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1. 개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는 1929년 창단된 일본 프로 야구 구단으로, 센트럴 리그에 소속되어 있다. 구단은 여러 차례 이름을 변경했으며, 2011년 DeNA에 인수되어 현재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 1960년과 1998년에 리그 우승, 1960년, 1998년, 2024년에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으며, 2017년과 2024년에는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우승했다. 요코하마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며, 역대 유명 선수로는 타이론 우즈, 알렉스 라미레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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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식 명칭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
|---|---|
| 영어 표기 | Yokohama DeNA BayStars |
| 일본어 표기 | 横浜DeNAベイスターズ (요코하마 디ー에누에ー 베이스타즈) |
| 창단 | 1949년 12월 15일 |
| 연고지 |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나카구 |
| 홈 구장 | 요코하마 스타디움 |
| 별칭 | 없음 |
| 모기업 | DeNA |
| 구단주 | 난바 도모코 |
| 사장 | 기무라 요타 |
| 감독 | 미우라 다이스케 |
| 주장 | 마키 슈고 |
| 선수 회장 | 오누키 신이치 |
| 마스코트 | DB.스타맨, DB.키라라 |
| 팀 컬러 | 파랑, 흰색 |
| 유튜브 채널 | YOKOHAMA DeNA BAYSTARS CHANNEL |
| 이전 구단명 | 다이요 웨일스 (1950년 ~ 1952년) 다이요 쇼치쿠 로빈스 (1953년) 요쇼 로빈스 (1954년) 다이요 웨일스 (1955년 ~ 1977년)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1978년 ~ 1992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1993년 ~ 2011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2012년 ~ 현재) |
|---|---|
| 이전 홈구장 | 시모노세키 야구장 (1950년–1952년) 오사카 스타디움 (1953년–1954년) 가와사키 구장 (1955년–1977년) |
| 프랜차이즈 변천 | 야마구치현 (1952년) 오사카부 (1953년 ~ 1954년) 가나가와현 (1955년 ~ 현재) |
| 리그 | 센트럴 리그 |
|---|---|
| 리그 우승 횟수 | 2회 |
| 리그 우승 연도 | 1960년 1998년 |
| 일본 시리즈 우승 횟수 | 3회 |
| 일본 시리즈 우승 연도 | 1960년 1998년 2024년 |
| 일본 시리즈 출전 횟수 | 4회 (3승 1패) |
| 일본 시리즈 출전 연도 | 1960년 1998년 2017년 2024년 |
| 센트럴·퍼시픽 교류전 우승 횟수 | 1회 |
| 센트럴·퍼시픽 교류전 우승 연도 | 2023년 |
|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횟수 | 6회 |
| 클라이맥스 시리즈 성적 | 2승 4패 |
|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연도 | 2016년 2017년 2019년 2022년 2023년 2024년 |
| 영구 결번 | 없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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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A -
Cygames
사이게임즈는 사이버에이전트가 2011년에 설립한 일본 게임 개발사로, DeNA와의 협력 및 '그 해 최고의 10 개발사' 선정으로 개발력을 인정받았으며, 《바하무트 - 배틀 오브 레전드》,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그랑블루 판타지》, 《섀도우버스》,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등의 주요 작품을 통해 다양한 플랫폼으로 게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
DeNA -
모바게
모바게는 DeNA에서 시작한 일본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및 게임 플랫폼으로, 휴대폰에서 시작하여 PC와 스마트폰으로 확장되었으며, 다양한 기능과 게임 콘텐츠를 제공하며 성장해왔지만 여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
요코하마 스타디움
요코하마 스타디움은 요코하마 공원 내에 위치한 야구장으로, 오랜 역사를 거쳐 1978년 현재 모습으로 건설되었으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의 홈구장으로 사용되는 다목적 스타디움이다.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
요코스카 스타디움
요코스카 스타디움은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 위치한 야구장으로, 개장 후 아마추어 야구 경기가 주로 열리다 1997년 개축과 함께 현재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2군의 홈 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1950년 설립된 야구팀 -
지바 롯데 마린스
지바 롯데 마린스는 1950년 창단한 마이니치 오리온스를 모태로 하여 지바 롯데 마린스로 개명한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 소속 구단으로, 일본 시리즈와 아시아 시리즈 우승 등의 화려한 역사와 독특한 팀 문화로 유명하다. -
1950년 설립된 야구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히로시마 도요 카프는 1949년에 창단되어 히로시마현을 연고지로 하는 일본 프로 야구팀으로, 9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기록했으며,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
2. 구단의 역사
하야시카네 상점(이후 다이요 어업을 거쳐 현 마루하니치로)의 실업 야구팀으로 1929년 5월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에서 창단된 것이 구단의 시초이다. 태평양 전쟁 이후 1946년 다이요 어업 야구부로 재건되었고, 1948년 국민 체육 대회 우승 등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1949년 프로 야구 리그 확장 정책에 따라 주식회사 마루하 구단(株式会社まるは球団일본어)으로 프로 구단으로 전환하여 센트럴 리그에 가입했다. 시모노세키시를 연고지로 삼았으며, 1950년 시즌 개막 후 팀명을 다이요 웨일스(大洋ホエールズ일본어)로 변경했다. 창단 초기에는 하위권을 맴돌았다.
1953년 경영난을 겪던 쇼치쿠 로빈스와 합병하여 다이요 쇼치쿠 로빈스(大洋松竹ロビンス일본어)가 되었고, 이듬해 요쇼 로빈스(洋松ロビンス일본어)로 개칭했다. 이 시기에는 오사카를 실질적인 본거지로 활동했으나 성적은 부진했다.
1955년 쇼치쿠가 경영에서 철수하면서 팀명은 다시 다이요 웨일스로 돌아왔고, 연고지를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의 가와사키 구장으로 이전했다. 가와사키 시대 초기에도 최하위를 맴돌았으나, 1960년 미하라 오사무 감독의 지휘 아래 창단 첫 센트럴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제패를 달성하는 극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오랜 기간 하위권에 머물렀다.
1978년 요코하마시에 요코하마 스타디움이 완공되면서 연고지를 이전하고 팀명을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横浜大洋ホエールズ일본어)로 변경했다. 요코하마 이전을 계기로 지역 밀착 마케팅을 강화하며 팬층을 넓히려 노력했다. 이 시기 TBS와 닛폰 방송이 구단 지분에 참여하게 되었다.
1993년 모기업 마루하의 CI 변경에 맞춰 팀명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横浜ベイスターズ일본어)로 개칭하고, 기업명을 제외한 지역명을 강조하며 시민 구단 이미지를 강화했다. 1998년 곤도 히로시 감독 아래 바비 로즈, 이시이 타쿠로, 스즈키 다카노리 등이 활약한 머신 건 타선과 절대적인 마무리 투수 사사키 가즈히로의 활약을 앞세워 38년 만의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후 다시 긴 암흑기를 겪었고, 2002년에는 TBS가 구단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2011년 12월 2일, 모바일 게임 기업 DeNA가 TBS로부터 구단을 인수하면서 팀명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横浜DeNAベイスターズ일본어)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DeNA 인수 이후 팀은 점진적인 성적 향상을 보였으며, 2017년과 2024년 일본 시리즈에 진출했고, 2024년에는 26년 만에 통산 세 번째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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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분 | 횟수 | 연도 |
|---|---|---|
| 센트럴 리그 우승 | 2회 | 1960, 1998 |
| 일본 시리즈 우승 | 3회 | 1960, 1998, 2024 |
| 교류전 우승 | 1회 | 2023 |
|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 2회 | 2017, 2024 |
| A클래스 진입 (리그 1~3위) | 21회 | 1960, 1962, 1964, 1969-1971, 1979, 1983, 1990, 1997-2001, 2005, 2016-2017, 2019, 2022-2024 |
| B클래스 진입 (리그 4~6위) | 54회 | 1950-1959, 1961, 1963, 1965-1968, 1972-1978, 1980-1982, 1984-1989, 1991-1996, 2002-2004, 2006-2015, 2018, 2020-2021 |
| 리그 최하위 | 25회 | 1954-1959, 1961, 1966, 1976-1977, 1981, 1984, 1989, 1994, 2002-2004, 2006, 2008-2012, 2015, 2021 |
2.1. 창단 초기 (1929년 ~ 1952년)
하야시카네 상점 (후의 다이요 어업→마루하, 현 마루하니치로)의 실업팀으로서 1929년 5월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에서 창단되었다. 이듬해인 1930년 제4회 전일본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처음 출전하여 전국 대회 경험을 쌓았으나(첫 경기 패배), 세계 대공황의 영향으로 1932년 제6회 전일본 도시 대항 야구 대회를 앞두고 활동을 중단했으며, 연식 야구부만 태평양 전쟁 발발 전후까지 유지되었다.
전쟁 후인 1946년 6월, 다이요 어업(1945년 12월 개칭)의 연식 야구부로 부활하였고, 같은 해 11월(일설에는 1947년 3월)에 경식 야구부로 전환했다. 이후 도시 대항 야구의 단골 팀이 되었으며, 1948년에는 국체에서 우승하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1949년 시즌 종료 후, 프로 야구가 리그 확장을 추진하면서 다이요 어업 야구부의 주력 선수였던 토쿠라 카츠시로, 카와우치 타쿠지, 토쿠아미 시게루 등이 신생 구단인 마이니치 오리온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에 야구부에 열정을 쏟았던 나카베 켄이치 전 사장은 분개하여 자사 야구부의 프로 참가를 결정했다.
