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 야구(NPB)는 1949년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로 분열된 일본 야구 연맹을 통합하면서 발족한 기구로, 현재 두 리그와 2군 리그(이스턴, 웨스턴)를 운영하며 올스타전과 일본 시리즈를 주최한다. 1872년 일본에 야구가 도입된 이후, 1936년 일본 직업 야구 연맹이 출범하면서 프로 리그가 시작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리그 재편과 선수 제도 변화를 겪었다. NPB는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 각 6개 팀, 총 12개 구단으로 운영되며, 각 구단은 연고지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일본 프로 야구는 개인 타이틀 시상, 독립 리그와의 연계, 해외 경기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2000년대 이후 중계 방식 변화, 선수 연봉 증가, 메이저 리그 진출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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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로 야구 - 퍼시픽 리그 퍼시픽 리그는 1949년 태평양 야구 연맹으로 출범하여 1980년 현재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6개 구단으로 구성되어 난카이, 니시테쓰, 한큐, 세이부 등의 강세 시대를 거쳐 스즈키 이치로, 마쓰자카 다이스케 같은 스타 선수들의 활약과 돔 구장 시대, 지역 밀착 정책, 리그 재편, 그리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왕조 시대를 거쳐 1975년부터 지명 타자 제도를 운영하며 센트럴 리그와의 교류전 및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통해 일본 시리즈 진출팀을 결정한다.
일본 프로 야구 - 센트럴 리그 센트럴 리그는 1949년 일본 프로야구 재편으로 출범하여 팀 합병과 해체를 거쳐 현재 6개 팀으로 구성되었으며,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통해 일본 시리즈 진출팀을 결정하는 일본 프로야구의 핵심 리그이다.
일본 프로 야구 - 퍼시픽 리그 퍼시픽 리그는 1949년 태평양 야구 연맹으로 출범하여 1980년 현재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6개 구단으로 구성되어 난카이, 니시테쓰, 한큐, 세이부 등의 강세 시대를 거쳐 스즈키 이치로, 마쓰자카 다이스케 같은 스타 선수들의 활약과 돔 구장 시대, 지역 밀착 정책, 리그 재편, 그리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왕조 시대를 거쳐 1975년부터 지명 타자 제도를 운영하며 센트럴 리그와의 교류전 및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통해 일본 시리즈 진출팀을 결정한다.
일본 프로 야구 - 지바 롯데 마린스 지바 롯데 마린스는 1950년 창단한 마이니치 오리온스를 모태로 하여 지바 롯데 마린스로 개명한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 소속 구단으로, 일본 시리즈와 아시아 시리즈 우승 등의 화려한 역사와 독특한 팀 문화로 유명하다.
1949년 프로야구 재편 문제로 일본 야구 연맹이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로 분열되면서, 양대 리그를 통괄하는 '''일본 야구 기구(NPB)'''가 발족되었다.[6] 센트럴 리그는 8개 구단, 퍼시픽 리그는 7개 구단 체제로 시작되었다.[6]
1950년부터 각 리그 우승 팀이 맞붙는 일본 시리즈가 개최되기 시작했으며, 제1회 일본 시리즈 우승 팀은 마이니치 오리온스였다.[6] 1951년에는 올스타전이 처음으로 개최되었다.[6] 1952년에는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시범 도입되었던 프랜차이즈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107] 1955년에는 2군 리그인 이스턴 리그와 웨스턴 리그가 발족되었다.[6]
