의 조선 작위도 수여받았다.
소 요시토모의 집사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외교에서 활약하여 도요토미·도쿠가와 정권뿐만 아니라 조선 조정에서도 존중받았다.
2.3. 외교관으로서의 활약
에이로쿠 3년 (1559년) 쓰나 조친이 소 요시토모에게 모반을 일으켜 주살되자, 사가촌의 야나가와 우마노스케 조마사의 양자가 되어 야나가와 성으로 고쳤다. 요시토모는 귀순한 진사부로가 인척이라는 이유로 용서했다. 소 조쿠니가 사망하자 그 유령의 일부를 받아 이나 군대가 되었고, 덴쇼 5년(1577년)경 곤노스케 노부노리로 이름을 고쳤다.
덴쇼 4년 (1576년) 소 요시즈미의 사자로서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만났다. 덴쇼 15년 (1587년) 소 요시토모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귀순할 때 사자가 되었다.
덴쇼 18년 (1590년) 수호대 사스 카게미쓰를 참언하여 소 요시토모에게 제거하게 했다. 『세이호키(晴豊記)』에 따르면, 11월 1일 참내했을 때 관백 히데요시의 제후(배신)로서 대마 수호에 서임되었다. 덴쇼 19년 (1591년) 정월, 조선 사절의 복로에 외교 승려 경철 현소와 함께 동행하여 4월 29일 인정전에서 조선 국왕 선조를 만나 종이품 가선대부의 조선 작위도 받았다.
소 요시토모의 집사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외교에서 활약하여 도요토미·도쿠가와 정권뿐만 아니라 조선 조정에서도 존중받았다.
2.4. 임진왜란 전후의 활동
형인 시키부(후의 야나가와 조초)와 함께 쓰시마로 건너가 쓰나 조친(소 마사모리의 이복 동생)을 섬겼으며, 형은 후계자가 없던 조친의 양자(의자)가 되었고, 진사부로는 조친의 딸을 아내로 삼았다.
에이로쿠 3년 (1559년), 조친이 소 요시토모에게 모반을 일으켜 주살당했기 때문에, 사가촌의 야나가와 우마노스케 조마사의 양자가 되어 야나가와 성으로 고쳤다. 요시토모는 귀순한 진사부로가 인척임을 이유로 용서했다. 이나 군주 소 조쿠니가 사망하자 그 유령의 일부를 받아 이나 군대가 되었고, 덴쇼 5년(1577년)경 곤노스케 노부노리와 이름을 고쳤다.
덴쇼 4년 (1576년), 소 요시즈미의 사자로서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면회하였다. 덴쇼 15년 (1587년)에 소 요시토모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귀순할 때 사자가 되었다.
덴쇼 18년 (1590년), 수호대 사스 카게미쓰를 참언하여 소 요시토모에게 제거하게 하고, 『세이호키(晴豊記)』에 따르면, 11월 1일 참내했을 때 관백 히데요시의 제후(배신)로서 대마 수호에 서임되었다. 덴쇼 19년 (1591년) 정월, 조선 사절의 복로에 외교 승려 경철 현소와 함께 동행하여 4월 29일에 인 정전에서 조선 국왕 선조를 알현하고 종이품 가선대부의 조선 작위도 수여받았다.
소 요시토모의 집사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외교에서 활약하여 도요토미·도쿠가와 정권뿐만 아니라 조선 조정에서도 존중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