1949년 11월 22일, '주식회사 마루하 구단'(株式会社まるは球団일본어)을 설립하고, 잠정적으로 구단명을 마루하 구단(まるは球団일본어)으로 하여 센트럴 리그에 가입했다.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를 프랜차이즈로 삼고, 시모노세키 시영 구장(시모노세키 구장과는 다른 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원래 구단명 표기는 다이요의 사표(社標)인 'は'를 원으로 감싼 형태여야 했으나, 당시 신문 활자에 해당 문자가 없어 'まるは'로 표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회인 야구팀으로서의 다이요 어업 야구부는 마루하 구단 창립으로 1949년 11월 30일 해산되었지만, 마루하 구단으로 이적하지 못한 선수들을 위해 '전 시모노세키'(全下関일본어) 팀이 결성되어 1951년까지 활동했다.
1950년 시즌 개막 후, 구단명을 다이요 웨일스(大洋ホエールズ일본어)로 변경했다(같은 해 3월 회사명도 주식회사 다이요 구단으로 변경).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베테랑 나카지마 하루야스와 히라야마 키쿠지, 다이요 로빈스에서 후지이 이사무와 하야시 나오아키를 영입했다. 또한 우타카 이사오의 스카우트 활동을 통해 도큐 플라이어스에서 오사와 키요시, 나가모치 에이키치, 카타야마 히로시 등, 한큐 브레이브스에서 미야자키 고, 이마니시 렌타로 등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그러나 투수력의 약점 등으로 인해 리그 참가 첫해인 1950년에는 5위, 1951년에는 6위, 1952년에는 4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특히 1950년에는 69박 70일간 17개 구장에서 36경기를 치르는 장기 원정을 소화해야 하는 이례적인 일정을 겪기도 했다.
1951년에는 재정난을 겪던 히로시마 카프와의 흡수 합병이 검토되었으나, 히로시마 구단 관계자와 지역 시민들의 필사적인 존속 운동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1952년 9월 7일 쇼치쿠 로빈스와의 경기(교토시 니시쿄고쿠 종합운동공원 야구장)에서는 당시 센트럴 리그 최장 이닝 기록인 연장 2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끝내기 패배를 당하기도 했다. 같은 해 프랜차이즈 제도가 정식 도입되어 야마구치현을 보호 지역으로 지정받았으나, 실제 시모노세키에서의 홈 경기는 연간 60경기 중 18경기에 불과했다. 나머지 홈 경기는 주로 규슈와 주고쿠 지방 등지에서 분산 개최되어, 시모노세키 시대에는 사실상 북부 규슈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구단의 성격도 강했다.
2.2. 오사카 시대 (1953년 ~ 1954년)
1952년 시즌 종료 후, 센트럴 리그는 "시즌 승률 3할 미만 구단에게 처벌을 내린다"는 합의를 했는데, 쇼치쿠 로빈스가 이 규정에 해당되었다. 이에 따라 1953년 1월 10일, 다이요 웨일스는 쇼치쿠 로빈스와 대등 합병하여 팀명을 大洋松竹ロビンス일본어로 변경했고, 센트럴 리그는 6개 구단 체제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1953년 시즌에는 운영 회사의 완전한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아 프랜차이즈는 다이요의 시모노세키시와 쇼치쿠의 교토시에 병립하는 상태였다. 구단 운영도 두 회사가 하나의 팀을 운영하는 변칙적인 형태였으며, 선수들의 급여도 각자의 이전 소속 구단에서 지급되었다. 홈 경기는 명목상 시모노세키 시영 구장과 기누가사 구장을 사용하기로 했지만, 실제로는 흥행상의 이점을 고려하여 오사카 구장에서 주로 개최되었다. 기누가사 구장은 1951년 주니치 스타디움 화재 사고 이후 방재 문제로 사용이 금지되어 합병 후에는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합병 첫해인 1953년 시즌 종료 후인 12월 16일, 구단 운영 회사가 신설 합병을 통해 '주식회사 다이요 쇼치쿠 구단'으로 정식 통합되었고, 구단 사무소도 오사카 스타디움 내에 마련되었다. 이듬해인 1954년에는 통칭인 '요쇼'(洋松)를 넣어 팀명을 洋松ロビンス일본어로 다시 변경했다.
오사카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이 시기 팀 성적은 부진했다. 1953년에는 리그 5위에 그쳤고, 1954년에는 32승 96패 2무라는 참담한 성적으로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다. 당시 우승팀이었던 주니치 드래곤스와는 무려 55경기 차, 5위였던 국철 스왈로스와도 23경기 차이로 크게 뒤처졌다. 쇼치쿠 로빈스는 합병 전인 1950년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팀이었으나, 불과 몇 년 만에 성적 부진으로 합병 대상이 된 것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합병이 사실상 다이요 주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2.3. 가와사키 시대 (1955년 ~ 1977년)
1954년 12월 11일부로 쇼치쿠가 구단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나카베 겐키치가 새로운 구단주가 되었다. 팀 명칭은 다시 다이요 웨일스(大洋ホエールズ)로 변경되었고, 1955년 시즌 개막 직전인 2월 15일, 보호 지역을 가나가와현으로 이전했다. 처음에는 도쿄도 이전을 계획했으나, 국철 스왈로스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대신 요코하마시의 요코하마 공원 평화 야구장을 임시 본거지로 삼았다. 그러나 이 구장 역시 프로 경기를 치르기에는 시설이 미흡하여, 구단은 같은 가나가와현 내에 있는 가와사키시의 가와사키 구장으로 본거지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당시 가와사키 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던 톤보 유니온즈의 반발이 있었으나, 가네사시 후지타로 가와사키 시장의 중재로 이전이 성사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식 서류상 본거지는 요코하마, 실제 경기장은 가와사키로 기재되어 훗날 요코하마 이전 시 논란의 불씨가 되었다.
; 1955년 ~ 1959년
가와사키 구장을 기반으로 새롭게 출발했지만, 1955년 성적은 31승 99패로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다. 1위 요미우리와는 NPB 역사상 최대인 61.5경기 차, 5위 국철과도 27경기 차라는 큰 격차를 보였다. 팀은 쇼치쿠 로빈스 시절인 1954년부터 1959년까지 6년 연속 리그 최하위라는 부진을 겪었다. 이 기간 동안 곤도 마사토시(1955년)와 아키야마 노보루(1956년~1959년)가 리그 최다 패전 투수 기록을 이어갔는데, 특히 아키야마는 신인 시절부터 4년 연속 최다 패전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웠다.
; 1956년 ~ 1958년
1956년에는 메이지 대학 출신의 아키야마 노보루, 도이 아츠시, 이와오카 야스히로, 구로키 히로시게, 오키야마 미츠토시 5명이 동시에 입단했다. 이들은 '메이지 5인방'으로 불리며 큰 주목을 받았다. 에이스 아키야마는 매년 혹사 수준의 등판을 감내했고, 요미우리에서 이적해 온 아오타 노보루는 세 차례 홈런왕을 차지하며 타선을 이끌었다.
; 1960년
1959년까지 니시테쓰 라이온스 감독이었던 미하라 오사무를 감독으로 영입했다. 미하라 감독은 신인 곤도 아키히토와 시즌 중 긴테쓰 버펄로스에서 영입한 스즈키 다케시로 키스톤 콤비를 구축하고, 아키야마와 시마다 겐타로를 중심으로 한 투수력을 앞세워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의 요미우리를 누르고 전년도 최하위에서 극적인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이어진 일본 시리즈에서도 다이마이 오리온스를 상대로 4전 전승(모두 1점 차 승리)을 거두며 창단 첫 일본 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이는 다이요 웨일스 및 가와사키 시대의 유일한 리그 우승 및 일본 시리즈 우승 기록으로 남았다. 또한, 투수 시마다 겐타로는 이 해 8월 11일, 만 21세 생일을 2주 앞두고 팀 역사상 최초의 노히터 및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여 사사키 로키가 2022년에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최연소 퍼펙트 게임 달성자였다. 이 우승으로 다이요는 12개 구단 체제 이후 센트럴 리그 첫 일본 시리즈 우승팀이 되었지만, 이후 1998년까지 38년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 1961년 ~ 1964년
개막 4연승으로 출발했으나 이후 부진에 빠지며, 전년도 우승팀이 불과 1년 만에 다시 리그 최하위로 추락했다. 1962년과 1964년에는 한신 타이거스와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였으나 아쉽게 2위에 머물렀다. 특히 1964년에는 1위 한신과 단 1경기 차이였다. 1963년에는 최하위 히로시마에 1경기 앞선 5위를 기록했다. 1962년 9월 25일과 26일에는 아키야마 노보루가 한신을 상대로 2경기 연속 완봉승을 거두는 진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프랜차이즈 제도가 본격 시행된 1952년 이후 유일한 기록이다.