1961년에는 야나가와 사건이 발생하여, 사회인 야구 협회에서 프로 야구 은퇴 선수들의 사회인 야구팀 입단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6] 1965년에는 드래프트 회의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6] 1969년에는 검은 안개 사건이 발생하여 승부 조작에 연루된 선수들이 영구 출장 정지 등의 처분을 받았다.[6]
1975년, 퍼시픽 리그는 지명 타자 제도를 도입하였다.[6] 1993년에는 역지명제도와 자유 계약 선수(FA) 제도가 도입되었다.[6]
2004년에는 프로 야구 재편 문제가 발생했다.[6] 이 사건으로 인해 9월 18일·19일에 선수회에 의한 사상 최초의 파업이 발생했다.[6]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합병 문제로 시작된 이 사건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스 등 인기 구단을 보유한 센트럴 리그 팀들이 퍼시픽 리그 팀들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두 리그를 통합하려는 시도까지 이어졌다. 결국 2005년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창단되면서 6개 팀, 양대 리그 체제가 유지되었다.[6] 또한, 2005년부터는 센트럴·퍼시픽 교류전이 실시되었다.[6]
2007년에는 센트럴 리그에도 플레이오프 제도가 도입되어, 양대 리그 모두 클라이맥스 시리즈라는 명칭으로 실시되었다.[6]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개막이 연기되었고, 프로 야구 12개 구단의 공식 시합구가 통일되었다.[6] 2012년에는 센트럴 리그도 예고 선발을 도입했다.[12]
2020년에는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개막이 약 3개월 연기되었고, 경기 수가 143경기에서 120경기로 축소되었다.[21]
2. 1. 초창기 (1871년 ~ 1935년)
일본 야구는 1872년 호레스 윌슨에 의해 소개되었고,[1] 1871년 9월 30일 요코하마에서 외국인 거류민과 미국 군함 콜로라도호 승무원 사이에 일본 최초의 야구 경기가 개최되었다.[6] 1907년 게이오기주쿠 대학과 하와이 세인트루이스의 경기에서 최초로 유료 경기가 열렸다.[6] 1908년부터는 미국 프로 야구 팀(주로 마이너 리그)이 일본을 방문하기 시작했다.[6]
1920년 일본운동협회가 설립되면서 일본 프로 야구가 시작되었다.[6] 같은 해 일본운동협회는 일제강점기 조선과 만주로 원정을 떠나 인기를 얻었다.[6] 그러나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일본운동협회와 텐쇼 야구단이 해산되었다.[6] 이후 일본운동협회는 한신 급행 전철에 의해 타카라즈카 운동협회로 재결성되었으나 1929년 해산되었다.[6]
1936년 대일본도쿄야구클럽(도쿄 교진군, 현재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사카 야구 클럽(오사카 타이거스, 현재의 한신 타이거스), 대일본야구연맹 나고야협회(나고야군, 현재의 주니치 드래건스), 도쿄 야구 협회(도쿄 세네터스), 나고야 야구 클럽(나고야 긴코군), 오사카 한큐 야구 협회(한큐군, 현재의 오릭스 버펄로스), 대일본야구연맹 도쿄 협회(다이도쿄군)가 발족하여, 일본 최초의 프로야구 리그인 '''일본 직업 야구 연맹'''이 설립되었다.[6] 이로써 현재와 같은 페넌트 레이스(정규 경기)가 시작되었으며, 이는 일본 최초의 전국 규모 사회인 스포츠 리그였다.[6] 연맹이 설립된 2월 5일은 후에 "프로야구의 날"로 정해졌다.[6]
제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1944년 일본 야구 연맹은 '''일본 야구 보국회'''로 개칭되었고, 11월 13일부로 활동이 중지되었다.[6]사와무라 에이지 등 많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전쟁에 동원되었고, 전사자도 다수 발생했다.[6]
1945년 1월 1일부터 1월 5일까지 간사이 지방에서 정월 대회가 개최되었다.[6] 같은 해 11월 6일 일본 야구 연맹의 부활이 선언되었고,[6]11월 23일에는 동서대항전이 개최되었다.
1946년 3월 27일 페넌트 레이스가 재개되었으며, 1944년 폐지되었던 등번호가 부활했다.[106]
1947년에는 국민 야구 연맹이 발족했지만, 1948년에 해산되었다.[6]
1949년에는 프로 야구 재편 문제가 발생하여 일본 야구 연맹은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로 분열되었고, 양 리그를 통괄하는 '''일본야구기구(NPB)'''가 발족했다.
