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데쓰야 (1985년)
1. 개요
야마모토 데쓰야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코치로, 1985년생이다. 사회인 야구팀 미쓰비시 중공업 고베에서 활동하다가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투수로 활동했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스카우트로 활동했으며, 2021년부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군 육성 투수 코치를 맡고 있다. 최고 구속 148km의 빠른 속구와 슬라이더, 포크볼을 주 무기로 사용했으며, 셋업 투수로 활약했다.
| 이름 | 야마모토 데쓰야 |
|---|---|
| 원어 이름 | 山本 哲哉일본어 |
| 로마자 표기 | Yamamoto Tetsuya |
| 출생일 | 1985년 9월 4일 |
| 출생지 | 와카야마현 히다카군 유라정 |
| 신장 | 178cm |
| 체중 | 73kg |
| 포지션 | 투수 |
| 투구 | 우투 |
| 타석 | 우타 |
| 드래프트 연도 | 2009년 |
|---|---|
| 드래프트 순위 | 2순위 |
| 아마추어 | 와카야마현립 남부 고등학교 긴키 대학 미쓰비시 중공업 고베 |
|---|---|
| 프로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010년 ~ 2018년) |
| 첫 출장 | 2011년 8월 20일 |
|---|---|
| 마지막 경기 | 2018년 10월 8일 (은퇴 경기) |
| 소속 구단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
| 등번호 | 92 |
| 데뷔 리그 | NPB |
| 데뷔 날짜 | 2011년 8월 20일 |
| 데뷔 팀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
| 마지막 리그 | NPB |
| 마지막 날짜 | 2018년 10월 8일 |
| 마지막 팀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
| 승-패 기록 | 6승 11패 |
| 평균 자책점 | 3.07 |
| 탈삼진 | 124 |
| 세이브 | 14 |
| 홀드 | 55 |
| 올스타 선정 | 1회 (2013년) |
| 코치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021년 ~ ) |
|---|---|
| 역직 | 2군 투수 코치 |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
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
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
긴키 대학 동문 -
가니에 미키
가니에 미키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양궁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하며 일본 양궁 사상 첫 올림픽 메달 획득에 기여한 1988년생 일본 양궁 선수로, 은퇴 후 양궁 지도자로 활동 중이며 "리틀 그린 맨" 어깨 보호대로도 알려져 있다. -
긴키 대학 동문 -
가와나카 가오리
가와나카 가오리는 일본의 양궁 선수로, 2012년 런던 올림픽 여자 단체전 동메달,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리커브 여자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일본 선수단 기수를 맡았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2. 선수 경력
;사회인 시대
* 미쓰비시 중공업 고베
;프로팀 경력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2010년 ~ 2018년)
==== 프로 입단 전 ====
야마모토 데쓰야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중학교 시절에는 소년 야구팀 ‘와카야마 라이온스’에서 활약했다. 미나베 고등학교에서는 오카모토 요스케의 백업 투수였다.
긴키 대학에서는 3학년 봄부터 등판하여, 가을에 열린 교토 대학과의 경기에서 첫 선발로 나와 5피안타 무볼넷 완봉승을 거두며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후 오토나리 겐지에 이은 2선발로서 활약했다. 4학년 가을에는 구원, 마무리로 활약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리그 통산 20경기에 등판하여 5승 1패, 평균 자책점 1.25를 기록했고, 팀 동기로는 오제 히로유키가 있다.
그 후 미쓰비시 중공업 고베에 입사하여 사회인 야구팀에 소속되었는데, 1년째부터 팀의 에이스가 되면서 2년 연속(제79회, 제80회) 팀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의 출전을 이끌었다. 특히 제80회 대회에서는 최고 구속 148km를 기록했다. 2009년 10월 29일에 열린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로부터 2순위 지명을 받았고, 그해 11월 27일에 계약금 7,500만 엔, 연봉 1,200만 엔으로 가계약을 맺었다(금액은 추정치).
==== 프로 입단 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
2010년 드래프트 2순위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에는 시범 경기에 첫 등판하여 호투했지만 경기 종료 후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고, 정밀검사 결과 인대가 끊어진 것으로 판명되어 토미 존 수술을 받아 1군과 2군에서 모두 출전하지 못했다. 2011년에는 1군에 데뷔하여 9경기에 등판, 승리 없이 1패만을 기록하며 부상 회복에 집중했다.
2012년에는 시즌 중반 바넷이 전력에서 이탈한 이후 셋업맨으로 자리잡아 50경기에 등판하여 2승 2패, 17홀드, 평균 자책점 1.21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2013년에도 셋업맨으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바넷의 부진으로 시즌 초반부터 마무리 투수로 보직이 변경되어 11세이브를 기록했다. 시즌 중반부터는 신인이던 이시야마 다이치와의 배치 전환에 의해 다시 셋업맨이 되면서 개인 최다인 64경기에 등판, 25홀드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투수진이 전체적으로 저조한 모습을 보여 개막 후 7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는 등 등판을 거듭했다. 7월에는 3경기 연속으로 실점을 내주면서 한 번은 1군 등록이 말소됐지만 3년 연속 50경기 등판을 넘겼다. 한편 홀드 수와 평균 자책점에서는 전년도에 비해 성적이 떨어졌다.