; 1965년 ~ 1972년
미하라 감독은 1967년을 끝으로 퇴임했고, 팀은 다시 하위권을 맴돌았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3시즌을 제외하고는 1977년까지 5할 승률을 넘지 못했다. 이 시기 팀은 '메가톤 타선'이라 불리는 강력한 타선을 보유했고, 곤도 가즈히토, 클리트 보이어, 구와타 다케시, 마쓰바라 마코토, 히라마쓰 마사지, 존 시핀 등 뛰어난 선수들이 활약했다. 그러나 투수진의 약점과 재정적 지원 부족으로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V9를 달성하던 기간 동안, 다이요는 강력한 타격으로 요미우리 투수진을 공략했지만, 빈약한 투수진 탓에 대량 실점하며 타격전 양상을 보이는 경기가 많았다. 이는 양익 89m, 중견 118m에 불과했던 홈구장 가와사키 구장의 협소함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 1973년 ~ 1975년
1973년 시즌 초반에는 히로시마와 함께 선두 경쟁을 벌였으나, 7월 이후 순위가 하락하여 결국 요미우리의 9년 연속 우승을 지켜보며 야쿠르트에게도 밀려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에 아오타 노보루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1974년과 1975년에도 팀은 5위에 머물렀다. 1974년에는 마쓰바라 마코토가 데뷔 첫 3할 타율을 기록하며 최다 안타 타이틀을 차지했다.
; 1976년 ~ 1977년
1976년에는 15년 만에 다시 리그 최하위로 떨어졌다. 이 무렵 구단은 가와사키에서 요코하마로의 이전을 추진하고 있었고, 아스카다 이치오 요코하마 시장의 주선으로 신구장 건설 자금 마련을 위해 국토 계획(현 프린스 호텔)의 출자를 받았다. 이로써 모기업인 다이요 어업이 55%, 국토 계획이 45%의 지분을 갖게 되었다. 5년 연속 B클래스(하위권)에 머문 책임을 물어 1975년에 감독으로 부임했던 아키야마 노보루가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키야마는 선수 시절 2군 경험이 거의 없어 후보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스타 선수들을 이끌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후임으로는 1968년부터 1972년까지 팀을 이끌었던 벳토 가오루가 다시 감독으로 부임했다.
1977년 1월, 구단주 나카베 겐키치가 사망하면서 모기업 다이요 어업은 장남 나카베 도지로가, 다이요 웨일스 구단주 자리는 삼남 나카베 신지로가 승계했다. 팀은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마쓰바라 마코토, 요네다 게이자부로 등 수비 명수들과 더불어 클리트 보이어, 존 시핀, 펠릭스 미얀 등 뛰어난 수비력을 갖춘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으로 1970년대 다이요의 내야진은 견고함을 자랑했다. 이러한 수비 전통은 1980년대 야마시타 다이스케, 모토이 미쓰오, 다카기 유타카 등으로 이어졌다.
2.4. 요코하마 시대 (1978년 ~ 현재)
1978년 요코하마시 나카구에 새로 건설된 요코하마 스타디움으로 연고지를 이전하였다. 이에 따라 팀명도 도시 이름을 넣어 横浜大洋ホエールズ일본어로 변경되었다. 요코하마 이전을 계기로 초등학생 대상 팬클럽 창설 등 지역 밀착 노력을 통해 팬층을 넓혔다. 같은 해, 모기업 중 하나였던 국토 계획이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스를 인수하면서 야구 협약에 따라 보유하고 있던 다이요 구단 주식을 닛폰 방송과 TBS에 매각했다. 이로써 2002년 초까지 다이요 어업(이후 마루하)이 55%, 닛폰 방송이 30%, TBS가 15%의 지분을 보유하게 되었다.
요코하마 이전 초기에는 1979년 리그 2위를 기록하는 등 성과를 보였으나, 이후 오랜 기간 하위권을 맴돌았다. 1992년 11월 11일, 모기업인 다이요 어업이 마루하로 사명을 변경함에 따라, 구단명도 지역 밀착을 강화하고 상업 포경 규제 강화라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여 요코하마 베이스타스(横浜ベイスターズ일본어)로 변경되었다. 이듬해 4월에는 구단 운영 법인명도 '주식회사 다이요 구단'에서 '주식회사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로 바뀌었다.
베이스타스 시대에는 1998년 38년 만의 센트럴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제패라는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이후 다시 긴 암흑기를 겪었다. 2002년에는 TBS가 구단의 최대 주주가 되었지만 팀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2011년 10월, TBS 홀딩스는 구단 주식을 모바일 게임 기업 DeNA에 매각하기로 합의했고, 같은 해 12월 2일 주식 양도가 완료되면서 구단명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横浜DeNAベイスターズ일본어)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DeNA 인수 이후 팀은 점진적인 성적 향상을 보이며 2017년과 2024년에 일본 시리즈에 진출했고, 2024년에는 26년 만에 통산 세 번째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4.1.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시대 (1978년 ~ 1992년)
1978년 국토 계획의 주도로 요코하마시 나카구 요코하마 공원 내에 요코하마 스타디움이 건설되면서 구단은 이 경기장으로 이전했다. 당시 다이요 구단은 가와사키시를 연고지로 하고 있었으나, 관중 동원이 저조하여 돌파구를 찾던 중 요코하마 스타디움 건설 계획이 부상했다. 다이요 구단은 과거 가와사키로 이전할 때도 본거지를 요코하마로 신고했던 바 있어, 요코하마에 프로 야구 개최에 적합한 구장이 생기면 이전하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1977년 이전 문제가 불거지자 가와사키 시민들은 반대 운동을 벌였고, 54만 명의 서명을 전달했으나, 아스카다 카즈오 당시 요코하마 시장의 적극적인 유치 노력 끝에 다이요는 1977년 7월 요코하마 이전을 공식 통보했다. 한편, 가와사키시는 가나가와현 진출을 노리던 롯데 오리온스 유치에 나섰고, 다이요가 가와사키 구장에서의 타 구단 경기 개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양보안을 제시하면서 롯데의 가와사키 이전이 성사되었다.
요코하마 이전을 계기로 구단명은 도시 이름을 넣어 横浜大洋ホエールズ일본어로 변경되었다. 요코하마 초등학생 대상 팬클럽 창설 등 영업 체제를 개혁하며 팬 확보에 나섰다. 같은 해 국토 계획이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스를 인수하면서 야구 협약에 따라 보유하고 있던 다이요 구단 주식을 닛폰 방송과 TBS에 2:1 비율로 매각했다. 이로 인해 2002년 초까지 구단 지분은 다이요 어업(이후 마루하) 55%, 닛폰 방송 30%, TBS 15%로 유지되었다.
요코하마 이전 첫 해인 1978년에는 4위, 1979년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시즌 종료 후 벳토 가오루 감독이 퇴임하고 구단 전무 이사 겸 대표로 취임했다. 198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지역 대학인 도카이 대학의 하라 다쓰노리를 1순위로 지명했으나 교섭권을 얻지 못했다. 도이 기요시가 새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팀은 4위에 머물렀고, 1981년에는 부진이 이어져 도이 감독이 9월 24일부터 휴양에 들어가면서 팀은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다.
1982년에는 나가시마 시게오 영입을 위한 포석으로 그와 친분이 있던 세키네 준조를 감독으로 선임했으나, 나가시마 영입에는 실패했다. 또한 투수 세키네 히로후미 영입 과정에서 닛산 자동차 야구부와의 마찰을 겪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1983년에는 3위를 기록하며 A클래스(1~3위)에 진입했지만, 1984년 다시 최하위로 추락하며 세키네 감독이 사임했다.
1985년 곤도 사다오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다카기 유타카, 가토 히로카즈, 야시키 가나메로 구성된 이른바 슈퍼카 트리오가 주목받았다. 그러나 엔도 가즈히코나 사이토 아키오 등 투수진의 불안은 여전했고 팀 성적은 4위에 그쳤다. 1986년에도 4위를 기록하자 곤도 감독은 2년 만에 물러났다.
1987년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네 차례 우승을 이끈 고바 다케시를 감독으로 영입했지만, 재임 3년 동안 5위, 4위, 최하위에 머물며 한 번도 A클래스에 진입하지 못했다. 고바 감독은 1989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나, 이 기간 동안 훗날 1998년 우승의 주역이 되는 선수들을 다수 확보하는 등 리빌딩 측면에서는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1990년 스도 유타카 감독 체제에서 3위를 기록하며 오랜만에 A클래스에 복귀했지만, 1991년에는 다시 5위로 떨어졌다. 1992년 시즌 개막 전 스도 감독이 사임하면서 수석 코치였던 에지리 아키라가 감독 대행을 맡다가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에지리 감독은 모리타 고키와 사사키 가즈히로의 더블 스토퍼 체제를 확립했으나, 팀은 5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 시기까지 15년 동안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는 한 번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1992년 11월 11일, 모기업인 다이요 어업이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 사명을 '마루하'로 변경함에 따라, 구단 역시 지역 밀착형 시민 구단을 목표로 팀명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상업 포경 규제 강화로 인해 '고래(웨일스)'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기 어렵다는 나카베 케이지로 오너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새로운 애칭은 '요코하마 베이브리지'에서 영감을 얻어 '베이스타스'로 정해졌고, 요코하마 베이스타스(横浜ベイスターズ일본어)로의 개칭이 발표되면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시대는 막을 내렸다.
2.4.2.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시대 (1993년 ~ 2011년)
1992년 11월 11일, 모기업인 다이요 어업이 기업 정체성 확립을 위해 사명을 마루하로 변경함에 따라, 야구단 명칭도 지역 밀착형 시민 구단을 지향하며 요코하마 베이스타스(横浜ベイスターズ)로 바꾸었다. 이듬해 4월에는 회사명도 '주식회사 다이요 구단'에서 주식회사 요코하마 베이스타스(株式会社横浜ベイスターズ)로 변경했다. 당초 구단 애칭은 '웨일스'를 유지하는 안도 검토되었으나, 당시 상업 포경 규제가 강화되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나카베 게이지로 구단주가 새로운 애칭 검토를 지시했다. 그 결과, 요코하마 베이브릿지에서 이름을 따온 '베이스타스'가 최종 결정되었다. 또한, 베이스타스 선수는 모기업 마루하의 광고에 출연하지 않기로 하였다.