2. 3. 일본 야구 기구(NPB) 시대 (1950년 ~ 현재)
1949년 프로야구 재편 문제로 일본 야구 연맹이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로 분열되면서, 양대 리그를 통괄하는 '''일본 야구 기구(NPB)'''가 발족되었다. 센트럴 리그는 8개 구단, 퍼시픽 리그는 7개 구단 체제로 시작되었다.
1950년부터 각 리그 우승 팀이 맞붙는 일본 시리즈가 개최되기 시작했으며, 제1회 일본 시리즈 우승 팀은 마이니치 오리온스였다. 1951년에는 올스타전이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1952년에는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시범 도입되었던 프랜차이즈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107] 1955년에는 2군 리그인 이스턴 리그와 웨스턴 리그가 발족되었다.
1961년에는 야나가와 사건이 발생하여, 사회인 야구 협회에서 프로 야구 은퇴 선수들의 사회인 야구팀 입단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1965년에는 드래프트 회의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1969년에는 검은 안개 사건이 발생하여 승부 조작에 연루된 선수들이 영구 출장 정지 등의 처분을 받았다.
1975년, 퍼시픽 리그는 지명 타자 제도를 도입하였다. 1993년에는 역지명제도와 자유 계약 선수(FA) 제도가 도입되었다.
2004년에는 프로 야구 재편 문제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9월 18일·19일에 선수회에 의한 사상 최초의 파업이 발생했다.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합병 문제로 시작된 이 사건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스 등 인기 구단을 보유한 센트럴 리그 팀들이 퍼시픽 리그 팀들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두 리그를 통합하려는 시도까지 이어졌다. 결국 2005년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창단되면서 6개 팀, 양대 리그 체제가 유지되었다. 또한, 2005년부터는 센트럴·퍼시픽 교류전이 실시되었다.
2007년에는 센트럴 리그에도 플레이오프 제도가 도입되어, 양대 리그 모두 클라이맥스 시리즈라는 명칭으로 실시되었다.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개막이 연기되었고, 프로 야구 12개 구단의 공식 시합구가 통일되었다. 2012년에는 센트럴 리그도 예고 선발을 도입했다.[12]
2020년에는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개막이 약 3개월 연기되었고, 경기 수가 143경기에서 120경기로 축소되었다.[21]
3. 일본 야구 기구 (NPB)
일본야구기구(NPB)에서는 1군 공식 경기로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를, 2군 공식 경기로 이스턴 리그와 웨스턴 리그를 개최하고 있으며, 올스타전, 일본시리즈 등을 주최하고 있다. 일본에서 단순히 "프로야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이들을 가리킨다.
교세라 돔 오사카
한신 고시엔 구장
메트라이프 돔
== 리그 및 구단 ==
일본야구기구(NPB)에는 센트럴 리그(세리그)와 퍼시픽 리그(파리그)의 2개 리그가 있다. 현재 양 리그 각각 6개 구단이 소속되어 있으며, 이들을 통틀어 일반적으로 "12구단"이라고 부른다.[24]
코나미 (코나미 디지털 엔터테인먼트(KDE), NPB 공인 야구 게임 소프트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시리즈」「프로야구 스피리츠 시리즈」를 판매, 2005년-2007년 「아시아 시리즈」 특별 협찬, 2011년-2013년의 「일본 시리즈」(「KONAMI 일본 시리즈」) 특별 협찬)
다이쇼제약 (2016년 시즌부터, 신인 선수 선택 회의 특별 협찬(리포비탄D 명의, 2013년부터), NPB 어워즈 특별 협찬(리포비탄D 명의, 2014년부터))
프로 야구 재편 문제와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현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 탄생의 영향으로 당시 전국 각지에서 독립 리그 구상이 제기되었다.[57]루트인 BC 리그처럼 실현된 독립 리그도 있지만, 자금 문제 등으로 실현되지 못한 것도 여러 개 존재한다.