2015년에는 1군에서의 17경기 등판에만 그쳤고, 9월에는 두 번째 오른쪽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2016년에는 전년도 팔꿈치 수술의 영향으로 1군 등판은 없었다.
2017년 1군에 복귀하여 32경기에 등판했다.
2018년 9월 30일에 현역에서 은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10월 8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전의 7회초에 은퇴 등판하여 상대 타자 요카와 나오마사를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했고 마찬가지로 이 해를 끝으로 은퇴하는 마쓰오카 겐이치와 교체됐다.
2.1. 프로 입단 전
야마모토 데쓰야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중학교 시절에는 소년 야구팀 ‘와카야마 라이온스’에서 활약했다. 미나베 고등학교에서는 오카모토 요스케의 백업 투수였다.
긴키 대학에서는 3학년 봄부터 등판하여, 가을에 열린 교토 대학과의 경기에서 첫 선발로 나와 5피안타 무볼넷 완봉승을 거두며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후 오토나리 겐지에 이은 2선발로서 활약했다. 4학년 가을에는 구원, 마무리로 활약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리그 통산 20경기에 등판하여 5승 1패, 평균 자책점 1.25를 기록했고, 팀 동기로는 오제 히로유키가 있다.
그 후 미쓰비시 중공업 고베에 입사하여 사회인 야구팀에 소속되었는데, 1년째부터 팀의 에이스가 되면서 2년 연속(제79회, 제80회) 팀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의 출전을 이끌었다. 특히 제80회 대회에서는 최고 구속 148km를 기록했다. 2009년 10월 29일에 열린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로부터 2순위 지명을 받았고, 그해 11월 27일에 계약금 7,500만 엔, 연봉 1,200만 엔으로 가계약을 맺었다(금액은 추정치).
2.2. 프로 입단 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010년 드래프트 2순위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에는 시범 경기에 첫 등판하여 호투했지만 경기 종료 후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고, 정밀검사 결과 인대가 끊어진 것으로 판명되어 토미 존 수술을 받아 1군과 2군에서 모두 출전하지 못했다. 2011년에는 1군에 데뷔하여 9경기에 등판, 승리 없이 1패만을 기록하며 부상 회복에 집중했다.
2012년에는 시즌 중반 바넷이 전력에서 이탈한 이후 셋업맨으로 자리잡아 50경기에 등판하여 2승 2패, 17홀드, 평균 자책점 1.21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2013년에도 셋업맨으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바넷의 부진으로 시즌 초반부터 마무리 투수로 보직이 변경되어 11세이브를 기록했다. 시즌 중반부터는 신인이던 이시야마 다이치와의 배치 전환에 의해 다시 셋업맨이 되면서 개인 최다인 64경기에 등판, 25홀드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투수진이 전체적으로 저조한 모습을 보여 개막 후 7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는 등 등판을 거듭했다. 7월에는 3경기 연속으로 실점을 내주면서 한 번은 1군 등록이 말소됐지만 3년 연속 50경기 등판을 넘겼다. 한편 홀드 수와 평균 자책점에서는 전년도에 비해 성적이 떨어졌다.
2015년에는 1군에서의 17경기 등판에만 그쳤고, 9월에는 두 번째 오른쪽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2016년에는 전년도 팔꿈치 수술의 영향으로 1군 등판은 없었다.
2017년 1군에 복귀하여 32경기에 등판했다는 내용은 요약에만 존재한다.
2018년 9월 30일에 현역에서 은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10월 8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전의 7회초에 은퇴 등판하여 상대 타자 요카와 나오마사를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했고 마찬가지로 이 해를 끝으로 은퇴하는 마쓰오카 겐이치와 교체됐다.
3. 지도자 경력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스카우트로 활동하며 키자와 나오후미, 스기야마 코우키 등을 담당했다. 2021년부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군 육성 투수 코치로 현장에 복귀했고, 2024년부터는 2군 투수 겸 육성 담당 코치를 맡고 있다.
4. 선수 시절 특징
최고 148km의 빠른 속구에 더해, 종으로 변화하는 슬라이더나 포크볼 등을 무기로 하는 우완 투수이다. 현역 시절에는 3년 연속 50경기 이상 등판하는 등 주로 셋업으로 활약했다.
성실한 인품의 소유자이며, 성실하게 임하는 자세로 팀 동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존재이다.
5. 개인 기록
5.1. 첫 기록
야마모토 데쓰야의 첫 등판은 2011년 8월 20일 도쿄 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였다. 6회말에 2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같은 경기에서 사카모토 하야토를 상대로 첫 탈삼진(루킹 삼진)을 기록했다.
2012년 6월 27일 셀룰러 스타디움 나하에서 열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는 7회말 2사에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첫 홀드를 기록했다. 6월 29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는 8회초 1사에 6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2/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첫 승리를 따냈다.
2013년 4월 23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는 9회초에 4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으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5.2. 기타 기록
야마모토는 2013년에 올스타전에 1회 출장했다.
6. 상세 정보
6.1. 출신 학교
* 와카야마 현립 미나베 고등학교
* 긴키 대학
6.2. 선수 경력
미쓰비시 중공업 고베에서 사회인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