1993년에는 곤도 아키히토가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구단명 변경에 맞춰 유니폼, 구단 깃발, 마스코트 캐릭터 등이 모두 새롭게 바뀌었다. 시즌 종료 후 도입된 프리 에이전트 제도를 통해 요미우리의 고마다 노리히로를 영입했으나, 다카기 유타카, 야시키 가나메, 야마자키 겐이치, 이치카와 가즈마사 등 기존 주전 선수들이 대거 팀을 떠났다. 베이스타스 출범 첫해 성적은 5위에 머물렀다. 1994년에는 고마다 외에 사에키 다카히로, 하루 도시오 등을 기용하며 전력 보강을 꾀했으나 최하위를 기록했다. 1995년에는 4위를 기록하며 12년 만에 5할 승률을 달성했지만, 곤도 아키히토 감독은 임기 만료로 퇴임했다. 후임으로는 오야 아키히코가 감독으로 부임했으며, 이 시기 스즈키 다카노리와 같은 젊은 선수들이 주전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4월 한때 선두를 달리며 '센트럴 리그 태풍의 눈'으로 불렸으나, 5월 이후 순위가 하락하여 최종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1997년에는 곤도 히로시를 배터리 코치로 영입했다. 시즌 후반, 선두 야쿠르트를 맹추격하며 2위를 기록하는 저력을 보였다. 시즌 종료 후 오야 감독이 2년 임기를 마치고 사임하자, 곤도 히로시가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1998년, 부동의 마무리 투수 사사키 가즈히로를 중심으로 한 투수진과 "한 번 터지면 멈추지 않는다"는 의미의 머신 건 타선이 조화를 이루며 10월 8일 센트럴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는 1960년 이후 38년 만의 리그 우승이었다. 이어진 일본 시리즈에서는 세이부를 상대로 4승 2패를 거두며 일본 정상에 올랐다. '머신 건 타선'의 주요 멤버로는 바비 로즈, 이시이 타쿠로, 타니시게 모토노부, 스즈키 다카노리 등이 있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요코하마 고등학교의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1순위로 지명했으나 교섭권 획득에 실패하고, 대신 후루키 가쓰아키를 지명했다.
1999년에는 '머신 건 타선'이 절정에 달해 팀 타율 .294라는 구단 신기록을 세웠고, 외국인 선수 로즈는 153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가와무라 다케오가 17승을 거두며 분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우라 다이스케, 노무라 히로키, 사사키 등의 부상과 부진으로 투수진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며 리그 3위에 그쳤다. 시즌 종료 후 사사키는 메이저 리그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했다.
2000년에는 신인 긴조 다쓰히코가 신인왕과 수위 타자를 동시에 석권하는 활약을 펼쳤지만, 팀은 투타 부진과 부상자 속출로 우승 경쟁에서 멀어지며 2년 연속 3위를 기록했다. 시즌 후 곤도 히로시 감독이 물러나고 로즈와 고마다도 팀을 떠났다. 팜(2군) 조직은 쇼난 시렉스(湘南シーレックス)로 명칭을 변경하고 독립 채산을 목표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후임 감독으로는 모리 마사아키가 취임했다. 2001년에는 순위 결정 방식이 다소 달랐지만, 5년 연속 A클래스(3위)를 달성했다.
2002년 시즌 개막과 함께 팀은 극심한 부진에 빠졌고, 결국 9월 25일 모리 감독은 시즌 종료를 기다리지 못하고 휴양을 이유로 사실상 해임되었다 (최종 승률 .363). 한편, 1월 26일 모기업(최대 주주)이 마루하에서 닛폰 방송으로 변경되었으나, 야구 협약 문제(당시 닛폰 방송 계열사인 후지 TV가 야쿠르트 지분 보유)로 인해 최종적으로 TBS(도쿄 방송)가 구단을 인수하게 되었다. 구단주도 당시 TBS 사장이었던 스나하라 유키오로 변경되었다. 이 변화로 1978년 이후 중단되었던 TBS 라디오의 베이스타스 경기 중계가 부활했다. 또한, 분열되어 있던 두 개의 응원단이 '전국성패회'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모리 감독의 후임으로는 야마시타 다이스케가 임명되었다.
2003년 야마시타 감독은 젊은 선수 중심의 공격적인 야구를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팀은 승률 .324, 45승 94패 1무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94패는 1970년 야쿠르트 이후 33년 만의 90패 이상 기록이었으며, 5위 히로시마와의 경기 차는 22.5경기에 달했다. 2004년에는 4월 한때 선두를 달리기도 했으나, 투수진 붕괴로 순위가 급락하여 시즌 최종전 패배로 히로시마에 승률 0.00092 차이로 밀려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로써 팀은 45년 만에 3년 연속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안았고, 야마시타 감독은 사임했다. 오프 시즌에는 이치바 야스히로 관련 금전 수수 문제가 불거지면서 오너가 스나하라 유키오에서 TBS 부사장 와카바야시 기요시로 교체되었다. 후임 감독으로는 우시지마 가즈히코가 부임했다.
2005년에는 부진했던 투수진이 살아나면서 4년 만에 A클래스인 3위로 시즌을 마쳤다. 또한, 우시지마 감독의 친구인 이시바시 다카아키(돈네루즈)를 특별 고문으로 위촉하여 팬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 하지만 2006년에는 선발 투수진 약화와 이중 키킹 금지 규정의 영향으로 주력 투수들이 부진에 빠지며 다시 최하위로 추락했다. 무라타 슈이치, 요시무라 유키 등 젊은 야수들의 성장이 있었지만 팀의 부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구단은 연임을 원했지만 우시지마 감독은 최하위 성적에 책임을 지고 9월 3일 시즌 도중 사임을 발표했다. 후임으로는 오야 아키히코가 10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했다. 한편, 4월 3일에는 지역 사회 공헌을 목표로 하는 NPO 법인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스포츠 커뮤니티'가 설립되었고, 7월 1일에는 자회사인 베이스타스 소프트를 합병했다. 12월 1일에는 자본금을 감액하고, 팀 운영 총괄(GM) 자리에 닛산 자동차 야구부 감독 출신 무라카미 다다노리를 임명했다. 오프 시즌에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데라하라 하야토를 다무라 히토시와의 트레이드로, 요미우리의 니시 도시히사를 오다지마 마사쿠니와의 트레이드(현금 포함)로 영입했다. 팀 내 유일한 두 자릿수 승리 투수였던 카도쿠라 켄은 연봉 불만으로 FA를 선언하여 요미우리로 이적했고, 보상 선수로 구도 기미야스를 영입했다.
2007년에는 이적생과 베테랑 선수들의 활약으로 전반기 한때 상위권을 위협했으나, 후반기 연패에 빠지며 최종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무라타는 구와타 다케시 이후 31년 만에 팀 소속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고, 구단 최초로 2년 연속 100타점을 돌파했다. 미우라 다이스케는 35이닝 연속 무실점, 데라하라는 2경기 연속 완봉승을 기록하는 등 주력 선수들의 개인 기록은 빛났다. 2008년에는 에이스 미우라의 부상 공백 속에 개막 3연패를 당하는 등 출발부터 불안했고, 결국 2년 만에 다시 최하위로 떨어졌다. 우치카와 세이이치가 타율 .378로 수위 타자에 오르고 무라타, 요시무라 등 강력한 타선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수진 붕괴를 막지 못하며 5년 만에 다시 90패 이상(94패)을 기록했다. 특히 우치카와의 타율(.378)이 팀 승률(.338)보다 높은, 양대 리그 분열 이후 최초의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시즌 후 주전 포수 아이카와 료지가 FA를 통해 야쿠르트로 이적했다.
2009년 WBC에서 무라타가 부상을 당하는 악재 속에 개막 6연패를 당하는 등 부진이 이어지자, 5월 18일 구단은 오야 감독에게 무기한 휴양(사실상 해임)을 통보했다. 2군 감독이었던 다시로 도미오가 감독 대행을 맡았으나 분위기 반전에 실패하며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시즌 후 다시로 감독 대행은 다시 2군 감독으로 복귀했고, 11월 11일 요미우리 투수 코치 출신인 오바나 다카오가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10년 지바 롯데의 에이스 시미즈 나오유키를 다자간 트레이드로 영입하고, FA 시장에서 지바 롯데의 하시모토 다스쿠와 닛폰햄의 터멜 슬레지를 영입하는 등 대대적인 전력 보강에 나섰다. 3월 31일 요미우리전 승리로 공동 3위에 오르며 725일 만에 최하위에서 탈출하는 기록(당시 일본 프로야구 최장 기간 최하위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나, 교류전 이후 다시 최하위로 추락하여 반등하지 못했다. 9월 7일 요미우리전 패배로 5년 연속 B클래스가 확정되었고, 9월 25일 주니치전 패배로 3년 연속 최하위가 확정되었다. 급기야 9월 28일 야쿠르트전 패배로 프로야구 사상 최초 3년 연속 90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웠으며, 10월 6일 한신전 패배로 시즌 95패(47승 95패 2무)를 기록하며 1955년 이후 55년 만에 팀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패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시즌 종료 후 우치카와가 FA를 통해 소프트뱅크로 이적했다. 한편, 8월에는 2군 명칭 '쇼난 시렉스'를 1군과 동일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로 변경하는 안이 승인되었다.