일본 야구 연맹은 리그 소속 선수에 대해 2005년부터 2008년까지는 아마추어와 동등하게 취급했다. 하지만 2009년 일본 야구 연맹은 「국내 독립 리그에 관한 취급 요령」을 제정하여 NPB와 마찬가지로 프로 선수로 취급(퇴단자의 사회인 야구 선수 등록은 1팀 3명 이내)하게 되었다.[55] 2010년부터는 독립 리그 퇴단자는 퇴단 다음 해에 사회인 야구 선수 등록을 할 수 없는 제한도 추가되었다. 그 후, 2014년 11월에 모든 독립 리그 퇴단자에 대해 등록자 수 제한이 적용되지 않게 되었고, 일본 독립 리그 야구 기구 소속 리그 선수에 대해서는 등록 기간 제한도 적용되지 않게 되었다.[56]
독립 리그 선수도 NPB와 마찬가지로 프로 계약을 맺고 구단으로부터 보수를 받지만, 그 금액은 NPB와 비교하여 극히 적다. 해산 당시의 KANDOK는 완전 무급제였고,[58] 따라서 오프 시즌에 부업을 인정하는 리그도 존재한다. 홋카이도 베이스볼 리그나 홋카이도 프론티어 리그는 시즌 중에도 구단 현지의 기업이나 농가에서 선수가 취업하는 형태를 채용한다.
일본 프로 야구의 경기 개시 시각은 평일에는 18:00(일부 구장은 18:15)이다. 토·일요일, 공휴일은 주최 구장에 따라 다르지만, 13:00 또는 14:00에 시작한다. 여름철에는 햇빛으로 인해 야간 경기는 같지만, 주간 경기는 14시나 15시 이후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46][47] 2009년에는 18:30에 6경기, 17:00에 4경기가 개시되었다.[49] 2010년에는 35년 만에 오키나와현나하시의 오키나와 셀룰러 스타디움 나하에서 요코하마 대 야쿠르트의 2연전이 '''19:00'''에 개시되었다. “황혼의 주간경기” 또는 “준 야간경기”로 '''17:00'''에 개시하는 6경기가 추가되었다.
야간 경기는 대부분 오후 6시(18:00)에 시작하지만, 드물게 오후 6시 20분(18:20), 6시 30분(18:30)에 시작하는 경우도 있으며, 예외적으로 오후 7시(19:00)에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간 경기는 주최 구장에 따라 다르지만, 오후 1시(13:00), 1시 30분(13:30)[46], 2시(14:00), 3시(15:00)[47] 중 하나로 시작된다. 2017년에는 오후 3시 30분(15:30) 시작 경기가 1경기 있었다.[48] 여름 등에는 오후 4시(16:00) 또는 오후 5시(17:00) 시작의 황혼 경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나하시의 오키나와 셀룰러 스타디움 나하에서 2010년 이후 매년 개최되는 공식 경기 2경기는 현지 생활 방식에 맞춰 2013년까지는 오후 7시(19:00) 시작이었지만, 2014년 이후부터는 오후 6시 30분(18:30) 시작으로 변경되었다. 2018년에는 DeNA가 오후 5시 30분(17:30) 또는 5시 45분(17:45)으로 하는 경기가 있었다.[50]
가을에 개최되는 포스트시즌 경기의 시작 시각은 TV 중계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클라이맥스 시리즈는 주최 구단의 시즌 중 방침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 시리즈는 오후 6시(18:00), 6시 10분(18:10), 6시 15분(18:15), 6시 30분(18:30)[51]에 설정된다. 센트럴 리그의 클라이맥스 시리즈는 평일과 토·일요일 모두 '''18:00''', 퍼시픽 리그의 클라이맥스 시리즈는 평일에 '''18:00''', 토·일요일에 '''13:00'''에 개시한다. 일본 시리즈는 센트럴 리그 주최 경기는 '''18:00''', 퍼시픽 리그 주최 경기는 '''18:15''' 또는 '''18:30'''에 개시한다.