2011년 FA로 닛폰햄의 모리모토 히초리를 영입했다.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발생 당시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야쿠르트와 시범 경기를 치르던 중 경기가 중단되고 선수와 관중이 그라운드로 대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진의 영향으로 개막이 4월 12일로 연기되었고, 홈 개막전에서 주니치를 상대로 3연승을 거두며 11년 만에 개막 시리즈 스윕을 달성했다. 하지만 5월 이후 하락세를 거듭하며 교류전 11위, 전반기를 25승 44패 6무(승패 마진 -19)로 마감했다. 후반기에도 부진은 계속되어 9월 27일 요미우리전 패배로 B클래스가 확정되었고, 10월 9일 한신전 패배로 4년 연속 최하위가 결정되었다. 최종 성적은 47승 86패 11무로, 1위와 27.5경기, 5위 히로시마와 11.5경기 차이였다. 팀 방어율은 6년 만에 3점대로 개선되었으나, 팀 승률은 1957년 ~ 1961년 긴테쓰 이후 50년 만에 4년 연속 3할대에 머물렀다. 시즌 종료 후 무라타가 FA를 통해 요미우리로 이적했고, 슬레지와 브렛 하퍼는 방출되었다.
10월 19일, TBS 홀딩스는 보유 중인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주식 대부분을 모바일 게임 기업 DeNA에 양도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10월 22일 시즌 최종전 종료 후 오바나 감독과 1군 코치진 전원에게 휴양이 통보되었고, 11월 4일 TBS 홀딩스와 DeNA는 주식 양도(총액 6.5)에 관한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새로운 구단명으로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가 신청되었다. 11월 22일 오바나 감독을 포함한 코치 6명의 해임이 공식 발표되었다. 12월 1일 일본 프로 야구 오너 회의 및 실행 위원회는 DeNA의 구단 인수를 최종 승인했고, 다음 날인 12월 2일 주식 양도가 완료되면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横浜DeNAベイスターズ)가 공식 출범하며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시대는 막을 내렸다.
2.4.3.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시대 (2012년 ~ 현재)
2011년 12월 2일, DeNA가 구단 주식을 인수하여 상호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로 변경되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OB인 다카다 시게루가 구단 GM으로 취임했으나, 감독 인선은 난항을 겪었다. 신조 쓰요시, 구도 기미야스 등이 후보로 거론되었고, 최종적으로 요코하마 OB인 구도 기미야스가 유력했으나 코치진 인선을 두고 구단과 대립하여 협상이 결렬되었다. 결국 12월 9일, 나카하타 기요시가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새로운 구단 로고 마크도 함께 발표되었다.
2012년 시즌을 앞두고 모회사 변경에 따라 유니폼, 구단 깃발, 마스코트 캐릭터를 일신했다. 1월 29일 퀸스 스퀘어 요코하마에서 신 유니폼 발표 행사가 열렸고, 3월 18일에는 기존 마스코트인 홋시, 홋시나, 홋시조의 졸업과 함께 새로운 마스코트 DB 스타맨의 취임이 발표되었다. 전력 면에서는 주포 무라타 슈이치가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FA 이적했지만, 요미우리에서 자유 계약으로 풀린 알렉스 라미레스와 FA를 통해 4년 만에 복귀한 쓰루오카 가즈나리(요미우리), 고이케 마사아키(주니치)를 영입했다. 또한 니혼햄 파이터스에서 자유 계약 신분이 된 기쿠치 가즈마사와 하야시 마사노리,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자유 계약이 된 지오 알바라도(Giancarlo Alvarado), 무라타의 FA 보상 선수로 요미우리에서 후지이 슈고, 신 외국인 선수로 오스카 사라사르를 영입했다.
시즌 개막전인 3월 30일 한신 타이거스 전(교세라 돔 오사카)은 5대 5 무승부로 끝났고, 4월 1일 같은 시리즈에서 6대 2로 승리하며 변경된 구단명으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 4월 초와 말에 두 차례 6연패를 당하는 등 시즌 초반 부진했다. 교류전에서는 9승 14패로 10위에 그쳤고, 7월 7일 주니치 드래건스 전 패배로 자력 우승 가능성이 사라졌다. 전반기 마지막 3연전인 야쿠르트 전에서 시즌 첫 3연승을 거두었지만, 전반기를 최하위로 마감했다. 9월 15일 야쿠르트 전 패배로 4위 이하(B클래스)가 확정되었고, 9월 30일 주니치 전 패배로 5년 연속 최하위가 결정되었다. 10월 7일 요미우리 전(도쿄 돔) 패배로 시즌 내내 도쿄 돔 원정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는 센트럴 리그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 최종 성적은 46승 85패 13무로, 1위 요미우리와는 40경기 차, 5위 한신과는 9.5경기 차이였으며, 센트럴 리그 5개 구단 모두에게 상대 전적 열세(루징 시리즈)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주니치에서 자유 계약으로 토니 블랑코, 엔옐버트 소토, 호르헤 소사를 영입했다. 또한 과거 팀의 주축 타자였던 소프트뱅크의 다무라 히토시를 포함한 3명의 선수를 요시무라 유키, 야마모토 쇼고 등 3명과 맞바꾸는 3대 3 트레이드를 단행하여 다무라는 7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교류전은 7승 17패로 최하위에 머물렀으며, 9월 24일 한신 전 패배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가능성이 소멸되며 8년 연속 B클래스가 확정되었다. 하지만 10월 1일 야쿠르트가 요미우리에 패하면서 6년 만에 최하위에서 탈출,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야쿠르트, 한신, 주니치를 상대로는 12년 만에 위닝 시리즈(상대 전적 우세)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라미레스는 팀을 떠났다.
2015년 10월, 과거 베이스타스 선수이자 일본 프로 야구에서 2,000안타를 달성한 유일한 외국인 선수인 알렉스 라미레스가 2016년 시즌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2015 시즌 종료 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한 나카하타 기요시의 후임이었다. 2016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는 정규 시즌을 3위(69승 71패 3무)로 마쳤다. 리그 1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89승 52패 3무)와는 19.5경기 차이였다.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진출한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2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2승 1패로 꺾고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했지만, 히로시마에게 1승 4패(어드밴티지 1패 포함)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2017년에도 정규 시즌 3위(73승 65패 5무)를 기록했다. 1위 히로시마(88승 51패 4무)와는 14.5경기 차이였다. 팀 타율 .252와 134홈런은 센트럴 리그 2위 기록이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2위 한신 타이거스를 2승 1패로 꺾었고,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1위 히로시마에게 첫 경기를 내주었으나 이후 4경기를 내리 승리하며 19년 만에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호세 로페스가 시리즈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었다. 이어진 2017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퍼시픽 리그 챔피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맞붙었다. 소프트뱅크에게 먼저 3연패를 당하며 탈락 위기에 몰렸으나, 4차전과 5차전을 승리하며 반격했다. 6차전 홈 경기에서 3-2로 앞서던 9회 초, 소프트뱅크의 우치카와 세이이치가 마무리 투수 야마사키 야스아키를 상대로 동점 홈런을 쳤고, 연장 11회 말 가와시마 케이조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2승 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소프트뱅크의 마무리 투수 데니스 사파테가 일본 시리즈 MVP, 베이스타스의 미야자키 토시로는 패배 팀 선수에게 주어지는 감투상을 수상했다. 이는 구단 역사상 첫 일본 시리즈 패배였다.
2023년 3월 13일, 메이저 리그 사이 영 상 수상 경력의 트레버 바우어와 인센티브 포함 1년 4 계약을 맺었다.
2024년, 안드레 잭슨과 앤서니 케이를 영입했고, 시즌 중반에는 메이저 리그 팀 데뷔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친 마이크 포드를 영입했다. 기존의 강력한 타선(마키 슈고, 2024년 센트럴 리그 타격왕 타일러 오스틴)과 이마나가 쇼타의 메이저 리그 진출 공백을 메운 에이스 아즈마 카츠키의 활약에 힘입어 시즌 막판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부진을 틈타 정규 시즌 3위(71승 69패 3무)로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다.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한신 타이거스를 2승 무패로 스윕하고,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리그 우승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4승 2패(어드밴티지 1패 포함)로 꺾으며 2024년 일본 시리즈에 진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7년 만의 재대결을 벌였다. 첫 2경기를 패했지만 이후 4경기를 내리 승리하며 1998년 이후 26년 만에 통산 세 번째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4차전과 5차전에서는 케이와 잭슨이 각각 7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쿠와하라 마사유키는 9타점으로 일본 시리즈 신기록을 세우며 일본 시리즈 MVP에 선정되었고, 쓰쓰고 요시토모, 잭슨, 케이는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71승 69패 3무(승률 .507)의 기록으로 역대 일본 시리즈 우승팀 중 가장 낮은 승률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최소 승수로 우승한 팀은 197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68승)이다.)
3.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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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재임 기간 | 비고 |
|---|---|---|
| 와타나베 다이리쿠 渡辺大陸일본어 | 1950년 | |
| 나카지마 하루야스 中島治康일본어 | 1951년 | |
| 아리마 기이치 有馬義一일본어 | 1951년 | |
| 고니시 도쿠로 小西得郎일본어 | 1952년 ~ 1953년 | |
| 나가사와 다케오 永沢武夫일본어 | 1954년 | |
| 후지이 이사무 藤井勇일본어 | 1955년 | |
| 사코하타 마사미 迫畑正巳일본어 | 1956년 ~ 1958년 | |
| 모리 시게오 森茂雄일본어 | 1959년 | |
| 미하라 오사무 三原脩일본어 | 1960년 ~ 1967년 | |
| 벳토 가오루 別当薫일본어 | 1968년 ~ 1972년 | 제1차 |
| 아오타 노보루 青田昇일본어 | 1972년 | 제1차 (감독 대행) |
| 미야자키 다케시 宮崎剛일본어 | 1972년 | 제1차 (감독 대행) |
| 아오타 노보루 青田昇일본어 | 1973년 | 제2차 |
| 미야자키 다케시 宮崎剛일본어 | 1974년 | 제2차 |
| 아키야마 노보루 秋山登일본어 | 1975년 ~ 1976년 | |
| 벳토 가오루 別当薫일본어 | 1977년 ~ 1979년 | 제2차 |
| 도이 기요시 土井淳일본어 | 1980년 ~ 1981년 | |
| 야마네 도시히데 山根俊英일본어 | 1981년 | 감독 대행 |
| 세키네 준조 関根潤三일본어 | 1982년 ~ 1984년 | |
| 곤도 사다오 近藤貞雄일본어 | 1985년 ~ 1986년 | |
| 고바 다케시 古葉竹識일본어 | 1987년 ~ 1989년 | |
| 스도 유타카 須藤豊일본어 | 1990년 ~ 1992년 | |
| 에지리 아키라 江尻亮일본어 | 1992년 | |
| 곤도 아키히토 近藤昭仁일본어 | 1993년 ~ 1995년 | |
| 오야 아키히코 大矢明彦일본어 | 1996년 ~ 1997년 | 제1차 |
| 곤도 히로시 権藤博일본어 | 1998년 ~ 2000년 | |
| 모리 마사아키 森祇晶일본어 | 2001년 ~ 2002년 | |
| 구로에 유키노부 黒江透修일본어 | 2002년 | 감독 대행 |
| 야마시타 다이스케 山下大輔일본어 | 2003년 ~ 2004년 | |
| 우시지마 가즈히코 牛島和彦일본어 | 2005년 ~ 2006년 | |
| 오야 아키히코 大矢明彦일본어 | 2007년 ~ 2009년 | 제2차 |
| 다시로 도미오 田代富雄일본어 | 2009년 | 감독 대행 |
| 오바나 다카오 尾花高夫일본어 | 2010년 ~ 2011년 | |
| 나카하타 기요시 中畑清일본어 | 2012년 ~ 2015년 | |
| 알렉스 라미레스 Alex Ramirez스페인어 | 2016년 ~ 2020년 | |
| 미우라 다이스케 三浦大輔일본어 | 2021년 ~ |
4. 연도별 성적
| 연도 | 감독 | 순위 | 경기 | 승리 | 패전 | 무승부 | 승률 | 승차 | 타율 | 홈런 | 평균자책점 |
|---|---|---|---|---|---|---|---|---|---|---|---|
| 1950년 | 와타나베 다이리쿠 | 5위 | 140 | 69 | 68 | 3 | .504 | 31 | .273 | 111 | 4.47 |
| 1951년 | 나카지마 하루야스·아리마 기이치 | 6위 | 108 | 40 | 64 | 4 | .385 | 37 | .253 | 86 | 4.84 |
| 1952년 | 고니시 도쿠로 | 4위 | 120 | 58 | 62 | 0 | .483 | 25 | .248 | 57 | 3.68 |
| 1953년 | 고니시 도쿠로 | 5위 | 130 | 52 | 77 | 1 | .403 | 37.5 | .246 | 63 | 4.10 |
| 1954년 | 나가사와 다케오 | 6위 | 130 | 32 | 96 | 2 | .250 | 55 | .227 | 68 | 4.13 |
| 1955년 | 후지이 이사무 | 6위 | 130 | 31 | 99 | 0 | .238 | 61.5 | .209 | 51 | 3.69 |
| 1956년 | 사코하타 마사미 | 6위 | 130 | 43 | 87 | 0 | .331 | 41 | .208 | 74 | 3.15 |
| 1957년 | 사코하타 마사미 | 6위 | 130 | 52 | 74 | 4 | .415 | 21.5 | .229 | 63 | 3.10 |
| 1958년 | 사코하타 마사미 | 6위 | 130 | 51 | 73 | 6 | .415 | 23.5 | .215 | 78 | 2.75 |
| 1959년 | 모리 시게오 | 6위 | 130 | 49 | 77 | 4 | .392 | 28.5 | .214 | 73 | 3.47 |
| 1960년 | 미하라 오사무 | 1위 | 130 | 70 | 56 | 4 | .554 | - | .230 | 60 | 2.32 |
| 1961년 | 미하라 오사무 | 6위 | 130 | 50 | 75 | 5 | .404 | 21.5 | .236 | 76 | 3.10 |
| 1962년 | 미하라 오사무 | 2위 | 134 | 71 | 59 | 4 | .546 | 4 | .242 | 100 | 2.73 |
| 1963년 | 미하라 오사무 | 5위 | 140 | 59 | 79 | 2 | .428 | 24 | .237 | 110 | 3.29 |
| 1964년 | 미하라 오사무 | 2위 | 140 | 80 | 58 | 2 | .580 | 1 | .255 | 134 | 3.03 |
| 1965년 | 미하라 오사무 | 4위 | 140 | 68 | 70 | 2 | .493 | 23 | .244 | 136 | 2.81 |
| 1966년 | 미하라 오사무 | 5위 | 130 | 52 | 78 | 0 | .400 | 37 | .247 | 116 | 3.74 |
| 1967년 | 미하라 오사무 | 4위 | 135 | 59 | 71 | 5 | .454 | 25 | .245 | 130 | 3.28 |
| 1968년 | 벳토 가오루 | 5위 | 133 | 59 | 71 | 3 | .454 | 18 | .236 | 131 | 3.71 |
| 1969년 | 벳토 가오루 | 3위 | 130 | 61 | 61 | 8 | .500 | 11 | .239 | 125 | 3.19 |
| 1970년 | 벳토 가오루 | 3위 | 130 | 69 | 57 | 4 | .548 | 10 | .241 | 106 | 2.75 |
| 1971년 | 벳토 가오루 | 3위 | 130 | 61 | 59 | 10 | .508 | 8 | .216 | 82 | 2.31 |
| 1972년 | 벳토 가오루 | 5위 | 130 | 57 | 69 | 4 | .452 | 17 | .242 | 135 | 3.66 |
| 1973년 | 아오타 노보루 | 5위 | 130 | 60 | 64 | 6 | .484 | 5 | .243 | 125 | 3.30 |
| 1974년 | 미야자키 다케시 | 5위 | 130 | 55 | 69 | 6 | .444 | 17.5 | .265 | 143 | 4.28 |
| 1975년 | 아키야마 노보루 | 5위 | 130 | 51 | 69 | 10 | .425 | 21.5 | .249 | 137 | 3.93 |
| 1976년 | 아키야마 노보루 | 6위 | 130 | 45 | 78 | 7 | .366 | 32 | .256 | 172 | 4.45 |
| 1977년 | 벳토 가오루 | 6위 | 130 | 51 | 68 | 11 | .429 | 25.5 | .268 | 176 | 4.94 |
| 1978년 | 벳토 가오루 | 4위 | 130 | 64 | 57 | 9 | .529 | 7.5 | .273 | 132 | 3.90 |
| 1979년 | 벳토 가오루 | 2위 | 130 | 59 | 54 | 17 | .522 | 6 | .266 | 135 | 4.05 |
| 1980년 | 도이 기요시 | 4위 | 130 | 59 | 62 | 9 | .488 | 16 | .259 | 135 | 4.18 |
| 1981년 | 도이 기요시 | 6위 | 130 | 42 | 80 | 8 | .344 | 31.5 | .252 | 105 | 4.41 |
| 1982년 | 세키네 준조 | 5위 | 130 | 53 | 65 | 12 | .449 | 14.5 | .250 | 125 | 3.92 |
| 1983년 | 세키네 준조 | 3위 | 130 | 61 | 61 | 8 | .500 | 11 | .272 | 137 | 4.52 |
| 1984년 | 세키네 준조 | 6위 | 130 | 46 | 77 | 7 | .374 | 30.5 | .263 | 100 | 4.55 |
| 1985년 | 곤도 사다오 | 4위 | 130 | 57 | 61 | 12 | .483 | 14.5 | .267 | 132 | 4.59 |
| 1986년 | 곤도 사다오 | 4위 | 130 | 56 | 69 | 5 | .448 | 20 | .264 | 84 | 3.81 |
| 1987년 | 고바 다케시 | 5위 | 130 | 56 | 68 | 6 | .452 | 22.5 | .259 | 113 | 4.26 |
| 1988년 | 고바 다케시 | 4위 | 130 | 59 | 67 | 4 | .468 | 20.5 | .273 | 85 | 3.93 |
| 1989년 | 고바 다케시 | 6위 | 130 | 47 | 80 | 3 | .370 | 36.5 | .260 | 76 | 4.07 |
| 1990년 | 스도 유타카 | 3위 | 133 | 64 | 66 | 3 | .492 | 24 | .266 | 90 | 3.94 |
| 1991년 | 스도 유타카 | 5위 | 131 | 64 | 66 | 1 | .492 | 10 | .269 | 66 | 3.74 |