2011년에는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전력 부족의 영향으로 4월에 개최 예정이었던 도호쿠 지방, 간토 지방의 야간 경기가 자제되었다. 2021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따른 긴급사태 선언의 영향으로 수도권에서 개최되는 경기 중 경기 종료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오후 5시 30분(17:30), 5시 45분(17:45) 시작으로 하는 경기가 있었다.
이 외에도 사와무라상, 베스트 나인, 골든 글러브상, 최우수 선수(MVP), 최우수 신인(신인왕) 등의 타이틀이 있으며, 컴백상, 최우수 배터리상, IBM 플레이어 오브 더 이어 상, JA전농 GO·GO상, 스피드업상(센트럴 리그만 해당), 스카이 퍼펙트 커뮤니케이션! 드라마틱·사요나라상, "조지아 혼"상 등도 시상한다.
과거에는 최다 출루 수, 최다 승리 타점, 최고 승률, 구원투수상, 슈터 슬러거상(최고 장타율), 주간 베스트 플레이어상, JCB·MEP상(센트럴 리그만 해당) 등의 타이틀도 있었으나 현재는 폐지되었다.
6. 해외 원정 공식 경기
1923년 일본 운동 협회와 덴슈 야구단이 경성(현 서울)에서 프로 구단끼리의 해외 경기를 벌였다.
프로 야구 리그 개시 후, 첫 해외 원정 공식 경기는 1940년 만주 리그전이다. 9개 팀이 만주(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동북부 지방)에서 7~8월에 걸쳐 하계 리그 경기를 개최했다. 1941년에도 개최 예정이었지만 중일 전쟁 악화로 취소되었다.
일본 프로 야구(NPB)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나가시마 시게오, 오 사다하루 등 스타 선수들의 활약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5] 그러나 1990년대 자유 계약 선수 제도 도입과 드래프트 제도 변경으로 선수 연봉이 급증하여 구단 경영을 압박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선수들의 메이저 리그 진출이 늘어나면서 '프로 야구계의 공동화', '일본 프로 야구의 메이저 리그 2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2005년에는 이시게 히로미치가 입안하여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현 시코쿠 규슈 아일랜드 리그)가 발족되었다. 이 리그는 기존 프로 야구 리그와 달리 지역 밀착형으로 야구 보급과 활성화를 목표로 했다.
마사오카 시키는 "Baseball"을 야구라고 번역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으로 '''주만 가나에'''가 번역했다.
미국의 작가 로버트 화이팅은 저서 『국화와 야구방망이』에서 일본 야구의 특징을 집단 정체성, 협력, 근면, 연장자 존중 등으로 설명했다.[5] 타이완인 고 쇼세이와 오시타 히로시는 1940년대에 스타로 활약했고, 이승엽, 선동열 등 한국 선수들도 NPB에서 활약했다. 블라디미르 발렌틴은 2013년 60홈런으로 NPB 단일 시즌 홈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NPB는 2007년부터 자체 도핑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제재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90]2017년부터는 혈액 검사도 실시한다.[91][92]2003년에는 "폭력단 등 배제 선언"을 발표하고, 2016년에는 야구 도박 문제 발생 이후 반사회적 세력 차단을 강화했다.[93][94][95][96]
NPB 중계는 초기부터 라디오와 텔레비전(NHK 및 민영 방송국)을 통해 전국 방송되었으나, 2000년대 이후 시청률 저하와 위성 방송 보급으로 지상파 방송이 감소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인터넷 중계가 증가했다.
응원단, 사설 응원단, 중호연합회, 히팅 마치 관리 위원회 등이 응원 문화를 이끌고 있으며, 가와노 야스미치, 오시카와 키요시, 하시도 신, 마사리키 마츠타로 등이 주요 인물로 꼽힌다. 마사리키 마츠타로 상도 제정되었다.
1949년, 1973년, 2004년에는 프로 야구 재편 문제가 발생했으며, 야구 복권 문제도 있었다. 일본 여자야구 연맹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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