| 1992년 | 스도 유타카·에지리 아키라 | 5위 | 131 | 61 | 69 | 1 | .469 | 8 | .249 | 97 | 3.75 |
| 1993년 | 곤도 아키히토 | 5위 | 130 | 57 | 73 | 0 | .438 | 23 | .249 | 87 | 3.83 |
| 1994년 | 곤도 아키히토 | 6위 | 130 | 61 | 69 | 0 | .469 | 9 | .261 | 107 | 3.76 |
| 1995년 | 곤도 아키히토 | 4위 | 130 | 66 | 64 | 0 | .508 | 16 | .261 | 114 | 4.37 |
| 1996년 | 오야 아키히코 | 5위 | 130 | 55 | 75 | 0 | .423 | 22 | .270 | 85 | 4.67 |
| 1997년 | 오야 아키히코 | 2위 | 135 | 72 | 63 | 0 | .533 | 11 | .273 | 105 | 3.70 |
| 1998년 | 곤도 히로시 | 1위 | 136 | 79 | 56 | 1 | .585 | - | .277 | 100 | 3.49 |
| 1999년 | 곤도 히로시 | 3위 | 135 | 71 | 64 | 0 | .526 | 10 | .294 | 140 | 4.44 |
| 2000년 | 곤도 히로시 | 3위 | 136 | 69 | 66 | 1 | .511 | 9 | .277 | 103 | 3.92 |
| 2001년 | 모리 마사아키 | 3위 | 140 | 69 | 67 | 4 | .507 | .267 | 94 | 3.75 | |
| 2002년 | 모리 마사아키 | 6위 | 140 | 49 | 86 | 5 | .363 | 35.5 | .240 | 97 | 4.09 |
| 2003년 | 야마시타 다이스케 | 6위 | 140 | 45 | 94 | 1 | .324 | 42.5 | .258 | 192 | 4.80 |
| 2004년 | 야마시타 다이스케 | 6위 | 138 | 59 | 76 | 3 | .437 | 20 | .279 | 194 | 4.47 |
| 2005년 | 우시지마 가즈히코 | 3위 | 146 | 69 | 70 | 7 | .496 | 17 | .265 | 143 | 3.68 |
| 2006년 | 우시지마 가즈히코 | 6위 | 146 | 58 | 84 | 4 | .408 | 29.5 | .257 | 127 | 4.25 |
| 2007년 | 오야 아키히코 | 4위 | 144 | 71 | 72 | 1 | .497 | 9 | .265 | 124 | 4.01 |
| 2008년 | 오야 아키히코 | 6위 | 144 | 48 | 94 | 2 | .338 | 36.5 | .266 | 145 | 4.74 |
| 2009년 | 오야 아키히코 | 6위 | 144 | 51 | 93 | 0 | .354 | 42.5 | .239 | 128 | 4.36 |
| 2010년 | 오바나 다카오 | 6위 | 144 | 48 | 95 | 1 | .336 | 32 | .255 | 117 | 4.88 |
| 2011년 | 오바나 다카오 | 6위 | 144 | 47 | 86 | 11 | .353 | 27.5 | .239 | 78 | 3.87 |
| 2012년 | 나카하타 기요시 | 6위 | 144 | 46 | 85 | 13 | .351 | 41 | .233 | 66 | 3.76 |
| 2013년 | 나카하타 기요시 | 5위 | 144 | 64 | 79 | 1 | .448 | 23 | .262 | 132 | 4.50 |
| 2014년 | 나카하타 기요시 | 5위 | 144 | 67 | 75 | 2 | .472 | 14.5 | .253 | 121 | 3.76 |
| 2015년 | 나카하타 기요시 | 6위 | 143 | 62 | 80 | 1 | .437 | 14.5 | .249 | 112 | 3.80 |
| 2016년 | 알렉스 라미레스 | 3위 | 143 | 69 | 71 | 3 | .493 | 19.5 | .249 | 140 | 3.76 |
| 2017년 | 알렉스 라미레스 | 3위 | 143 | 73 | 65 | 5 | .529 | 14.5 | .252 | 134 | 3.81 |
| 2018년 | 알렉스 라미레스 | 4위 | 143 | 67 | 74 | 2 | .475 | 15 | .250 | 181 | 4.18 |
| 2019년 | 알렉스 라미레스 | 2위 | 143 | 71 | 69 | 3 | .507 | 5.5 | .246 | 163 | 3.93 |
| 2020년 | 알렉스 라미레스 | 4위 | 120 | 56 | 58 | 6 | .491 | 12 | .266 | 135 | 3.76 |
| 2021년 | 미우라 다이스케 | 6위 | 143 | 54 | 73 | 16 | .425 | 20 | .258 | 136 | 4.15 |
| 2022년 | 미우라 다이스케 | 2위 | 143 | 73 | 68 | 2 | .518 | 8 | .251 | 117 | 3.48 |
| 2023년 | 미우라 다이스케 | 3위 | 143 | 74 | 66 | 3 | .529 | 12 | .247 | 105 | 3.16 |
* 2023년 시즌 종료 기준, 위 표에서 순위의 굵은 글씨는 일본 시리즈 우승을 나타낸다.
* 통산 성적 : 4323승 320무 5300패 (승률 .449) (2023년 시즌 종료 기준)
--
전체 연도별 상세 성적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및 그 전신 구단의 연도별 성적 일람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리그 우승 2회
: 1960년, 1998년
* 일본 시리즈 우승 3회
: 1960년, 1998년, 2024년
* 세·퍼 교류전 우승 1회
: 2023년
*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2회
: 2017년, 2024년
* A클래스 21회
: 1960년, 1962년, 1964년, 1969년 - 1971년, 1979년, 1983년, 1990년, 1997년 - 2001년, 2005년, 2016년 - 2017년, 2019년, 2022년 - 2024년
* B클래스 54회
: 1950년 - 1959년, 1961년, 1963년, 1965년 - 1968년, 1972년 - 1978년, 1980년 - 1982년, 1984년 - 1989년, 1991년 - 1996년, 2002년 - 2004년, 2006년 - 2015년, 2018년, 2020년 - 2021년
* 최하위 25회
: 1954년 - 1959년, 1961년, 1966년, 1976년 - 1977년, 1981년, 1984년, 1989년, 1994년, 2002년 - 2004년, 2006년, 2008년 - 2012년, 2015년, 2021년
* 연속 A클래스 진입 최장 기록 : 5년 (1997년 - 2001년)
* 연속 B클래스 최장 기록 : 10년 (1950년 - 1959년, 2006년 - 2015년)
* 최다 승리 : 80승 (1964년)
* 최다 패전 : 99패 (1955년)
* 최다 무승부 : 17무 (1979년)
* 최고 승률 : .585 (1998년)
* 최저 승률 : .238 (1955년)
* 최다 연승 : 10연승 (1964년, 1967년, 1968년, 1998년, 1999년) ※ 1967년, 1968년, 1998년은 무승부를 포함한다.
* 최다 연패 : 14연패 (1955년, 2008년) ※ 2008년은 무승부 1개를 포함한다.
* 최장 경기 시간 : 6시간 13분 (1998년 8월 9일 대 히로시마전)
* 연속 이닝 무득점 : 46이닝 (2012년)
* 통산 4500패 달성 : 2012년 8월 24일 대 요미우리전 (양대 리그제 도입 이후 최단 기록)
※ 2024년 시즌은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했으나,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거쳐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정규 시즌 1위로 리그 우승 및 일본 시리즈 우승"은 2024년 현재 1998년이 마지막이다.
5. 구단 기록
* 리그 우승 : 2회
:(1960년, 1998년)
* 일본 시리즈 우승 : 3회
:(1960년, 1998년, 2024년)
* 센트럴·퍼시픽 교류전 우승 : 1회
:(2023년)
*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 2회
:(2017년, 2024년)
* A클래스 : 21회
:(1960년, 1962년, 1964년, 1969년 ~ 1971년, 1979년, 1983년, 1990년, 1997년 ~ 2001년, 2005년, 2016년 ~ 2017년, 2019년, 2022년 ~ 2024년)
* B클래스 : 54회
:(1950년 ~ 1959년, 1961년, 1963년, 1965년 ~ 1968년, 1972년 ~ 1978년, 1980년 ~ 1982년, 1984년 ~ 1989년, 1991년 ~ 1996년, 2002년 ~ 2004년, 2006년 ~ 2015년, 2018년, 2020년 ~ 2021년)
* 최하위 : 25회
:(1954년 ~ 1959년, 1961년, 1966년, 1976년 ~ 1977년, 1981년, 1984년, 1989년, 1994년, 2002년 ~ 2004년, 2006년, 2008년 ~ 2012년, 2015년, 2021년)
* 연속 A클래스 진입 최장 기록 : 5년 (1997년 ~ 2001년)
* 연속 B클래스 최장 기록 : 10년 (1950년 ~ 1959년, 2006년 ~ 2015년)
* 최다 승리 : 80승 (1964년)
* 최다 패전 : 99패 (1955년)
* 최다 무승부 : 17무 (1979년)
* 최고 승률 : .585 (1998년)
* 최저 승률 : .238 (1955년)
* 최다 연승 : 10연승 (1964년, 1967년, 1968년, 1998년, 1999년) ※ 1967년, 1968년, 1998년은 무승부를 포함한다.
* 최다 연패 : 14연패 (1955년, 2008년) ※ 2008년은 무승부 1개를 포함한다.
* 최장 경기 시간 : 6시간 13분 (1998년 8월 9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 연속 이닝 무득점 : 46이닝 (2012년)
* 통산 4500패 : 2012년 8월 24일 대 요미우리전 (양대 리그제 도입 후 최단 기록)
* 최소 경기차 : 1.0경기차 (1964년)
* 최대 경기차 : 61.5경기차 (1955년)
* 최다 홈런 : 194개 (2004년)
* 최소 홈런 : 51개 (1955년)
* 최고 타율 : .294 (1999년)
* 최저 타율 : .208 (1956년)
* 최저 평균자책점 : 2.31 (1971년)
* 최고 평균자책점 : 4.94 (1977년)
* 홈 연승 기록 : 17연승 (2022년)
* 최다 폭투(시즌) : 68개 (2015년, 롯데 오리온즈(1990년)와 프로야구 타이기록)
※ 2024년은 정규 시즌 3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우승하여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 정규 시즌 1위로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모두 달성한 것은 1998년이 마지막이다.
6. 역대 홈구장
* 시모노세키 구장: 1950년 ~ 1952년
* 팀 창단 초기(마루하 구단, 다이요 웨일스)의 홈구장이다. 시모노세키시를 프랜차이즈로 삼고 시모노세키 시영 구장을 본거지로 했으나, 실제 시모노세키 개최는 일부였고 규슈 북부 등 여러 지역에서 경기를 치렀다.
* 오사카 구장: 1953년 ~ 1954년
* 쇼치쿠 로빈스와 합병하여 다이요 쇼치쿠 로빈스(후에 요쇼 로빈스)가 되면서 사용했다. 명목상 시모노세키시와 교토시를 프랜차이즈로 병기했으나, 흥행상의 이유로 주로 오사카 구장에서 홈 경기를 개최했다.
* 가와사키 구장: 1955년 ~ 1977년
* 쇼치쿠가 구단 경영에서 철수하고 다시 다이요 웨일스가 된 후, 가나가와현으로 연고지 이전을 추진했다. 처음에는 요코하마 공원 평화 야구장을 본거지로 신고했으나, 시설 문제로 같은 현 내의 가와사키 구장으로 사실상 이전하여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가와사키 구장을 사용하던 톤보 유니온즈와의 마찰이 있었으나 가와사키시 시장의 중재로 해결되었다. 1960년에는 이 구장에서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 요코하마 스타디움: 1978년 ~ 현재
* 요코하마시 나카구의 요코하마 공원 내에 요코하마 스타디움이 건설되면서 이전했다. 이전을 계기로 팀명을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로 변경했다. 이전 과정에서 가와사키시 시민들의 반대 운동이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요코하마 이전이 결정되었고, 빈 가와사키 구장에는 롯데 오리온스가 이전하게 되었다. 1993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012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로 팀명이 변경된 이후에도 계속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7. 유명 선수
* 라이언 글린 (미국)
* 타이론 우즈 (미국) - 1루수 (2003–2004)
* 알렉스 라미레스 (베네수엘라) - 외야수 (2012–2013)
* 아롬 발디리스 (베네수엘라)
* 크리스 부첵 (미국)
* 두에인 빌로우 (미국)
* 아키야마 노보루 (일본) - 투수 (1956–1967)
* 곤도 가즈히코 (일본) - 1루수, 외야수 (1958–1972)
* 마쓰바라 마코토 (일본) - 1루수 (1962–1980)
* 히라마쓰 마사지 (일본) - 투수 (1967–1984)
* 나카쓰카 마사유키 (일본) - 1루수, 외야수 (1968–1982)
* 존 시핀 (미국) - 2루수 (1972–1977)
* 다카기 요시카즈 (일본) - 외야수, 1루수 (1972–1987)
* 나가사키 게이이치 (일본) - 외야수 (1973–1984)
* 야마시타 다이스케 (일본) - 유격수, 2루수, 3루수 (1974–1987)
* 다시로 도미오 (일본) - 3루수, 1루수, 외야수 (1976–1991)
* 사이토 아키오 (일본) - 투수 (1977–1993)
* 펠릭스 밀란 (푸에르토리코) - 2루수, 1루수 (1978–1980)
* 엔도 가즈히코 (일본) - 투수 (1978–1992)
* 야시키 가나메 (일본) - 중견수 (1978–1993)
* 모토이 미쓰오 (일본) - 2루수, 유격수, 3루수 (1979–1984)
* 다카기 유타카 (일본) - 2루수, 유격수 (1981–1993)
* 야마자키 겐이치 (일본) - 외야수 (1981–1993)
* 짐 트레이시 (미국) - 외야수 (1983–1984)
* 레온 리 (미국) - 3루수 (1983–1985)
* 가토 히로카즈 (일본) - 좌익수 (1983–1990)
* 카케하타 미쓰노리 (일본) - 투수 (1984–1994)
* 카를로스 폰세 (푸에르토리코) - 1루수 (1986–1990)
* 니우라 히사오 (일본) - 투수 (1987–1991)
* 데니 토모리 (일본) - 투수 (1987–1996, 2003–2004)
* 짐 파치오렉 (미국) - 1루수, 좌익수 (1988–1991)
* 신도 다쓰야 (일본) - 유격수, 3루수 (1988–2000)
* 노무라 히로키 (일본) - 투수 (1988–2002)
* 타니시게 모토노부 (일본) - 포수 (1989–2001)
* 이시이 다쿠로 (일본) - 유격수, 3루수, 투수 (1989–2008)
* 사사키 가즈히로 (일본) - 투수 (1990–1999, 2004–2005)
* 스즈키 다카노리 (일본) - 외야수 (1991–2008)
* R. J. 레이놀즈 (미국) - 외야수 (1991–1992)
* 이가라시 히데키 (일본) - 투수 (1991–2001)
* 사이토 다카시 (일본) - 투수 (1992–2005)
* 미우라 다이스케 (일본) - 투수 (1992–2016)
* 글렌 브래그스 (미국) - 우익수 (1993–1996)
* 로버트 로즈 (미국) - 2루수 (1993–2000)
* 사에키 다카히로 (일본) - 1루수, 외야수 (1993–2010)
* 오카 도모카즈 (일본) - 투수 (1994–1998, 2010–2011)
* 고마다 노리히로 (일본) - 1루수 (1994–2000)
* 하루 토시오 (일본) - 중견수 (1994–2001)
* 아이카와 료지 (일본) - 포수 (1995–2008)
* 후쿠모리 가즈오 (일본) - 투수 (1995–2003)
* 가와무라 다케오 (일본) - 투수 (1997–2008)
* 킨조 다쓰히코 (일본) - 외야수 (1999–2014)
* 기즈카 아쓰시 (일본) - 투수 (2000–2010)
* 타네다 히토시 (일본) - 2루수 (2001–2007)
* 우치카와 세이이치 (일본) - 1루수, 외야수 (2001–2010)
* 무라타 슈이치 (일본) - 3루수 (2003–2011)
* 요시무라 유키 (일본) - 우익수 (2003–2012)
* 가도쿠라 겐 (일본) - 투수 (2004–2006)
* 마크 크론 (미국) - 투수 (2005–2007)
* 후지타 가즈야 (일본) - 2루수 (2005–2012, 2022–2023)
* 가지와라 다카유키 (일본) - 외야수 (2007–2020)
* 다나카 겐지로 (일본) - 투수 (2008–2023)
* 스티븐 랜돌프 (미국) - 투수 (2009–2010, 2011)
* 브렛 하퍼 (미국) - 1루수 (2010–2011)
* 나카무라 노리히로 (일본) - 3루수 (2011–2014)
* 토니 블랑코 (도미니카 공화국) - 1루수 (2013–2014)
* 기예르모 모스코소 (베네수엘라) - 투수 (2014–2016)
* 미카미 토모야 (일본) - 투수 (2014–2022)
* 스나다 다케키 (일본) - 투수 (2014–2022)
* 호소카와 세이야 (일본) - 외야수 (2017–2022)
* 에드윈 에스코바 (베네수엘라) - 투수 (2017–2023)
* 네프탈리 소토 (푸에르토리코) - 1루수, 3루수 (2018–2023)
* 페르난도 로메로 (도미니카 공화국) - 투수 (2021–2022)
* 트레버 바우어 (미국) - 투수 (2023)
=== 메이저리그 경험 선수 ===
==== 현재 ====
* 이마나가 쇼타 (일본) (2024–현재)
==== 과거 ====
* 조 스탄카 (미국) (1966)
* 율리에스키 구리엘 (쿠바) (2014–2015)
* 오카 토모 (일본) (1999–2009)
* 사이토 다카시 (일본) (2006–2012)
* 사사키 가즈히로 (일본) (2000–2003)
* 후쿠모리 가즈오 (일본) (2008)
* 쓰쓰고 요시토모 (일본) (2020–2022)
* 트레버 바우어 (미국) (2023)
8. 한국과의 관계
(해당 섹션 제목과 관련된 내용이 원본 소스에 없어, 작성할 내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